달래고개 오누이의 비극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3)
 
조현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달래내길. 달천, 달래고개, 달래강, 달래산 등의 이름을 가진 강과 개울, 산과 고갯마루가 우리 땅 곳곳에 숨어있다. 금기의 억압 아래서도 근친상간의 신화가 면면히 살아남아 자취를 남긴 결과다. :김태형 기자


오누이의 결혼은 창조적 필연이었다

소나기가 내리는 고갯길을 넘어가는 오누이가 있었다. 남동생은 비에 흠뻑 젖은 누이를 보고 욕정을 느낀다. 그러나 욕정대로 할 수는 없는 일. 동생은 정욕을 느꼈다는 자책감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 자신의 남근을 돌로 찍다가 죽는다. 뒤늦게 죽은 동생을 발견한 누이는 ‘달래나 보지’를 연발하며 탄식했다. 달래산은 지금도 거기 있다.  참으로 비극적인 달래산 혹은 달래고개 전설이다. 황순원의 낭만적 〈소나기〉와는 전혀 다른 소나기가 이 전설에는 쏟아지고 있다. 이런 달래고개, 또는 달래강이 우리나라 도처에 있는 것을 보면 이 이야기가 대단히 많은 이들의 관심 과 공감 속에서 구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 무엇이 한 젊은 사내를 자살로 내몰았는가? 누이에 대한 욕정은 죄악이라는 근친상간 금지가 그 주범이다. 그리스신화의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 때문에 버림을 받았다가, 버려졌기 때문에 어머니와 결혼하는 비극에 빠져 결국은 파멸에 이른다. 동서를 막론하고 근친상간 금지는 신화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근친상간 금지야말로 원초적 자연과 인간의 문화를 구별짓는 긴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신화가 오랫동안 인문학자들의 화두가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대홍수와 인류멸조의 위기
근친상간 금기와 맞선
자연이 허락한 반문화적 결합

 
그런데 근친상간이 파멸에 이르는 비극이 아니라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는 창조적 행위라고 주장하는 신화가 있다.  신화학자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그 신화는 바로 남매혼 신화다. 아니, 근친상간을 부추기는 신화라니? 뭘 어쩌자고? 옛날 홍수가 일어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남매만 살아남았다. 물이 다 빠진 후에 세상에 나와 보았으나 어디에도 인적이 없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사람의 씨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남매가 결혼할 수도 없었다. 둘은 생각다 못해 각각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맷돌을 굴려 하늘의 뜻을 묻기로 하였다. 둘은 맷돌을 굴리며 하늘에 기도를 했다. 암맷돌과 수맷돌은 산 아래쪽에서 한데 포개졌다. 오누이는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결혼했다. 지금 인류의 조상은 이들 오누이다.  
1923년에 민속학자 손진태 선생이 함경도 함흥에서 들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대홍수가 일어나 다 죽고 오누이만 살아남았다고 는 홍수신화는 함경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민족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다. 맷돌이 아니라 연기를 피워 올리거나 화살을 쏘거나 동물들에게 묻는 경우도 있고, 한 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 시험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유일하게 생존한 오누이가 하늘의 뜻에 따라 결혼하여 새로운 민족이나 인류의 기원이 된다는 이야기의 구조는 어디서나 같다. 그만큼 보편성이 강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신화가 숨기고 있는 보편적 함의는 무엇인가?  

욕정 누른 남동생 죽음앞에 누이의 “달래나 보지”는
남성 욕망을 자극하기보다 생명 창조의 모성 담겼음을‥


△ 충북 괴산군 괴산읍과 충주시를 흐르는 달래강.

대홍수가 일어나 소수만 살아남을 경우 꼭 오누이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혼자 살아남을 수도 있고, 그리스 신화의 데우칼리온과 퓌라처럼 부부가 살아남을 수도 있고, 노아의 경우처럼 부부에 동물들까지 쌍쌍이 살아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홍수신화는 오누이만을 살아남게 만들어 스스로 난감한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 마치 일부러 진퇴양난의 처지에 온몸을 던져 근친상간 금기라는 난제와 맞장이라도 뜨려고 하는 것 같다.

우선 문제는 인류에게 닥친 대홍수다. 하지만 이 신화에서 왜 홍수가 일어났는가 하는 물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홍수는 인간이 쌓아 놓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말하자면 인간 이전의 상태로 상황을 역전시킨다. 이 역전 앞에 버틸 수 있는 장사는 없다. 따라서 근친상간 금기라는 도덕 역시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홍수로 인해 인간이 문화 이전의 상태, 곧 자연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대홍수가 설정한 문제적 상황이다.  

그러나 대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오누이에게는 홍수 이전의 문화가 이들에게 새겨놓은 금기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가능하면 짝짓기를 피하려고 한다. 이들은 지금 자연과 문화의 경계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먀오족(苗族) 남매혼 신화의 오누이는 대나무한테 물어보고 박한테 물어보고 맷돌도 굴려보고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기도 한다. 온갖 짓을 다 한다. 금기를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이 눈물겹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의 물음에 대해 하늘의 대답은 가혹하다. 피할 방법은 없다. 하늘의 뜻이니 결혼하라!  

그런데 이 대목에서 참으로 궁금한 것이 근친혼을 허락한 하늘의 정체다. 도덕을 모르는 이 하느님은 대체 어떤 하느님인가? 남매혼 신화의 하느님은 노아의 하느님과는 다른 하느님이다. 죄를 심판하는 무서운 하느님, 절대자로서의 하느님이 아니다. 오누이는 하늘의 뜻을 알아보자면서 맷돌 굴리기 점을 치고 있는데 이들의 점괘에 ‘아니다’는 없다. 맷돌이 겹쳐지지 않으면 겹쳐질 때까지 계속 굴리니까. 이렇게 시험을 당하는 하느님, 심지어는 협박(?)을 당하는 하느님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이들이 시험하는 하느님은 자연 그 자체다. 이들은 자연의 원리 앞에 자신들의 처신을 물은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상대편에 있는 자연은, 대홍수를 통해 이들을 이미 자연의 상태로 몰아넣은 하느님은 근친혼이라는 반문화적 결합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화의 논리가 좀 까다로운 듯하지만 사실 문제는 의외로 단순하다. 만약 대홍수 이후의 오누이가 저 달래고개의 남동생처럼 자신의 남근을 돌로 내리치는 식의 행위를 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인류의 멸종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인류의 멸종이란 곧 세계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홍수신화가 멸종의 서사라면 대홍수 이후에 인간이 살아남아야 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오누이는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신화학자들은 홍수신화를 창조신화라고 한다. 창조신화는 아무것도 없던 혼돈의 상태에서 하늘과 땅이 열리고 그 사이에 만물이 생성되는 이야기다. 무에서 유로, 무질서에서 질서로, 이것이 창조신화의 주제다. 홍수신화 역시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창조신화인 것이다.  그러나 홍수신화는 태초의 창조를 말하는 창조신화는 아니다. 오히려 홍수신화는 태초의 창조가 완전한 것이 아니며 불완전한 세계는 지속적으로 재창조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창조신화다. 봄이 되면 죽은 것 같았던 대지에 새싹이 솟아오르고 꽃이 핀다. 혹은 홍수가 나 모든 것이 휩쓸려가고, 불이 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뒤에도 그 자리에선 다시 생명이 솟아난다. 이것이 자연의 재창조다. 홍수신화는 이런 자연의 역동성이 이야기로 표현된 것이다. 자연으로의 역행을 통해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이야기 하는 매혼 홍수신화는 이런 재창조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는 신화가 아닐 수 없다.  

이쯤에서 다시 달래산으로 돌아가 보자. 남동생의 주검을 끌어안고 누이는 묘한 말을 한다. “달래나 보지.” 이 한마디는 이야기꾼이나 청중들의 욕망, 특히 남성들의 음란한 욕망을 자극한다. 이 유형의 이야기를 전국구로 만든 힘도 상당 부분 이 한마디의 에로티시즘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이의 말은 남성들의 욕망을 충동하는 음담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창조신화의 지문이 찍혀 있다. 남매혼 신화가 간직하고 있는 창조적 충동이 그 한마디 안에 은밀히 담겨 있다. 금기에 갇혀 있었던 남동생과는 달리 누이의 가슴속에는 오이디푸스의 고개를 넘어가는 모성적 대지의 충만함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조현설 기자는 중국 베이징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를 했고, 돌아와서 티베트·몽골·만주·한국 신화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고려대·동국대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아시아 신화학의 구축을 공부의 한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우리 신화를 동아시아 신화의 시각에서 읽는 공부의 여적(餘滴)이다. 그 동안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 『문신의 역사』, 『고전문학과 여성주의적 시각』(공저), 『한국 서사문학과 불교적 시각』(공저),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역서) 등을 펴냈다.
 

기사입력: 2009/01/16 [12:3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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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설 기자는 중국 베이징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를 했고, 돌아와서 티베트·몽골·만주·한국 신화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고려대·동국대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아시아 신화학의 구축을 공부의 한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우리 신화를 동아시아 신화의 시각에서 읽는 공부의 여적(餘滴)이다. 그 동안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 『문신의 역사』, 『고전문학과 여성주의적 시각』(공저), 『한국 서사문학과 불교적 시각』(공저),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역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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