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노각성자부줄의 정체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4)
 
조현설



△ 오누이가 도끼를 찍어 올라 동아줄을 받았다는 전래동화 속 나무를 닮은 당나무(팽나무)가 불돗당을 지키고 있다.


삼승할망 오른 ‘하늘줄’ 은 탯줄의 변형
 
너무나 진부한 옛날 이야기, 그래도 아이들은 좋아하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오누이는 할머니를 삼킨 호랑이에게 쫓긴다. 이들이 살아난 방법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아이들은 신이 나서 정답을 외친다. 자신들의 생명줄이 된 동아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간 오누이는 신기하게도 해와 달이 된다. 신라의 <연오랑 세오녀>나 평안도 무가 <일월노리푸념>처럼 해와 달의 기원신화 냄새를 풍기는 이 민담에서 우리의 구미를 당기는 것 중의 하나가 동아줄이다. ‘나도 그런 줄이 하나 있었으면.’ 이런 염원은 이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는 어린이들만의 것은 아니리라.
 
그래서일까? 우리 신화에는 여기 저기 줄이 내려져 있다. <나무꾼과 선녀>의 두레박줄이나 여섯 가락국의 창업자들을 담은 금빛 그릇이 달려 내려온 자줏빛 줄 외에도 무속신화 <제석본풀이>를 보면 당금애기의 세 아들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박씨를 심어 그 줄을 타고 아버지를 찾아간다. 하루에 천 길 만 길을 뻗는 박 넝쿨을 타고 아버지 천지왕을 찾아 하늘로 올라가기는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왕본풀이>의 대별왕·소별왕 형제도 마찬가지다. 역시 제주도 신화인 <세경본풀이>의 문도령이나 주모할머니가 하늘을 오르내릴 때 애용하는 탈 것도 줄이다.
 
필요할 때 나타나는 줄 이야기는 만족을 모르는 우리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신화의 줄은 그것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하필 오누이의 생명줄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이 엉뚱한 물음에서 오늘의 수수께끼는 시작된다.
 
잉태와 출산 양육을 관장하는
제주도 삼승할망의 줄은
어머니와 닿은 무의식속 생명줄

 
‘노각성자부줄’이라는 이상한 하늘 줄의 고향 제주도로 가 보자.(노각성자부줄의 뜻과 연원에 대해서는 향토학자들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도움말씀을 기다린다) 제주도의 삼신할미인 삼승(産神)할망의 기원 신화 <삼승할망본풀이>를 보면, 인간세상의 잉태와 출생, 양육을 관장하는 삼승할망 일을 하러 온 동해용궁 따님애기가 제 노릇을 못하자 인간 세상 멩진국 따님애기가 옥황상제에게 뽑혀간다. 멩진국 따님애기는 옥황의 시험을 간단히 통과하고 지상에 삼승할망으로 내려온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옛 삼승 동해용궁 따님애기와 새 삼승 멩진국 따님애기 사이에 자리를 두고 다툼이 일어난다. 둘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옥황상제에게 올라가 누가 더 유능한 신인지 겨루기를 한다. 이기는 쪽은 당연히 새 삼승이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멩진국 따님애기가 하늘을 오르내릴 때, 그리고 두 따님애기가 우열을 가리러 옥황에 올라갈 때 노각성자부줄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 하늘줄의 전설이 깃든 북제주군 조천읍 와산리 불돗당.


<삼승할망본풀이>와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제주도 조천읍 와산리 불돗당(佛道堂)의 내력을 들려주는 <불돗당본풀이>다. 지상의 인간인 삼승할망과 달리 이 본풀이(신화)의 당신 불도삼승또(佛道産神)는 본래 옥황상제의 막내딸이었는데 부모 말씀을 거역하여 인간 세상에 귀양온 존재다. 그렇지만 불도삼승또 역시 자식 없는 자손들에게 자식을 점지해 주고 키워주는 신이기에 삼승할망과는 동업자다. 불도삼승또는 당신·조상신이면서 삼신할미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딸애기 또한 노각성자부줄을 타고 내려온다.
 
두 신화에서 우리는 노각성자부줄이 하늘을 오르내리는 줄이지만 동시에 산육신(産育神)인 삼승할망과 뭔가 관계가 있는 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돗당본풀이>를 들어보면 불도삼승또가 와산리 당오름(신당이 있는 산봉우리)에 내려올 때 산봉우리의 큰 바위에서 피가 흘러내렸다고 말한다. 아니 느닷없이 피라니? 줄을 타고 내려오시다가 착지를 잘못해 무릎이 깨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다. 이 피는 분명 산육신인 불도삼승또를 상징하는 피일 것이다. 불도삼승또가 담당하는 출산에 동반된 출혈을 상징하는 피가 분명하다. 노각성자부줄과 삼승할망의 관계에 대한 유력한 단서다.
 
그런데 왜 남성신과 연결되는가
제우스 아래의 그리스 신화처럼
할머니 잃은 오누이가 기댈 곳은
호랑이보다 센 아버지일수 밖에

 
그렇다면 피를 흘리는 바위에 연결된 줄은 무슨 줄일까? 아마도 이 줄은 출산이라는 원초적 체험과 연결된 탯줄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태초의 인간이 돌에서 나왔다고 하는 신화가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조가 된다. 엘리아데가 <대장장이와 연금술사>에서 야금 작업에 쓰이는 돌이 태아를 상징한다고 했던 이야기도 떠오른다. 지금 불돗당에 모시고 있는 불도삼승또의 신체(神體)가 바로 큰 바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불도삼승또가 내려온 봉우리의 피를 흘리던 바위와 동일시되는 바위일 것이다. 따라서 삼승할망의 몸인 바위에 연결되어 있는 노각성자부줄, 또는 삼승할망이 애용하는 노각성자부줄은 탯줄이라는 원형적 이미지의 변형이 아닐 수 없다.
 
탯줄이란 무엇인가? 탯줄은 한편으론 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운 자궁 속의 태아가 의지하고 있는 유일한 줄, 어머니와 신체적으로 연결된 생명줄이다. 탯줄은 출산과 함께 끊어지지만 끊어진 이후에도 끊어지지 않는다. 심층심리학자들의 말처럼 자궁의 체험이 인간의 무의식 안에 깊이 새겨져 있다면 어머니와 연결되려는 욕망의 줄은 단절될 수 없다. 잉태와 출산과 양육을 관장하는 제주도의 삼승할망들이 노각성자부줄을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는 것은 이런 무의식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노각성자부줄에는 하나의 곡절이 더 숨어 있다. 이 줄의 한 쪽 끝을 천신이 붙잡고 있다는 사실. 제주도 무속신화의 줄들은 하나같이 옥황상제에 닿아 있다. <삼승할망본풀이>나 <불돗당본풀이>만이 아니라 <천지왕본풀이>나 <세경본풀이> 줄도 옥황상제의 옥좌에 연결되어 있다. 탯줄의 변형이라면 어머니에게, 아니 세계를 창조한 대지의 여신이나 하늘의 여신에게 닿아 있어야 할 줄이 수상하게도 옥황상제라는 남성신의 권좌에 접속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줄의 왜곡, 곧 줄 이미지의 역사적 변형이 도사리고 있다. 어머니를 향한 줄이 아버지를 향한 줄로 변형된 것이다.
 


△ 불돗당 내부의 불도삼승또바위. 북제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천지왕이 지상의 총멩부인과 짝을 이뤄 낳은 소별왕과 대별왕, 그리고 석가여래가 지상의 당금애기와 짝을 이뤄 낳은 삼형제는 왜 굳이 아버지와 연결된 줄을 따라 아버지를 찾아갔을까? 주몽을 찾아 부러진 칼을 맞춰보고 왕위를 계승한 고구려의 유리처럼 이들도 아버지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중심인 사회에서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 신화의 질서는 현실의 질서를 무시하는 듯하지만 이처럼 현실의 질서를 깊이 투영하기도 한다.
 
노각성자부줄이 삼승할망들의 줄이면서 동시에 옥황상제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하늘 줄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현실의 질서를 받아들인 제주도 신화의 신성한 족보는 최고신 옥황상제(천지왕) 아래 삼승할망과 같은 여신들이 자리잡은 모습으로 짜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제우스 아래 여러 신들이 배치되어 있는 그리스 신화의 신보(神譜)와 큰 차이가 없다. 물어보면 제주도 심방(무당)들도 잘 대답하지 못하는 노각성자부줄의 정체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해놓고는 약속을 위반한다. 구두계약을 무시하고 야금야금 할머니를 먹어치우는 호랑이의 존재는 끔찍하면서도 괴이쩍다. 이 이상한 호랑이와 동아줄 이야기에 노각성자부줄의 정체는 어떤 암시를 준다. 그 동안 안전하게 오누이를 키워주던 할머니, 그러나 호랑이에게 살해된 할머니는 더 이상 이들의 생명줄이 되지 못한다. 할머니, 곧 어머니를 향한 노각성자부줄이 끊어진 것이다. 이제 잡을 수 있는 줄은 하나밖에 없다. 호랑이보다 센 아버지의 줄. 오누이의 생명줄은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현설 기자는 중국 베이징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를 했고, 돌아와서 티베트·몽골·만주·한국 신화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고려대·동국대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아시아 신화학의 구축을 공부의 한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우리 신화를 동아시아 신화의 시각에서 읽는 공부의 여적(餘滴)이다. 그 동안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 『문신의 역사』, 『고전문학과 여성주의적 시각』(공저), 『한국 서사문학과 불교적 시각』(공저),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역서) 등을 펴냈다.
 

기사입력: 2008/12/19 [17:56]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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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설 기자는 중국 베이징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를 했고, 돌아와서 티베트·몽골·만주·한국 신화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고려대·동국대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아시아 신화학의 구축을 공부의 한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우리 신화를 동아시아 신화의 시각에서 읽는 공부의 여적(餘滴)이다. 그 동안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 『문신의 역사』, 『고전문학과 여성주의적 시각』(공저), 『한국 서사문학과 불교적 시각』(공저),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역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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