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트 겔에서 북두칠성과 이야기를 나누다
<몽골 여행기 3> 바람결 따라 달린 초원길 2,000Km
 
최성수
 
▲ 초원에 개울이 있다. 풀과 물 사이에서 소년은 자란다.     © 최성수
 
고야는 없어도 아이들은 자란다
 
차는 끄떡끄떡 조는 것처럼 달린다. 언제나 같은 풍경, 푸르디푸른 초원 너머로 완만한 구릉, 그리고 어쩌다 나타나는 겔과 겔 주위의 양떼와 말 몇 마리가 반복된다. 그러나 질리지 않는 것은, 그 풍경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안한 탓일까, 깜빡 잠이 든다. 차가 비틀 하는 느낌에 퍼뜩 눈을 뜬다. 보니 기사 아무라가 졸고 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뒤에서 따라오던 다른 일행이 탄 차가 빵빵 경적을 울린다. 우리 차가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나보다. 
 
기사 아무라가 길을 벗어나 초원 쪽으로 조금 내려가 차를 댄다. 물가다. 꿈틀꿈틀 제 몸을 트는 물길이 초원 아득한 곳에서 흘러오고 있다. 아이들 몇과 부부인 듯 한 어른 둘이 물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아무라가 차에서 내려 물 가까이에 가 얼굴을 씻는다. 그제야 정신이 좀 드나보다.
 
길 가라고 해도 낭떠러지는 아니고 그저 초원이니, 졸다 사고가 났다고 해도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 일행들도 물가에 가서 손을 담가보고, 세수도 한다. 시원하다. 물에서 초원의 향기가 나는 것 같다.
 
몽골의 아이들이 물가에서 자맥질을 하며 신나게 놀고 있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초원의 풍경이 된다. 어린 시절, 집 뒤 고야나무(토종 자두나무)에 올라가 열매 몇 개 따들고 개울가로 달려가던 내 모습이 거기 어린다. 혹 나처럼 고야 몇 개를 물속에 던져 넣고 찾아내는 장난을 하는 것은 아닌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지만, 고야는 없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물장구를 쳐 댈 뿐이다. 고야가 없어도 아이들은 초원의 햇살과 바람과 강물로 탱탱하게 여물고 부쩍부쩍 자랄 것이다. 그리고 초원을 달리는 몽골의 청년이 될 것이다. 
 
 꽃밭에는 벌레가 많다
 
다시 차는 초원을 달린다. 자르갈란트 솜(솜은 가장 작은 행정구역 명칭)을 지난다. 산발치로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다. 우리로 치면 리(里)보다도 작은 마을이다. 그래도 어쩌다 한 채 겔이 나오던 초원보다는 많은 집들이 모여 있는 셈이다. 모여 있는 집 밖은 초원이다. 초원에는 양떼들이 풀을 뜯느라 모여 있다. 집들의 영역과 양들의 영역이 그렇게 나뉘어 각각 모여 있다. 인간과 동물이 행복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다.
 
▲ 초원을 실처럼 흐르는 개울과 푸른 하늘     © 최성수

▲ 어워의 머리 위 하늘도 눈부시게 푸르다     © 최성수
                                     
차가 에르데네트를 지난다. 에르데네트는 몽골 최고의 광산지대이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구리 매장량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집과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 산다. 자본은 이렇게 아득한 벌판에 사람들을 모은다. 구리를 채굴하는 회사가 들어서면, 기술자가 모여들고, 광부들이 달려든다. 그리고 그 광부들의 임금을 바라고 가게와 술집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도시가 형성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사람들은 그 도시 속에서 아옹다옹 다투며 살아가리라.  
 
양털을 가득 실은 트럭이 비실비실 스쳐 지나간다. 양털 1kg에 약 400-500 투그릭(몽골 화폐 단위. 우리 돈과 거의 1:1)이란다. 반면 염소 털은 같은 무게에 4천-5천 투그릭, 거의 열 배 비싸단다. 왜 그러냐니까 양이 많고 기르기 쉬워서 아서 싸단다. 요즘같은 여름에 털을 깎아 팔면, 겨울이 오기 전 다시 털이 자라 동물들의 겨울나기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짧은 여름은 순식간에 지나가리라. 그래서 어쩌면 초원의 일손은 여름에 더 바쁜 것인지도 모른다. 길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짐승의 털을 깎아 팔고, 젖을 짜 유제품을 만들어 겨울식품을 준비하려면 긴긴 여름해도 짧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자의 눈에는 그 모든 풍경이 그저 한가롭기만 하다. 그래서 여행자는 늘 삶의 객관자일 뿐인지도 모른다.
 
길 가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이 있다. 아무라가 차를 멈춘다. 아이들이 병속에 산딸기를 넣어 팔고 있다. 한 병에 2천 투그릭이다. 기사 아무라가 한 병을 사서 우리에게 건넨다. 우리나라 산딸기보다는 알이 작다. 나무딸기가 아니라 풀 딸기인 것 같다. 맛을 보니, 단맛보다는 새콤한 맛이 더 강하다. 그래도 아무라는 아주 귀한 것이라며 자꾸 더 먹으라고 권한다.
 
차는 볼강 아이막으로 들어서서도 쉬지 않고 달린다. 볼강은 아이락의 본고장이다. 아이락은 동물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 음료다. 음료라기보다는 술에 가까운데, 우리나라 막걸리 비슷하다. 나중 돌아오는 길, 아이락 한 병을 사 아무라에게 권하니, 운전하는 데 지장이 있다며 마시지 않던 것을 보면, 아이락도 제법 취기를 돌게 하는 술임이 틀림 없다. 시큼털털한 아이락의 맛에도 초원의 향기가 담겨 있는 것 같다.
 

▲ 구름이 구릉에 얹혀 있는 것 같다.     © 최성수
                        
 가끔 초원 저편으로 소떼도 보인다. 워낙 말과 양이 많다보니, 소떼가 오히려 귀하게 느껴질 정도다. 몽골의 소고기는 질기고 맛이 덜하다고 한다. 방목을 하기 때문에 고기가 질기고, 소의 가죽도 벌레들이 뜯어먹어 구멍이 뚫린 곳이 많아 높이 쳐주지 않는다고 한다. 
 
에르데네트에서 볼강까지 약 65km를 차는 쉬지 않고 달린다. 볼강 아이막에 들어서자 허름한 가게에 들른다. 허름한 가게지만 냉장고에 시원한 맥주가 들어 있다. 한 캔을 사서 목을 축인다. 
 
한 숨 돌린 차는 이제 오랑터거를 향해 달린다. 길은 이제 아예 비포장이다. 먼지를 자욱하게 날리며 달리면 초원의 바람이 그 먼지를 쓸어가 버린다. 차는 가다가 패인 곳을 만나면 그냥 초원으로 들어선다. 한참을 길이 옆에 두고 초원으로만 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달려가면 그곳이 또 길이 된다. 그래서 초원 위로는 무수히 많은 길이 나 있다. 어떤 곳에서는 어디가 길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기도 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작은 언덕을 힘겹게 오르던 차가 잠시 멈춘다. 언덕 꼭대기다. 언덕이라고 해야 가파르다기보다는 밋밋한 구릉 같을 뿐이다. 길 가로 휴게소인지 민박집인지, 깔끔하게 나무로 지은 집이 한 채 자리 잡고 있다. 서너 명이 집 앞 나무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오랫동안 차 안에 있어서인지 허리가 뻐근하다. 차에서 내리는데, 길 건너편 쪽으로 온통 꽃밭이다. 보라색 꽃이 특히 많다. 쥐손이풀 같다. 이질풀도 지천이다. 카메라를 들고 꽃밭으로 들어서다 그만 멈칫 물러서고 만다. 꽃 밭 속에서 왱왱거리며 파리들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모기도 셀 수 없다. 꽃밭 여기저기 말 똥, 양 똥이 가득하다. 화장실에나 갈 생각으로 야생화 밭 아래쪽 작은 목조 건물로 갔다가 거기서도 그냥 돌아서고 만다. 문 밖에서도 화장실 안쪽에서 왱왱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살짝 문을 열어보니, 세상에! 파리가 융단폭격 하듯 내게 달려드는 게 아닌가! 나는 얼른 문을 닫고 멀찌감치 물러선다.
 
▲ 꽃이 아름다운 것은 숱한 말똥과 양똥 위에 있기 때문이다.     © 최성수
 
돌아서다 곰곰 생각해본다. 아름답다고 온전히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더럽다고 온전히 더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것 속에는 더러운 것이 담겨 있고, 더러운 것에도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아름다움을 피워내기 위해 짐승들의 똥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더러운 똥 속에 있으면서도 고운 꽃을 피워낸다. 그렇다면 더러운 것과 아름다운 것은 같은 것의 다른 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내게 꽃들이 싱긋 웃어주는 것 같다.
 
 길 위의 사람에게 별은 깃들고
 
언덕에서 가야 할 길을 바라본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다. 이제 하룻밤 묵어야 할 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나 바라보이는 언덕 아래 초원에는 집이라고 보이는 것 하나 없다. 그저 푸른 초원 위로 몇 번 제 몸을 틀며 이어진 황토 빛 길이 누워있을 뿐이다. 
 
 그 길을 따라 바람이 분다. 바람에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마치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초원의 영혼 같다. 살아 움직이며 흙먼지가 지나고 나자 잠시 정적이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깨며 오토바이가 한 대 달려간다. 그러자 이번에는 작은 먼지가 일어난다. 그리고 또 정적! 
 
마음이 어둑해지는 날씨처럼 낮게 가라앉는다. 언덕을 내려선 차가 길을 버리고 초원으로 들어선다. 길이 없어도 목적지를 찾는 아무라의 능력에 감탄을 하는 사이, 차가 캠프장에 도착한다. 유니트 겔이다. 캠프장이라고 하지만, 그저 넓은 땅을 둘러 말뚝을 치고, 겔 여러 채를 지어 놓았을 뿐이다. 그 중앙에 목조로 지은 이층의 건물이 하나 있다. 식당 겸 사무실이다. 
 
▲ 집 하나 없을 것 같은 막막 초원을 나선 그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 최성수
 
차에서 내려 짐을 옮기니 이미 어두운 밤중이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벽을 따라 침대 세 개가 놓여 있는 작은 겔이다. 중앙에 난로가 놓여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불을 땐 흔적이 없다. 전깃불도 없는지, 난로 위에 양초가 하나 놓여 있다.
 
하루 종일 흙먼지에 던져졌던 몸을 씻으러 샤워장에 가니, 미지근한 물이 나온다. 그것도 샤워 도중 갑자기 찬 물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그냥 찬 물에 씻고 나오니 몸이 오슬오슬하면서도 상쾌하다. 늦둥이 진형이 녀석도 추운지 몸을 옹송그린다.
 
식당 건물로 가 몽골식 저녁을 먹는다. 고기와 국수, 스프 따위다. 식사 후, 겔 곁에 모여 일행들이 술과 이야기로 밤을 밝힌다. 캄캄한 밤중, 불빛 하나 없는 하늘에 말똥말똥 별이 떠오른다. 
 
우리 차 기사인 아무라도 뒷 차 기사인 헛스그도 함께 술을 마신다. 아무라는 러시아에서 대학을 다녔고, 딸은 러시아에 아들은 중국 북경에 유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말도 금방 따라할 줄 알고, 중국어도 몇 마디 할 줄 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하는데, 서로 서툰 언어들이라 오히려 말이 잘 통하기도 하는 배불뚝이다. 먹성 또한 좋아, 접시 그득히 담긴 고기를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우기도 한다. 
 

▲ 어두워지는 하늘 위로 달이 떴다. 저 달이 지고나자 송알송알 별이 맺히기 시작했다.     © 최성수
 
몽골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배가 많이 나왔다. 어린 소녀조차 배가 불룩 나온 경우도 많다. 야채보다는 고기를 주로 먹을 수밖에 없는 식습관이 그들을 뚱뚱이로 만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겨울이면 혹한의 추위(울란바타르가 영하 40도로 내려가는 적도 많다고 한다)를 견뎌야 하니, 몸에 지방을 축적하고 있는 것이 덜 춥게 살 수 있는 생존의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환경이 인간의 몸을 만든다는 것을, 아무라는 몸으로 대변해 주고 있는 셈이다.  
 
며칠 전에는 차를 몰고 바이칼에서 울란바타르까지 하루 만에 왔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흡스굴에 갔다가 다시 울란바타르와 와서 아내의 카페 개업 준비를 함께 하고, 이번에 또 흡스굴로 나선 길이란다. 길에서 길로 이어진 그의 삶이 말 속에 녹아 있는 것 같다. 수천 키로를 며칠 상관으로 달리는 그에게 삶은 어쩌면 길 자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길 위에서의 그의 삶을 들으며, 나는 나 또한 숱한 길 위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다녔던 실크로드와 운남의 길 뿐만 아니라, 태어나서 살아온 전체가 생이라는 길 위에 있었으니까. 우리네 삶이란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이승의 삶은 인생이라는 여행의 길에서 시작해 그 길 위에서 끝나는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이 세상은 모든 사물의 주막집이고, 세월은 아득한 날들을 흘러가는 나그네 같은 것’이라는 이백의 말(<봄 밤, 꽃 핀 정원에서 잔치하다:春夜宴桃李園序)>이 오늘 밤은 더욱 절실하다.
 
“한국 사람을 태운 적이 있나?”
 
내 물음에 그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두 번 한국 사람을 안내한 적이 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한국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 거듭된 질문에 그는 막힘 없이 대답한다.
 
“좋은 한국 사람도 있고, 나쁜 한국 사람도 있다. 그건 세상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내가 안내했던 한국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 사람에 대한 그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한국 사람들 중에는 몽골에 와서 술집을 하면서, 성 매매를 하는 경우도 있단다. 그런 사람들은 좋지 않은 한국 사람이라며, 한국은 잘 사는 나라인데, 몽골의 발전을 위해 힘을 써 주면 좋겠다는 희망도 털어놓는다.
 
몽골은 인구는 적지만 대량의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일찍부터 그런 몽골의 가능성에 눈을 뜬 나라들이 속속 몽골로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몽골의 곳곳에서 도로를 닦아주고,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고, 일본은 훨씬 일찍부터 몽골의 여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도 서비스업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실이 아무라가 보기에는 안타까웠나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늘을 쳐다보니, 북두칠성이 눈부시게 떠 있다. 몽골에서는 북두칠성이 일곱 명의 신을 상징한단다. 우리나라에서도 북두칠성은 칠성신으로 떠받들고 있으니, 몽골과 같은 인식인 셈이다. 고구려의 무덤에 이 별을 그려 넣기도 했었고, 시신을 눕혀놓는 나무 판도 칠성판이라고 한다. 절에는 칠성각을 지어놓았고, 할머니들은 정화수를 떠 놓고 칠성신에게 빌곤 했다. 비를 내리게 하고, 건강을 빌어주며, 재물을 관장하는 것도 다 칠성신의 역할이었다. 밤하늘에 유난히 빛나는 일곱 별들은 아득한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지의 대상이며 신성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한동안 북두칠성을 바라보다 겔로 들어와 잠을 청한다. 한 밤중이었을까, 무엇이 겔 천정을 마구 두드린다. 하루 종일 차에 시달린 탓인지, 그 소리가 마치 꿈결처럼 아득하다. 멍하니 눈을 뜨고 캄캄한 겔 천정을 바라본다. 갑자기 번쩍이는 불빛이 어둠을 헤치고 스쳐 지나더니, 얼마 후 쿠르릉 쾅 하는 소리가 들린다. 번개와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는 것이다. 
 
그 초롱초롱하던 밤하늘의 별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빗방울 하나 내릴 것 같지 않게 맑던 하늘에 어느 순간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것일까? 몇 시쯤 된 것일까? 나는 전생의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아득하고 아득한 몽골의 초원에 와서 이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온갖 생각의 거미줄에 머릿속을 칭칭 동여매다 다시 깜빡 잠이 든다. 그리고 그 밤, 나는 몽골 초원에 뜬 하나의 별이 되어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꿈을 꾸었다. 
 

▲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김남주의 시의 한 구절). 초원 위의 물도 흘러 가는 곳 어디?     © 최성수
  


최성수 기자는 강원도 안흥에서 태어나, 국민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한문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었고, 우리나라 한문 고전 중에서 전형적인 글들을 뽑아 『함께 읽는 우리 한문』을 그 모임의 선생님들과 같이 엮어 냈습니다. 1987년 『민중시』 3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과 소설 『비에 젖은 종이비행기』, 『꽃비』 등을 냈으며,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가지 많은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등의 책을 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시 100』,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교실에서 세상 읽기』 등의 책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경동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09/01/29 [21:08]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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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기자는 강원도 안흥에서 태어나, 국민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한문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었고, 우리나라 한문 고전 중에서 전형적인 글들을 뽑아 『함께 읽는 우리 한문』을 그 모임의 선생님들과 같이 엮어 냈습니다. 1987년 『민중시』 3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과 소설 『비에 젖은 종이비행기』, 『꽃비』 등을 냈으며,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가지 많은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등의 책을 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시 100』,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교실에서 세상 읽기』 등의 책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경동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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