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꽃밭이 거기 있었네
<몽골 여행기 4> 바람결 따라 달린 초원길 2,000Km
 
최성수
 
▲ 초원을 달려온 오토바이에서 허브 향내가 난다. 그 길에서 만나면 누구나 친구다.     ©최성수

 꽃 곁에서 잠들다
 
날씨가 제법 싸늘하다. 겔 문을 열며 하늘을 보니, 비는 내리지 않지만 흐릿하다. 새벽 6시다. 첩첩의 구름 사이로 잠시 달이 얼굴을 빼꼼이 내밀더니 이내 사라진다.
 
이웃 겔에서 기사인 아무라가 나오며 기지개를 켠다. 팬티에 런닝 차림이다. 나는 점퍼를 걸쳤는데도 한기가 느껴지는데, 그는 아예 거의 벗은 차림이면서도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몽골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그냥 시원한 날씨인가보다.
 
내가 잠을 잤던 겔 주위를 보니, 온통 솜다리(에델바이스) 천지다. 사이사이 구절초도 곱다. 그 꽃들을 보니, 어젯밤 내가 초원의 꽃밭에서 잠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7시 30분 경 다시 출발을 한다. 잠시 햇살이 비치다가도 금방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거센 바람이 불며 빗방울이 듣는다. 돌아보니 내가 하룻밤 잔 겔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유니트 겔은 영어식 이름이고 몽골 말로는 올트 겔이란다. 나는 멀어지는 겔 촌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생이란 세상이란 여행길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주막집 같은 것이라는 말을 되새긴다. 내가 잠들었던 초원의 저 겔처럼 내 생의 나머지 나날들도 그렇게 어느 낯 선 곳에서의 하룻밤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는 초원은 낮고 흐리다.
 
▲ 흐린 하늘 아래 초원도 낮게 가라앉는다     ©최성수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빗방울도 제법 굵어진다. 차는 마치 비바람 속을 뚫고 비틀거리며 달리는 것 같다. 초원의 풀들이 바람에 힘겹게 버티다 몸을 눕힌다. 야생화들도 쉴 새 없이 제 몸을 흔들고 있다. 안간힘으로 살아가는 초원의 생명들이 눈물겹다.
 
비가 내리자 초원 군데군데 물길이 생겨난다. 순식간이다. 그래서 조금만 비가 내리면 길이 끊긴다는 말이 실감난다. 평지에 갑자기 물이 흐르니, 그 깊이를 짐작할 길조차 없고, 그 물들이 모여, 말랐던 개울에 거센 물이 흐르니, 건너기 위해서는 경험적으로 얕은 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점점 거세지는 빗방울을 뚫고 차가 달려가는데, 양떼들이 나타난다. 일렬종대로 늘어선 양들의 앞에는 말을 탄 남자가 빗줄기를 헤치며 힘겹게 앞으로 나가고 있다. 양떼의 제일 뒤에 또 다른 남자가 말을 타고 양떼를 몰고 있다. 그런데 양떼들은 빗방울이 싫은지, 걷기 힘겨운 몸짓이다. 앞에서는 끌고, 뒤에서는 밀고, 빗줄기 속에서 숙영지를 찾아가는 유목민의 삶이 눈물겹다. 그 풍경이 흐린 날씨만큼이나 아득한 것은, 이곳이 내 생에서 좀체 만나지 못한 아득한 초원이기 때문이리라. 산이 만들어내는 경계조차 없이 확 트인 벌판에 금방이라도 머리를 짓누를 것 같은 먹구름이 낀 저 막막한 풍경이라니!
 
언덕을 하나 넘자, 빗줄기가 뜸해진다. 달려온 길을 돌아보니, 그곳 하늘에 비구름이 가득하다. 평원에서는 눈에 보이는 저 편에는 비가 오고, 내가 서 있는 이곳에는 맑은 날씨가 흔하다. 비구름의 가장자리에서는 길을 경계로 양쪽 날씨가 다른 경우도 있다.
 
▲ 산비탈로 바람이 분다. 야생화들이 흔들린다.     ©최성수
날씨는 구릉을 하나 넘을 때마다 달라진다. 햇살이 쨍쨍하다가도 조금 달리면 이내 빗줄기 속에 놓여 있게 된다. 아주 그치지 않을 것처럼 비가 퍼붓다가도 언제 그랬느냐 싶게 햇살이 환해지기도 한다. 
김시습의 시 그대로 사청사우(乍晴乍雨)다. 

 
 잠깐 개다 비오고, 비 오다 다시 개네(乍晴乍雨雨還晴)
 하늘도 이런데 사람이야 더 하겠지(天道猶然況世情)
 나를 기리다 도리어 나를 헐뜯고(譽我便是還毁我)
 명예는 필요 없다더니 제 스스로 명예를 찾네(逃名却自爲求名)
 꽃 피고 꽃 지는 걸 봄이 어쩌겠나(花開花謝春何管)
 구름이 오고 간다고 산은 다투지 않네(雲去雲來山不爭)
 세상 사람들아 이 말 한마디 기억하게(寄語世人須記認)
 기쁨도 평생 가는 법 없다는 것을(取歡無處得平生)
 
자연을 보면서도 인간사의 아픔을 되씹어야 했던 김시습의 시를 생각하니, 몽골 초원의 변화무쌍한 날씨가 더 아득해진다. 그런 내 마음이야 오불관언이라는 듯, 아무라는 팝송을 크게 틀어놓고 운전을 한다. 여행자인 내게는 특별한 이 길이 그에게는  일상의 한 굽이일 뿐이리라. 
 
  몽골의 샘터, 하노이
 
착 작은 구릉을 넘는다. 구릉 가득 솔채꽃이다. 몽골의 초원은 전체가 야생화 초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아무 곳에나 내려도 꽃밭이다. 눈앞의 꽃이 고와 마음을 뺏기다가 문득 발밑을 보면, 내가 밟고 있는 것도 야생화다. 너무 흔한 것은 금방 시들해지기 마련이지만, 꽃만은 거기에서 예외인 것 같다. 보아도보아도 싫증나지 않으니, 가다가 자꾸 차를 세워 꽃구경에 나서게 되는 것이 몽골 초원 여행이다.   
 
▲ 하노이, 저 맑은 물이 몽골 사람들의 마음일까?     © 최성수
몇 개의 구릉을 넘어서자 발 아래로 깊게 패인 골짜기가 나타난다. 골짜기 아래로는 제법 큰 강물이 흐른다. 
 
“여기가 하노이 아르샤다. 몽골에서 아주 유명한 휴양지다.”
 
아무라가 강물 건너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텐트들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몽골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물을 마시고 쉬기 위해 울란바타르에서 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온다고 한다. 그 먼 거리를 단지 물을 마시기 위해 달려온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물이 흔한 땅에서 왔기 때문이리라. 
 
“대부분 한 2주 정도 이곳에서 쉬며 물을 마시고 울란바타르로 돌아간다.”
 
이곳 하노이의 물이 특히 깨끗하기 때문에 몸의 병을 낫게 해준단다. 그래서 많은 몽골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쉰다는 것이다. 
 
▲ 인형을 들고 구릉 너머로 사라지는 아이.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도 초원이 여전히 빛나기를...     © 최성수
 
어느 나라나 물은 신성성의 상징이다. 물은 모든 생명체의 목숨을 유지시켜주는 물질이며, 맑고 순수함의 극치다. 그래서 물 한 그릇을 떠놓고 기도하기도 하고, 신비의 약수로 이름난 곳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기도 한다. 더구나 몽골처럼 물이 귀한 나라에서는 그냥 마실 수 있는 물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칭기스칸은 물을 함부로 버리는 것을 중대한 범죄로까지 취급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흔히 몽골 사람들은 잘 씻지 않는다고 한다. 물 한 그릇으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는다며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도 있다. 
 
몽골 사람들이 잘 씻지 않는 것은 몽골의 자연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몽골은 물이 귀한 땅이다. 곳곳에 큰 호수가 많이 있지만, 광대한 땅에 비하면 그 물을 몇몇 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남부의 고비사막 같은 곳은 물을 찾기 위해 수 백리를 이동해야 하는 곳도 있다.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물을 파고 물을 길어 쓰는 농경 생활을 잣대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가축을 위해 초지를 옮겨 다니다가 물을 긷기 위해 수십 리 마을까지 가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물을 아껴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도 풍족하게 물을 써버려, 결국은 물 부족 국가가 되어버린 우리가 더 문제가 아닐까? 깨끗함이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리라. 검게 그을린 얼굴에 몽골 유목민의 얼굴에는 초원의 바람과 햇살과 풀 향기가 어려 있다. 그래서 하얀 이를 보이며 웃는 몽골 초원의 사람들은 우리네만큼 자주 씻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워 보인다.
 
▲ 하노이 하늘 위로 독수리가 난다. 텐트를 치고 물을 먹으러 며칠을 달려온 사람들.     © 최성수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보는 하노이 아르샤의 하늘이 아득하다. 그 하늘 위로 새들이 몇 마리 허공을 휘돌고 있다. 독수리다. 
 
세상에서 가장 고운 꽃밭
 
차가 한참동안 언덕을 돌아 내려가더니, 하노이 강을 건넌다. 베트남의 하노이는 한자로 쓰면 하내(河內)라는 뜻이다. 중국 운남성을 거쳐 흐르던 홍하(紅河)가 흘려 내려간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홍하가 빠져나가는 중국 땅의 끝 부분 이름이 허코우(河口)다. 강의 입에서 강의 안쪽까지, 강물과 관련해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렇다면 몽골의 하노이는 무슨 뜻일까? 
 
그런 쓸데없는 궁금증에 빠져 있는 사이, 차가 하노이 강의 다리를 건넌다. 오토바이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물가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돌이 제법 많은 지대다. 돌이 많아서 강물이 스며들지 않고 흐르는 것일까? 검은 빛깔이 더 짙은 돌길을 지나 하노이를 벗어나자 다시 초원이다.
 
▲ 기사 아무라가 풀 방석 위에 앉아 있다. 그가 일어나자 풀이 고통스럽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 최성수
 
보아도보아도 싫지 않은 초원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긴 산줄기가 나타나고, 산발치께 괘 큰 호수가 몸을 드러낸다. 
 
“저 산 이름이 뭐냐?”
 
나의 질문에 아무라가 차를 호수 가까이에 대면서 대답한다.
 
“셔러그 산맥이다.”
 
“그럼 저 호수는?”
 
그러자 아무라가 잠시 망설이더니 씩 웃는다.
 
“호수다.”
 
무슨 호수냐고 물으니, 그냥 호수란다. 이름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름이 없는 호수인지 알 수가 없다.
 
“저런 호수는 몽골에 아주 많다.”
 
이름을 알려주지 못한 게 멋쩍은지, 아무라가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을 한다. 이름을 몰라도 호수는 맑고 깨끗하다. 새 몇 마리가 호수 위 하늘을 날고 있다. 정적, 그리고 평안함이 호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행들 모두 호숫가에 내려 휴식을 취한다. 물수제비를 뜨며 제 마음을 호수에 던져보기도 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역시 반복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반복인 것 같은 풍경들이 조금씩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좀 밋밋하지만, 제법 긴 구릉이 이어지고, 군데군데 나무들도 보인다. 비탈진 구릉의 허리쯤을 차는 기울어질 듯 비스듬히 달리고 있다. 
 
▲ 길은 아득하고 아득하다. 그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삶이다.     ©최성수
우리 차의 기사인 아무라는 비포장인 길에서도 결코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다. 처음 울란바타르를 떠나 에르데네트까지가 포장길이고(그것도 군데군데 비포장에다 포장길에 문제가 있으면 그냥 초원으로 빠져버리니, 포장길이라고 온전히 포장된 길을 달려온 것도 아니다), 그 이후부터는 줄곧 비포장이다. 그런데도 아무라는 포장길보다 더 빨리 달리기까지 한다. 길이 평평하지 않아 핸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아무라는 마치 자동차 경주하듯 핸들을 쉴새 없이 좌우로 흔들어 균형을 잡으며 달린다. 나는 불안하기 그지없는데, 늦둥이 진형이 녀석은 그런 아무라의 운전 흉내를 내며 신이 나 한다.     
   
비탈진 길을 여전히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니, 내 몸이 기우뚱해지는 것 같다. 왼편을 보니, 제법 나무들이 울창한 숲이 내가 달리는 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평지만 보고 오다 숲을 보니 가슴이 좀 트이는 것 같다. 초원을 보고 가슴이 트여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숲을 보자 가슴이 트이는 것은, 내가 산지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눈 닿는 곳 끝까지 그저 평평한 땅은 시야의 경계조차 없다, 고개만 들면 산이 보이는 곳에서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막힌 곳 없는 사막이나 초원은 얼마나 아득한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른쪽을 보니, 세상에, 구릉 끝까지 아득하게 꽃밭이다. 어제부터 싫도록 본 것이 야생화들이지만, 이곳의 야생화들은 지금까지 본 것들과 사뭇 다르다. 대개는 한 두 종류의 야생화들이 피어 있기 마련인데, 이 들판의 야생화는 온갖 종류들이 다투어 있다. 차창으로 보기에도 눈이 화려하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풍경이라, 아무라에게 부탁해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려 보는 야생화들은 더 아름답다. 꽃의 빛깔이 여러 종류인 것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노랗고, 파랗고, 희고, 붉고…. 그냥 그렇게 말하기에는 부족한 또 다른 온갖 색색의 꽃들이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 있다. 내리쬐는 햇살조차 느긋하고 푸지다. 
 
모두들 꽃들이 펼쳐놓은 풍경에 넋을 빼앗긴다. 이곳에는 짐승의 똥도 없고, 파리나 모기도 없다. 온전히 꽃으로 그들먹한 ‘꽃 세상’이다. 
 
▲ 천상의 정원에 핀 꽃들. 꽃은 기억이고, 꿈이다.     © 최성수
“여기야말로 천상의 정원이다.”   
 
내 말에 늦둥이 진형이 녀석이 “천상의 정원! 천상의 정원!”하고 중얼거린다. 어린 녀석에게도 그 꽃밭은 인간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보다. 
 
자세히 보니 꽃의 종류도 다양하다. 해란초, 솔채, 쑥부쟁이, 절굿대, 솜다리…. 그런 꽃들이 서로의 자리를 탐하지 않고 피어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몽골의 야생화들이겠지만) 꽃들도 수를 셀 수 없다. 어울려 피어 아름다운 한 세상을 만드는 꽃들의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사진을 찍고, 꽃을 들춰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런 풍경 하나 보는 것만으로도 몽골 초원 여행은 충분히 아름답다. 평생 살아오면서 본 꽃들보다 더 많은 꽃들을 이 한 순간에 만나는 것 같다. 마음 가득 차오르는 이것이 아마도 행복이리라. 
 
내게 있어 꽃은 그리움이면서 꿈이다. 어린 시절, 산 뽕을 따러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마루 끝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신 어머니가 뽕 짐에서 꺼내주신 개불알꽃이나 함박꽃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이다. 한동안 시를 쓰지 못하는 마음의 좌절에서 벗어나 마침내 다시 시를 쓰게 해 준 것도 꽃이었다. 그것은 상처를 딛고 일어서게 한 ‘시의 꿈’이었다. 그래서 꽃은 내게 그리움이고 꿈인 것이다.
 
햇살 참 맑다, 오월 끝자락
창을 열자, 잎 돋은 나무들 어깨로 
물 오르는 빛이 보인다
햇살은 나무 몸뚱이에도
팔과 손바닥에도 자락자락 내려앉는다
산뽕 따러 가신 울 엄마 
기다리던 네 댓살 그 시절로 돌아가
마루 끝에 앉은 내게
아슴아슴 달려오는 그날의 햇살
숨차게 돌아오신 어머니의 
뽕짐에서 피어나던, 
어찔어찔한  
함박꽃 향기
그 날 내 마음에 차오르던 
오월, 참 맑은 저 
햇살
   --졸시 <함박꽃>
 
이제 몽골 초원의 꽃은 내게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오십 여 년, 생의 길을 디디고 건너온 내 삶의 자취일까? 아니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일까? 사물에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자꾸 넣어보려는 것이 글 쓰는 이들의 한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 초원의 꽃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냥 꽃은 꽃이다. 아름다움은 그 순간 내 마음에 일어나는 느낌이지, 논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꽃을 온전히 꽃으로만 보지 못하는 내 자신이 초원의 꽃 앞에서 부끄러워진다.  
 
▲ 고산지대에 사는 야크, 히말라야의 야크보다 몽골의 야크는 행복해 보인다. 풍성한 풀숲에서 자라기 때문이리라.     ©최성수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떼는 것은, 오늘 중으로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그냥 이대로 이 꽃밭에서 하룻밤 꽃이 되어 잠들고 싶은 마음을 지워야 하니 말이다.
 
바람이 몇 줄기 불어온다. 바람 속으로 초원의 온갖 꽃향내가 풍겨온다. 온 몸에 꽃향기가 배어든 것 같다. 차는 천천히 꽃밭을 벗어난다. ‘천상의 화원’은 마치 어느 일순의 백일몽처럼 차 창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점점 멀어지는 초원의 꽃밭을 마음에 새겨 넣는다. 그것은 마치 잡았다가 금방 놓쳐버린 그리움의 한 자락 같은 것이었을까?     

최성수 기자는 강원도 안흥에서 태어나, 국민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한문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었고, 우리나라 한문 고전 중에서 전형적인 글들을 뽑아 『함께 읽는 우리 한문』을 그 모임의 선생님들과 같이 엮어 냈습니다. 1987년 『민중시』 3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과 소설 『비에 젖은 종이비행기』, 『꽃비』 등을 냈으며,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가지 많은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등의 책을 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시 100』,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교실에서 세상 읽기』 등의 책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경동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09/01/29 [21:12]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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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기자는 강원도 안흥에서 태어나, 국민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한문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었고, 우리나라 한문 고전 중에서 전형적인 글들을 뽑아 『함께 읽는 우리 한문』을 그 모임의 선생님들과 같이 엮어 냈습니다. 1987년 『민중시』 3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과 소설 『비에 젖은 종이비행기』, 『꽃비』 등을 냈으며,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가지 많은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등의 책을 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시 100』,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교실에서 세상 읽기』 등의 책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경동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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