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스굴, 어머니의 바다는 꽃 피어 더 곱고
<몽골 여행기 5> 바람결 따라 달린 초원길 2,000Km
 
최성수

▲ 야크떼. 초원의 야크는 유목민의 생명줄이기도 하다 
 
거센 빗줄기 속의 무릉
 
해발 1,515미터, 무릉 입구에 이르자 야크떼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다. 야크는 원래 고산지대에 사는 소의 일종이다. 고산지대에서 겨울을 보내자니 자연 온 몸에 털이 북실북실하다. 마치 인디언 옷처럼 털을 매달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야크를 처음 본 것은 중국 운남성 리지앙의 옥룡설산에서였다. 백수하(白水河) 근처, 관광객을 태우고 느릿느릿 물을 건너던 야크는 이미 자연의 동물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길들여져, 인간의 욕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된 생을 살아야하는 그 야크의 모습은 씁쓸했다. 
 
그런데 몽골 초원의 야크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푸른 초원에서 마음껏 풀을 뜯는 그들은 자유롭게 보인다. 이 야크들도 당연히 인간의 손에 길러지는 것일 테지만, 전혀 구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땅에 닿을 듯 길게 늘어진 털에 똥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도 평안해 보인다. 인간을 태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젖을 내어 인간을 먹이기 위한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사는 공간이 초원이어서 그런 것일까?
 
 
▲ 무릉에서 흡스굴 가는 길, 날이 개이자 반짝 해가 났다. 그림같은 풍경이 나타났다     © 최성수
 
창을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만드는 창이 상대의 목숨을 쉽게 해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만, 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만든 방패가 사람의 목숨을 잘 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몽골의 야크는 인간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패 만드는 이의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쓸 데 없는 생각이 드는 것은, 푸른 초원과 어울린 야크떼가 눈부셔서일 것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주로 목조 주택으로 지어놓은 집들은 초원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무채색에 가깝다. 목책을 둘러 울타리를 만들었고, 마을길은 먼지가 풀썩인다. 아르샨 마을이란다. 점심시간이 이미 늦었지만, 마땅한 식당조차 없다. 그저 마을을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다시 떠난다. 내 평생 다시는 와 볼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마을이 흙먼지 속에 지워진다.
 
▲ 아르샨마을의 집. 목책 밖은 동물의 땅, 안은 사람의 땅     © 최성수
  실개울을 몇 개 지나고, 제법 높은 산길을 넘어선다. 점점 산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 흡스굴 아이막에 가까이 온 증거이리라. 산 정상을 넘어서 내려가던 차를 갑자기 세운 아무라가 숲 속으로 들어간다. 소변이라도 보려나보다 짐작하고 있는데, 한동안 엎드려 풀 섶을 뒤지더니 손에 가득 무얼 담아가지고 온다. 작고 붉은 산딸기다. 알만 따 온 것이 아니라 딸기가 달린 줄기까지 꺾어 왔는데, 우리나라 산딸기하고는 다르게 나무가 아니라 풀에 가깝다. 맛을 보니 달기보다는 시다. 
 
“아주 맛있다. 좋은 거야. 여기서 산딸기 냄새가 나더라.”
 
아무라가 익살맞은 표정을 짓는다. 자기가 산딸기 냄새 맡는 데는 귀신이라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다시 차는 산비탈을 내려와 벌판을 달린다. 벌판에는 끝 간 데 모를 엉겅퀴 군락지다. 마치 엉겅퀴들이 차를 따라 달려오는 것 같다. 햇살 아래 곱게 피어 사람 없는 들판을 저희끼리 꽃 세상으로 만드는 꽃들이 곱다. 엉겅퀴 군락지가 끝나자 또 끝없이 부추꽃이 이어진다. 광활한 벌판 가득 흰 부추꽃이다. 저렇게 어울려 피었다 질 줄 아는 꽃들의 고운 마음씨가 몽골 초원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리라.
 
꽃밭이 끝나자 강이 나타난다. 나무로 만든 다리가 하나 놓여있는데, 나무다리가 부서져 차가 빠질까봐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차는 익숙하게 다리를 건넌다. 다리 끝에 한 사내가 의자를 놓고 앉아 있다가 3천 투그릭을 받는다. 다리 건너는 비용이란다. 나무가 흔치 않은 곳에 애써 나무다리를 놓았을 사람들의 마음이 잡혀와 그 돈이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강을 건너자 이제는 강변길 같은 벌판이다. 
 
한참을 더 달리자 드디어 무릉 입구다. 자그마한 언덕 위에 어워가 하나 있고, 옆에 순록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드디어 순록의 땅 흡스굴 아이막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하늘은 진한 회색이다. 비가 흩뿌리기 시작한다. 아득한 들판 저쪽은 온통 잿빛이다. 바람도 거세다. 무릉은 방문자를 안개와 빗방울로 맞아준다.
 
▲ 무릉 입구, 어워와 순록 동상이 빗줄기속에 이방인을 맞는다     © 최성수
   빗줄기를 뚫고 차는 쉴 새 없이 달린다. 비는 점점 거세진다.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길을 막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사 아무라는 무엇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듯, 핸들을 마구 움직이며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 흡스굴 아이막의 주도인 무릉. 그러나 한가한 시골 마을 같다     © 최성수
한참을 그렇게 달리자, 드디어 제법 번화한 도시가 나타난다. 흡스굴 아이막의 주도인 무릉이다. 무릉은 장대비 속에 흐릿하다. 길가로 물이 개울물처럼 흘러간다. 차에서 내려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발이 물에 빠질 정도다.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 흡스굴이 가깝다. 금방 도착하려니 짐작하고 있는데, 아무리 달려도 흡스굴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빗줄기만 가늘어지다가 그친다. 
 
  무인지경에서 차가 고장 나면?
 
아득한 저쪽에서 먼지를 날리며 차가 한 대 달려온다. 이곳은 비가 오지 않았나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앞쪽의 차는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길 한 가운데쯤에서 서로 스쳐 지나겠지, 내 지레짐작을 비웃듯, 가까이 와 보니 그 차는 한참 저쪽으로 난 길로 달려간다. 초원의 길은 그저 차가 가는 곳일 뿐, 정해진 길의 영역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런데, 한참을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춘다. 본닛에서 연기가 풀풀 난다. 아무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차에서 내려 본닛을 연다. 어제부터 몇 번 냉각수를 채워 넣더니, 그예 차가 고장났나보다. 곁에서 보니, 냉각수통이 깨져 물이 줄줄 새고 있다. 전에도 몇 번 깨진 적이 있는지, 냉각수통에 때운 자국이 있다. 때운 곳이 다시 깨져 물이 새고 있는 것이다.
 
뒤차 기사인 헛스그까지 매달려 냉각수통을 닦아내고, 온갖 조치를 취해보지만 물은 계속 샌다. 인적 하나 없는 평원에서 고장 난 차를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이제 꼼짝 없이 노숙을 하게 생겼구나, 그런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드문드문 지나가던 차들이 마치 제 일인 양 다가와 살펴보고 도움을 준다. 그들이 가져다 준 순간접착제로 깨진 곳을 때우고 기다리자, 임시변통이기는 하지만 물이 새지 않는다. 초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자세가 고스란히 엿보이는 장면이다. 어려움을 당하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도와줘야 하는 것이 초원의 법칙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어려움에 놓였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과거의 우리네 삶도 그랬다.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까지만 해도 집에 길손이 찾아오면 밥 해주고, 잠자리까지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늘 찾아오는 손님들 대접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며, 손님이 오면 언제라도 불을 때 따스한 밥을 대접했다고 말씀하시곤 했었다.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달돼 있지 않을 때였고, 그렇다고 숙박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던 것도 아니니, 길 떠나면 남의 집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이 우리 집에 들어와 신세를 지는 것처럼 나도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는 것이 당연했으니, 남을 대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대접하는 것이었으리라. 서로 의지하고 믿는 그 시절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어진 것인가! 짧은 시간에 너무 멀리 걸어와 버린 것은 아닐까? 인간  관계의 따사로움을 우리는 물질적 편리함이라는 것과 맞바꾸어버린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
 
다시 차가 달린다. 사방은 아득한 벌판이다. 초록이 점점 옅어지더니, 드디어는 풀조차 없는 사막 같은 분위기의 땅이 나타난다. 마치 타클라마칸이나 고비 사막 같다. 흡스굴은 몽골에서도 드문 삼림지대라고 했는데, 나무 한그루조차 없는 것을 보니, 더 막막해진다. 
 
호수가 가까워지는지, 들판 위로 갈매기가 날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는 차를 피해 달아나는 토끼도 눈에 띈다. 조름이라는 놈이 발을 재게 놀려 달아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조름은 땅다람쥐로 초원에 사는 설치류 동물이다. 마치 프레디 독이나 미어캣처럼 두 발을 모으고 서서 사방을 살펴보다가 위험하면 굴속으로 숨는다는데, 차를 피해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모습도 볼 만 하다.
 
▲ 내가 묵은 흡스굴의 겔. 시베리아 낙엽송이 향긋한 곳이다     © 최성수
 작은 개울들이 몇 개 나타나더니, 구릉 위로 숲이 드디어 얼굴을 내민다. 쭉쭉 뻗은 나무들 꼭대기의 하늘이 흐릿하다. 무릉에서는 비가 쏟아지더니, 그래도 날씨가 괜찮은 편이다. 이제 흡스굴에 거의 다 온 것 같다. 무릉에서 약 30km의 거리를 거의 네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것이다. 제법 큰 개울을 건너고 산비탈 길을 지나 내려가자 흡스굴이 눈앞에 펼쳐진다. 드디어 도착이다. 울란바타르에서 달려온 거리를 생각하니, 흡스굴이 더 소중하게 보인다. 
 
흡스굴은 몽골의 서북쪽에 있는 호수다. 몽골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고, 세계에서는 열 네 번째다. 몽골 사람들은 흡스굴을 ‘달라이 에치’라고 부른다. 어머니의 바다라는 뜻이다.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약 265m, 넓이가 2,760km2, 길이 136km, 둘레가 약 350km나 되는 어마어마한 호수다. 제주도의 한 배 반 정도 되는 큰 호수 주변으로 높은 산들이 우뚝우뚝 솟아있고, 타이가 삼림지대의 침엽수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데, 물이 어찌나 맑은지 깊은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라고 한다. 
 
흡스굴은 약 99개의 물이 흘러들고, 나가는 것은 에크인골 하나란다. 흡스골에서 바이칼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400km라니, 흡스골은 거의 러시아와 이어져 있는 호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원과 삼림을 돌고 돌아 약 1,500km를 흘러 바이칼로 스며든다. 흡스골이 바이칼의 근원인 셈이다. 바이칼로 흘러드는 물줄기는 약 336개, 그리고 바이칼에서 흘러나가는 물은 앙가라강 한 줄기다. 그러니 여러 면에서 흡스골은 바이칼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흡스굴 근처에 사는 몽골의 한 부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호수의 물을 한 숟가락 떠먹이는 풍습이 있다고도 한다. 그만큼 흡스굴은 몽골인들의 정신의 뿌리이며, 신앙이라고 할 만 하다.  
 
▲ 흡스굴의 그림같은 풍경은 여행자의 마음에 그리움으로 남는다     © 최성수
멀리서 보기에도 호수는 맑고 투명해 보인다. 우리가 묵을 겔 촌은 달라이 캠프다. 호수를 배경으로 부드러운 언덕에 시베리아 낙엽송 숲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 겔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겔 사이사이에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있다. 구릉으로 쉴 새 없이 부는 바람에 야생화들은 몸을 가늘게 떨고 있다. 호수의 물소리와 햇볕과 바람을 자양분삼아 짧은 한여름 저렇게 고운 꽃을 피워내는 흡스굴의 야생화가 곱디곱다.
 
샤워장과 붙어있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는 한동안 나올 줄을 모른다. 변기 뒤로 작은 창문이 하나 있는데, 그 창문 너머로 호수가 맑게 빛나고 있다. 그림처럼 창문 오른편으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따로 액자를 걸어놓지 않아도 풍경이 저절로 액자가 되는 화장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경을 지닌 화장실이다.
 
▲ 세상에서 배경이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     © 최성수
 밤이 깊어지자 제법 쌀쌀하다. 긴 점퍼를 입어도 몸이 으스스 떨린다. 겔 가운데의 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운다. 나무가 귀한 몽골이지만, 이곳 흡스굴은 나무가 비교적 많은 편이라 장작이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래도 나무를 넣으면서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태워버리는 것 같아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 밤중 겔 밖으로 나가본다. 하늘에 구름이 끼어 있어 낮게 보인다. 드문드문 별이 떠 있다. 그리고 호수에는 일렁이는 물살이 흐릿하다. 나는 한동안 시베리아 낙엽송에 기대서서 밤중의 호수를 바라본다. 울란바타르에서 이틀에 걸쳐 달려온 길이 아득하게 되살아난다. 그 길은 꿈같은 길이었다. 내가 달려온 것이 아니고, 어느 시간이 나를 끌고 한참 돌아다니다 이곳 흡스굴에 던져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밤의 흡스굴이 고요하고, 내가 기대 선 낙엽송은 호수의 정기를 받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것이 생명체는 무생물이든, 다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닐까? 호수의 저 물살이 지금 제 영혼을 한껏 세상을 향해 내뿜는 것이리라. 호수를 배경으로 주저앉아있는 저 흑백의 산 능선에도 신령이 깃들어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기운이 가득 차 있다가 솟아나는 것 같다. 
 
밤! 그리고 흡스굴! 더 이상은 어떤 말도, 생각도 들어설 틈이 없는 풍경 속을 나는 한참 서 있다가 겔로 들어선다. 그때, 어둠 속에서 바알갛게 타오르는 장작 난로에도 어떤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았다.    

 
▲ 겔 근처에 핀 야생화들. 호수와 어울려 빗방울 머금고 빛난다.     ©최성수
 
 

최성수 기자는 강원도 안흥에서 태어나, 국민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한문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었고, 우리나라 한문 고전 중에서 전형적인 글들을 뽑아 『함께 읽는 우리 한문』을 그 모임의 선생님들과 같이 엮어 냈습니다. 1987년 『민중시』 3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과 소설 『비에 젖은 종이비행기』, 『꽃비』 등을 냈으며,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가지 많은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등의 책을 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시 100』,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교실에서 세상 읽기』 등의 책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경동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09/01/29 [21:34]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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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기자는 강원도 안흥에서 태어나, 국민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한문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었고, 우리나라 한문 고전 중에서 전형적인 글들을 뽑아 『함께 읽는 우리 한문』을 그 모임의 선생님들과 같이 엮어 냈습니다. 1987년 『민중시』 3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과 소설 『비에 젖은 종이비행기』, 『꽃비』 등을 냈으며,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가지 많은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등의 책을 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시 100』,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교실에서 세상 읽기』 등의 책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경동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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