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 낙엽송 사이 겔, 겔과 닿아있는 구름 ©최성수 | |
졸며 걷는 초원 길 흡스굴에서의 사흘째,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는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이다. 하루 종일 쉬는 것도 여행에서는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여행은 많은 것을 보는 일이라는, 그래서 여행지에서 여행지로 바쁘게 옮겨 다니는 여행은 오히려 여행을 부담으로 만든다. 때로는 마음을 내려놓고 쉬면서 가만히 여행 속의 나를 돌아보면 행복이 물씬물씬 솟아난다.
캠프 옆의 초원길을 걸어 목장으로 간다. 초원이라고 다 평평한 땅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호수 근처는 늪처럼 발이 푹푹 빠지는 초원이다. 건너뛰자니 조금 넓은 실개울도 있다. 둘러보니, 저만치에 나무판자가 놓여 있다. 흔들리는 판자 다리를 건너가니, 목책을 둘러놓은 목장 입구다. 멀리 말들이 모여 있다.
한 청년이 바람을 가르며 말을 타고 달려 나와 목장의 문을 열어준다. 말에서 내려선 청년을 보니, 키가 훤칠하다. 델을 입은 그의 모습이 늠름하다. 칭기스칸 시대의 몽골 기병을 보는 것 같다. 우리를 안내하던 현욱씨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서로 반색을 한다.
“저하고 같은 대학에 다닌다네요.”
몽골 국립대학 동창이란다. 과는 다르지만, 학교에서 오다가다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흡스굴에서 600km도 넘는 울란바타르까지 가 대학을 다니는 청년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내가 달려온 아득한 거리만큼, 그 청년의 젊음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방학이라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 일손을 돕는다는 청년은 우리를 끌고 말 무리 가까이로 간다. 말을 타고 초원을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서다. 나는 고삐를 잡고 바람을 가르며 초원을 달리는 나 자신을 떠올린다. 그러자 마음이 두근두근 해 진다.
“말은 반드시 인솔자 한 사람이 끌고 가야 해요.”
▲ 말을 타고 달려나와 목책을 열어주던 청년. 그의 모습이 몽골 기병같다. ©최성수 | |
청년이 우리 일행의 말고삐를 잡아줄 소년들을 가리킨다. 모두 자신의 동생과 친척들이라는데, 어린 아이부터 청년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것 같은 청년까지 여러 명이다. 그냥 혼자 말을 몰고 다닐 수 없느냐니까, 절대 안 된다며 머리를 내두른다.
지난번에 독일 사람들이 와 말을 탔는데, 고삐를 내 주었더니 달리다가 떨어져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단다. 마침 그 일행 중 의사가 한 명 있어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큰일 날 뻔 했다며, 그 이후부터는 말고삐를 절대로 주지 않는단다. 초원을 신명나게 달려볼 생각은 그냥 꿈이었을 뿐이다. 그래도 말을 한 번 타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말에 오른다.
앳된 얼굴의 소년이 말을 타고 다가와 내가 탄 말의 고삐를 잡는다. 두 볼이 새빨갛고 선하게 웃을 줄 아는 소년이다.
소년이 앞에서 말을 탄 채 내 말의 고삐를 끌고 간다. 뒤의 말에 탄 나는 그저 말 안장에 연결해 놓은 줄을 잡고 꺼떡꺼떡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득한 평원이다. 그리고 평원의 끝은 하늘에 닿아 있다. 무한천공, 하늘과 초원이 닿아 있는 벌판을 느릿느릿 흘러간다.
말이 걸어가는 초원은 꽃밭이다. 말은 가다가 때로는 멈춰 서서 야생화를 뜯어먹는다. 그럴 때면 소년은 가만히 멈춰 서서 기다릴 줄 안다. 마른 내를 건너고, 시린 하늘과 구름과 벌판이 닿은 공간은 끝날 것 같지 않게 이어진다.
▲ 머흐팅그르와 그의 말. 말과 소년은 마음으로 통하는 사이다. ©최성수 | |
그런데, 내가 탄 말은 자꾸 소년의 말에 바싹 다가서 걷는다. 그 바람에 내 발이 소년이 탄 말과 내 말 사이에 끼어 불편하다. 너무 바싹 붙을 때는 아프기도 하다. 말고삐를 당겨 거리를 조금 떼어 놓지만, 금방 내 말은 다시 소년의 말에 바투 다가선다.
처음 나는 내 말이 소년의 말을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다. 내가 탄 말은 소년의 말이 아니라 소년에게 다가서고 있는 게 아닌가. 가까이 다가가서는 소년의 옷에 제 머리를 부비기도 하고, 코를 소년의 손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한다. 혀로 소년의 손등을 핥는 경우도 있다. 말은 소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이 네 말이냐?”
내가 궁금증을 못 이겨 영어로 묻자, 소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초보적인 영어는 알고 있는 걸 보니, 서양 사람들이 말을 타러 오는 경우가 많은가보다.
“너의 이름이 뭐냐?”
“머흐팅그르다.”
“이 말 이름은?”
“홍그르아다크. 내가 먹이도 주고, 기르는 내 말이다.”
▲ 천천히 졸면서 말타고 가는 초원의 승마. 시간 속을 느릿느릿 걷는 것 같다. ©최성수 | |
소년은 자랑스레 몸짓을 섞어 말하고, 내가 탄 말의 목덜미를 갈기를 쓰다듬는다. 그러자 말은 애교를 떠는 것처럼 킹킹댄다. 소년과 말의 교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걸음마보다 먼저 말타는 법을 배운다는 몽골 아이들, 소년은 그렇게 말 등에서 자라고, 어느 날 아버지는 소년에게 말 한 마리를 주었으리라. 처음 제 말을 갖게 된 소년은 그 말을 자신처럼 아끼고 돌봤으리라. 닦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먹이를 주고, 때로는 초원으로 함께 나가 진종일 숨결을 섞으며 달리기도 했으리라. 이제 말은 소년이 되었고, 소년은 말이 되었으리라. 그래서 말은 소년의 곁을 잠시도 떠나려 하지 않고, 손님인 나를 태운 채 자꾸 소년에게 바투 다가서는 것이리라. 소년과 말의 정서적 교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런 모습을 보자, 천천히 걷는 말 타기가 한없이 즐거워진다. 내 발이 두 말 사이에 끼어도, 소년에게 다가가는 말의 태도가 정겹다. 머리에는 푸른 하늘과 구름, 끝없이 펼쳐진 평원, 한쪽으로는 너무 푸르러 눈부시기까지 한 흡스굴 호수, 그리고 그 벌판에서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말과 소년의 교감을 보며, 한 순간에 마음이 환해진다.
약 한 시간 남짓, 끄덕끄덕 졸듯 말을 타고 초원을 돌아 목장으로 돌아온다. 건듯건듯, 끄덕끄덕 승마다.
말에서 내린 내가 포라로이드 카메라로 머흐팅그르와 말의 사진을 찍어주자, 소년이 밝게 웃는다. 말도 따라 웃는 것 같다. 머흐팅그르는 얼른 제 나이 또래 다른 아이에게 달려가더니 맞잡고 몽골 씨름을 한다. 아마도 씨름하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 싶은가보다. 세상 근심 하나 없이, 초원의 풀과 바람처럼 자라는 소년의 행복이 눈에 선하다. 학교도 공부도 다 남의 일이고, 자신의 말과 초원만으로도 소년은 충분히 행복한 것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목장을 뒤로 하고 호숫가로 향한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호수에는 청둥오리가 내려앉아 먹이를 찾고 있다. 호숫가 습지에는 바람꽃이 지천이다. 민들레도 피어있고, 구절초와 솜다리도 어울려 한 세상을 이루고 있다. 스적스적 호숫가를 거닐다 다시 겔로 돌아온다.
겔 문을 열어놓고, 침대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든다. 귓가로 시베리아 낙엽송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상쾌하게 들린다. 평안! 바람도, 햇살도, 푸른 하늘도, 그 하늘의 구름도 모두 평안! 평안 속에서 잠들어 바람이 되고, 햇살이 되고, 하늘의 구름이 되는 여행자도 평안! 하릴 없이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 목장의 집. 여름 한철에만 거주하는 곳이란다 ©최성수 | |
얼마를 잤을까? 일어나 열린 겔 문 밖을 보니, 낙엽송 가지에 구름이 걸려 있다. 아주아주 오래 잠든 것 같은데, 아직도 한낮이다. 깊은 잠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마음의 평안에 달려있나보다.
나는 겔 밖에 앉은뱅이 의자를 내놓고 앉아 멍하니 바람을 쐰다. 구릉 위의 겔이 구름에 걸려 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숨 가쁘게 달려오다 이렇게 생의 어느 한 순간, 느긋하게 앉아서 숨 고를 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흡스굴의 나무와 풀과 햇살과 바람은 내 귓가에 속삭인다. 아름다움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있는 순간이다. 흐르는 때는 흘러가느라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멈추어 서서야 비로소 보이는 사물의 아름다움! 그래서 느리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리라.
▲ 초원은 온통 꽃밭이다. 꽃밭 너머에 흡스굴이 순하게 자리잡고 있다. ©최성수 | |
오후 내내 마음껏 멈춤의 시간을 즐긴다. 내 즐거움 때문일까, 시간도 느리게 느리게 흘러간다.
아무리 느려도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다. 바람과 햇살에 온 몸을 씻는 사이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된다. 캠프의 식당에서 양고기인 허르헉으로 저녁을 먹는데, 홍차를 앞에 둔 현욱씨가 서빙하는 아가씨에게 말을 한다.
“사할 우거체.”
그러자 아가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욱씨를 바라보고, 우리의 기사인 아무르가 배를 잡고 웃는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현욱씨가 얼굴이 발개지더니 멋쩍게 웃으며 다시 말한다.
“사하르 우거체.”
내가 듣기에는 그 말이 그 말 같다. 그런데 사할은 수염이고, 사하르는 설탕이란다. 그러니 현욱씨는 아가씨에게 ‘수염 주세요’라고 한 것이 된다. 몽골에 온 지 몇 년 지났지만 아직도 언어의 미묘한 차이 때문에 실수가 잦다며, 현욱씨가 변명을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처음 몽골 왔을 때 정말 엉뚱한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시장에 가서 감자를 사는데 ‘툼스 주세요.’ 했다니까요.”
감자는 투무스이고 툼스는 불알이란다. 감자를 사러 가서 부랄 주세요 했으니, 실수도 이만저만한 실수가 아닌 셈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자꾸 청년 현욱씨가 귀여워진다.
▲ 싱그럽다는 말 이외에는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최성수 | |
이제 흡스굴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내일은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쓸쓸해진다. 아무리 좋은 곳도 영원히 머물러 살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둠속의 호수를 그리움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고, 겔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밤 내내, 시베리아 낙엽송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 소리는 아마도 바람 소리가 아니라 흡스굴 호수가 내게 작별을 고하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