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다락방기도] 누가복음15:1-10
 
김영철

얼마전에 한국에서는 이 국무총리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있었지요? 과거에 여러 명의 총리후보자들이 낙마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야당에서 큰 문제가 없다면 정부에 협조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통과시킬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 터져나왔습니다. 그래서 일단 본회의를 연기하여 인준동의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고, 양당은 전략을 짜고 있었을 것입니다. 국무총리는 국민을 섬겨야할 공복이므로 화려한 스펙보다는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관과 인생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청문회 때마다 후보자들이 각기 저지른 불법이나 비리가 불거져나왔는데, 이번 이 후보자에게는 그것들을 모두 모아놓은 것처럼 문제가 많고 다양했다는 것입니다. 이 후보자는 신군부 시대에 군부세력과 가까워 삼청교육대에서 근무했다가 경찰청장이 되었었고, 국회의원, 도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고 합니다. 세종시를 둘러싸고 박근혜 대통령 편을 든 인연으로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 새누리당에서 원내대표가 되었으며 소통의 달인으로 인정받아 총리후보가 되었다고 합니다. 권력에 추종하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리를 바꿔가며 양지에서 권력의 맛에 빠졌던 정치인이라고 합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황제특강, 언론보도 압력, 그리고 병역기피 의혹 등 평생을 특혜와 투기와 편법으로 살아온 재주꾼이라는 얘기입니다. 여당 의원들의 대다수가 이 후보를 존경하며 따르고 싶다고 아첨하고 있으니, 그들도 분명히 한 통속으로 부패한 정치인들일 것입니다. 좁은 한국 땅에 인격과 양심과 도덕성을 잃어버리고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넘쳐나는 모양입니다. 권력의 바깥에서 찾아보면 유능하면서 깨끗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텐데, 권력 주위에는 처세술이 뛰어나고 출세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부정부패 전문가가 국무총리로 임명된다면, 수많은 공무원들이 본받을 테니까 정부는 부패의 온상이 되겠지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권력자들뿐만이 아니라 이 물질주의적인 세상에는 인생의 본질적인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먹고 즐기겠다는 한량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소중한 것을 소홀히 여기다가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되찾을 생각도 없이 스스로의 존재감마저 의식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사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많이 소유하고 스펙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 욕망의 유혹을 따르느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살아가니까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현상입니다.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구조에서 재물욕과 권력욕을 불태우며 살면 내면은 공허해지기 마련입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권력을 얻는 대가로 끊임없는 긴장과 불안이 따르므로 인생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물질과 지위를 탐하며 편안하고 안락함만을 쫓아가느라 참 행복도 인생의 의미도 잃어버리고 무덤을 향해 허탈한 마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는데, 마음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잃어버리면, 인간으로서 가치와 존엄성이 사라지고 인간성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겉모양이 준수하고 유능하게 보이며, 돈이 많고 권력을 쥐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형상인 양심적인 모습이 없다면 그것은 짐승의 삶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첨단의 문명을 누리며 풍요한 물질과 권력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며 살지라도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도 양을 잃어버린 비유와 동전인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비유가 나옵니다. 본문 뒤에는 유명한 탕자 비유가 나오는데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모두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가 회복하게 되는 얘기들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 다시 찾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들에 대한 교훈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는 목자의 얘기가 그렇고, 드라크마 하나를 잃어버렸던 여인의 얘기가 그렇고, 아버지의 유산을 탕진한 아들의 얘기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비유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영적으로 이 비유들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보여줍니다만, 자세히 보면 각기 조금씩 다른 특색을 갖고 있습니다. 똑같은 진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세 가지 비유를 되풀이 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경우들을 상호 보완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양은 들판에서 자기 마음대로 다니다가 목자를 잃었고, 드라크마는 어두움 가운데 잃어버려진 상태로 있었고, 탕자는 육신적 쾌락을 위해 아버지를 스스로 떠났다가 돌아왔습니다. 이 비유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의인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죄인을 위해서 오셨다고 예수님이 오신 진정한 목적을 밝혀줍니다. 예수님이 죄를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셔서 기쁨이 넘치는 천국잔치에 초대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라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의 생명을 이처럼 소중하게 여기시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으니,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다시 찾자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잃어버린 자에 대한 비유를 하시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예수님이 이 비유말씀을 하실 때 가까이에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청중이 듣고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세리와 죄인들로 유대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던 하류계층의 사람들이었는데요, 버림받고 있던 그 사람들을 예수님은 가까이하시며 함께 하셨습니다. 다른 한 부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종교지도자들이었는데요, 이들은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내세우면서, 세리들과 죄인들을 경멸하며 미워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용납하고 함께 식사도 나누신다고 예수님을 비난하기도 했는데요, 그 사람들을 보면서 무시당한 세리와 죄인들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나오는 정결규례에 따라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며 자신들은 의인으로 행세했지만, 예수님에게는 바리새인들도 세리와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자들이었습니다. 죄인과 의인,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가 모두 예수님의 마음에는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린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첫번째 비유에서는 세리들과 죄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셨고, 두번째 비유에서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이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지요? 비록 사람들이 못마땅히 여기며 상종도 하지 않는 세리와 죄인들이지만, 그들도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의로운 자로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뜻입니다.

첫번째 비유에서는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를 소유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는 다른 99마리 양을 들판에 내버려두고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다녔고, 마침내 찾은 후에는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에 돌아와서는 벗들과 이웃을 불러 잃은 양을 찾은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양을 잃은 목자는 양을 단순히 백 마리 중의 한 마리의 양으로 즉, 물량적인 개념으로 계산하여 백분의 일의 재산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목자이신 예수님이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돈과 권력에 매여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셨고, 인간은 풍요로운 낙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복을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답던 시절도 오래 가지 않아 아담이 뱀의 유혹에 빠져 범죄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눈을 피해 동산의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잃어버린 인간을 찾기 시작하셨는데요, 복음은 한 마디로 하나님이 잃어버린 인간을 찾고 계신다는 말씀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이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멀리 도망가서 세상의 우상들을 섬기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래도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방황하니까 이제 메신저를 보내시는 대신에 하나님이 직접 찾아나셨습니다. 인간의 세상에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셨고, 지금도 성령님이 이 땅에서 역사하시면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인간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번째 비유에서는 어떤 여인이 드라크마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밤중에 불을 켜들고 열심히 찾다가, 마침내 찾아내고는 기뻐서 이웃들과 잔치를 한다는 얘기입니다. 드라크마는 헬라의 은전인데요, 언뜻 들으면 은전 하나를 찾았다고 잔치를 벌였다는 얘기가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만, 당시 팔레스타인의 풍습을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의 증표로 드라크마 열개를 줄에 꿰어서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열개의 드라크마로 만든 장식은 오늘날의 결혼반지처럼 신부에게는 귀한 예물이었고 신부는 그것을 머리에다 띠로 띠어서 신랑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습니다. 이 결혼선물인 드라크마는 여인과 남편과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나 다른 재산의 가치 이상이어서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귀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열 개중 한 개를 잃어버리면, 나머지 아홉 개의 드라크마만 가지고는 본래의 모양을 만들지 못하니까 그 여인은 잃어버린 하나를 열심히 찾은 것이고, 찾아낸 후에는 이웃들과 기뻐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이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것은 자신의 사랑을 되찾은 셈이 되므로 기쁨이 넘쳐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잔치까지 벌였던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 떨어진 드라크마는 영적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린 채 죄 가운데 던져져 있는 인간의 실존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죄 아래 살아가면서도 희희낙락하며 자신이 잃어버린 존재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자신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잃어버렸던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이 벗과 이웃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이 그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얻게 된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이 로마황제 가이사의 화상이 들어있는 은전을 보시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시어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고 인간의 가치는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므로 성경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우상들인 물질과 권력과 지위를 섬기면서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다보면서 문득 어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나 있다면 자신의 삶에 불평불만이 가득해지며 삶이 허무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는 길에 하나님이 동행하시는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늘 자신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면서 성령님께 간구하면 성령님이 옛사람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 앞의 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웃과의 관계인데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이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자 그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또 누구에게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배로 하여 갚아주겠습니다"고 이웃과의 관게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은 소중한 것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는데요,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소중한 것을 찾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고, 갈등으로 나뉘었던 사람들이 화해와 용서의 삶을 살 때, 땅의 기쁨이 하늘의 기쁨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생명의 열매인 기쁨은 신비롭게도 재물을 소유하거나 남을 지배할 때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나 자신을 내놓을 때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고 권정생 동화작가는 이 총리후보자처럼 돈과 권력을 탐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책에서 나오는 인세를 모아 굶주리는 아이들과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해 나누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잠깐 지나가는 이 땅 위에서 섬김과 봉사로 소중한 가치를 위해 살았던 그를 나사로를 품에 안으시듯이 안아주시며 천국잔치를 베풀어주셨을 것입니다. 정호승시인은 혼자 여행하는 길에 들른 찐빵 가게 주인이 "저녁 같이 먹자"며 건네는 소박한 밥상에서 인생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삶의 가치란 먼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있으며, 이를 통해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조언합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

많은 현대인들이 돈과 권력을 잡겠다고 분주히 살아갑니다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허무감과 피로감을 느끼곤 합니다. 물질적 충족과 육체적 향락이 결코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삶을 의미있게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면 세상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잃어버린 인생의 가치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아홉 개의 드라크마가 한 개를 잃어버린 신부를 기쁘게 못하듯이 사람이 욕망에 따라 모든 것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지 못하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존재에 불과합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기 위해서 집안을 쓸어 청소하듯이 회개하며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기적인 자아와 욕심이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히고 있지 않은지, 하나님이 처음 나를 지어 세상에 내보내실 때의 모습이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형상을 유지하려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찾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이 세상의 무거운 짐과 피곤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에 소중한 것들을 추구하며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저희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아주시기 위해서, 죄인 하나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희들 각자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아 소중한 가치를 회복하며 기쁨의 잔치를 이웃에게 베풀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많이 소유하며 육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돈과 권력의 우상을 섬기며 동분서주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깨달아 남을 존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은총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2/26 [00:1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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