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계획과 하나님의 섭리
[다락방기도] 사도행전 16:6-15
 
김영철

16세기에 불란서의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라는 방대한 저서를 통해 자신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저서의 제1권에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통치하시고 보전하신다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천상의 것은 물론이고 인간을 포함해서 지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에 의해 유지되고 돌보아진다고 자세하게 논했습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측량할 길 없는 계획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주만물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계획인 하나님의 섭리는 피조물의 판단과 의지를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온갖 소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빛으로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를 통제하시고 주관하셔서 올바른 목적을 향하여 질서있게 나아가도록 관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역사를 결정짓는 원리로서, 때로는 피조물인 매개체를 통해서, 때로는 매개체가 없이, 때로는 매개체에 반하여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어떤 계획을 세우더라도 그것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나 그의 뜻은 번복되지 않으며, 사람의 눈에는 변화가 생긴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미리 보시고, 작정하셨던 바를 일관성 있게 이루어나가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서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했는데요, 하나님은 피조물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보살피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의 권위와 뜻으로 다스리시며, 그의 지혜로 주관하시므로 그의 결정이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

그런데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으로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는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하시면, 인간은 아무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없으며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도덕적인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하면, 인간 스스로가 구원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게 됨으로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면 인간이 행하는 죄악은 모두 그 책임이 하나님께로 돌려지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는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졌었는데, 사탄의 유혹을 받아 타락하게 되면서 이를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타락함으로 구원을 가져올 그 어떤 영적 선에 대한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죄인이 된 인간은 죄 가운데 죽은 상태에 있으므로 자신의 의지로는 선에로 돌아설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면서 죄인인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은 주어진 환경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 태어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없고, 또 태어날 때의 능력과 환경과 그 어떤 조건도 결정할 수 없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은 아주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선택권은 사실상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아주 미미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오늘 본문에도 사도바울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자신의 계획대로 행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얘기가 나옵니다. 본문은 사도바울이 소아시아 지역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애를 쓰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막으시고 유럽 쪽으로 선교의 문을 여시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앞부분은 바울이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으로 가게된 경위를 말하고 있고, 뒷 부분은 유럽에서 루디아를 만나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실라와 함께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제자로 삼은 후 아시아에 속하는 에베소로 직행하고자 했습니다. 그 당시 에베소는 아시아 최대의 무역 항구였으며 아시아의 모든 물건이 수집되어 유럽으로 건너가고 유럽의 물건들이 아시아로 들어오는 관문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전도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아시아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울은 생각했던 모양인데, 이상하게도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셨습니다. 바울은 할 수 없이 북쪽 비두니아 쪽으로 가려했으나 그 쪽도 역시 허락지 않으셨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이 소아시아 북쪽 마지막 항구인 드로아로 들어갔습니다.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의 환상을 본 후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고, 성령의 인도로 유럽에 앞당겨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같은 유럽의 중심 도시에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 2차 전도여행의 가장 큰 의의는 복음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문 6절에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이라고 한 것은 본래 계획했던 코스와는 정반대로 가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처음에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계획했던 것은 1차 선교여행 때에 세운 교회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살피려는 의도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는 오늘날 아시아대륙 전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 곧 터키 지역에 해당합니다. 바울일행은 터키지역 안에서 중부에서 서부를 거쳐 서북부로 가려고 했었는데, 다시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지방으로 가지 못하도록 성령께서 그 길을 막자, 이번에는 북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임니다. 갈라디아 지방에서 선교할 때처럼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악의적인 방해공작이 더욱 극심해져서 갈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유대 기독교와의 충돌 같은 내부의 알력이 있었고, 바울이 복음을 전한 곳에 유대 기독교가 대표자들을 보내서 바울의 복음이 문제가 있다고 훼방을 놓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울일행은 그 때문에 현실적 위협을 많이 겪었고, 유럽지역인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에서도 그런 반대에 부딪혀 공격 당하고 고발 당해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스스로 이방인 지역 출신으로 그 지역에서 더욱 유리한 이점을 활용하여 선교활동을 펼치고자 했던 바울은 그런 현실적인 난관 때문에 낯선 지역으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바울이 유대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는 소아시아를 포기하고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 지역으로 가기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성령님이 가지 못하도록 막으신다는 것은 성령님이 인도하실 곳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생각과 계획대로 인생이 풀려가지 않는 것을 종종 경험하지요? 일이 순조롭지 않고 막힐 때, 막히는 상황을 보며 좌절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다른 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결국 바울일행은 무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통하는 항구도시인 드로아에 이르렀고, 본문 9절에 보면 드로아에서 바울이 밤중에 환상을 봅니다. 유럽지역에 해당하는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하고 외쳤고, 바울일행은 하나님이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으로 확신하고 마게도냐로 건너가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에베소보다도 먼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아덴과 고린도 같은 유럽의 중심지에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이고, 본문 11절 이하에 유럽지역에 첫발을 내디딘 후의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를 거쳐 이튿날 네압볼리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빌립보에 이릅니다. 바울의 유럽지역 첫 선교지인 빌립보는, 본문이 전하는 대로 로마의 식민지로서 마게도냐 지역의 첫째가는 도시였습니다. 여기서 며칠동안 머물면서 바울일행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바울일행이 도착하여 안식일이 되어 기도할 곳을 찾다가 강가로 나갔고, 강가에 나와 있었던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자색 옷감장사를 하는 루디아라는 여자가 바울의 복음을 처음으로 받아들여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루디아는 바울일행을 자기 집에 유숙할 수 있도록 편의를 베풀었고 이 루디아의 가정이 빌립보 교회의 모체가 되었고, 나중에 바울의 선교를 재정적으로 돕는 후원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순전히 임의대로 선교활동을 펼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예정하고 계획한 범위를 넘어 유럽의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졌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는 것이 우리자신과 하나님의 계획을 위하여 최선의 길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우리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리자신을 더욱 잘 이해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적 야망을 채우기 위하여 이기적으로 구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거절하십니다. 때때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우리의 계획은 실패하게 내버려두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하고 우리의 계획이 달성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의 야망이 무너지고 우리의 계획이 성취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깨닫지 못하지만, 장차의 생애에서는 과거에 우리를 괴롭게 하고 실망케 했던 것들이 은혜였음을 발견하게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기도와 좌절당했던 희망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실패하고 있다고 좌절감에 빠져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성공적인 사역으로 결실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 사도바울처럼 그가 원하던 길을 막고 새길을 열어주셨던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일입니다. 젊을 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집착에서 벗어나면서 인간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주님이 인도하여 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16장에 "마음의 계획은 사람에게 있어도 결정은 여호와께 있다"는 말씀이 있는데요,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계획은 인간적인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맞는 계획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파악하여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순종해야 합니다. 피조물의 모든 일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고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어떤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낙심하게 되고,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시도했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좌절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지혜로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마게도냐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된것입니다. 내가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의 계획을 막으시고 전혀 생각지도 않은 길로 인도하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곤경을 겪는 일이 생겨도 낙심하여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의 길이 막혀지거나 내 계획이 좌절될때 하나님의 뜻이 어디 계시고 내가 어디로 가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지 성령의 인도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바울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 기도를 했을 것이고 마침내 밤에 환상을 통해 그가 가야할길을 하나님이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나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며 그 말씀을 듣기를 즐겨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하면 마음에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이 나를 위하여 내게 이루어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대개의 경우, 정욕으로 자기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힘쓰기 때문에 기도는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담아 기도한다면, 그것은 그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성취가 아니라, 오히려 자녀의 먼 장래에 불행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요, 주님과 함께 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성령을 통해서 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그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지금까지 살아온 육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영적인 삶으로 변화받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합니다만, 성령이 우리 영을 주관하시면 성령께서 미래를 보며 바른 길로 행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또한 해야 할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면, 평소에 읽었던 성경 말씀이나 설교 때 들은 내용이 떠오르기도 하고, 조용히 기도하는 중에 음성이 들리거나 꿈이나 환상 속에 나타나기도 할 것입니다. 마음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간구하면 성령의 음성에 민감해지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은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고 욕심을 버리게 하니까 악령의 음성과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겸손은 악한 영과 반대되는 성령의 특징이고, 남을 미워하고 남을 판단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음성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령의 음성을 외면하고 내 뜻대로 행하는 것은 교만이고 아집이며, 그 자체가 죄악이므로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하고, 나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실 때 가능합니다. 순종이 어려운 것은 순종하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하고 지속적으로 자기자신을 부인해야 하고, 자기자신을 부인해야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우리가 원했던 길이 막힐 때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저희들 육신적인 삶에 집착하여 인간의 계획을 성취하고자 매달리는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성령이 인도하시는 영적인 삶을 살도록 은총내려 주시옵소서. 이 사순절에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도록 이끌어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탐욕으로 인해 많이 소유하며 사는 자들에게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마음 주시고,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 위로해 주시고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부어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3/09 [20:1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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