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으로부터 자유하는 길
[다락방 기도] 야고보서 1:12-18
 
김영철

금년초에 국제통화기금인 IMF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5%로 내렸는데요,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의 성장둔화가 그 요인이라고 했습니다. 세계경제를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은 유로지역과 중국이고, 한국도 경기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엊그제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내리기로 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 내수경기를 살리려는 노력 대신에 이자를 낮추어 집을 구매하게 하여 부동산경기를 부추길 모양입니다. 오늘날 지구촌의 경제침체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시작되었고, 유로존의 재정위기로 이어졌는데요, 자본주의가 지속될 수 있는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99%와 1%의 빈부격차와 양극화, 높은 청년실업률, 월가의 도덕적 해이와 가진 자들의 탐욕 등의 문제들을 보면서 자본주의가 수명을 다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욕망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체제하에서 탐욕이 전혀 죄가 아니고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긍정하면서 인간의 욕망을 최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보다, 인간의 경쟁심리를 발동시겨 자신의 이재능력을 과시하며 혼자 즐기자는 풍조가 가득합니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타고난 이기적 동물이라며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는 대신에 오히려 이를 부추김으로서 탐욕에 빠지게 만듭니다. 자본주의는 인간 내면세계를 황폐하게 만들뿐 아니라, 자연생태계와 환경 그리고 무절제와 무질서로 지구상의 한정된 자원을 너무도 심하게 낭비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세계적 공황이 닥칠 때마다 대량생산한 엄청난 완성품들을 바다에 투기하는 등 무절제한 생산과 무분별한 소비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에 자원고갈로 인해 세계가 성장의 한계에 돌입했다는 신호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인 로마클럽은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등으로 세계경제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지구촌의 각 나라마다 경제성장을 급진적으로 이루어 흥청망청 소비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거꾸로 경제성장을 멈추거나 느릿느릿하게 천천히 성장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성장의 그늘

한국의 경제성장은 서구 선진국이 2백년 넘게 걸린 기간을 단축하여 반세기 만에 이루어내었습니다만,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은 이후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성장방식은 소수의 기업에 대한 특혜로 이어졌고, 특혜를 받은 기업들은 비민주적이고 독재적인 정치권력을 위해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하여 부패를 조장해왔습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만들어 정권에 협조한 기업들은 단기간에 대기업과 재벌로 성장했고, 근래에는 한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큰 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반세기 전부터 경제가 먼저 성장한 후에 분배하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국민들을 설득시켰는데도, 그동안 희생되었던 중소기업과 노동자와 농민에게 아직도 약속한 몫을 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의 지원과 정권과의 유착으로 재벌과 대기업 그리고 권력자들은 성장의 과실을 자기들끼리 나누기만 하고, 서민들을 위한 경제민주화는 시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장의 과실이 각 계층에 골고루 나누어져 모든 국민이 즐겨야 할 때인데도, 성장에만 집착하여 기득권자의 탐욕만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표를 얻어 정권을 잡았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경제민주화 대신에 친재벌 성장주의를 유지하며 가진 자만 더 가지게 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통한 자연스러운 재분배 효과보다는 정부의 조세정책과 복지정책 등 재분배 정책을 통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부의 불평등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발생시키고, 이는 사회구조 및 계급의 고착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빈부의 격차와 불평등은 비효율성을 확대하고 탐욕이 탐욕을 낳게 하여 탐욕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구약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의 열 번 째 계명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인데요, 인간의 탐욕을 경고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탐욕에 빠진 자들이 집이나 아내라든지 여종이나 남종이라든지 소나 나귀 등 남의 소유를 탐내어 빼앗는 일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전도서 2장에서 솔로몬왕은 탐욕이 실상이 아니라 허상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았고 누리고 싶은 즐거움을 다 누렸다. 스스로 수고해서 얻은 것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모든 것은 결국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었다." 젊어서 욕심에 가득차서 많은 것을 성취했었지만 결국 모든 성취도 허상이었다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에 빠지면,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자기욕심 추구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고,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대상화시키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탐욕을 따라 살면 물질에 눈이 멀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이 보이지 않고, 사람이 자기욕심을 채우는 수단이요 도구로 보이는 것입니다. 탐욕의 사람에게는 순수한 인간관계를 찾아볼 수 없고, 탐욕이 만족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 늘 부족하다고 불평하며 불만 가운데 세상을 살게 됩니다. 만족을 느끼면 감사와 행복이 있지만, 탐욕에 빠지면 만족이 없고 탐욕의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는데요, 이것이 솔로몬이 고백했던 탐욕의 실상입니다. 끝없이 부족을 느끼며 더 많을 것을 추구하도록 자신을 내몰면서, 결국 끝없는 탐욕 속에서 불행하게 살게 됩니다. 탐욕의 사람이 되면 인간성도 잃어버리고, 선한 일도 하지 않고 이웃과 나눌 줄도 모르는 인색한 동물이 됩니다. 탐심이 마음속에 자리잡으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게 됩니다.

신약에서도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유산 다툼으로 찾아온 사람에게 예수님이 공정한 유산분배를 요구하기 이전에 먼저 재물에 대한 탐욕을 버릴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생각, 물질을 대하는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고서는 공정한 유산 분배나 형제간의 우애를 지켜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의 눈으로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을 바라보면, 유산은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선물이 아니라, 형제간에 싸움의 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망각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얘기를 통하여 물질에 대한 탐욕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부자가 수확하여 창고에 쌓아두었던 많은 곡식을 보며 즐거워했지만, 그날 밤에 그의 생명을 불러가심으로 결국 생명도 소유도 잃게 되는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 보면 사도바울도 디모데에게 주는 권면에서 탐욕은 파멸을 초래함을 지적하면서 탐욕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한 세 가지 교훈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물질을 사랑하기보다 물질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질로는 결코 만족을 누릴 수 없고, 참된 만족은 하나님께만 있으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경건의 삶을 살아야 탐욕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우리는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므로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물질은 결코 영원하지 않고, 이 땅에 있는 동안에만 잠시 사용하다 두고 가는 일시적 도구이므로 영원하지 않은 것을 붙잡기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셋째, 타인과의 비교가 우리를 탐욕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소유를 위한 경쟁을 멈추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질이 아니라 인격과의 관계에 행복이 있으니까,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주님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찾아야 탐욕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만 악의 뿌리'

탐욕의 씨를 뿌리는 존재는 창세기에서부터 나오는데요, 바로 사탄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인간의 욕심을 본능적인 것으로 포장해서 좋은 것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만, 성경은 탐욕이 본능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놓으니까 사탄이 와서 탐욕의 방법으로 인간을 유혹하여 사로잡은 것입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고 물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 먹지 말라고 했는데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탐욕이 생기게 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를 먹으면 네가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하면서 탐욕의 씨를 뿌리고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 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 인간은 탐욕의 인간, 우상을 숭배하는 인간, 죄악의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렸던 사탄이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셨을 때 나타나서 세가지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빵에 대한 유혹, 명예에 대한 유혹, 그리고 권력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시시각각으로 사람들에게 찾아와 욕심을 갖게 하고, 죄를 낳게 하고, 죄가 자라 죽음에 이르게 하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악한 생각을 하게 되고, 죄를 짓는 것은 우리 안에 죄의 뿌리인 탐욕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많이 가지고 싶어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 남을 지배하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싶어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했는데요, 탐심 때문에 거짓말도 도적질도 하고 미워하고 심지어는 살인도 하니까, 탐심은 '일만 악의 뿌리'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사람이 탐욕으로 악에게 끌려 시험받고, 탐욕이 죄를 낳고 결국 죽음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본문 12절의 시험은 13절의 시험과 다른 의미인데요, 전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이고 후자는 마귀의 유혹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시험이든 유혹이든 모두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고, 하나님이 믿음의 성장을 위해 시련을 겪게 하시는 경우도 있고, 사탄의 유혹을 허용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의 유혹을 허용하시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유혹을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본문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이 있는데요, 유혹을 당할 때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연단과 성숙을 위해서 시련의 문제에는 개입하시지만 하나님은 간접적으로라도 우리를 죄악에 빠뜨리거나 유혹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유혹을 당할 때마다 왜 하나님이 유혹을 막아주시지 않나 하고 원망할 때가 있는데요, 유혹에는 하나님의 책임이 없습니다. 사람이 욕심을 품으면 그것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 같아 스스로 미혹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시험은 대부분 그 마음의 욕심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미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리기 때문이고,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사탄이 이를 알아채고 유혹하게 되고, 욕심이 없으면 유혹도 없다는 뜻입니다.

본문 15절에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씀했는데요, 유혹의 과정을 말한 것입니다. 첫번째 과정은 욕심이 생기는 것인데, 욕심이 생긴다고 해서 다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아니고, 그 욕심을 물리치지 않으면 마귀가 유혹하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된다고 표현한 것은 누군가 밖에서 인간의 마음 가운데 들어와 탐욕의 씨를 뿌린 것입니다. 그렇게 잉태된 탐욕이 때가 되어 해산을 하게 되면 그것이 죄이고. 죄가 점점 자라나 나중에 살인과 간음, 도둑질과 거짓말로 나타나게 되고 그 결과로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욕심이라는 작은 씨를 뿌려서 그 씨가 잉태되어 죄를 해산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탐욕을 절제하고 다스린다면 죄의 씨가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그다음 본문 17절에 가면, 하나님이 온갖 좋은 은사와 선물을 다 주시는 분이고 그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니 그를 신뢰하라고 합니다. 앞에서 시험의 원인이 사람의 탐욕에 있음을 얘기한 후에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품안에 안기면 시험을 잘 이기게 될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말씀입니다. 18절에서는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는데요, 하나님의 뜻과 죄를 낳는 악의 세력과 대비한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에 대한 탐욕을 물리치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빛 가운데 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땅에 좋은 것들이 있다고 유혹합니다만, 세상의 권세와 물질을 배설물처럼 버리며 시험을 참는 자에게 하늘의 복을 내린다는 뜻입니다. 세상적인 욕망을 가지고 물질주의 가치관으로 땅을 보며 살아가는 대신에 성도는 높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웃을 향한 선행과 나눔

우리는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 살면서 물질의 풍요를 즐깁니다만, 죄의 뿌리인 탐욕은 만족도 끝도 없어서 늘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소유하려는 물질적인 유혹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나 권력투쟁, 경쟁과 갈등의 밑바닥에는 항상 탐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탄이 내 안에 뿌려놓은 탐욕을 없애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이고, 우리의 소유를 나누기 시작하면 탐욕도 없어지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상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삶의 방향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고, 삶의 내용은 육신적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선행과 나눔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탐욕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나만의 즐거움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한 탐욕적 추구가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유익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평화를 이루며 살아갈 때에 나의 삶에 탐욕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내게 많은 것이 있으면 부족한 다른 사람을 채워주고, 내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채워주시리라 믿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면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워야 채워지고 나누어야 사랑할 수 있고 낮아져야 높아지고 내려놓아야 하나님께 영광을 높이 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소유를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면 탐욕이 들어오고,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베풀고 나누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으면 탐욕이 달아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길은 이해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고 아름다운 자연처럼 조화를 찾고 화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탐욕이 많은 이 세상에서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소유를 이웃과 나누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이 땅에 권세와 명예를 탐하고, 땅과 집과 재물을 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인간의 탐욕이 끝이 없음과 탐욕의 어리석음을 저희들에게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며 탐욕을 물리치며 살아가도록 성령께서 인도해주시옵소서. 오늘날 물질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면서 물질이 주는 쾌락을 추구하며 탐욕으로 죄를 짓고 사망으로 향하고 있는 현대인들을 불쌍히 보시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은총내려 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3/18 [19:51]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