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유다와 제자들 그리고 우리
[다락방 기도] 마태복음 26:14-25
 
김영철

한국에서 목회하는 김기현목사는 자신의 저서 '가룟유다 딜레마'에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해 논했습니다. 딜레마라 함은 "선택해야 할 길이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을 말합니다. '가룟유다의 딜레마'란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가룟유다를 예정하시고 사용하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교회의 전통은 가룟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고 돈을 받고 스승을 팔아넘긴 부도덕한 존재이고 악의 화신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가룟유다의 배반을 통해 이루어졌으니까 가룟 유다에게도 하나님이 맡긴 역할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정하셨다면, 연약한 인간인 가룟유다는 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동정론입니다. 만약 유다의 배신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인류의 구원이 불가능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은화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린 가룟유다의 행동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가룟유다의 배반은 그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이었고 그가 미리 정해 놓은 각본대로 악한 행동을 했으니 하나님은 그의 죄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장미와 가시라는 불가결한 관계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장미에는 인간의 자유라는 가시가 돋쳐 있고, 인간의 자유라는 장미에는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가시가 있다. 그래서 예정을 강조하다보면 자유가 가시가 된다. 그렇다고 그 가시를 죽 밀어 버리면 아무런 위험도 없지만, 장미 본래의 아름다움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장미꽃을 사랑하는 자는 그 날선 가시마저도 장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랑의 한 요소로 감내해야 한다. 그럴 때, 가까이서 보면 둘 사이의 갈등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한데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장미와 가시

구약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면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옵니다. 애굽의 바로왕은 모세의 간절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완고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의 완악한 마음까지 일러주며 온갖 재앙을 내리십니다. 결국 여호와의 계획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악하게 만드셨고 바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된 셈입니다. 그러나 본래 선했던 바로의 마음을 하나님이 악한 마음으로 바꾸어 놓으셨다거나 본래 여호와께 순종했던 바로를 불순종하도록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유혹하지 않으시고, 어떤 피조물이라도 죄를 짓도록 강요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의 길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가룟유다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의 자유였고 그의 배신과 자살행위는 다른 누구도 아닌 유다 자신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가 결국은 자기가 무엇을 행했는지 뒤늦게 깨닫고 뉘우쳐 돈을 돌려줬다는 기록을 보면, 그는 분명히 자유의지로 악한 짓을 자신이 선택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이 가룟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고 말씀했는데요, 예수님은 그가 마음에 품고 있던 악한 생각을 돌이킬 것을 촉구하셨지만, 그는 끝내 예수님의 뜻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가룟유다의 배반은 그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이었고 하나님이 죄를 짓도록 미리 예정하신 것이 아님이 분명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롯유다가 있어야만 십자가의 대속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롯유다가 없어도 그리스도의 대속은 하나님의 섭리로 반드시 이루어지게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고난의 행진

오늘은 사순절 마지막 주일인데요, 고난주일 또는 종려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종려주일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이 왕으로 환영받는 모양입니다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죽음의 길을 향해 가시는 고난의 행진입니다. 며칠 후에는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던 군중들이 예수님을 죽이라고 고함을 지를 것이고,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고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시며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삼년 동안 함께 하셨던 열두 제자들마저 겁에 질려 예수님을 배반하고 뿔뿔이 흩어져버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지만 이 땅에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뒤에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오는데요, 예수님은 이미 모든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고 달아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즈음에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팔았고, 다른 제자들과 심지어 예수님의 수제자로 인정받았던 베드로까지 예수님을 배신하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제자들의 배신은 그들이 예수님이 가시려던 길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지 못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앙 때문에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셨지만, 예수님은 그 고난을 피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주역처럼 등장하는 가룟유다는 가룟시몬의 아들인데요, 그는 제자그룹에서 살림살이를 맡을 정도로 똑똑했고 학문이 깊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은 갈릴리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되었는데 가룟유다는 남쪽 가룟지방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가룟유다는 북쪽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스스로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보면 가룟유다는 그 시대의 엘리트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맡은 일에 충실하여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받았던 가룟유다는 예수님 제자가 된 후 3년 훈련 기간 동안 모범적인 제자였고, 재정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도 살리시고 군중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가룟유다는 때가 왔다고 생각하면서 무엇인가 기대했던대로 풀려나가고 있음을 감지했을 것이고, 겉으로 말은 안했지만 내심 즐거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시험에 들게 되거나 넘어지게 되는 것은 실패했을 때 보다 일이 계획대로 잘되어 마음이 우쭐해질 때입니다. 가룟유다가 한창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때,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며 제자들의 의도와 동떨어진 말씀을 하셨고 그래서 가룟유다는 예수님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때부터 그에게서 배반자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1주일 전에 베다니 시몬의 집에 있을 때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러자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좋을텐데 값비싼 것을 낭비한다고 가롯유다가 분개했는데, 그때 이미 예수님께 불만이 많았음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12장에 가룟유다를 가리켜 '도둑'이라고 가리켰는데요, 어떤 분들은 가룟유다가 더 이상 예수님을 통해 재물을 얻을 희망이 사라지게 되자, 주님을 배반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배반의 대가로 받기로 한 돈이 은화 30세겔로 너무나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에 돈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팔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가 배신한 동기를 돈보다는 그의 정치적 야망에서 찾는데요, 예수님이 보이신 메시야상이 가룟유다의 기대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로마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킬 정치적인 메시야를 꿈꿔 왔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바라던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배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정치 군사적 메시아로 기대했었지요? 가롯유다는 당시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이 세상을 정복하고 세계적인 나라를 세울 메시아로 알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신약학자들은 그가 열심당에 속해 있었고, 열심당 사람들은 무력봉기를 통해 외세인 로마를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고 나라의 주권을 찾겠다는 민족주의적인 운동권 조직이었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와 가나안인 시몬 같은 제자가 바로 그 열심당 출신이었고,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야심과 기대를 갖고서 주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혁명적 메시야왕국 건설의 기대를 끝내 저버리자 유다가 배신감에 사로잡혀 속상한 마음으로 예수를 싼 값에 팔아넘겨 죽이게 되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대해 소원을 갖고 있었는데 그 소원이 실망으로 변하자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종교지도자들의 음모에 가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라고 했는데요, 가롯유다가 사단의 유혹을 받아서 예수님을 배신했다는 뜻입니다. 가룟유다의 배신에는 불신앙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래서 사단이 들어와 그의 선한 의지와 양심을 무력화 시키고, 그의 증오심과 악한 의지를 부추기는 힘으로 작용했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상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배신이 가룟유다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에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뒤에 보면 예수님이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를 지목하여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한번 실수한 것이 아니라 세 번이나 반복해서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부인한 베드로의 잘못이 가룟유다보다 더 큰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베드로에게는 너그럽고 가룟유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베드로는 잘못을 회개했지만 유다는 괴로워하며 뉘우치기만하고 자살로 끝내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모함하고 죄를 뒤집어 씌워 사형시킨 일은 가룟유다보다 종교지도자들이 주도했으며, 가룟유다는 그 일에 잠시 동조했을 뿐입니다.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 주역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 죽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가룟유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악하게 취급되는 것은 아마도 그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문 17절부터는 유월절 최후의 만찬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유월절은 유대인의 주요 절기의 하나로써 애굽에서 구원을 얻은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출애굽 당시에 죽음의 천사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유대인의 집만 비켜간 사실을 생각하면서 유대인들은 유월절 양을 잡아먹으면서 하나님의 구원 은총을 기억했습니다. 유월절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은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요,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넘겨주겠다는 계략을 꾸미고 돌아온 뒤에 예수님은 때가 왔음을 아시고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은 제자들과 이별파티를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과 모든 인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신 것은 자기의 몸과 자기의 피를 배반자들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자기 몸을 내어 주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내 몸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내어 주고 있는지를 분변하고 성찬에 임하라는 말씀이 있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배반자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자기를 내어주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서로 용납하자는 뜻입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만찬을 시작하시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에 제자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제자들이 "주여 내니이까?"하고 각자가 물었지만, 제자들 모두 예수님이 자기를 지적하시는 것이 아닌지 마음속으로 근심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이 죽을지라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말씀에 혹시 자기가 배신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실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까 제자들 모두가 이제 적당한 기회가 오면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구체적으로 대답하셨는데, 12명 중 누구든지 배신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같은 상에 둘러앉은 사람이면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같은 그릇에 손을 넣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예수님은 자기들이 기대해왔던 것과는 점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을 떠날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그날 그 식사자리에 바로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마음이 찔렸던 것이며, 예수님을 이미 팔아넘기기로 협상을 해두었던 가룟유다가 제일 뜨끔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로 결정된 후에도 세 번이나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가룟유다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는 제자들의 이런 배신을 그들이 믿음이 없는 탓이라고 나무라기 쉽습니다만, 오늘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신앙생활에 열정을 보이면서도 이중적으로 처신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와 같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고 주님의 뜻보다 인간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모습들을 보이곤 합니다. 진실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가 무엇인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교회에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니,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의 배신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뒤에 하나님이 가인에게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하고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가인의 이런 행태는 2천년 전에 예수님이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했을 때 "주여 내니이까?"하고 대꾸했던 제자들의 모습과 대동소이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따라 서로 섬기며 사랑하며 살기보다 이 세상이 흘러 가는대로 편하게 살아가는 위선적인 태도와도 일치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탐욕에 빠져서 주님을 배신하며 죄와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인간들을 불쌍히 보시고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길을 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배신자들을 용서하시고 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로 다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가룟유다처럼 배신했던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를 바라보며 골고다로 향해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저희들 사순절 마지막 주간에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이 가신 진리와 고난의 길을 따라가도록 힘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늘 깨닫고 감사하면서, 명예나 권세나 재물을 위해서 주님을 배반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저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세상의 소리에 민감하기 보다는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땅의 모든 배신자들이 진실로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와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은총 내려 주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4/02 [20:27]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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