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로 가시는 부활의 주님
[다락방 기도] 마태복음 28:1-10
 
김영철

엊그제 한국일보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여자분이 삭발을 한 후에 울고 있는 사진이 크게 나와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피해가족들의 보상금액을 발표하자 유가족 수십 명이 집단적으로 삭발하고 보상 문제 이전에 진상규명을 먼저 하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세월호 특위에 관한 정부측 시행령안을 폐기하지 않으면 어떠한 보상도 의미가 없다고 진상규명의 의지가 없는 정부에 대해 분노를 표시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피해가족들을 돈으로 무마하려던 정부를 규탄하면서 보상절차를 전면 중단하라는 요구도 했습니다. 팽목항의 세월호 침몰현장에서는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교회단체 대표들이 선상 예배를 드리며 실종자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세월호 사건은 정치지도자들과 관료들에 대한 믿음도 무너지고,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을 보며 슬픔과 좌절감에 빠지게 했습니다. 무책임과 무능력이 드러났고 사고수습을 방관하며 자기책임은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까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은 지난 1년간 악몽 속에서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했다고 호소합니다. 유가족들은 마치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비참하게 돌아가실 때의 제자들처럼 비통함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위로가 도움이 되었겠지만,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가 오래 지속되면서 주변 사람들도 지치게 됩니다. 어떤 심리전문가는 트라우마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얘기하면서 이제 잊어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비수가 될 수 있다고 충고했습니다. 충격적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 때문에 삶 자체가 혼란스러워진 상태이므로 그들이 원할 때 같이 있어주고,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트라우마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는 충격으로 인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처럼 트라우마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했던 제자들은 큰 절망과 비탄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따르던 예수님이 사형에 처해진 상황에서 제자들은 자신들도 잡혀서 죽을 수 있다는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에 그들은 도망해버렸고, 예수님의 재판과 고문과 십자가 처형 그리고 장례까지 그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남자 제자들이 숨어있는 동안에. 본문에 보면 부활의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곧바로 무덤에 묻히셨는데,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새벽에 무덤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예고했었지만 여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예수님의 무덤으로 간 것입니다. 이 여인들이 무덤으로 가면서 가장 걱정한 것은 누가 무덤문을 막은 큰 돌을 치워주겠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무덤에 도착하자 신비스러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고 천사가 무덤의 돌을 굴려내고 그 돌 위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 천사는 여인들에게 "무서워 말라. 너희가 찾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고 그는 말씀대로 살아나셨다"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은 죽은 시체의 냄새를 제거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부활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 전에 부활에 대해서 여러번 말씀하셨는데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하던 이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천사가 말했을 때, 그들은 기뻐하는 대신에 놀라워하며 무서워했습니다. 천사가 빈무덤과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을 보이며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지만, 그들은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거나 시신을 없애버렸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본문 앞에 보면 아리마대 요셉이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고 그 무덤에 큰 돌을 굴러서 막았을 뿐만 아니라 돌을 인봉하여 도장을 찍었고 군병들이 그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본문 뒤에 보면 군병들이 예수부활을 목격하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되어진 사실을 다 알렸는데 대제사장들이 이 군병들에게 제자들이 밤에 시체를 훔쳐갔다고 얘기하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시체를 도둑맞은 것에 대하여 총독에게 문책을 받게 되면 우리가 총독에게 좋게 얘기해 줄 것이라고 하면서 돈까지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서움에 빠져 있던 여인들에게 천사는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일렀습니다. 이 천사의 전갈을 듣고 두려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중에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러 달려가는 여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재차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거기서 그들이 나를 보리라"며 갈릴리로 가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뵐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세월호 유가족처럼 트라우마의 위기를 경험하며 절박한 심경 가운데 숨어지내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빈 무덤

부활의 사건을 전하는 다른 복음서들은 본문 말씀과 조금씩 다르게 서술하고 있습니다만, 중요한 사항들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부활의 첫 증인으로 등장한 것인데요,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일에는 여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실제로 여인들이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모시고 따라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는 여자의 역할이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달려가 주님이 살아나셨다고 전하자, 제자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여자들의 말을 믿지 못해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서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처럼 무시당하던 여인들이 부활의 첫 증언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여인들의 숨은 열성과 헌신을 말해줍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맥을 못 추고 숨죽이며 살아가던 여성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의 현장에서는 앞장을 서고 있으니, 부활은 기존의 질서가 뒤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껏 지배를 받으며 비천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도 따라다녔고, 고난을 겪을 때에도 숨을 거두실 때에도 십자가 옆에 함께 있었고, 무덤에 묻힐 때에도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남자 제자들이 두려워 숨었거나 도망갔을 때에도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들 가운데에는 항상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군중들의 환호를 받을 때에도, 군중들에게 야유를 받고 버림받는 순간에도 이 여인들은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로 먼저 가시고,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사실입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갈릴리로 가시며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을까요? 절망의 땅을 희망의 땅으로 바꾸시는 주님이 죽음의 공포에 떨며 트라우마 상태에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갈릴리로 가셨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상처가 있고 실패가 있고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과 새 생명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 곁에서 한자리를 기대했던 제자들의 꿈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3년이나 따라다녔던 고생은 헛수고가 되어버렸습니다.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3일간이라도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갈릴리는 절망과 좌절의 분위기로 휩싸여 있었는데, 그 곳에 부활의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을 처음에 부르셨던 갈릴리로 다시 불러 성령으로 변화시키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지만 일생의 대부분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보내셨으니까 갈릴리는 예수님의 고향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곳도 바로 갈릴리였습니다. 예루살렘과 비교해보면, 예루살렘은 부와 권력의 중심이었지만, 갈릴리는 아픔과 상처가 많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였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소외되어 불의와 탐욕의 지배자로부터 억압을 받으며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므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시겠다는 말씀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함께 하시며 용기를 주시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인데요,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이고, 하나님을 바라며 인간이 겸손해져 있는 낮은 곳으로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세월호 침몰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아직도 실종상태에 있는 힘없는 약자들이 모인 곳에도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함께 하시며,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죽은 사람을 살아나게 하신 이적이 세 번 있었는데요,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야이로의 딸과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신 것입니다. 살아나도 또 죽으니까 부활과는 다르지만, 죽은 사람을 살려주심으로 예수님은 생명을 다스리시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무덤에서 살아나셨고 직접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그 사실을 즉시 제자들에게 알려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방에 들어오셔서 못 박힌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고 의심을 하던 도마에게는 그의 손으로 상처난 자국을 직접 만져 보게도 하셨습니다. 부활은 2천년전에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과거의 사건입니다. 이 땅에서 인간이 겪는 질병의 문제, 전쟁의 문제, 기아와 궁핍의 문제, 자연재해의 문제 등 모든 고통은 죄 때문이고, 그 궁극적인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했고, 인간의 모든 고통의 근원인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활의 신앙을 고백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과거에 있었던 한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부활하고 영생할 것임을 표본으로 보여 주셨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는 말씀이 있는데요,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가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부활은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 현재적 부활은 믿는 자마다 영적으로 거듭나는 부활입니다. 현재의 부활은 과거에 죄로 죽어가던 영혼이 새롭게 되는 것이고, 질적으로 옛 사람의 허물을 벗고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새로운 생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신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화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의 현실에서 부활신앙으로 악을 물리치며, 궁극적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령을 통하여 마음속에 사랑을 부활시켜 주셔서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는 삶으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육에 대해서 죽고 부활의 첫열매이신 예수님을 따라 새로운 인격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라고 하신 말씀은 그 영혼이 현재적으로 부활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 충만하여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지요? 부활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육체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믿기 때문에 욕심도, 미움도 없고, 병들고 죽는 육체적 삶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부활신앙의 사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과 사랑이 승리함을 믿기 때문에 세상의 자랑도 소유도 소용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도 믿기 전에는 세상의 가치관과 정욕을 따라 남보다 많이 가지겠다고 욕심을 부리며 바쁘게 살았습니다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성령충만함을 입고 거룩함과 사랑을 향하여 새로운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영원한 생명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올 몸의 부활이 미래적 부활인데요, 사람의 육체는 때가 되면 죽습니다만, 세상의 종말에 그 몸이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주님이 부활의 약속을 성서에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봄철에 돋아나는 푸른 잎사귀에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겨울 동안에 잎이 말라 떨어지고 앙상했던 가지에 새 순이 돋는 것을 볼 때, 부활의 약속을 믿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봄이 되면 자연에 새로운 생명이 움트듯이 육체가 죽은 후에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몸을 부활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자는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나라에서 다시는 질병과 죽음도 슬픔과 절망도 없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미래에 우리에게 부활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부활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현재적 삶의 차원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라면, 인생은 먹고 마시는 것 외에 아무 의미도 없게 되고 의미가 없는 인생은 허무할 뿐입니다. 부활신앙은 육체의 죽음 너머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있을 것이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세상에 선포하신 새로운 질서는 용서와 사랑이요,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직도 악이 선을 이기는 것 같고, 진리가 패배하여 십자가로 끝나는 듯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만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보여주셨습니다. 불의가 이기고 위선과 거짓이 성공하는 듯이 보입니다만, 잠시는 이길 수 있어도 영원히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부활의 주님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이 땅을 살면서 두렵고 절망적인 일들을 만난다 할지라도 부활신앙으로 그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하며 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 오늘 부활주일 아침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찬송과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삶을 살아가며 기쁨과 평안을 누리도록 은총 베풀어주옵소서. 갈릴리로 찾아가신 부활의 주님이 오늘날 어두워져 가는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소망의 빛을 비추어주시옵소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 그리고 권력의 횡포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아파하며 눈물 흘리는 약자들을 위로하사 부활의 소망을 베풀어주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4/07 [11:42]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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