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기쁘게 하는 선과 덕
[다락방 기도] 로마서 15:1-7
 
김영철

'강자와 약자'(The Strong and the Weak)라는 저서로 잘 알려진 폴 투르니에 박사는 스위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제네바대학의 교수이고 독실한 크리스찬입니다. 그는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상담을 통해 사람은 모두 불안해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어떤 사람들은 강한 반응으로, 다른 사람들은 약한 반응으로 드러낸다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약자의 절망과 강자의 불안, 이 두 현상의 이면에는 큰 착각이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서로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외적인 가면, 다시 말해 외부로 나타나는 반응이 강하거나 약해서 다를 뿐이다. 강자의 반응은 비난과 허세와 폭력 등이고, 약자의 반응은 수치심과 강박감과 우울증 등이다. 약자의 반응은 자신이 약점이라고 의식하고 있는 것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약자는 항상 강자보다 더 정직한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외적인 가면은 약자뿐 아니라 강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기만한다. 인간은 모두 약한 존재이고 죄성이 있으며, 깊은 내면에는 실패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누구나 자신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고 자기 내면의 약함이 드러날지 몰라 두려워한다. 누구나 남모르는 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약점을 가리기 위해 특정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잘못된 양심을 가지게 된다. 스스로의 양심을 묵살하거나 이와 반대로 본능을 억제하고 타인이 자신을 억압하도록 내버려 둔다. 이때 신체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은 약자에게는 신경증이나 우울증, 소화불량, 당뇨 등이고, 강자에게는 소모성 질환인 고혈압, 동맥경화, 관절염, 암 등이다. 나를 찾아오는 환자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에 이 두 반응의 쇠사슬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인간과 사회가 건강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체험하는 것임을 많은 경우에서 볼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약자는 약한 반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강자는 강한 반응의 악순환을 끊어 버린다. 또한 약자는 용기를 회복하고, 강자는 교만을 무너뜨린다. 약한 사람이 기력을 회복하고, 신경증 환자가 정신적인 억압에서 나음을 얻는 것과 강자가 온화해지는 것도 본다."

연약한 존재

폴 트루니에는 인간은 강한 자나 약한 자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때, 절망이나 불안의 병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죄성을 가진 연약한 존재임을 아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고 우리의 병도, 절망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약점을 지적하시고 심판하셨다면 살아남을 사람은 없을 것인데, 예수님이 허물을 덮어주시고 용납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큰 은혜를 입고 용서를 받았으니 우리도 우리의 연약한 형제를 용서하고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약한 이웃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연약한 자들이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깨닫게 되면, 우리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됩니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이 세상에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지적하며 이용하려고 하고, 약한 자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오늘날의 경쟁사회에서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찾아내어 그 사람을 쓰러뜨리려는 분위기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형제의 약점이 보이면 덮어주고 용납해야 함을 가르치시고 용서를 보여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때 이웃을 정죄하며 비판하는 대신에 이웃을 긍휼히 여기며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완전하지 못하고 약점이 많은데,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보며 비판하는 자는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 연약한 인간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남의 잘못을 들추는 것 대신에 그 사람의 좋은 것만을 얘기하며 복을 빌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라

오늘 본문도 이웃의 약점을 용납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며 서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약한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고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약한 자를 배려하고 도와주라고 권면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2장 이후에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윤리, 즉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장에서는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바치는 것, 즉 매일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했고 13장에서는 세상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말씀했습니다. 그 다음 14장과 15장에서는 이웃을 비판하지 말고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이웃과의 아름다운 관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웃에 관해서는 예수님이 '강도를 만난 사람'의 얘기를 통해서 새로운 해석을 하셨습니다.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의 이웃은 동족인데도 그를 보고도 지나가 버린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니고, 죽게 된 그를 도와 준 사마리아인이 이웃이라는 겁니다. 이웃이란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고, 이웃이 되는 길은 도움을 주는 것이고, 원수라 해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는 내 이웃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나와 성격도 다르고 행동도 달라 내가 보기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나의 도움이 필요하면 내 이웃입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내게 이웃으로 붙여주신 것은 그 사람을 통해 내 허물을 보여주시고 또 그 사람을 통해 나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부부나 가족도 자주 보는 엽집 사람들도 설사 지금 서로 사이가 좋지 않고 서로 미워하더라도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의 이웃입니다. 가족이나 이웃 가운데 겉으로 보기에는 어른인데도 정신적으로 어린아이인 경우가 있고, 교회에서도 신앙 연조가 오래 되었지만 믿음의 성숙도가 늦어 영적으로 어린아이인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지식이나 열성은 대단한데도 인격이나 행실이 자기중심적이어서 모든 것이 자기에게 유익해야 하며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남을 배려치 못하는 것을 보면 어린아이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사랑을 베풀지도 못하고 자기 것만 챙기며 자기만 위해달라고 하는 사람은 주위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했는데요, 강한 자가 먼저 양보하고 사랑을 베풀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를 위해서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남을 기쁘게 하라는 말씀은 인간이 가진 이기적인 성품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의 기쁨을 얻기 위해서 애쓰며 자기의 기쁨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눈물과 고통과 좌절과 실패도 개의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을 기쁘게 하려는 이기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의 기쁨을 위해서 남에게 거짓말하고, 속이고,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학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면 결국에는 자신도 죽고 남도 죽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눈앞의 먹이에만 정신이 팔려 머리 위에서 매나 독수리가 덮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참새처럼 행동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약한 자들을 멸시하거나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과 자만심을 즐기려고 합니다만, 인간의 이런 병적 심리를 아는 사도바울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남의 약점이란 내 우월감이나 자만심을 즐길 기회가 아니라, 우리가 감싸주며 이해하며 자신의 약함을 볼 수 있는 기회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존재로,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함께 사는 연약한 사람들과 서로 사랑을 나누며 협력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여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셨으니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담당하신 예수님을 본 받아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 이웃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대신 슬픔을 떠안고 이웃의 치유를 위해서 내가 아픔을 겪고, 이웃의 이익을 위해서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2절에는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하라"고 했는데요, 이웃을 기쁘게 하려면 그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덕을 세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선은 좋은 일을 힘쓰라는 뜻이고 덕은 유익하게 하라는 뜻이니까, 선과 덕을 세우려면 이웃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요구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 자신이 기쁨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속을 보이지 않고 가식의 마스크를 덮어쓰고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처럼 처신합니다. 또 가끔 신문에 보면 선행이나 구제를 하고 목사와 교회대표들이 사진을 찍어 자신들을 드러내려고 합니다만, 그것은 선행이라기보다 자신들의 기쁨을 위해서 입니다.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선행을 한다면서 남에게 자랑하면 자기 상을 이미 받은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했지요? 이웃을 기쁘게 하는 선과 덕을 위해서는 자신의 이성이나 감정을 따르는 대신에,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서 많은 비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 달려서 온갖 욕설과 저주와 비방을 당하셨습니다. 선행의 모범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길을 택하셨기 때문에 고난과 모독과 비방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연약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하셨으니, 참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 약한 이웃의 기쁨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인용된 시편 69장의 말씀은 의로운 자의 부당한 고통에 관한 말씀이고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하려면 멸시도 고난도 인내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세상사람들은 비방을 받으면 더 큰 비방으로 되돌려 보내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할지라도 핑계를 대어 비방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았을 때, 자신의 무죄함을 외치지 않으셨고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알았기 때문에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남의 기쁨을 위해서 남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우리들에게도 섬김의 삶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이웃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가 따르는 그리스도가 비방을 받으시면서까지 타인의 기쁨을 위하여 사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을 주셨다면 병으로 시달리는 자의 약함을 도와주라고 주셨고, 물질을 많이 주셨다면 사치하고 낭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물질로 궁핍한 자들을 도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자녀의 형통함을 주셨다면 그것은 자녀들을 통하여 주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사명입니다.

구약 신명기 24장에는 하나님이 인간사회의 구원과 평화에 관심을 가지시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개인과 사회가 지켜야 할 선행에 대해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오늘날도 우리사회에는 약한 자들이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와 사회적 무관심 때문에 정신적 고통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실업으로 비정규직으로 매일 살아가기가 어려운 노동자들, 병들어 아파하며 신음하는 사람들, 부모나 가족이나 이웃의 사랑이 없어 외로운 자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대할 때 인색하지 말라고 명하셨고, 그들의 필요를 살펴 그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이라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말씀합니다. 잠언 19장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는 말씀이 있지요?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약한 자들을 찾아 돌보며 사랑을 베푸는 자의 선행을 잊지 아니하셔서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 구원의 손길을 펴실 것입니다. 성경은 약자들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는데요, 약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행복한 삶을 누리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산다고 할지라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본질입니다. 지금 자신이 어떤 좋은 환경에 살고 있다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런데 어떻게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 그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연약한 자요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살고 있으니 우리는 그 은혜를 기억하고, 현재 고통당하고 있거나 약한 상태에 있는 자들을 돌아보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웃사랑의 실천

성도의 경건한 삶은 말씀과 기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돌아보는 이웃사랑의 실천을 포함합니다. 이웃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도 나만 안락하게 살겠다는 이기주의와 물질주의 같은 세속적인 가치에 물들지 않는 것이 경건한 삶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에 경건의 모습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기중심적인 삶에 매여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성화의 삶을 사는 것인데요,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해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며 이웃을 기쁘게 하는 선과 덕을 쌓아 나가는 것이 성화의 삶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고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는 것이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화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인데요, 내가 변화되지 않고는 결코 이웃을 기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성령의 사람이 되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삶의 가치관이 변화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나를 기쁘게 하는 이기적인 삶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라 이웃을 기쁘게 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가난과 질병 등으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많습니다.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사랑의 능력과 의지를 주셔서 하나님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나라의 의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범사에 하나님의 크고 높으신 뜻이 이 땅에 임하게 하옵소서. 이웃을 사랑하며 소외되고 궁핍한 자들을 주님처럼 섬기며 사랑을 베풀게 하옵소서. 이 땅 위에서 재물을 소유하며 권력으로 이웃을 지배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이웃의 약한 자들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게 은총 베풀어 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4/28 [22:04]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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