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찾아서
[다락방 기도] 시편 39:1-13
 
김영철

얼마전에 서울의 예비군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지요? 20대 초반의 최모씨가 훈련 중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3명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는데요,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유서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유서에는 다 죽여버리고 나도 자살하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혐오감도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무슨 목적으로 사는지 모르겠고 그냥 살아있으니깐 살아가는 것 같다"면서 "나의 외적인 것들과 내적인 것들 모두 싫고 낮은 느낌이 밀려온다"는 말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깨어 있으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힘들어 아무것도 하기 싫고 영원히 잠들고 싶다고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적 생명은 노쇠하고 후패해져서 최씨처럼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조만간 그 수명이 다하여 흙으로 허무하게 돌아가야만 합니다. 동식물들은 보편적으로 환경에 대해 놀라운 적응력과 자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인간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연약하여 힘든 환경을 잘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조그만 동식물의 독이나 바이러스, 약간의 정신적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는 것이 인간의 육체이며, 이로 인해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인간의 육체를 '풀의 꽃'이나 '질그릇'이나 '상한 갈대' 등의 연약한 존재로 비유한 모양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젊음이 사라질 날이 올 것이고, 자신의 미모도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머지않아 모두 자신을 떠날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며 우리는 한때 아름다웠던 인생의 순간들도 들의 꽃처럼 시들고 마는 세상에 바람처럼 흔들리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한 갈대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성경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를 귀중한 그릇으로 사용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모르겠다면서 남도 죽이고 자기도 죽은 최씨도 성경을 통해 인생의 목적을 발견했다면,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끼며 방황하거나 삶을 포기해버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세계적 베스트 셀러를 쓴 캘리포니아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목사는 성경 속에서 삶의 목적을 찾아내어 이렇게 확신 있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서는 나로부터 출발해서는 안되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만들어졌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비결을 말하는 책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것과 삶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은 같지 않다. 개인적인 목표를 모두 달성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놓칠 수 있다. 우리가 삶의 목적을 발견하는 참된 방법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있다. 발명품의 목적을 아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만든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의 삶의 목적을 성경에 명확히 제시해 주셨다. 삶의 목적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겠지만,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를 만드신 이유가 분명하고 우리의 삶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우리는 삶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목적을 아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목적을 알면 우리의 삶은 단순해진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성과 연약성 및 죄성은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 결과임을 성경이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수행해야 할 의무가 주어졌는데,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것입니다. 인간이 불순종했다고 해서 인간의 삶의 목적이 변경된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이 땅에서 청지기의 의무를 계속해야 합니다. 만일에 인간의 삶이 이 세상의 짧은 인생이 전부이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그 자체로 인생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끝이라면 인생을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의미있게 살아야 할 아무 이유를 발견할 수 없게 되고, 사람의 마음에 따라 허무주의나 쾌락주의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인간존재의 가치와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그 존재 가치와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자신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그와 관계를 회복하지 않는 한, 인간은 마치 스스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여,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면 더 행복할 것 같아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도 용서하여 구원해주시기를 원하시고, 우리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 영원히 복을 누리는 삶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이 자신의 소유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하나님은 비록 범죄하여 타락한 인간이지만 피조물인 인간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순종했던 인간이 믿음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하셨는데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찾고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새로운 피조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주관자로 모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참된 소망

오늘 본문은 다윗왕이 인생의 황혼기에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간구하는 시입니다. 다윗은 젊었을 때에 왕좌에 앉아 세상의 권력과 영광을 많이 누렸습니다만, 나중에 시기와 미움을 받아서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며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사무엘하 16장에 보면, 다윗은 자신을 비난하며 저주하고 돌을 던지는 시므이의 행패도 겪었고,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죽음의 고비를 맞이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그의 내면은 두려움과 근심으로 고통받는 연약한 존재였기에, 다사다난하게 살다가 병약한 말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인간이 잘난 척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일생도 한뼘에 불과하며 한번의 입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며, 주변 국가들을 제압하여 천하를 호령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병든 늙은이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영화로운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한뼘에 지나지 않는 인생이었고 그림자에 불과했고 성취한 일도 헛되었고 재산을 모았지만 누가 가져갈지 알지 못하는 초라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다윗은 인생무상을 고백하면서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인생의 허무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면서 용서와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바로 앞 38편의 시와 비슷하게 자신을 낮추어 회개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며 인생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중한 질병에서 고통을 받으며 밧세바와 지은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며 구원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죄를 범하고 그 징계로 말미암아 질병가운데 누우니 오히려 다윗의 대적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만, 그 악인들 앞에서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고 다짐한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아무리 정당하고 선하고 바른 말이라도 다 궁색한 자기변명으로 들리고, 불평불만으로 여겨질 따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한 질병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의 언행을 조심할 뿐 아니라 범죄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다짐한 것입니다. 행위에 앞서서 먼저 혀로 범죄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생각마저 죄악으로부터 멀리하겠다는 그런 결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고 했는데요, 말하지 않으려고 입을 다무니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잠잠히 침묵하며 어떤 말도 하지 않은 결과 그의 마음에는 고통이 더 심하지만, 다윗이 이처럼 입을 굳게 다문 것은 자기에게 죄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3절에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라고 했는데요, 다윗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벗어나 침묵하는 가운데 죽음과 인생에 관해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말들만 많이 하다 보면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침묵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본문 4절에서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종말인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대해서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분주해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만, 다윗은 자신의 종말을 잊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5절에서는 주님이 나에게 한 뼘 길이밖에 안 되는 날을 주셨으니,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모든 것은 헛될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한평생이 실로 한오라기 그림자일 뿐이고, 재산을 늘리는 일조차도 다 허사라고 자신의 절망감을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전도서 6장에 하나님이 부귀와 영화를 주어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부족하지 않게 하셨으나 다른 이가 그것을 누리게 되니 헛된 일이라고 했지요? 자신의 능력으로 재물도 부귀영화도 업적도 쌓아놓았는데 정작 그 주인은 누가 될지 모른다는 하소연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자신의 죽음과 인생의 연약함에 대해서 묵상하던 끝에 7절에서는 분위기가 바뀌어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주님을 의지합니다. 젊었을 때 이 세상의 권세와 성공을 추구하면서 살았습니다만 이제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해보니까, 이 땅에서 참된 소망은 오직 주님 한분밖에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라고 간구하면서 주님께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다음 9절이하에서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입에 재갈을 먹이며 침묵하지 않을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죄와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여 솔직히 고백하는 것만이 구원의 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마침내 12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하고 회개합니다. 그다음에 "나는 주께 객이 되고"라는 말은 다윗 자신이 나그네임을 고백하면서 나그네를 돌보라고 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고 있는 듯합니다. 13절에서는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라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습니다. 다윗은 그가 당하고 있는 병과 고통에 대하여 하소연하기보다는 자신이 범했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시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건강이 회복되며 인생의 허무감을 극복하게 될 것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픈 과거가 치유되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뿐임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다윗은 단순히 육신의 건강만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허무한 인생으로 끝내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죽음이 싫어서 생명의 연장을 구한 기도가 아니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사이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범죄한 일이 가장 마음 아픈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지난날 범죄한 사실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빌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죽기 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죽음이 무엇이며, 인생이 무엇이며 또 그가 이 땅에서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털어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성숙된 인생

오늘날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생무상을 느끼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다윗은 젊었을 때보다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성숙된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손에 있는 재물, 자신이 쌓아놓은 부귀영화들이 언제 자기 곁을 떠날지 모르는 것이로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허무한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의 것들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겠구나 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가치를 지녔는데도, 오늘날 그 가치와 의미를 어디에서 발견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총격사건의 최씨처럼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며 학대하기도 하고, 방치하거나 포기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가치를 물질적 소유에서 찾아 많이 소유했다고 자신의 생명이 다른 사람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착각하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치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여 권력에 집착하면서 살거나 쾌락에 빠지게 되는 것도 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 살면 행복할 것 같은데, 사실상 자신의 존재가치와 목적을 잃어버리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두면, 삶의 가치관이 변하여 이 세상의 명예나 부, 또는 권력이나 쾌락보다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단순히 우리가 편안하고 건강하고 오래 살아가는 삶에 맞추어져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을 무시하거나 거절해 버리면, 불순종의 죄가 될 뿐만아니라 인생이 행복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며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목적을 찾아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깨우쳐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인간의 욕망을 쫓아 이 땅의 일에 몰두하여 살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고,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경건하게 살아가게 저희를 도와주시고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기쁘게 살아가도록 은총내려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삶의 목적을 모르고 방황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살아가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5/30 [11:37]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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