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눈
[다락방 기도] 열왕기하 6:14-19
 
김영철

한국의 건국대학 연구교수인 물리학자 이강영박사가 쓴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현대물리학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세계를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세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인간의 시각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다. 현미경으로 보는 작은 세계와 망원경으로 보는 바깥 세계, 그리고 현미경과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우주만물 중에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우리는 빛이 없어도 볼 수 없고 벽이 막혀도 볼 수가 없고 수많은 사물 가운데서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세포도 볼 수 없고, 내 몸 안에 있는 장기들도 보지 못하고,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이 내 안에서 지금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볼 수도 없습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지요?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빙산 중에서 실제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고, 대부분은 바다 아래 감추어져 보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훨씬 더 많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문명이 아무리 풍요하고 화려하게 발전한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세계가 있음을 알고,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산다면 우리는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는 것이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지식의 대부분을 시각에 의존하며, 눈에 보이는 것은 존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데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당연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실이든지 눈으로 보아야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기 쉬운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

우주만물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신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대부분의 경험들도 눈에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기나 바람, 전기나 전파, 그리고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도 눈에 보이지 않는데요, 눈에 보이는 것들의 깊숙한 속에 보이지 않는 귀중한 보화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에도 눈에 보이는 경치뿐만이 아니라 그 속에 흐르고 있는 역사와 정신적인 유산을 보고, 자연을 볼 때도 창조주의 오묘한 솜씨와 그 뜻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찾아내고 창조주의 존재를 느끼며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시인들은 시인만이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평범하게 보이는 것들 속에서 시적 영감을 얻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시를 창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보이는 현상에 나타나지 않는 본질을 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사랑하며 보이지 않는 성령의 감동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세상사람들은 보이는 것 때문에 욕심을 갖게 되고, 보이는 것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며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만, 신앙인들은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며 사랑과 경건한 삶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바울 뿐 아니라 모세도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느헤미야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처럼 살았고, 다윗도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했던 엘리사의 사환이 엘리사의 기도로 마침내 눈이 열려 하늘군대를 보게 되는 얘기가 나옵니다. 본문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면, 기원전 900년경에 주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던 약소국가 이스라엘은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본문 앞에 보면 당시 아람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작전계획을 세워 공격했는데, 그 계획을 미리 알고 이스라엘이 방어하므로 아람군대가 철수해야 했습니다. 번번히 전쟁을 하기도 전에 모든 작전이 이스라엘에게 발각되어 여러 번이나 참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람왕은 "우리 중에 이스라엘의 첩자가 있어 내통하는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적이 작전계획을 사전에 어찌 알겠는가?"하고 신하들을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이스라엘에 신앙심이 깊고 영적인 통찰력이 있어서 우리군대의 작전계획을 꿰뚫어 보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 선지자가 신통해서 아람왕의 은밀한 침실에서 일어나는 일도 이스라엘왕에게 알려 전쟁을 방비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왕이나 군사보다 엘리사 선지자를 제거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왕에게 건의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아람왕은 엘리사선지자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했고, 엘리사가 도단성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람왕은 도단에 있는 엘리사를 체포하려고 많은 군사와 병거를 밤에 보내서, 그 성을 포위하게 했습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선지자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밖을 보니 많은 군사들과 병거들이 앞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군사들과 병거들에 완전 포위된 것을 본 사환은 급하게 뛰어들어와, 선지자에게 어찌하면 좋을지 여쭈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많은 군대가 자신과 엘리사를 둘러싸고 공격해올 태세라는 임박한 상황을 보자 적군의 위세에 눌려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었습니다. 사환이 도단성을 둘러싼 아람의 군사와 병거를 보고서 떨고 있을 때, 엘리사는 도단을 둘러싼 아람 군대 뒤로 자신을 지키는 여호와의 군대를 보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을 잡으러 온 아람 군대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겁에 질려있는 사환을 진정시켰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린 엘리사는 아람왕의 군대보다 더 많은 군대가 지키고 있다면서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만,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어려운 환경이 닥칠 때 어찌할지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때, 눈에 보이는 현상에 두려움을 느끼고 불안해 하거나 절망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과 공포가 생길 수 있는 환경을 만나게 되지만, 두려움은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엘리사와 엘리사의 사환도 똑같은 환경에 처하게 되었지만 그것을 느끼고 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을 때에는 물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풍랑이 넘실대는 바다를 보고서는 무서움에 빠지게 되었지요?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안해 하거나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엘리사가 무서워하는 사환을 보고 "여호와여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환의 눈에도 도단성과 아람군대를 둘러싸고 든든히 지키고 있는 여호와의 군대가 보였습니다. 사환의 영안이 열려 수천수만의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되었고, 아람군대보다 수효가 더 많은 하늘군대를 보았으므로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아람군대는 여전히 도단 성을 포위하고 있었고, 상황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도 이젠 엘리사의 기도로 사환의 영안이 열려 두려움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아람군대를 보고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던 이 사환에게 하나님이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하셨고, 그러자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는 불말과 불병거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영안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두려움이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시편 118편에 보면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할꼬"라는 말씀이 있지요? 그다음의 시편 119편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는 말씀이 있는데요, 하나님께 기도하면 믿지 못하여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다는 것을 느끼며 두려움 없이 담대하고 힘차게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당면한 현상만을 보지 않고 현상의 배후에 있는 것까지 봅니다. 현재 당하고 있는 현상만을 볼 때에는 절망하고 낙담하기 쉽습니다만,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현실을 극복하는 지혜와 힘을 얻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내어 박해하고 있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일시적으로 소경이 되었습니다만, 그후에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경험을 했는데요, 영적인 눈을 뜨게 되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했습니다. 사람의 눈은 겉으로 나타난 현상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만, 영의 눈을 뜬 사람은 현상 아래로 깊숙히 존재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은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기 때문에 현실로 인한 염려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현실의 문제들뿐 아니라 그 문제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정탐꾼 열두 명이 가나안땅을 40일간 탐지하고 돌아왔는데, 그중에서 10명은 가나안의 지형과 사람과 환경은 보았지만 그 위에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성벽은 높게 쌓여 있어 저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거대했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들은 전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했지요?

본문 18절에 보면, 아람군대가 날이 밝자마자 도단성을 공격했는데, 엘리사가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셨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아람군대에게 "너희는 길을 잘못 들었다. 이곳은 너희가 찾는 성이 아니다. 나를 따라오너라"고 그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성으로 데려갔습니다. 본문 뒤에 보면, 그들이 사마리아성에 들어갔을 때 엘리사가 다시 그들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달라하고 기도했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눈이 열리자 그들은 자기들이 사마리아성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오히려 그들이 이스라엘 군대에게 포위된 격이 되었습니다. 아람군대는 사마리아성 안까지 들어와서 스스로 적의 포로가 되었으니, 눈을 뜨고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이었습니다. 이처럼 믿지 않는 자들은 지금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르는 채 끌려가는 경우가 많고, 악한 마귀는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나 온갖 쾌락으로 눈을 가리게 한 후에 그들을 멸망의 길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끌려 온 아람군대를 보고 이스라엘왕이 엘리사에게 그들을 죽일것인지 물어 보았는데, 엘리사는 음식을 주어 먹고 마시게 한 다음 그들의 왕에게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왕이 큰 잔치를 베풀자 그들은 실컷 먹고 마신 다음 자기들의 왕에게 돌아갔는데, 그 이후로 얼마동안 아람군대는 이스라엘을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씀이 있지요? 믿음의 사람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이루어지지도 않은 것들을 마치 지금 자기들 앞에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본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이 너무 부패했기 때문에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니 구원의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는데,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당시 사람들은 노아를 정신 나간 노인네라고 놀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노아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며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당시 문명이 발달되어 살기 좋은 곳이었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살기가 더 힘든 곳으로 가라고 하셨는데도,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소중한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칠 때도 큰 민족을 이루어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순종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믿으려고 합니다만, 신앙인들은 보이는 세계 너머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고, 바라는 것들이 실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고, 그 믿음의 눈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며 살아가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

'국부론'을 쓴 영국의 아담 스미스는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기 때문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노력해도, 결과적으로는 사회적인 이익이 되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공동체 전체의 경제적 후생을 증진시킨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창조주 하나님의 손이고 하나님의 손은 세상의 경제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질서를 관장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흘러가도록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사무엘상 2장에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고 하나님이 인생을 주관하신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생만사가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고 통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도 있지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소한 일 하나라도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음의 눈으로 보며 풍파가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많은 이들이 세상의 보이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지만, 저희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며 소망 가운데 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인생과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영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성령께서 저희를 이끌어주시옵소서. 눈으로 보는 것만 믿으며 우물 안에서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진리의 길을 발견하도록 은총내려 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6/10 [11:40]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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