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이 필요한 사람들
[다락방 기도] 출애굽기 20:8-11
 
김영철

여기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 한국책들이 꽤 많아졌는데요, 지난 주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독일의 울리히 슈나벨이 쓴 '휴식'이라는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너무 일에 매여있다는 생각에 평소에 일에서 해방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일년에 한번 여름철에 휴가를 간다고 멀리 여행도 떠나곤 했습니다만, 다녀오면 진정한 휴식을 즐겼는지 다니느라고 힘만 들었는지 늘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슈나벨의 책을 접하면서 왜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느낌을 항상 가졌는지, 왜 휴식을 누리기가 그토록 힘들었는지 그 이유가 보다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는 일의 속도를 중요시하고 일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 허겁지겁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안식이 필요한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욕심이 많기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벌인 일 때문에 분주하고 피곤합니다. 슈나벨은 휴식을 찾겠다고 애쓰기보다 그냥 멈추어 서서 휴식에 시간을 투입하면서 우리에게 휴식을 달라고 고백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그냥 멈추어 서서 느긋하게 쉴 때 비로소 휴식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게으름을 피우면서 나만의 날을 갖거나 하루 1시간이나 10분도 좋으니 일상에 휴식시간을 끼워 넣는 습관을 가지라고 충고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며 적당하게 일하고 좀 더 느긋하게 인생을 보냄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휴식은 단순히 고단한 육체를 내려놓고 톱니바퀴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는 시간 속에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시간에 허덕이면 자기자신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므로, 자기자신과의 대화를 회복하고 무엇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인지 알기 위해서 자주 한가로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많이 누리겠다고 물질문명에 빠져버리거나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에 끌려다닐 게 아니라 덜 누리면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살아갈 때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휴식

창세기 1장에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흑암과 혼돈으로부터 시작하여 빛을 주시고, 물을 주시고, 해와 달과 별을 주시고, 생물들을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2장 1절은 "천지 만물이 다 이루니라"고 말씀했는데, 이것은 온 우주와 일월성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잘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셨는데요, 인간은 낮에 일을 하고 밤에 잠을 잘 때 건강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엿새동안 모든 창조의 과정을 마치신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말씀했는데요, 일곱째 날은 기뻐하는 날이고 피조물들과 교제하는 날이고 세상을 축복하는 날입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기뻐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이고 자연과 교제하는 날이며 이웃을 사랑하며 인간성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휴식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셨고, 그 휴식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담아놓으셨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옳게 이해하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건강한 삶을 위해서 인간이 스스로 휴식의 시간을 찾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휴식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지만 창조를 완성하신 날에 모든 우주 만물이 안식하도록 하나님이 안식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로 삼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안식 속으로 인간의 휴식을 안내하신 셈인데요, 인간이 휴식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탐욕과 죄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주인도 쉬어야 하고 일꾼도 쉬어야 하고 동물도 쉬어야 하고 땅도 쉬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창조의 완성과 기쁨이 안식일의 목적이라고 나오고 출애굽기에서는 사람의 쉼과 나눔이 안식일의 목적이라고 나옵니다. 따라서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종합해 보면 안식일의 목적은 창조의 완성에 대한 기쁨과 인간성의 회복, 2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의미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는데, 오늘 본문은 그 중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제4계명에 관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편안하게 쉬는 날을 의미하는데,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가 이 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라고 명령했습니다. 출애굽기 23장에는 "일곱째 날에는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고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는 말씀이 있는데요, 종들도 짐승들도 쉬게 하셨습니다. 일도 필요할 때 중단할 수 있어야 자유인이고, 중단하지 못하고 계속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 또는 자기욕망의 노에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쉰다는 것은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니까 안식일 계명이야 말로 자유와 평안을 가져다 주는 복된 계명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인간은 행복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을 위해 안식일을 구별할 때 그날이 복된 날이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반증하고 있는 것은 타락한 인간은 행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동안 안식일의 쉼이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안식을 기억하면서 일의 노예가 되지 말고 욕심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 아담의 후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쉼도 없이 일했습니다. 창세기 6장에 가면 인간이 욕망을 쫓아가다가 온갖 죄악과 성적 타락에 빠지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해야 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창세기 11장에 가면 인간이 자기이름을 내고 하나님처럼 높아지겠다고 바벨탑을 쌓아올리면서까지 쉴 줄 모르고 노동했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인간 스스로의 욕망성취를 위한 노동과 정욕을 그치라는 의미와 남을 지배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그치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인간이 이런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번민과 염려가 많아지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은 모든 창조를 마친 후 엿새 동안의 창조를 기쁜 마음으로 돌이켜보며 창조사역의 완성을 즐거워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안식하게 하신 것은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제약하는 바쁜 생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매일 생업을 위해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안식의 기쁨에 동참하도록 명령하셨는데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면서 새 힘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우리에게 복주시기 위함이고, 우리자신의 욕망을 다스려 쉬게 하시려는 것이고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바쁜 일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것을 막아줄 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주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가지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쉬는 것은 하나님이 우주만물과 모든 생명의 창조자라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창조주의 뜻을 묵상하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인간에게 쉼을 주시는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과 오늘날의 성도들 중에도 형식적으로 계명을 지키며 부담을 가지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구약시대 때부터 지켜오던 안식일에 대한 규례들이 점점 많이 만들어지면서, 신약시대에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 침대를 옮기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안식일에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밀이삭을 잘라먹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자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제자들의 행동을 보고 안식일을 범했다고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남의 밭에 들어가서 밀이삭을 잘라먹은 것을 비난한 것이 아니고 밀이삭을 잘랐으니 안식일에 일을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길가에 저절로 자란 밀이삭을 잘라먹었을 것인데, 당시에 배고픈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일이었습니다. 신명기 23장에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는 말씀도 있지요? 율법의 본래 정신은 베고픈 사람들을 위해서 추수할 때 밭의 네 귀퉁이를 남겨두고 밭에 떨어진 이삭은 거두지 말라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쉬지 못하는 사람을 쉬게 하는 것과 배고픈 사람을 먹여서 쉬게 만드는 것이 안식일의 본래 정신입니다. 그들의 비난을 들으신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마가복음 3장에는 안식일에 손마른 자가 회당에 있을 때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기 위해 예수님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를 회중가운데 세우시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그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이 회복과 구원의 날임을 보여주시며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임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구약에는 쉬는 절기로 안식일뿐만 아니라, 레위기 25장에 안식년과 희년이 나오는데요, 안식일은 매 7일이고, 안식년은 7년째이고, 희년은 7년이 일곱번 지나 매 50년입니다. 안식년의 의미를 살펴보면 안식일과 유사한데요, "제 칠년에는 땅으로 쉬게 하여 안식하게 할찌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땅을 쉬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안식을 따라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연도 쉼이 필요한데, 땅을 쉬게 하면 소출이 없으므로 무엇을 먹겠는가 염려하겠지만, 하나님이 그 전에 풍작을 주어서 안식년에 쉬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법칙대로 땅을 안식하게 하는 것이 나중에 더 큰 효과가 나타나지만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유해한 화학비료를 남용해서 이제 그것이 사람을 공격하고 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또한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땅을 영원히 팔지도 사지도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었고, 희년에는 땅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시적으로 팔았더라도 자신이나 친척이 언제든지 그것을 다시 살 수 있었고, 사지 못한다 하더라도 50년이 되면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희년에는 노예도 해방하였으니 사회정의를 회복하게 하시는 뜻과 자신을 위한 욕심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희년을 죄에서 구속하는 것의 비유로 사용하는데요, 죄로 마귀에게 팔렸던 사람들을 예수님이 죄 값을 주고 다시 사서 우리의 구속자가 되신 의미를 암시합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하게 된 후에 마침내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동산에서 풍족하게 영생을 누릴 수 있었던 인간이 이제 생계를 위하여 죽도록 일을 하며 고생해야 생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다스림 하에 있던 피조세계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함께 저주를 받게 되어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에덴의 원어적 의미는 기쁨인데요, 창조시 기쁨의 삶을 누렸던 인간이 타락 이후에 에덴에서 추방되어 슬픔과 고통의 세상에서 기쁨을 잃어버리고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바벨탑을 쌓았고, 성과 대를 높이 쌓아 하나님과 같이 되고 이름을 내기를 원했기 때문에 안식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청지기적 소명을 거부해버린 인간은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자연을 정복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어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의 재앙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고갈될 지 모르는 자연의 자원을 남보다 하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서로 빼앗고 싸우고 속이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니라, 서로 남을 밟고 올라서서 자기의 창고를 채우려는 정글의 법칙이 새로운 삶의 원리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건강한 자나 병든 자나, 성공한 자나 실패한 자나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궁궐에서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옷 입고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가 무엇이 유익한고"하고 인생의 고달픔을 고백했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안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안식을 주시겠다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 매일 반복되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겉모양은 멀쩡해도 긴장, 초조, 피로 등의 정신적인 압박과 질병에 시달립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잠시일 뿐, 진정한 안식이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다시 쌓이게 됩니다.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안식이 필요한 사람들인데도 안식을 얻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휴가가 없고, 휴일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휴가 때 휴양지에서 편히 쉬고, 휴일에 아이들 데리고 공원에 가는 것도 진정한 안식이 되지 못해 스트레스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을 믿고 성령께 간구하면 성령께서 오셔서 능히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자본이나 제도의 노예가 아니라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때로는 희생과 손해 보는 삶이 필요한데요, 성령께서 그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하루종일 힘든 일을 해서 피곤한 몸이라 해도 불안한 마음이 있다 해도 성령이 능력을 주시면 기쁨과 안식을 누리며 온몸이 가벼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조용히 기도하면서 우리의 무거운 짐들을 모두 주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며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거룩한 주님의 날에 안식을 주시는 주님 앞에 나오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마음의 모든 불안과 염려가 떠나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으로 채워지게 하시옵소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안식을 찾겠다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안식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한국에서 메르스 질병 때문에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기도하며 안식을 구하게 이끌어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7/01 [00:16]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선거 동안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글을 게시하고자 할 경우에는 '실명인증' 후 게시물을 등록하셔야 합니다. 실명확인이 되지 않은 선거관련 지지 혹은 반대 게시물은 선관위의 요청 또는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본 실명확인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2017.04.17~2017.05.08)에만 제공됩니다.
일반 의견은 실명 인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