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감과 우울함 극복
[다락방 기도] 전도서 12:9-14
 
김영철

김성수 구약학교수가 쓴 '전도서로 우울증 극복하기'라는 논문을 읽어보았는데요, 그는 전도서가 우울한 인생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준다고 말했습니다. 김교수는 그의 글에서 오늘날 우울함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많은데, 이 우울함의 증상들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되어왔다면서 이런 의미의 얘기들도 했습니다. "우울함은 삶이 의미가 없음을 나타내는 허무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전도서는 하나님 없이는 우울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성경이 구체적인 삶의 지혜들을 제시해주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믿는다는 이들 중에도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아 우울함을 겪는 이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전도서는 헛되고 우울한 삶의 실존을 수긍하면서, 인생의 허무를 부인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수고와 야망의 헛됨을 비판한다. 그리고 전도서는 무의미하게 보이는 삶을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의 관점에서 보면서 어떻게 의미있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허무감을 영원의 관점에서 보게 하며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고 영원을 사모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현실을 긍정하게 한다. 전도서는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이나 환경을 하나님이 정하신 그대로 순종하며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바꿀 수도 없고 완전히 이해하거나 예상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룰 수 없는 야망들과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고생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현재의 삶을 최대한 즐기라고 충고한다. 하나님이 주신 삶을 누리는 길의 하나는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며 선을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믿는 자들은 선을 행하면서 우울증을 극복하며 인생을 즐길 수 있다."

헛되고 우울한 삶

본문이 담긴 전도서에는 그 첫머리에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에 근거하여 많은 분들이 전도서의 저자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전도자'는 단어는 '회중을 소집하다, 회합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카할'에서 나왔고, '회중에게 말하는 설교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도서는 다윗왕의 아들인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설교자로서 이스라엘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책은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영적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참 지혜를 가르치는 말씀이라고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의 말년, 즉 B.C. 10세기에 기록되었으리라고 추측하는데요, 그 당시에는 솔로몬 통치초기의 번영이 쇠퇴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이 두 왕국의 분열로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아가서는 솔로몬의 청년기에, 잠언은 중년기에, 전도서는 노년기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솔로몬은 말년에 온유와 겸손으로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솔로몬 말년의 저서들은 그가 자기행위의 악함을 절실히 깨달으면서 젊은이들이 자기처럼 과오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치는 일에 정성을 기울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의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은 후에 그의 소원은 자신이 겪은 아픈 경험을 백성들이 하지않도록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서는 솔로몬 자신의 어리석음과 육신의 정욕과 우상숭배로 인해 인생의 황금기를 낭비해 버린 것에 대한 후회를 포함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수고란 덧없다고 외치며 인생에 대한 절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냅니다. 구조적 부조리 가운데 우울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현대인들에게도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찾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가치있는 삶

전도서의 앞쪽을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를 추구하도록 되어 있는 인간적 감성에 따라 전도자가 먼저 자신의 육신을 즐겁게 하는 방법들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전도자가 맹목적으로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뜻대로 자기 뜻을 성취하고 실현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일에서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고자 전도자는 사업을 크게 일으키기도 했는데 자신을 위해 집을 지으며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전도자는 인간의 쾌락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혹시 술이 즐거움을 줄까 하여 술에 취해보기도 했고 시험삼아 모든 것을 다 해보았습니다. 노예들을 사들였고, 지금까지 예루살렘에 있던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가축들을 소유해보았고, 여러 왕들로부터 금과 은을 거둬들였으며 수많은 아내와 첩들을 거느리고 살아보았습니다. 솔로몬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그렇게도 꿈꾸는 지혜와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려본 사람이었습니다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결론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였습니다. 내 손으로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과 수고한 것을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아무 쓸모가 없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지혜나 권력, 힘들여 얻은 재산과 학식도 그리고 젊은 날의 희망과 건강도 모두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더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너의 젊음이 있을 때 너의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며 살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주어진 시간과 기회와 지혜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사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오늘 본문에서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며 사는 것이며 그것이 참 지혜자의 삶이라고 충고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책임감이 없이 제 뜻대로 살고 하고픈 짓을 다 하며 살다 죽음의 길을 간다면, 죽어 흙으로 돌아간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상황 가운데서 이 세상을 사는 인생들의 삶이 헛되다고 하는 말은 본문 바로 앞에도 나오고 전도서에서 30번 이상 나옵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 교제가 없는 삶,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헛되다는 경험적 사실을 되풀이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의 인간의 삶을 살펴본 결과 인생의 의미를 찾을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선언했습니다. 전도자는 자기가 큰 업적을 이루어 놓기 위해 온갖 재주를 동원해 수고한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인생자체에 대하여 실망을 하게 되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인생의 참 즐거움을 줄만한 것이 있는가, 삶의 참 의미를 주는 것이 있는가를 실제적으로 몸으로 부딪히면서 시험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전도자는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마음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움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모든 일이 '허무'였기에 인생에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니고서는 권세나 소유, 명예나 쾌락 등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이 인생 가운데 만들어 놓으신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많았던 솔로몬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인간의 이성으로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는 얘기를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전도서는 허무주의나 쾌락주의를 가르치는 얘기가 아니라 타락한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 가운데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지침서입니다. 인생이 허무하다거나 삶이 무의미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의미있는 삶, 유익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면서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므로 현재의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며 살라는 안내서입니다.

전도서의 결론부분인 본문 9절과 10절에서 전도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지혜자로서 백성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으며 지혜의 보물창고인 잠언을 찾아내서 연구하고 백성들이 일목요연하게 찾아볼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전도자는 자신의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또한 그 안에서 즐겁게 살아가려고 했고,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기쁨을 주고 참되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특히 전도자는 진리의 말씀들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백성들이 읽고 옳은 길을 찾아가도록 인도하려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서는 전도자가 백성들에 대하여 가졌던 마음은 진정으로 양을 사랑하는 목자의 심정이었다고 밝힙니다. 목자가 가축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는 것처럼 전도자는 백성들이 잘못된 인생 길을 걸어가려고 할 때에 그들에게 자극을 주어서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했습니다. 전도자는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를 가지고 백성들을 인도하려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심령을 찔러 아프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다음 12절에서 전도자는 '내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이제까지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하여 진리를 찾고 책을 읽었으나 끝없는 길을 가는 것처럼 피곤하였다고 고백합니다. 13절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14절에서는 인생이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행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받게 됨을 상기시켰습니다. 전도서를 처음 읽을 때에는 전도자가 허무주의자인지 쾌락주의자인지 약간의 혼란이 있습니다만, 본문의 결론에 들어가면서 전도자의 속마음을 환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왕이 1천번제를 드린 후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응답합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은 왕이 되었을 때, 재물이나 명예와 권세를 구하지도 않고, 오직 백성을 잘 다스리는 지혜를 하나님 앞에 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고, 그래서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 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았던 것들까지 많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상을 보는 것은 사람의 지혜입니다만, 본질을 보고 현상 속에 감추어져 있는 뿌리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인간적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각에서 인생을 보는 지혜를 얻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 안에 있는 인간적 지혜를 통해 세상과 사람과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해 아래에 존재하는 사람의 이성이나 지성으로는 해 위에 계시면서, 해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전도자는 사람들이 세속적인 목표나 동기를 가지고 인간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추구하지만 거기서 진정한 즐거움과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설 날을 염두에 두고 거룩한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보잘 것 없는 미미한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전도자는 사람의 지혜를 논할 때 초상집 얘기를 하는데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그 슬픔으로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지만 우매자의 마음은 잔칫집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전도서의 중요한 주제는 죽음인데요,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자신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만, 분명하게 아는 한 가지 사실은 죽음의 그림자가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시작과 끝은 반드시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삶에 시작이 있었기에 우리의 삶의 마지막이 있는 것은 자연적인 원리입니다. 인간이 죽는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를 욕하는 것도,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타락한 후에 죽음의 운명은 인간 안에 결정되어 있습니다. 능력과 지혜로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 어떻게 가치있게 살 것이냐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도서는 가치있는 삶을 사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 목적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 손 안에 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죽음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죽음을 이기신 분을 바라보며 좇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죽음이 오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죽음을 준비함이고, 죽음을 준비함은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서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말씀했지요? 우리의 우울함을 극복하고 마침내 죽음을 넘어서는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새로운 속사람을 가지고 하나님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인생

오늘날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끼어들고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경제성장을 외치며 권력자들과 가진 자들을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이념적 갈등, 집단이기주의, 세대 간과 계층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사회이면서 물질만능과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개인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빨리 출세하려고 후안무치하게도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으니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외면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이 아름답다하고 다스리시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부조리도 많고 악인들이 더 출세를 하고 잘사는 것입니까? 약육강식의 이 세상에서는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려도 위로하는 자가 없고, 학대하는 자에게는 권세가 주어지고 있으니, 이미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보다 더 행복하다고 전도자가 선언했지요? 학대와 착취를 당하는 자들이 여기저기에서 하소연하고 있지만, 힘을 가진 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포악한 사람이 더 많은 권세를 차지하는 것을 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보이지 않고 불의와 악이 승리하고 있는데, 그래서 전도자도 이런 부조리 때문에 인생이 헛되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리고 전도서 8장에서 "죄인이 백번 악을 행하고도 오래오래 잘 살지만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두려움으로 사는 사람이 잘 될 것이고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라고 단언합니다. 인생의 아픔도 슬픔도 헛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바가 있으니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에게 초점을 맞추며 지금 여기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인생을 귀하게 여기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저희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슬퍼하거나 우울해 하거나 허무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만, 우리를 아름답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인간이 주인으로 행세하던 자리에 하나님이 주인이 되게 인도해주시옵소서. 오늘날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권력이나 재력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에게 회개하며 돌아오도록 은총 베풀어주시옵소서.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를 받지 못하고, 천대를 당하고 있는데, 주님이 그들을 위로해주시고 삶의 희망과 용기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7/09 [11:06]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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