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
[다락방 기도] 데살로니가전서 5:12-18
 
김영철

요즈음 미국의 경제는 비교적으로 나아 보입니다만, 그리스와 브릭스 신흥경제 5개국 등 세계경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국제채권단은 그리스정부에 경제개혁안을 제출하라고 최후통첩을 했고,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다시 줄 것인지 12일,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었습니다. 주채권국인 독일의 총리는 "토론할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며 중장기적으로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 계획을 내놓으라고 그리스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은행들은 지난달에 은행영업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는데도 현금부족이 심각한 상태라고 하는데요,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안이 거부되면, 은행과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할 형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적 경제학자들이 그리스와 세계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독일총리에게 공개편지를 보내, 그리스의 부채를 줄여주고 상환기간도 연기시켜줄 것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사태 뿐만 아니라 중국의 증시도 최근에 폭락하여 그 충격이 세계시장으로 확산되면서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전문가들은 그리스 충격보다 중국의 증시폭락이 세계경제에 더 큰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고, 그래서 국제통화기금은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을 내년 상반기로 늦출 것을 권고했습니다. 중국의 증시가 무너지면 중국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져 세계경제가 요동치게 되고,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달러강세 충격으로 신흥국의 자금이탈이 가속화하면서 세계경제에 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어제 뉴스에 의하면 채권단의 요구에 가깝게 그리스정부가 강력한 개혁안을 제출했다고 하니까 그리스가 구제될 희망이 보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국가가 경제성장에 혈안이 되어있고, 경제만 성장하면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끝없이 팽창해가는 이 자본주의 경제가 오히려 세상에 불안감을 높이고 있고, 인간의 행복을 앗아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적인 가치관에 따라 물질적인 성취로 기쁨을 얻고자 인간의 탐욕을 쫓아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여 행복을 누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기쁨은 참 기쁨이 없고, 기쁨이 곧 사라져버리니까, 세상을 쫓아가면 허탈감만 남고 절망에 빠질 뿐이고, 세상의 물은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를 뿐임을 결국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목마름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우물가에 물 길러 나왔던 사마리아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는 얘기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기쁨을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헤매다 지친 여인을 예수님이 만나주셨고 예수님은 그녀에게 참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기쁨에 목이 말라 매일 물 길러 왔었지만, 이제 예수님으로부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었습니다. 세상에서 얻지 못한 삶의 기쁨을 발견하자 물동이를 던져버리고 그 기쁨의 소식을 동네 여인들과 나누려고 달려갑니다. 진실로 기쁨은 환경이나 인간의 능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요, 선물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후, 그 은혜에 감격하여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이 기쁨과 행복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기쁘게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인생을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고, 우리가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오늘 본문에도 "항상 기뻐하라"는 사도바울의 말씀이 나오는데요, 항상 기뻐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행복입니다. 사도바울은 좋은 환경에서 출발했던 바리새인이고,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자였고, 높은 수준의 학문을 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 당시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행복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만, 다메색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그에게는 참 기쁨이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죄인의 괴수였지만, 다메색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그 은혜를 깨닫게 되자 삶이 변화되었고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의 소식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던 과정에서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실라와 함께 빌립보에서 처음 복음을 전했을 때, 이상한 풍속을 전한다고 관원들에게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힌 채, 발에 착고도 채워졌습니다만, 밤중에 바울은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옥고를 치르면서도 사도바울이 기뻐할 수 있었고,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항상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 연유합니다. 기쁨은 자기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깨닫고 믿을 때, 주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삶의 중심에 계시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에 풍파가 없도록 하나님이 축복해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풍파 가운데서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자는 사도바울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선으로 인도하심을 알기 때문에 기쁨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이 나오는데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형의 말씀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인생에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닥치는데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기쁘게 살기를 원합니다만, 이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에서 항상 기뻐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는 산 너머 산이 있고, 한 문제 해결되었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주님은 주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니까, 기쁨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상징이요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기쁨이 충만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로마병정들에게 붙잡히시기 전날 밤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었는데요, 자기를 배반할 가룟 유다도 거기에 있었고, 밤이 지나면 예수님이 체포되고 십자가를 지게 되는 일들을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셨는데, 그 길은 붙잡혀서 십자가로 끌려갈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에 예수님이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갔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예수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구원하고 남을 섬김으로서 기쁨을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옛날보다 부유해졌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더 가난해진 것 같고, 많은 분들이 기쁨을 모르고 살아가는 듯이 보입니다. 여유도 없이 쫓기는 것 같고 염려로 가득하고, 갈등과 분쟁으로 화가 나 있고 불만이 가득한 듯이 보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치열한 경쟁 가운데서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내가 남에게 이겨야 행복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큰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기쁨이 많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은행 모게지를 얻어 집을 사서 입주할 때, 다운 페이먼트를 하고 새 자동차를 뽑을 때, 쇼핑몰에 가서 갖고 싶었던 물건들을 사서 쇼핑백에 담아 올 때, 소유가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유의 기쁨은 하루 동안 머물기도 하고, 일주일 가기도 하고 몇달동안 지속되기도 합니다만, 조만간 사라지는 일시적 기쁨일 뿐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환경과 지배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과 생명의 가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온천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말씀하셨지요? 사도바울도 빌립보서 3장에서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발견했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자랑과 물질적 소유를 모두 배설물처럼 버렸다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은 영원한 가치를 얻었기에 욕심을 버리고 잠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어 기쁨을 누린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 사도바울은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졌다"고 기뻐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백한 기쁨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구해 주셨다는 은혜의 깨달음에 근거합니다. 세상에서 얻는 기쁨은 곧 허무와 절망으로 바뀌고 말지만, 주님으로부터 사죄의 은혜를 입고 영생을 얻은 기쁨은 영원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빼내어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세 번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만 주셨는데요, 병이 있는 그 상태 그대로가 은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잣대로 판단하시는데 인간은 현재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틀에 매여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데도 인간은 은혜를 깨닫지 못할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마침내 사도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고, 자신이 교만하여 자고하지 않게 병을 그대로 두시는 것을 알고 그 은혜를 기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깨닫고 사는 사람들은 은혜를 모르고 사는 자들이 찾지 못하는 영원한 기쁨을 발견하고 그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참회록을 쓴 성 어거스틴은 자신의 생각과 언행 모두 죄 아닌 게 없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환경은 은혜 아닌 게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갑니다만, 그 은혜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기쁨이 없고, 은혜를 깨닫고 사는 사람들은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한결같이 사랑을 베푸는데도, 그 사랑을 깨닫는 자녀만이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느끼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크리스챤은 그 믿음에 따라 감사와 기쁨과 사랑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의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기쁨과 연결시키고 있는데요, 사랑할 때 기쁨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계명을 따라 서로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현대인들은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자기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이익만 찾는 이기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많이 받을 때 기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임마누엘 칸트는 사랑을 줄 때 행복해진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했는데요, 그 그리스도의 마음은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의 잘못을 보고 비판하면 사랑할 수 없지만, 남의 잘못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덮어주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기쁨이 솟아날 것입니다. 나를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용서와 사랑의 행위는 나도 죄인이고 약한 인간임을 고백하는 것이고, 그 동료의식이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그다음에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는 말씀도 있는데요, 남을 사랑할 때 그 사람에게 기쁨을 줄 뿐만아니라 자신에게도 기쁨이 솟아난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욕심을 갖게 되고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만, 신앙인들은 보이지않는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며 사랑과 경건한 삶에 마음을 쏟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보이는 현상에 나타나지 않는 본질을 보며 하나님나라와 그 뜻을 위해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어려운 환경을 종종 만나는데,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은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때, 눈에 보이는 현상에 두려움을 느끼고 불안해 하거나 절망하게 됩니다. 현재 당하고 있는 현상만을 볼 때에는 절망하고 낙담하기 쉽습니다만,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현실을 극복하는 지혜와 힘을 얻게 됩니다. 믿음의 눈이 있으면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현실의 문제들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심을 봅니다. 세상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믿으려고 합니다만, 신앙인은 보이는 세계 너머로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계를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인 기쁨

하나님은 죄악의 세상에 구원의 기쁜소식을 주셨고, 현재도 이 세상에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세상의 종말에 하나님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눈먼자가 눈을 뜨고, 귀먼자가 귀를 열고, 앉은뱅이가 걷고, 죽은 자가 다시 살 것입니다. 믿는 자는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농부처럼 기쁨을 안고 그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믿는 자는 내세 뿐만아니라 현세에서도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 가족과 이웃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는 나에게 무엇인가 유익이 될 때 기쁨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성령의 열매인 기쁨은 거꾸로 내 것을 나누어 주고, 내가 양보하여 남이 이익을 얻을 때 생겨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남을 배려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때 기쁨이 있다는 뜻입니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남을 위해 쓸 때 더 기쁘고, 혼자 즐기기보다 남에게 많이 베풀수록 기쁨이 커질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기쁨을 누리는데, 만약 삶의 기쁨이 없다면, 믿음의 눈이 없어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세계경제에 위기가 닥칠 때에도,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불안이나 두려움 대신에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용서와 사랑을 베풀고, 쉬지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의 선물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참 기쁨이 없는 이 세상에서 우울하게 살아가던 저희들에게 주님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인도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들, 그리고 멀리서 예배드릴 성도들에게도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서로 사랑하며 기쁨의 삶을 살아가게 은총내려 주시옵소서. 이 세상에서 기쁨을 찾지 못해 우울함에 빠져있는 사람들, 그리고 빈곤이나 전쟁과 기아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기쁨의 복음을 듣고 믿게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7/19 [22:40]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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