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장혜숙
 “우째 하필 일본이고?”

새 직장 때문에 일본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는 며느리 말에 연로하신 경주어머니는 걱정부터 하셨다. 외국에서 살면서 뭔가 색다른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지 않느냐며 친구들은 이 국제 이사를 격려해 주었고, 아는 사람 몇은 지진이나 비싼 물가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편견을 염려했다. 아! 또 하나, “월급은 많이 준데?” 이 질문도 좀 받았지만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서 대답은 각자의 상상에 맡겼다. 

 우리는 1988년 결혼 이후 직장 때문에 줄곧 창원에서만 살았다. 객지였지만 친구도 사귀고 좋은 이웃들을 만나 정 붙이며 살았는데 imf가 터졌다. 하루아침에 살 길이 없어진 이웃들을 보면서 사는 게 겁이 났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도 부도가 났고, 다른 회사에 인수되면서 직원들은 말 그대로 잘려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죄책감과 불안, 늘어난 업무에 눌려 멀리는커녕 자기 발끝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그걸 가늠하며 살기도 벅찼다.  

 커다란 체크무늬 이민가방 속에 김치랑 자장에다가 커튼용 천까지 챙겨 넣고 나리타공항에 내린 것은 2002년 2월, 아직 추운 겨울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3개월 먼저 일본에 와서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조금 어두운 공항통로를 사람들과 섞여 걷다보니 입국심사대가 보였다. 사증이 있어도 입국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괜한 긴장감에 손에서 땀이 났다. 

 입국심사원은 내 여권과 출입국카드를 꼼꼼히 살피더니 고개는 숙인 채 재빠른 곁눈질로  여권 속 사진과 나를 대조했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입국도장을 찍었다.  동작이 크지 않은 그들만의 몸짓,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 그림처럼 보이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들이 머릿속을 헤매다 내 기관지를 건드렸나 보다. 세관원이 내 가방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자 이상하게도 자꾸 헛기침이 나왔다. 

 출국장 입구에서 남편이 날 찾는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뭉클해졌다. 인천공항까지 배웅 나오신 부모님과 친구들에게도 안 보이려고 몇 번이나 슬쩍 훔쳐 냈던 눈물이 다시 나려고 했다. 그래서 억지로 하품을 한번 했다. 남편은 날 발견하고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마누라한테 칭찬받을 만한 깨끗한 집도 구해 놨겠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게 된 남편은 밝아 보였다.  ‘우리 둘이서 잘 해 낼 수 있을 거야. 유전자에 그렇게 새겨져 있거든!’ 혼자서 되새김질 하듯 다짐하며 남편에게 다가갔다. 배에 힘이 들어가는 게 용기가 났다.


기사입력: 2008/04/12 [18:22]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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