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의 사랑... 후회 한 적 없어요
- 라이브 카페 '즐거운 집'의 즐거운 음악인 이종두님
 
오미영
▲ 라이브 카페 '즐거운 집' 이종두 사장     ©남양주뉴스
 
첫사랑을 지금껏 사랑하면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행복한 사람일 게다. 금곡동에서 7년 째 라이브 카페 <즐거운 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 종두 사장님이 그런 분이다.

165번 버스의 옛 종점이었던 금곡동 육교 옆 오래 된 상가 2층.
몇 년 전, 밤이면 금곡동 술집 순례를 일과처럼 하고 있던 우리 부부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조촐한 무대에서 연주되는 전자기타 소리가 심상치 않아 서빙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사장님의 부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께 물어보았었다.
그 분이 사장님이시란다.
외부에서 초대한 기타리스트인줄 알았는데 쉰을 훌쩍 넘어 보이는 분의 기타연주는 처음 듣는 내게도 어딘가 깊이가 달랐다.
6.25전쟁 직전 서울에서 태어난 이종두님은 중3 때, 당시 대학에 다니던 형의 기타소리를 들으며 기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막내 동생이 자기 기타에 관심이 있는걸 알게 된 형은 밖에 나갈 때면 기타줄을 다 풀어놓고 나갔다.
형이 외출할 때만 기다렸던 막내는 줄이 맞지 않는 기타를 둥당거리며 혼자 소리를 내보려 애를 쓰곤 했는데 형이 가끔 기타줄을 풀어놓고 나가는 걸 잊은 날이 있었다.

"그야말로 내 세상이었지요. 집에선 기타를 들고 다니지도 못하게 반대하셨어요.
나는 가족들이 어디 좋은데 갈 때도 따라가지 않고 집에 혼자 남게 되기를 기다렸다가 기타치는 일에 몰두했어요.
아무리 말려도 안 되는, 하라고 시켜도 그렇게 할 수없는 이상한 팔자였지요.
악보도 없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이 오직 까만 lp판이 교과서이고 스승이었어요.
그 검은 판이 하얗게 될 때 까지 음악을 듣고 그대로 연주해보려 애썼지요. "

"기타보다 먼저 만난 음악이 드럼이었어요.
지금처럼 제대로 된 드럼이 물론 아니지요. 창호지를 여러 겹 발라 팽팽하게 해놓고
놋쇠 밥주발 뚜껑에 줄을 묶어 칫솔로 치면 영낙없는 드럼소리가 났어요.
식구들 없을 때 그걸로 둥당거리며 혼자 놀았는데 한 1년 그러다보니 리듬도 없이 너무 단순한 박자를 반복하기만 했어요.
그럴 무렵 형의 기타를 만나게 된 거지요.
형은 내게 도레미 한 번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세뱃돈 받는 날이 lp판을 사는 날이었어요. "
 
▲ 매니아들 사이에서 숨은 실력자로 알려진 음악인 이종두님의 기타 연주 장면     © 남양주뉴스
"하나 후회되는 일이 있는데 군대 가지 않겠다고 집을 나와 버린 일이에요.
군대 가게 되면 음악을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어요.
도봉구에 삼립빵 직매점 2층 방이 비어있는걸 알고 거기서 친구 넷하고 돈을 모아 월세를 내며 가출생활을 시작했지요. 밀가루, 국수,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면서 가끔 아래층에서 빵을 얻어먹곤 했어요. 밤낮 없이 음악만 했어요. 그 때 고생 무지하게 했죠.
그 때 친구들 중 지금까지 음악하는 사람은 저 혼자예요. "

"여름철 해변가는 우리 같은 젊은이들의 자연스런 공연장 이였어요.
마포의 드럼팀 20여명, 서대문의 기타팀, 우리들이 어울려 연습하고 연주하면 몰려든 구경꾼들이 박수치고 춤추고 노래하고...
당시 유행하던 트위스트는 전쟁 후 힘겹게 살아가던 서민들에게 해방구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

"돌아보면 미8군에서 활동했던 10여년의 세월이 내 음악을 갈고 닦을 수 있었던 안정적인 시절이었지요. 용산-문산-동두천-대구 등 전국에 미군부대를 돌며 연주했어요.
노래방이 생기면서 한국인들 중 가수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노래 잘하고 대중적으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미국인들하고는 다른 점이 많아요.
내가 만난 미국인들은 주로 군인이었는데 군인으로보다는 음악인에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카페에 앉아있는 자세부터 한국인과는 달라요. 모두 무대를 향해 앉아 음악소리에 귀를 모으지요. 그날의 연주 질에 따라 반응이 분명하게 달라요. 엄청난 환호와 그 반대의 경우 쏟아지는 야유, 물건 던지기 등... 연주자는 매 순간 긴장하며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죠. 노력하지 않는 연주자는 계약 취소되고 쫒겨나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대신 훌륭한 연주에 쏟아지는 박수와 성원은 엄청났지요. 나는 '한 나라의 국력은 문화' 라고 봐요. 미8군에서의 내 경험이지요. 물론 일부 소수의 아닌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요. "

금곡동에 자리 잡은 지 7년 째
 
'즐거운 집 마니아'들이 형성되면서 처음의 어려움을 얼추 지나온 것 같다고 사장님은 자평하신다. 주로 70/80세대들 덕분이란다.
사람들 발길이 쉽게 닿기 어려운 곳인데도 이곳의 조용하고 추억어린 분위기와 수준 높은 음악이 나이 지긋한 음악 애호가들을 저절로 찾아오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논현동에서 호평동으로 이사 온 한 음악 애호가에 눈에 띈 <즐거운 집>은 요즘 강남과 종로의 실버 애호가들의 모임 장소이며 연습장이고 공연장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 '마당발' 애호가께서 자발적으로 서울의 아마추어 음악인들에게 이곳을 소개하고 연결시켜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열게 되면서 부터이다.
'즐모'(즐거운 집 모임)라는 이 분들은 직업(전직 혹은 현직)도 다양하면서 트럼펫, 색소폰,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노래꾼들인데, 이 모임이 있는 날 우연히 <즐거운 집>에 들렀던 나는 1년 치 스트레스를 풀고도 남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던 추억이 있다.
 
손수 만드신 맛난 안주와 요리를 직접 서비스 하는 부인의 손맛과 조용한 미소는 이곳의 숨겨진 매력이다. 아무리 바빠도 다른 일꾼을 쓰지 않고 언제나 두 분이 가족처럼 손님을 맞으신다.

룸으로 꾸며진 방 벽을 둘러 오래된 서책을 꽂아 놓고 그 주변에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
음악을 자식삼아 친구삼아 연인으로 동반하고 있는 집,
무대 한켠에 걸려있는 사진 속 '지미 헨드릭스'처럼 일흔이 넘을 때 까지 손가락 다치는 일 없이 기타를 치며 기타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은 참기타맨이 있는 집...

“음악을 통해 내가 행복 했듯이 다른 분들도 여기서 나와 같은 행복을 느끼시면 그게 내 보람이죠”

음악인 이종두님의 마지막 인사말에 봄밤의 꽃나무처럼 내 마음에 환한 꽃잎이 벙그러진다. 

기사입력: 2008/04/13 [18:14]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마음속 즐거운집 이연한 08/04/17 [08:55] 수정 삭제
  잔잔하면서도 삶의 깊이와 여유와 정성이 가득한곳
우린 늘 이런 즐거운집에서 살기를 꿈꾼다.
봄의 향기를 타고 오미영선생님의 가슴속에 더 깊이 살아 숨쉬는 뜨거운 삶의 애정이 부럽습니다. 늘 우리곁에서 "즐겁게 살아 움직이는 집"처럼 늘 그렇게 있음을 확인합니다.

어스룩한 밤의 그 집의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요 ^^
음악으로 위로 받을 수 있는 보금자리 7080 08/04/25 [20:00] 수정 삭제
  요즘 어디에도 갈 데가 없는 7080세대에게, 그마나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지난 음악을 들으며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젖어 보는 기분도 힘이 되네요. 즐거운집 사장님과 오기자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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