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도 꺾지 않는 사랑
일급 장애아를 입양해 키우고 있는 노처녀 엄마 이용자씨의 삶
 
오미영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웃의 불행과 아픔을 자주 만난다.

이웃은 물론이고 거리에서, 전철안에서, 걸인과 노숙자들을 늘상 보게된다.
국내외 뉴스를 통해 재난과 사고로 고통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루도 거릉없이  볼 수 있기도 하다.
그 때마다 잠깐의 연민, 동정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고, 좀더 적극적으로 성금이나 후원금을 보내는가 하면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이나 도우미로 그들 곁에 가까이 있어주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 인심이 점점 각박해져 가는데도 이런 마음들이 있어 세상의 따뜻함에  기대볼 수있는 것인지 모른다.
 
마흔 넘어 큰 수술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용자씨의 삶은 보통사람들이 지닌 따뜻함 수준을 넘어 서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고 혼자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았던 이용자씨의 지나온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과 다른 '따뜻함'이 더 돋보이는 걸 알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맛난 음식, 좋은 구경거리를 찾아 걸릴 것없이 자유롭게 살면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빠짐없이 복지 시설을 찾아 생필품을 전하면서 목욕 시키는 일, 식사도우미, 세탁등의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 준영이     © 돌다리교회
 두 번의 큰 수술은 그녀를  기독교 신앙으로 이끌었고, 
 그러던 중 양평의 한 복지 시설에서 일급 장애를 가진 준영이를 만나게 된다. 어릴 때, 젓가락이 목으로 넘어가 뇌를 찌르는 바람에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모든 감각과 신경에 장애가 있는 상태였다. 준영이를 만난 후, 이용자씨의 인생은 본인도 알 수 없는  다른 궤도를 가게 되었다.

그후 시설을 오가며 준영을 살피던 이용자씨는 2년 여의 기도와 고민 끝에 준영이를 양자로 맞아들이고, 생업도 놓아 버리면서 이 새로 얻은 '아들'의 병 간호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5년 11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24시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중환자의 어머니로 살아 온 시간들이다.
집안은 웬만한 응급처치가 가능한 병실로 바뀌었고, 말 못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최대한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려 애쓰고 노력했다.
앞이 막힌 순면 내의를 사 앞을 트고 단추와 옷고름을 달아 갈아입기 편하게 바느질을 하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의료기를 손수 고안해 만들어 침대 곁에 붙여두고 매일 병상일기를 썼다.
 아마추어 전문의가 다 된 엄마는 아들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집 아이들도 요청이 들어 오면 달려가 돌봐 주기도 한다. 간병에 대한 조언도 하며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용기와 지혜를 나눠주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준영이와 한 병동에 있던 어린이 넷은 모두 하늘나라에 먼저 가고 말았다. 
 
'부모님 병구완 3년에 효자없다.'라는 말이 있다.
바람처럼 돌아다니기 좋아해서 택시 운전을 직업으로 택했던 이용자씨. 그런 그녀가 지금 이런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한 번도 후회한 적없어요. 그 어느 때보다 준영이 어미로 살아온 시간들이 행복한 시간입니다. 자주 불평하고 투덜거리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에요.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벌레같은 것들도 이젠 함부로 죽일 수 없어요. 그것들도 살고 싶어하는 생명체라는걸, 사랑없이는 그 어떤 존재도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 이용자씨와 아들 준영     ©남양주뉴스
처음 만났을 때 14살이었던 준영이가 지금은 턱 밑에 삐죽삐죽 수염이 난 22살 청년이 되었다.
얼굴은 청년, 몸은 유치원생 쯤으로 보이는 준영은 감각 중에선 청각만 예민하게 살아있다. 몇 차례의 수술 끝에 두 눈도 실명 상태가 되었다. 팔과 다리가 심하게 비틀려있어 성장이 어렵고 내장 기관도 꼬인 채로 의료 기계와 사람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생명을 이어나갈 수없는 상태이다.
 
"준영이 엄마가 되기 전엔 아픈 곳이 많았어요. 준영이 만난 후론 감기 빼고 아픈 적이 없네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같아요. 그동안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언지 몰라서 못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알아요. 내 도움이 필요한 곳, 나를 필요로 하고 원하는 곳에 있는 것이 내게도 얼마나 행복한 건지를... 그래서 아프지 않은 것 같아요.
주변에 나보다 못 한 사람,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내 힘 닿는대로 도우며 살고싶어요. 예전엔 다 그러고 살았잖아요?"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광고카피가 떠오른다.
세상을 바꾸기에 앞서 생각을 바꾸는 것, 내가 나누려는 마음을 먹으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 나도 행복해지고 세상도 더불어 살만해진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이용자씨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를 몸으로 일러준다. 
 모든 생명들을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게 하는 4월에 마르지 않는 샘물 이야기를 이렇게 세상 밖으로 전하면서, 이용자씨가 아들 준영에게 보내는 편지를 덧붙인다.
 

사랑하는 아들 준영이에게

 네가 엄마의 아들이 된지도 어느새 6년이 되었구나.
 하나님께서 지난날 엄마의 마음을 다스리시고 함께하시지 않았다면 난 너를 도저히 아들로 키울 수 없었을 거야. 내가 너를 입양하여 키울 거라곤 그 누구도 아니 엄마 자신도 상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단다.
 그러나 네가 엄마의 아들이 되려고 그랬는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믿음 생활 보다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던 엄마에게 두 번의 대수술을 통해 하나님은 회계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셨단다.


 권사님과 시설에 갔을 때 널 처음 본 기억이 지금도 새롭단다.
 거실 방 한 켠 병원용 침대에 팔 다리가 꼬인 채로 파리하게 누워 있었지.
 너댓 살정도 되어 보이는 네가 열세 살이라는 말에 목이 메어 차마 너의 사슴같은 눈망울을 마주 볼 수 없었단다.

이렇게 너와의 첫 만남은 시작 되었고 얼마 후 혼자 편히 살며 봉사하지 않는 날 꾸짖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라고 그러시나 생각하던 중 해외여행 가려던 생각을 버리고 네가 있는 곳에 가서 20일간 봉사하리라 생각하고 너와 생활하게 되었지

척추가 휘어진 너를 조심스레 안아주면 맑은 눈망울로 눈 맞추며 웃는 너를 볼 때 엄만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행복하기도 했었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엄마는 침대에 누워 말 한마디 못하고 손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네 생각에 입맛도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단다

너를 생각하면 불쌍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에 엄마가 하던 택시일을 접고 너와의 생활은 다시 시작 되었지. 엄마는 너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너는 생각지도 못한 몸짓으로 엄마를 기쁘게 해 주었단다.
 
그렇게 1년4개월이라는 시간은 지나고, 엄마와 눈만 마주치면 웃는 너를 두고 나는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너를 보고픈 마음에 매주 찾아가면서 자식의 아픔을 대신하고픈 어미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셨단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곤 했지.

"주여, 준영이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는데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엄마의 신음 같은 이 물음에 하나님은 2002년에 응답을 주셨단다. 네가 정식으로 엄마의 아들이 될 수 있게 해 주셨지.
네가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응급상태가 되어 입에 호수를 문채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중환자실로 들어가고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을 때, 엄마는 이런 기도를 드렸단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며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저 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사 생명을 소생시켜주시고 부족하지만 저에게 아들로 주셔서 스무 살 성년식 할 때까지만이라도 마음껏 사랑하게 해 주세요. 아버지, 제 아들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사랑하게...."

너는 심폐소생술을 하여 한 시간 삼십 분만에 다시 깨어났단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길었는지 모른다.
한 번의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너는 중환자실과 병실을 오가며 가슴을 졸이게 했지.

의사들이 가망이 없다고 할 때도 엄만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다 가게 하려고 살려주신 것 아닌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준영이를 맡기겠습니다.’라고 기도 했단다.

너는 그 후로도 목과 배에 호수를 넣는 수술을 받는 등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겼지만 삶의 끈을 놓지 않아서 '의지의 한국인'이란 애칭을 들으며, 2003년 10월말에 17개월 이라는 긴 병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하게 되었지

17개월...참으로 긴 시간 이었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긴장속에 어떻게 그 시간들이 지났는지,너를 놓칠까 가슴 졸였던 것 밖엔 생각이 안 난단다.

퇴원하기 전날 목사님께 의논을 드리고 병원교회에서 세례도 받았단다.

‘아버지 준영이가 병원에서 1년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집에 가서는 이보다 더 긴 시간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세요’

퇴원 후, 지금까지 4년 6개월을 건강하게 잘 지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아들아,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알 수가 없단다. 너로 인해 엄마의 생각과 삶을 바꾸시고, 기쁘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하셨단다.

준영아 휠체어 타는 거 좋아하지?
"휠체어 타고 교회 와서 예배도 드리고, 바다도 보고 놀이동산도 갈 수 있도록 우리 준영이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고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하자.
그리고 준영이를 위해 밤낮없이 기도해 주시는 김정현 목사님과 교회 식구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기 바란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께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 하리이다 아멘.
                                                              - 시편 30 : 11~12

기사입력: 2008/04/25 [22:52]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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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름구름 08/04/30 [13:12]
정말 이렇게 사는 분도 있는데, 난 뭘까. 한참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답게 살아야하는데 그냥 하루하루 광우병 소처럼 사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요 수정 삭제
사랑한다준영아 안철웅 08/04/30 [18:36]
어! 준영이 메스컴탔네 오늘따라 유난히 잘~생겨 보이는구나 우리 돌다리교회 모든식구(특히 사랑부)는
준영이를 많이 많이 사랑한단다. 알고있지? 사랑해~ 수정 삭제
사랑은 위대하다~~ han 08/05/05 [13:46]
어머니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생명을 주시는이도 생명을 거두시는이도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소중한 인연이 삶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을 뒤돌아 보니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엄마품 평안이 영원하길 빌며
준영이와 이용자님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수정 삭제
이용자씨는 판교에 살던 분인가요 靑山 11/11/27 [22:25]
이용자씨는 판교에 살던 분이신가요 알려 주세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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