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후의 만남
살아 있는 지역의 역사, 월산교회를 찾아서
 
남양주뉴스

월산교회의 시작


1900년대 초, 춘천으로 선교 여행을 떠나던
감리교단의 하디 선교사나 무스 선교사가 아침 일찍 서울 동쪽 춘천을 향하여 길을 재촉하게 된다.

▲ 전쟁 중에 도움을 주었던 미군 장교의 월산교회 방문     ©월산교회
망우리 고개를 넘고, 왕숙천을 지나 마치고개를 넘었을 때, 
날은 어두워져가고, 타고 있는 말도 지쳐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길을 멈추고 하루밤 쉴 곳을 찾은 곳이 월산리 답내리 마을이다. 이인하란 분이 기꺼이 벽안의 선교사에게 사랑채를 내어 주었다.

 

이를 인연으로 와서 망우리 고개 동편으로 월산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달뫼교회, 발음나는 대로 당미교회 그러다 월산교회(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소재)가 되었다.

 

교회창립을 1907년으로 잡은 것은, 월산교회가 운영하던 배정학교의 기록에 배정학교의 전신이 배인학당이 1907년에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 이전에 섰겠지만, 기록에 의거하여 1907년을 교회창립 년도로 잡았다. 

 50년 전의 답내리 주민

▲1950년대 경의 답내리 주민 ©월산교회

삼일운동 후에 일경에 의하여 한동안 문이 닫혔던 교회는 다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교회종이 공출되었다고 한다.

해방이 되었지만 곧 6.25사변이 일어났다. 이때 교회당이 소실되었고, 지현리 공회당을 임시 예배 처소로 사용하였다.

 1951년 11월 당시 미군 통역관으로 있던 김수철 성도에 의하여 야학인 배정고등공민학교가 세워졌고, 일본 나대지를 불하받고 미77탱크부대에서 목조건물인 교회당과 학교를 지어 주었다.

이때, 미군 중위로 복무하던 w. layton씨가 1994년도에 참전용사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고, 월산교회를 방문하였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w.layton 씨가 보내온 사진으로 
6.25 기간 중 월산리 답내리 주민의 모습이다.
 
 [자료 제공 : 월산교회]





기사입력: 2008/04/28 [12:04]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월산교회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