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넘어서 사랑을 만나다
윤선주 표 정치사극에 빠지다
 
양정순
세상을 배우는 방법은 다 제각각일 것입니다.

언젠가부터 전 당신에게 세상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제가 당신을 처음 만나게 된 때는 2006년 가을이었습니다. 선거도 지나고 지역 축제도 마치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던 가을의 어느 날, 제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허허로운 마음을 둘 곳이 없어 tv 앞에 나른하니 앉아 무심코 채널을 돌리던 저는  ‘황진이’라는 드라마를 접하며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춤사위의 ‘발’ 감각을 읽히기 위해 창호지 위에 꿀을 뿌리고 끈적거리는 창호지가 찢어질 때까지 쉼 없이 창호지 위를 걷고 또 걷는 여인, 밤이 하얗게 새도록 자신의 기예를 연마하기 위해 자기와 끝없이 싸우는 예인들의 처절한 몸부림, 조선시대 춤꾼들의 치열한 자기수련 장면은 춤을 알지 못하면 도저히 드라마 속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게 표현 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춤이 시작되면 춤이 끝나기 전까지 어떠한 억압과 폭력 속에서도 멈출 수 없다는 황진이의 스승 백무가 보여주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은 단연 빛나는 장면이었습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황진이의 시조를 외운 적은 있지만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예인의 삶이 제 가슴에 쑤욱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대본을 쓴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리저리 바쁜 일에 붙들리는 동안에 가뜩이나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 저는 그렇게 당신에 대한 궁금증만 지닌 채 이따금 tv 앞에 앉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극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저는 당신을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누굴까? 누가 예술가의 속내를 저리 잘 알고 사랑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삶의 역정을 지나왔기에 깊은 연못 같은 예술의 본원을 저리도 명쾌하게 짚어낼 수 있을까?       

당신에 대한 의문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당신을 향한 제 사랑도 깊어지고, 그만큼 나는 작아졌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공연을 기획해 오면서 저는 예술가를 위해, 관객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떠들어온 제 말이 그저 말로만 그친 것은 아니었던지 심각히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도 존중하고 사랑하고자 했던 예인들의 삶이 내 가슴 안에 오롯이 박혀 있지 못했다는 사실이 저를 너무도 아프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황진이는 세상 속에서, 저자거리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춤추며 행복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황진이를 보면서 드디어 저는 컴퓨터 앞에서 윤선주라는 당신의 이름을 찾았습니다. 황진이에 대한 기획 의도, 작품 개요, 인물의 성격, 줄거리 대본 그리고 김탁환 님의 원작소설까지 꼼꼼히 챙겨 읽으면서 당신을 오롯이 만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신을 만나 행복했기에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을 좀 더 연장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의 재회

그러나 바쁜 일상은 그런 내 사랑을 잠시 내려놓고, 잠시 당신을 잊게 했습니다.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조선 전복을 꿈꾸는 고려 황손 역을 맡아 드라마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듣고서입니다. 
 ‘대왕 세종’은 첫 장면부터 극전개가 빠르고 치밀하게 전개 되는 것이 작가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 작품 되겠는데 누구지? 윤선주! 드라마 ‘황진이’의 작가 윤선주!  "
영웅으로서의 세종대왕이 아니라 백성을 사랑하는 인간 세종을 그리겠다는 당신의 의도는 13살 충녕의 아주 당돌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적에게 납치되어 처음으로 죽음과 맞닥뜨린  왕자는 자신을 걱정하는 ‘장헌’(노비)의 걱정에 오히려 화를 내며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왕자”라며, 자신보다 훨씬 어른인 ‘장헌’을 당차게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그는 백성을 보호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막지 못한 죄로 눈앞에서 자신의 첫 번째 백성이 모진 고문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아야 했습니다. “세상에는 책 속에서 만났던 덕 있는 백성들은 없지만 그들은 나와 닮았더라”는 사실을.......

 저는 순간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커다란 고목나무 밑에서 스승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충녕의 뒷모습에서 저는 충녕이 자신이 처한 현실과 백성들에 대한 사랑의 틈새에서 시련과 좌절을 겪으며 회의하고 반성하면서 ‘대왕 세종’으로 성장하리라는 복선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그 동안 사극을 보면서 ‘정치가 저렇게 정쟁과 권력을 쫒는 수준 낮은 암투뿐일까? 저건 아닌데.’ 라는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백성은 없고 권력을 향한 음모와 세력의 확장만 있던 종래의 사극에서 당신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대왕 세종’을 통해 당신은 올바른 정치는 백성의 입장에서 백성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깨우침을 전하려 애씁니다. 남들이 진심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현실이 끝없이 나를 배반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정치라고 말입니다. 비록 적이 되어 나의 등에 비수를 들이대는 상대라 할지라도 상대를 존중하면서 그렇게 공존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윤선주 표 정치사극 

 ‘대왕 세종’은 ‘윤선주 표 정치사극’이라는 항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정치가 무엇인지, 외교가 무엇인지 그리고 치열한 정치 세계 속에서 생존해 나가는 현실 정치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당신이 1 년여를 준비했다는 ‘대왕 세종’을 통해 저는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 공부를 합니다. 부성과 모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참된 스승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등의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배우게 합니다. 

 이제 곧 충녕이 대왕 세종으로 등극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남은 시간동안 세종이란 인물의 천재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내각을 구성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보스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비전을 제시하게 되리라 기대됩니다. 사랑이 깊으면 만나지 않고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데, 이제 당신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마 당신은 대왕 세종이 힘으로 신하들을 다스리기보다,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도록 기다리며 고심하게 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대왕 세종’을 만나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만남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기사입력: 2008/04/30 [14:45]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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