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맛은 사람 살이를 닮았어요
'옛날 솔잎 동동주' 빚는 월문리 토담집을 찾아서
 
오미영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흔히 의.식.주 세 가지를 꼽는다. 그 셋 가운데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식(食)’의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식(食)’의 문제는 이제 단순히 배고픔과 생존을 넘어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조건이 되고 있다. 

 인류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무엇보다 ‘식(食)’의 흐름이 있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일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먹는 것에서 시작된 食문화는 더 많은 음식을 남겨 저장하고, 더 맛있게 먹기 위하여 험한 산맥과 거친 바다를 건너게 했다. 이를 위해 바닷길을 열며 사막에 길을 내고 전쟁을 불사하게 했다. 우리가 흔히 식탁에서 만나는 후추만 해도 중세시대 유럽에선 금값과 맞먹는 가치로 교환되고 재산으로 상속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향신료 무역은 새로운 도시를 발달하게 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같은 유라시아 대륙의 변방 국가를 강대국으로 성장시키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이 이제 막 시작하는 정권의 향방을 흔들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 하겠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은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환기시켜 준다.

그동안 상업화, 대량화, 서구화의 흐름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우리 전통 음식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우리 전통 음식이 몸을 건강하게 살리는 먹을거리로 재인식되면서 먹을거리의 복고운동, 이른바 ‘슬로우 푸드’가 살아나고 있다.

우리 술을 위해 바친 세월

▲ 토담집     ©오미영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도로변.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옛날 솔잎 동동주’를 만들어 팔고 있는 고집쟁이 할머니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에는 쉴 새 없이 공사차량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무심코 지나쳐버릴 곳이었다. 이런 곳에 이 시대의 ‘장인’이 숨어 계실 줄이야!

 새댁 시절부터 배운 전통주 담그는 방식을 고집하며, 10년이 넘게 동동주와 막걸리(탁주) 한 가지만 빚으며 살고 있는 69세의 이 성란님.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집 안팎의 수많은 항아리들이다.
먼지 나는 마당에 들어서면 시큰한 술 냄새가 찾아온 손님을 안으로 이끈다. 어린아이 몇이 들어앉아도 될 만큼 커다란 항아리와 그 옆의 올망졸망한 항아리들이 늘어서 있고, 상당한 크기의 현대식 철제 발효기가 중앙통로에 의젓이 앉아 있다.

차림표도 단순하다. 솔잎동동주, 막걸리, 굴 파전, 녹두전이 전부이다.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촌구석 늙은이에게 뭐 물어볼게 있다고...", "볼품없는 늙은이를 찍어 무엇하게?” 

 먼저 물어보기 전에는 쉽게 풀어 놓는 말수도 아니고, 묻는 말에만 마지못해 한 토막씩 이야기를 내어놓는다. 한 말씀 끌어내기 위해 동동주를 한 동이 먼저 받아놓고, 손님 치다꺼리가 한가해진 틈을 타 몇 마디씩 여쭤 보았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황해도 분이어서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술 빚는 것을 보며 자랐다는데, 특히 개성이 고향인 친정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남다르셨다 한다.

 이북 사람들은 술을 담가 위에 뜬 맑은 술(청주)만 마신다. 토속주는 예로부터 각 가정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맛과 향과 색이 집집마다 다양했다. 이 때 주변에서 나는 곡물과 나무열매, 약초 들을 함께 재료로 쓴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솔잎동동주는 쌀밥 1 : 누룩 1 : 솔잎 2 (솔잎은 기름이 많이 나와 1년 이상 숙성시켜야 한다)에 밑술을 버무려 보름이상 발효시킨 것이다.

매일 아침 6시면 일어나 밑술(술을 증류한 증류주~ 매우 독하다)을 만들고, 술을 거르고, 곁안주 등의 준비로 오전 동안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술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인근에서 채취한 솔잎 뿐 아니라 오디, 산 복숭아, 칡 등 제 철에 나는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이곳의 술맛은 철마다 일정하지가 않다.

“요즘은 공장에서 나온 값싼 막걸리도 많고 소주도 있는데 그런 건 하나도 안 팔고 왜 이렇게 어렵게 장사를 하세요?”

“그래서 처음엔 손님들하고 많이 힘들었어요. ‘술값이 너무 비싸다’, ‘술집에 국물 안주가 왜 없느냐’, ‘밥도 팔아라.’ 그런 손님 오면 아무 말 않고 그냥 가시라고 했어요. 드신 술값 안 받을 테니 가시라고. 술 취해서 오는 손님도 받지 않아요. 처음엔 시비도 많았는데, 이젠 손님들이 알아서 묻지 않아요. 다 알고 오시니까요. 제가 쉽게 장사하는 사람 아니라는 걸 믿어주는 분들이 찾아오시는 거죠. 난 원래 대충하는 것을 싫어해요. 남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가짜로 해서 돈 버는 건 돈 버는 것이 아니예요.(사기지요.)”

정성으로 빚는 술의 향기

주방을 보고 싶어 기웃거리다 밑술 만드는 과정을 보게 되었다.
술을 끓여 나온 수증기가 아래로 떨어져 액체(증류주)로 모여지기 까지. 그것을 모두 직접 손으로 하고 계셨다.

▲ 옛날 솔잎 동동주 대표 이성란님     ©오미영
“사람이 먹는 음식은 정성이 제일이에요. 토속주는 더욱 그래요. 손이 아주 많이 가지요. 제 철 재료, 수입 농산물이 아닌 우리 땅에서 난 것, 깨끗한 물, 그것도 중요하지만 내 손으로 정성껏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처음 술 뜨는 날은 먼저 간 남편에게 먼저 올려요. 새로 하는 처음 것, 맛있는 것, 녹두 한 가마 들여 놓는 날. 그런 날은 애들 아빠에게 먼저 드립니다. 어렵고 답답하고 그럴 때면 잘 봐달라고, 애들하고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고 빌죠. 삼십대에 혼자 돼서 4남매 키우며 먼저 간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빌었어요. 사람도 영혼도 다 마찬가지라 봐요. 정성을 다 하면 들어주지 않겠어요? 내 식구든 남의 식구든...... ”

그래서 여동생이 일을 도와주고 있지만 술은 물론 안주 하나하나 주인이 손수 다 만든다. 한번 항아리에서 뜬 술은 손댄 것 아니어도 다시 붓는 일이 없고, 아무리 남아도 쓰던 음식 은 다시 안 쓴다. 양념장 하나도 매번 새로 만들어 쓴다.

음식 간을 맞추는데 들어가는 소금도 채반에 넓게 펴 수분을 날리고 프라이팬에 덖어서 쓴다. 파전에 들어가는 굴도 통영에서 제 철에 들여와 굴만 넣어 두는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꺼내 쓴다. 술 냉장고 빼고, 반찬용 재료 냉장고만 다섯 개가 된다고 한다.

 곁 반찬으로 나오는 네 가지도 이렇게 엄선되어 만들어 지는 것이다. 2년 된 묵은지 볶음, 물미역 초무침, 망초나물 무침(주변에서 채취한 망초 잎을 삶아 메밀가루, 직접 만든 청국장가루, 들깨 가루로 무친다.), 새콤달콤 동치미 무....... 

 술 한 동이가 거반 비워갈 무렵, 후식 겸 서비스로 나오는 쑥버무리가 일미이다. 
 틈틈이 주변에서 뜯은 쑥을 금방 쪄 낸 쑥버무리. 사철 내내 이 쑥버무리를 내어 놓기 위해 겨울엔 전남 거문도에서 택배로 받아 쓴다고 한다. 햇메밀이 나오는 가을 두 달 정도만 메밀전도 안주로 맛볼 수 있다.

“건강에 좋은 것 드리니 손님들도 좋아 하시고 나도 기분 좋아 이렇게 하는 거지요.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는 거 보면서 돈까지 버니 이게 행복이라 생각해요.”

별로 돈벌이도 안 되고, 모든 과정에 공이 들어가는 이런 어려운 길을 굳이 고집하는 철학(?) 같은 것을 묻는 기자에게 들려 준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우리는 얼마나 그럴듯한 이론과 철학을 머리에 담고서 몸은 따로 쓰며 살고 있는가? ‘삶은 이상만으로 살아지는 게 아니야’ 하며 적당히 눈감고 타협해 온 우리에게 평범한 주점의 아주머니가 보여준 먹을거리에 대한 고집이 참으로 귀하게 다가온다. 이런 고집쟁이가 가까이에 살아 계셔 우린 얼마나 행운인가!

“서늘한 곳에서 은은하게 오래 익혀야 좋은 술이 되지요”

어디 술맛뿐이랴. 한 순간에 끓다가 넘쳐버리기보다 천천히 기다리며 익혀가는 깊은 맛. 삶의 맛도 그런데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솔잎 향기 그윽한 동동주에 얼큰히 취해 돌아오는 길에, 삶은 이렇게 누군가의 고집과 정성으로 향기로워진다는 사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윽이 취해 보는 귀로였다. 그것은 단순한 알코올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성과 아름다운 고집에 빠진 향기로운 취기였다.
본지 편집인.
 

기사입력: 2008/05/19 [18:22]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ader 08/05/20 [19:32]
한 순간에 긇다가 넘쳐버리기보다 천천히 기다리며 익혀가는 깊은 맛, 삶의 맛도 그런데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 이것을 느끼기에 적당한 글 인것 같습니다. 수정 삭제
술 익는 냄새에 길을 멈추네 지나가다 08/05/21 [08:32]
지고는 못 가고 먹고는 가는 술 익는 냄새가 알싸하니
가던 길을 그냥 갈수 없네요 글 좋고 술 좋고 ~~ 수정 삭제
나도 이집 갔었는데.. 구라 08/06/05 [13:41]
저도 이집 몇번 갔었는데^^

솔잎 동동주도 맛이 있었고 나오는 반찬 하나하나 다 맛있더라구요..

내가 갔었던 집을 이렇게 기사로 보니 좋으네요^^

그리고 쑥버무리도 참 특이하게 맛있더라구요.. 집에서 비슷하게 만들어 봤는데 잘 안되던데... 언젠가 비법을 전수 받아야지..ㅋㅋ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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