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야시시한 학교
19년간 ‘아름다운 등불’ 밝혀온 호평 제일야간학교
 
오미영
 고단한 일터의 불빛이 하나 둘 꺼져갈 무렵, 밝아지는 전등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며 하루가 시작되는 곳이 있다.
‘야시시’는 밤에 시끌시끌한 곳이라고 지어 낸 호평 제일야간학교 교사들의 모임 이름이다. 공식명칭은 ‘호평제일학교’, 전국야학협회(전야협)에 등록된 이름은 ‘평생 배움터 꿈숲’이다. ('꿈숲'은 그동안 호평 제일학교에서 발간한 문집 '꿈을 키우는 숲'의 약자이다.)

컨테이너 교실에서 시작 

 1989년 10월에 개교한 호평 야학은 호평 제일교회 마당 한켠에 이 교회 담임목사님(야간학교장이시기도 한)의 배려로 마련한 작고 허름한 컨테이너 교실에서 시작되었다. 중등과정(고등학교입학 검정시험 대비)으로 시작된 호평 야학은 2002년 12월, 신축된 호평 제일교회 2층으로 이사하게 된다.

 컨테이너 교실에서 한 학급으로 시작했던 호평제일야학이 지금은 중 · 고등부 한 학급씩 증설되고, 한글반과 교사들이 집무할 수 있는 교무실까지 마련되어 그 간의 변화와 성장을 눈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10년 이상 함께 한 몇몇 교사들은 옹색하고 불편했던 초기 컨테이너 교실의 정겨움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여름에는 모기와 나방들이 수 없이 날아와 수업을 방해했고, 겨울에는 그 작은 공간도 제대로 덥히지 못하는 난로 하나로 버티던 시절이었다. 추운 교실에서 난로 하나를 놓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에게 양보하느라 이리 밀고, 저리 밀던 밀어주기 바쁘던 수업시간,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가져온 고구마와 떡, 밤 등을 구워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돌아갈 줄 모르던 정경이 컴퓨터로 들어찬 요즘 교실에선 조금 만나기 어렵게 된 것이 아쉽단다.

▲ 만년의 학업     © 호평야학
매일 밤,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이어지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의 학과 수업이 농사일과 집안일이나 각자의 직장 일에 지친 나이든 학생들에겐 힘겨울 만도 하다. 그러나 한창 나이를 넘어선 호평 야학의 학생들의 학구열은 뜨겁기만 하다. 자식뻘, 동생뻘 되는 교사들에게 배우는 뒤늦은 학업의 즐거움은 몸의 고단함도 잊게 한다. 또한 윗연배의 제자(?)들에게 책에 나오지 않는 인생의 연륜이 지닌 지혜를 배우는 교사들의 즐거움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한다. 배우며, 가르치는 즐거움이 실로 여기에 온전하다.

한마음으로 이어지는 학교

설립 초기엔 근로 청소년 학생이 많았지만 요즘엔 운전기사 분들이나 4, 50대 주부와 같은 성인이 더 많다. 여성에 대한 교육이 일반화 되지 않았던 시절에 태어나 학업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던 분들이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주부들의 학구열과 끈기는 대단하다. 그동안 이 곳을 졸업한 학생이 600여 명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160여명의 학생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20여 명은 방송대 등의 대학에 진학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자기 이름도 잘 쓸 줄 모르던 분들이 대입 검정 합격증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보람을 느끼게 되죠. 우리가 살면서 이런 결실의 기쁨을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교사는 일주일에 한번, 조금 먼저 알게 된 지식을 나눠드린 것뿐인데 평생의 은인으로 기억해 주시는 학생들을 보며,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이 배워요.  학생들의 부지런함, 열정, 겸손함 같은 거요.” 

 호평 야학의 한 교사가 전하는 ‘결실의 기쁨’이 그동안 호평 야학을 이끌어온 힘이 아닐까 싶다. 자식이나 손자뻘 되는 어린 학생이 들어오면 먹을 것 싸가지고 와서 챙겨주는 분, 텃밭에서 키운 야채와 과일을 가져와서 교사와 학생에게 나눠주는 분, 입학 · 졸업식, 소풍 같은 학교 큰 행사에 졸업생들까지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전통이 언젠가부터 자리 잡아 왔다.

배우지 못한 설움을 평생 한으로 품어왔던 학생들은 평소 이웃과 나누지 못했던 상처와 비밀을 함께 나누며 각별한 학우애를 지닌다. 졸업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한마음회’는 호평 야학의 든든한 후원자로, 행사 때마다 학교를 찾아와 재학생(후배)들을 격려한다. 또한 해마다 스승의 날 즈음에 교사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며 사제간의 돈독한 정을 나눈다.

“‘한마음회’는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 이 모임이 기다려지지요. 사정이 생겨 모임이 좀 늦어지면 서로 전화해요. 우리 언제 모이냐고.” 

 한 졸업생의 말에서, 졸업한 이후에도 끈끈한 정을 이어나가는 호평 야학의 아름다운 전통을 짐작하게 한다. 늦은 배움의 길에서 만난 동지로서의 애정과 연대감은 서로 다른 처지와 연령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학생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 나가는 힘이 되고 있었다.

특별한 인연

▲ 4회 졸업식     © 호평 야학
19년의 역사 속에 특별한 인연의 졸업생들도 많았다.
학생 때 만나 결혼해서 아이가 벌써 유치원에 다니는 부부, 고등학교 중퇴한 딸을 공부시키려다 엄마까지 동문이 된 모녀, 남편은 바쁜 농사일로 아내가 먼저 졸업한 부부( 한마음회 부부 명예회원임), 자매가 함께 중등과정에 입학해서 고등과정을 단기간에 마치고 방송대 국문과에 나란히 합격해 졸업한 자매, 언니가 먼저 졸업하고 동생에게 소개해 동문이 된 자매 등등 별난 사연의 학생들이 많다. 야학에서 만난 인연으로 사랑을 맺은 교사 부부도 생겼다. 

 호평 야학의 학생들은 17세 소년, 소녀에서 고희를 앞둔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였고, 교사들의 직업과 연령도 각양각색이다. 전, 현직 교사, 공무원, 순위고사 준비하는 대학 졸업생, 학원 강사, 주부, 일반 직장인, 대학원생 등 20여 명의 교사가 호평 야학을 위해 애쓰고 있다. 한 가지 원칙은 자원 활동이긴 하지만 대학 재학생은 모시지 않는다. 

 
▲ 작품 전시회     © 호평야학
학생들은 입학할 때 3만원의 입학금을 내면 교과서까지 무상으로 지급 받고 컴퓨터 수업, 하모니카 특강 등도 받을 수 있다. 교과목 이외의 특별   업은 지역민에게도 열려 있다. 입학도 자유의사이지만 졸업은 더욱 자유롭다. 중등과정을 거쳐 고등과정을 졸업하기 까지 5년, 6년이 지나도 상관이 없고, 자신의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중간에 쉬었다 다시 해도 된다. 검정고시에 한두 과목을 합격하지 못해 졸업을 하지 못하다가 몇 년 지나서 다시 공부해도 괜찮다. 나이 든 학생들의 여건과 고충을 헤아리기 위한 학교 측의 배려이다.

이렇게 쉬엄쉬엄 가며 느리게 와도 호평 야학은 어느 덧 19 년이란 역사를 쌓아 왔다.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 뗄 때마다 주위를 살피며 가슴 두근거리던 주부가 대학을 가고, abc도 모르던 분이 자동차 뒤에 박혀있는 영문 이름 -소나타, 아반테, 프라이드 - 를 읽기 시작하며, 컴퓨터 자격증까지 따게 되고, 학생이던 분이 방송대 졸업하고 교사로 후배들 가르치게 되기까지 호평 야학에는 특별한 인연과 사연이 많다. 입학식 때는 누가 볼까봐 식장에 들어오지도 않던 분이 온 가족과 이웃의 축하를 받으며 자신 있게 졸업장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이 19년의 시간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한 졸업생은 이렇게 고백했다.

“대검 합격증을 받던 날 산위에 올라가서 외치고 싶었어요. 내가 해냈노라고. 난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집 현관 들어서는 정면에다 합격증 붙여놨어요.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을, 그동안 그 많은 세월동안 수치심으로 숨어 살았던 게 바보 같았어요.”

“인구조사 나왔을 때 학력 난에 ‘고졸’이라고 쓰면서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아이들 학교에서 부모 학력 난 쓰는 거 나올 때 마다 ‘국졸’도 쓸 수 없어 애들 보기 얼마나 창피했었는지 몰라요.”

학벌 위주의 우리 사회에서 학력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상처받고 스스로를 부정하며 마음의 그늘 속에 살아온 이들에게 호평 야학이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아름다운 꿈

▲ 작은 음악회     © 호평야학
그러나 야학을 찾는 학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교사 한 분은 ‘힘든 노동과 학업보단 쉽고 가벼운 일거리에 안주하려는 젊은이들이 늘어가면서 성취와 보람을 위해 땀 흘리는 일이 점점 더 가볍게 취급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한다. 

소외 계층을 위한 야학이라면 없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 모른다. 더 이상 야학이라는 ‘뒤늦은 배움’이 필요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도 호평의 야학 교사들은 야학이 필요한 학생이 한 명이라도 문을 두드린다면 언제든 달려 나가 열심히 배우며, 가르치겠다고 다짐한다. 

 중학 과정까지 의무교육이 된 요즘 호평 야학은 그동안 어려움 속에 펼쳐온 따스한 ‘배움의 사랑’을 좀더 넓게 펼쳐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 남양주 지역에 많이 늘어난 외국인 이주 노동자나 국제결혼으로 타국살이를 하게 된 외국인에게 필요한 교육과정을 만들고 개방하는 방향으로 야학도 변화를 모색하느라 호평야학은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다.
본지 편집인.
 

기사입력: 2008/06/08 [22:55]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야시시? 시민 08/07/04 [15:30] 수정 삭제
  "야시시" 란 단어가 이리도 훈훈한느낌으로 다가올수도 있네요^^
수고하시는 모든분께 마음으로나마 박수를 보냅니다
기립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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