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
쌩떽쥐뻬리, 나의 어린 왕자에게
 
오미영
 한낮이 너무 더워서였는지 밤이 깊은데도 어둠은 내려앉지 못하고 붕붕 떠 있습니다.
이 어둠이 지상으로 내려와 나를 그 부드러운 품으로 감싸 주지 않는다면 당신께 편지를 쓸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어젯밤에도 당신을 생각했어요. 아주 오래 전에 당신의 편지를 읽었고, 저는 하마 수십 년 당신께 마음으로 답장을 쓰곤 했었지만 그 편지를 부치지는 못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과제도 없는 중3의 긴 겨울 방학, 입시 전쟁터로 내몰리기 전의 유예된 마지막 휴식기간에 저는 당신을 만났지요. ‘어린 왕자’,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성채’ (너무 난해하고 줄거리도 주요 인물도 없는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로 이어지던 당신과의 만남... 헤세에게서 느껴지는 시적 은유와 동양적 명상의 고아한 문장이 단박에 나를 매료시켰습니다. 
 
▲ 사하라에서     ©오미영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여름, 당신은 마지막 비행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하늘의 품으로 당신이 영원히 돌아가 버린 한참 후, 내게 보내진 이 편지들이 아직도 내 서가에서 저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네요.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 같았던 고향집 밤하늘. 구름에 버무려 놓은 은가루처럼 희뿌연 띠로 빛나는 은하수가 지나가는 마당에 앉아 어린 왕자가 살고 있을 별을 찾아보기도 했을 겁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당신이 ‘어린 왕자’라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두고 온 별의 장미꽃을 돌보러 돌아간 어린 왕자. 가시 네 개 밖에 자기를 보호해 줄 무엇도 갖고 있지 않은 연약하고 순진한 장미를 돌봐 주어야 한다고 했어요.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어린 왕자로부터 배웠지요.  

 혼자서는 자기 한 몸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상대방을 연민하고 아껴주는 마음, 그것이 사랑이구나. 물면 30초도 안 돼 사람을 죽게 하는 사막의 뱀에게 자기를 물게 해서 스스로를 죽여야 그 사랑에게로 갈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도 여러 번 사막에 불시착해 죽음에 직면했어도 돌아오면 다시 비행기를 탔고, 위험을 경고하는 대장의 출격금지 명령을 어기고 비행에 나섰다가 당신의 별에게로 돌아가 버리신 겁니다. 

 당신도 목숨을 걸고 돌봐주고 싶은 당신의 장미가 있었던 걸까요?

 그 별에서, 이 지상의 존경과 인간에 대한 경외감으로 헌사를 바쳤던 당신의 친구 기요메도 만나셨겠지요? 6,000m 이상의 준봉이 나무들처럼 무수히 서 있는 안데스 산맥을 횡단하던 기요메가 난데없는 하강기류에 휩싸여 4,500m 얼음산에 추락했을 때, 닷새 나흘 밤을 걸어서 살아 돌아 온 장면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동료이며 친구인 기요메의 실종소식을 듣고 그 위험한 안데스 산맥을 이틀동안 밤낮으로 저공비행하며 찾아 헤맸지요. 100대의 편대가 100년 동안 수색해도 겨울 안데스 산맥은 사람을 돌려보내지 않을 거라며 당신이 체념하고 있을 때 기요메가 유령처럼 살아 돌아 왔어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동상으로 새까맣게 타고 뻣뻣해져 노파처럼 오그라져서 살아 돌아온 친구! 식량도, 어떤 등산 장비도 없이 눈보라의 설산을 넘어 절벽을 타고 영하 40도의 혹한 속을 헤쳐 나온 인간이 친구에게 던진 이 말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내가 한 일은, 맹세하네만, 어떤 짐승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네.” 

 내가 살아오면서 그 어떤 책이나 영화에서도 이 보다 더 고귀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까요? 무엇이 기요메에게 그토록 죽음과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한 인간을 금강석처럼 강하게 한 것일까요? 한 순간! 눈만 감아버리면 그 엄청난 고통으로부터 달콤한 잠처럼 죽음이 감싸줄 텐데, 그 유혹을 뿌리치게 한 무서운 힘이 무얼까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를 살아 있게 하는 힘, 그것은 자기를 믿어주고 기다리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믿음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했어요. 당신이 사막에서 조난당했을 때,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눈들이 보일 때 마다 나는 불에 덴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고 하셨지요.

▲ 사하라 사막에서     © 오미영
생떽스, 당신이 살았던 나이보다 더 오래 산 나는 지금도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뜁니다. 새처럼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그 어떤 새보다도 더 높이 날 수 있는 비행기를 하늘 위에 띄웠고, 그 무거운 쇳덩이 안에서 수십, 수백의 사람이 구름 위에서 식사를 하고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이 현실이 문득 믿어지지 않아요. 꿈에서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잖아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다 속 물고기처럼 소리 없이 유영해가는 비행기를 올려다 볼 때 마다 우편기 혹은 정찰기 안에서 우주의 절대고독과 홀로 마주하고 있는 당신을 떠올립니다. 그 천만 개의 별, 그 고즈넉함, 그 몇 시간 동안의 절대력!... 지구의 수천 피트 높이 위에서 국한된 좁은 공간에 혼자 앉아, 언제 닥칠지 모를 기상변동과 진보되지 않은 계기판과 기계에 의지해 매순간 죽음과 직면하고 있어야 했던 당신! 죽음은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다고 하셨지요. 지상이 주는 안락과 평온이 당신에겐 오히려 죽음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삶과 죽음이 만나는 그 극점에서 당신은 대지와 인간의 조건에 대해 구도자처럼 명상했고 거기서 인간 누구도 가 닿지 못한 명징한 순수를 얻어내려 했던 겁니다. 

 우리 내면에 숨겨져 있는 그 어떤 알 수 없는 힘.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품고 있는 그 무엇......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려는, 그래서 우리의 가능성을 더 확장시켜 보려는 의지, 오직 실천과 행동으로서만 삶의 중심을 바라보려 했던 당신께 이제야 늦은 답장을 드립니다. 

 우리는 땅바닥에 생존하는 것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난 것 같아요. 
 삶에 짓눌리어 살면서도, 내 안의 모순과 균열을 안고 안간힘으로 버티어가면서도 무언가 지상의 것이 아닌 것을 찾아 출렁이게 하는 것에 이끌리도록 지음 받은 존재..... 당신의 삶이, 내 서가에 오래 묵혀 있는 당신의 편지가 그렇게 일러줍니다. 

 당신을 생각하며 보낸 시간은 몇 십 년이었지만 짧은 답장을 쓰려고 작정하니 너무 많은 말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한 이틀 걸렸습니다. 
 사실은 그토록 당신이 사랑했던 사하라 사막, 아직도 순정한 침묵으로 인간을 압도하고 모든 생명의 비밀을 품고 있는 사막의 밤하늘 아래서 당신께 답장을 쓰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나를 서두르게 했었는지..... 지난겨울, 사하라의 발꿈치쯤에서 한나절 어정거리다 당신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안고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일행이 멀리 나간 나를 찾고 있었지요.

쌩떽스, 당신의 미소가, 어린 왕자의 사랑스런 웃음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왔습니다.
본지 편집인.
 
기사입력: 2008/06/16 [09:47]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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