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아니라, 마음을 조제합니다”
금곡동에서 가장 오래 된 ‘마을약국’을 아시나요?
 
오미영
 주변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주택가 골목마다 하나쯤 있던 수퍼마켓들이 하나 둘 없어지더니 목 좋은 대로변마다 ‘24시간 편의점’들이 들어섰다. 기업형 대형 마트들이 동네 수퍼마켓을 잠식해 버리고, 제철 과일과 채소로 넘쳐나던 좌판에서 흥정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재래시장도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치솟는 유가와 물가를 견디지 못해, 영세 자영업자들은 폐업이나 전업을 고민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두고, 기술과 노력으로 이어오던 자영업은 거대 자본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금곡동만 해도 1년 새 한자리에서 음식점 간판이 세 번이나 바뀐 곳도 있다.
‘이걸 해도 안 되고 저걸 해도 안 되고, 이걸 하면 좀 나아질까?’

 이런 고민 속에 소자본 자영농의 시름은 깊어만 가는데, 쾌적한 현대식 공간과 편리함에 쉽게 길들여지는 소비자들은 상권이 집중된 상업단지 안의 다양한 메뉴와 체인점의 값싸고 획일화된 입맛에 생각없이 끌려들어간다. 먹을거리는 물론이고, 일상 생활용품부터 심지어 의약품 까지도.

▲ 마을약국     © 오미영
금곡동 ‘양 병원’ 옆에 자리잡은 ‘마을약국’은 이런 세태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최고참 약국이다. 약학대학을 졸업하여 약사로서의 꿈을 실현하고자 금곡동에 정착했던 이영일 약사는 올해 70세. 금곡동에서 약국을 연지 올해로 35년째이다.

70년대 초반, 우연히 홍유릉에 놀러 왔다가 이곳이 맘에 들어 지금의 삼미떡집 상가에 세 들어 처음 약국을 열었다. 그해, 춘천 아가씨와 결혼도 하게 되어 집과 약국의 한살림살이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금곡은 물론 사능(진건), 호평, 평내 인근에 약국이라곤 이 ‘마을약국’ 하나뿐이었다. 지금 동서울의원 맞은편 옛 청자다방 옆에 금곡 약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곳은 약사 없이 매약(賣藥) 중심으로 영업하던 '약국'아닌 '약방'이었다.

인근 남양주지역에 있던 의료시설로는 요즘 새로 길이 확장되어, 있던 자리를 찾을 길 없는 금곡사거리 우체국 앞 부근의 ‘금곡의원’과 구리시 교문지역에 있던 ‘중앙의원’이 전부였다. 그러니 약국은 70, 80년대만 해도 서민들에게 병원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치료 센터였고, 약사가 의사와 간호사, 한의사 역할까지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약국 건물 안에 살림집도 있다 보니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약국일과를 마치고 잠들어 있던 한겨울 새벽녘에 누군가 약국 셔터문을 다급하게 두드렸어요. 잠이 덜 깬 채 나가보니 동네 아주머니가 쓰러져 있는 남편과 아들을 리어카에 싣고 와서 빨리 연탄가스 약을 내놓으라는 거예요. 약국엔 연탄가스 중독을 해독하는 약이 따로 없는데 어쩌겠어요. 얼른 김칫국물 가져와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먹이고, 교문리 중앙의원에 연락해 주었지요."

당시만 해도, 일하다 다친 사람들은 병원보다 약국을 먼저 찾았다. 소독약 바르고 붕대 감아 반창고 붙여주는 일 등을 대부분 약사들이 했다. 약사가 온 동네 주치의인 셈이었다.

" 그러다보니 '약'만으론 한계가 느껴졌어요. 여기저기 아픈 곳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약만 쉽게 건넬 수 없잖아요? 그 사람의 체질도 알아야 하고 집안 환경도 고려하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참고해야 하고 그래서 혼자 한의학을 공부했지요. 한방 침도 배우고...... 체질 공부하다 보니까 체형·관상,수상... 점점 공부 영역이 넓어졌어요. 한방의 장점과 양방의 장점을 접목해 공부하고 노하우를 만들어 나갔지요. 그러니 환자와 상담하는 시간이 길어질 밖에요. "

▲ 이영일 약사     ©오미영
‘마을 약국’을 한번 다녀간 손님들은 약사께서 짚어주는 성격과 체질, 그에 맞는 건강관리상담을 한번쯤은 받아 본 적이 있으리라.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한번 다녀간 손님은 누구든 기억하고, 심지어 그 가족들 이야기까지 줄줄 꿰어내는 약사의 기억력에 탄복할 것이다.

"처방과 치료에 집중하다 보니 매약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박카스, 활명수... 달라는 거 파는 건 약사의 본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내가 돈을 못 벌었나 봐요." (웃음)

요즘 대형화된 약국을 가면 흰 가운 입은 약사들이 대형마켓 계산대 점원들처럼 죽 늘어서서 환자들을 상담한다. 이미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약들은 서로 경쟁하며 싸게 팔고 그것을 미끼삼아 값비싼 영양제나 보약 같은 것을 끼워 팔지 않던가. 이 약사는 체질적으로 그런 행위가 맞지 않았다.

의약분업 이후, 친분 있던 약사와 한때 대형약국을 시도해 보았으나 상업 중심으로 변해가는 약국 환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얼마 못가, 바로 그만 두고 다시 마을 약국 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 의약분업 이후 천직으로 알고 있던 약사 직업이 재미없어졌어요. 처방 주권도, 진료도 할 수 없는 장사꾼으로 전락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의약분업 된 후 한 동안은 병원 처방을 받지 않고 종전에 해왔던 대로 했지요. 내 고정 손님이 있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법이 있는데.......처방전 없인 약사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반 없잖아요. 약사의 전문성이란 고작 약의 용량과 배합을 따지는데 필요한 정도지요. 의사뿐 아니라 약사의 전문성을 보장하고 활용하려면 약의 성분으로 처방해야 하는데, 제품명으로 처방하게끔 되어있으니 굳이 약사가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요? 약의 선택권을 약사에게 주면 약값도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을 텐데...... 80년대 후반까지는 나같은 약사가 필요했어요. 이젠 아닌 것 같아요."

변화된 현실에서 5남매를 키우며 살아남으려면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큰 딸부터 의료보험 체계를 배우게 하고, 둘째딸과 장남이며 막내인 아들로 이어서 가족들이 함께 약국을 운영해 왔다. 부인도 덕분에 컴퓨터를 배워 경영을 돕고 있다.

" 매약하나 팔아도 물어보며 환자의 상태를 점검해요. 육신이 안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니까 친절하게 대하려 노력하지요. "

▲ 마을약국     ©오미영
기자가 인터뷰하기 위해 약국에 가 앉아 있을 때도 박카스 한 병 사러 온 남자와 10여분을 이야기하고 있는 약사님을 볼 수 있었다. 이사했다며? 요즘 장사는 어때? 오랜 단골 같아 보이는 손님에게 자상한 형님처럼 대하는 은발의 약사님은 이제 분명 구시대 전문인이다.

" 약국을 연 이래로 365일 단 한 번도 쉬어 본적이 없어요. 물론 일요일도, 명절에도...... 내가 아파도 약국 나와서 아팠어요. 덕분에 가족들하곤 휴가 한번 다녀온 적이 없어요. 애들 학교 입학이나 졸업식에도 가본 적 없네요. 가족들에겐 미안할 뿐이지요. 아내가 오래 아파서 이웃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믿어지지 않겠지만 해외여행은 물론 비행기도 한 번 타 보지 못했어요. 나는 어린이 대공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

약사를 천직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이렇게 살아 올 수 있었을까. 본인은 그렇다 치고, 가족들의 고통과 불만은 또 얼마나 컸을까?

의약분업 이후 일요일 같이 병원 쉬는 날에 약국을 여는 것은 적자를 면키 어렵다. 처방전이 없으므로 간단한 매약만 파느니 난방비, 전기료 등을 생각하면 닫는 편이 경제적일 수 있다. 약국이 다 문 닫으면 아픈 사람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마을약국’이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이유였다.

" 우리 때는 의리와 도덕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는데 지금 사람들은 '법'이면 다 되요. 법 안에서, 법만 어기지 않으면... 내 가정, 내 삶도 중요하니까... 나도 요즘 젊은 약사들, 한편으론 이해해요. "

무엇이든 법으로 따지려 드는 세태에서 그는 법 이전의 무엇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 법은 우리 삶의 최소한의 영역, 가장 기본적인 것 가운데 일부만 지켜줄 뿐이다. 다양한 우리들 삶의 많은 부분은 '법'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진다. 친절함, 배려, 헌신, 나눔, 감사 같은 미덕은 누군가의 양보나 희생 없인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법' 같은 것으로는 결코 보장될 수 없는 것들이다. 과연 법 없이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아직도 그 자리에서 병든 이웃들을 맞아주는 ‘마을약국’에서 그 세상의 한 자락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문을 나서서 몇 걸음 걷다가 이내 돌아본다. 푸근한 이웃 아저씨 같은 ‘마을약국’이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시로 주인이 바뀌는 요즘 동네 가게들 틈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을 그 자리를 지키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애환을 함께 하는 가게는 가게 그 이상이다. 무엇이든 새롭고, 최신식만을 선호하는 세태에서 이처럼 오래 우리 곁에 남아서 가족처럼 지켜보는 가게가 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따스해진다.
본지 편집인.
 

기사입력: 2008/07/18 [14:2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 08/07/19 [14:57] 수정 삭제
  금곡동 개발 기사와 함께 읽으니
느낌이 좀 묘하네요^^

우리는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얻을 수 있을까?

제가 느낀 감상입니다.
물론 모두 다 얻을 수 없겠지요

이 약사님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 대신
약국 문을 열고 계셨던 것처럼요

그렇다면

우리는 개발이라 불리는 것과
이 기사에서 말하는 친절함, 나눔, 헌신, 감사 등의 가치를
모두 함께 얻을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고민이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약사지만 의사자격도 있지요 이만경 08/07/21 [10:52] 수정 삭제
  이 약사님이 금곡동에 올때만 해도 금곡동(금곡리)에는 약종상(파출소바로옆) 1개소 금곡의원 (이박의사) 의 열악한 의료시설이 있었지요. 그당시 주민들은
약하면 이영일약사를 세상에 제일약잘 조제하는 약사로 알았습니다.하루도 빠짐없이 약국을 지켰기 때문이며.그러데 약 의 양이 다른 약사나 의사보다 많았기 때문에 더욱 유명했지요.
그분 저도 안답니다 시민 08/08/05 [15:29] 수정 삭제
  그분 금곡동 명의(?)셨지요
약 조제하시면서 "무슨음식 조심하라" "무슨음식이 좋는 체질이다"
"어머니는 건강하시지?" "어머니께 효도해야한다"
찾아뵐때마다 저에게는 인자한 동네어르신이셨지요
일부러 서울에서는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던 걸로 알고 있구요
그분만 본다면 의약분업 괜한짓 한겁니다
사진으로 뵈니 아직도 인자한 모습이 그데로 시군요
그분께만 처방주도권을 드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적어도 금곡동민들을 위해서는요....

처방은 의사가 하는게 맞고... 약사 10/01/16 [17:45] 수정 삭제
  이윤을 추구하지 않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약국을 운영한것처럼 조명했군요. 처방은 의사가 하는게 맞지요. 약의 혜택이 없던 시절에 존경받으며 제 역할을 다 했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감사한 것이지요. 의약분업의 진정한 문제는 다국적제약회사 돈벌이 홍위병으로 한국 병의원 약국이 전락한 부분이겠지요. 제약명처방을 포기하지 않는 까닭은 이런 이유에서지요. 허나 성분처방을 해도 약국과 제약회사 리베이트 관계, 병원과 제약회사 리베이트 연결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리베이트의 원천은 결국 국민들이 내는 돈입니다. 제약회사는 영업비를 병원사무장과 약사 의사에게 뿌리고 약사, 의사는 국민들에게 약을 뿌립니다. 고스란히 제약회사에게로 돈이 쏠리는 것이지요. 그 와중에 국민의보로 부터 약사, 의사 수가 받지요. 그 돈은 국민들 혈셉니다. 한국 의사, 약사들 국민들에게 할말없습니다. 존경받으며 호시절 다 보냈는데 덤으로 명예나 인정 뭐 이런 부분까지는 좀 그렇습니다. 이 글의 등장인물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시각이 문제란 것이지요. 남양주뉴스가 진보개혁 좌파세력인줄로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엄밀하게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서 좀 그러내요. 약을 먹고 발라야 하는 당위를 전제하지 않고 이런 저런 진정어린 조언을 해 준 부분은 훌륭하군요. 정리하자면 국민은 약국과 병원에 돈내고 약을 타먹거나 치료를 받습니다. 그 기초는 국민이 내는 의보(국민건강보험으로 바꼈지요)입니다.

국민 -> 약국에돈지불, 병원에돈지불, 국가(의보)에납부
제약회사리베이트요구, 국민에게약제공
약국에처방압력, 제약회사리베이트요구, 국민치료
약국에리베이트, 병원에리베이트, 약국에약등제공, 병원에링거등제공,
기타기관로비 등
조재는 약사가 하는데 주의사항 좀 자세히 얘기해야죠 옛생각 10/01/26 [14:32] 수정 삭제
  처방을 성분으로 하면 제약회사가 의사가 아닌 약사에게 로비합니다. 의사에서 약사로 방향이 달라지는 것일 뿐. 제약회사별 항생제 로비가 아주 치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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