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풀잎
아래 마을에 사는 할머니는 틈틈이 저의 집 가까이에 있는 밭에 일하러 오십니다. 일에 지쳐 허리도 굽고 얼굴에 주름도 많아 나이보다도 늙어 보이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일을 하십니다. 밭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은 누구나 대개 한 번쯤 쉬어 가야할 만큼 가깝지도 않습니다. 이 길을 할머니는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십니다. 바쁘면 해가 뜨기도 전에 올라 다녀간 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리고 오후에 또 다시 이 길을 오르십니다. 아마 어떤 때는 자신의 아침 식사는 거르고 일을 좀 더 하고 내려가고 싶어도 할아버지가 아침을 드셨는지 걱정이 되어 할 수 없이 일찍 내려가실 것입니다.

뜨거운 한낮은 피하더라도 밭에서 일을 하면 언제나 이마에서 땀이 흐르게 마련입니다. 농사일이란 시기를 놓칠 수 없는 일이기에 때때로 무리하게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흐르는 세월 따라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기는 했을지 모르나 그만큼 몸도 쇠약해져 갑니다. 여기서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늘 자신보다는 자식들 걱정을 입에 달고 사십니다. 어떤 때는 이 할머니의 표정을 보고 자녀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도 있습니다. 할머니의 표정이 밝은 날이면 자녀들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며 얼굴에 좀 어두운 그늘이 비쳐 보이면 틀림없이 자녀들 가운데 속상한 일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 제가 전에 살았던 마을에는 구십세가 넘은 할머니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당시 칠십세가 다 된 이 할머니의 아들은 건강이 좋지 않아 농사일을 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며느리 보기가 미안해서였는지 몰라도 농사철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바쁜 일에는 꼭 한 몫을 하셨습니다. 사람들 틈에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꾸준히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일을 너무 지나치게 하셔셔 며느리는 불평을 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좀 가만히 계셨으면 좋겠는데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해서 속상해 죽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할머니께서 일을 벌일 것 같아 며느리가 이것은 제가 나중에 할 터이니 하지 마시라고 미리 알려드려도 나중에 와보면 하지 않아도 되거나, 해서는 안될 일까지 해놓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이 할머니를 만났는데 또 다시 우리에게 아들 걱정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저렇게 일을 하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것이었습니다. 칠십이 넘은 분이니 일을 쉬어도 당연해 보이는데 이 할머니는 아들이 살 일이 마음에 걸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생을 몸이 부서지게 일을 해오셨는데도 틈만 나면 자식들 걱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한 동안 유명 연예인 몇 사람과 고위 공직자가 잇따라 자살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럴만한 대단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그들이 당했던 고통을 이해해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육백만 명이나 학살당했던 나치 유태인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은 자신이 겪은 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수용소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구태여 말해 주지 않아도 그 비참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잘 설명해 주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보기에는 정말 살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은 반면에, 그래도 저 정도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세상을 버렸습니다. 고생과 걱정이 범벅이 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은 바쁘고 힘든 일에다 가족에 대한 버거운 걱정까지 겹쳐 자신이 살고 죽는 것은 생각할 틈도 없었기 때문일까요?

물론 시골에서도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엄밀하게 따져보면 자살이기보다는 타살에 가깝습니다. 거의 다 살기 싫어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사를 읽다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oecd 가입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 1위를 달린다는 우리나라와 더불어 핀란드가 3위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복지 면에서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고 교육 면에서도 경쟁 학습이 아니라 협동 학습으로 학습 능력 세계 일위를 차지해 많은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핀란드에서 자살률이 그토록 높다는 것은 정말 인명은 재천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결국 교육과 복지마저 자살 방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암담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풀잎님은 서울에서 살다가 몇 해 전에 전북 장수로 귀농하여,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고 있음.
 

기사입력: 2008/11/08 [22:4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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