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과 선녀’의 뿌리는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2)
 
조현설



△ 금강산 구룡폭포 위쪽에 있는 '상팔담'. 수정같이 맑은 물이 8개의 작은 못을 따라 흐르며, 경치가 아름다워 팔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선녀, 가정을 박차고 훨훨 날아가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모르는 한국인이 있을까? 마음씨 착한 노총각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노루를 구해준 덕분에 선녀의 깃옷을 감춰 행복하게 살다가 깃옷을 내어주는 바람에 선녀 및 자식과 헤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동화를 한번쯤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시 나타난 노루의 천기누설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나라에 올라가 가족과 상봉하는 이야기, 혹은 지상에 두고 온 늙은 어머니를 뵈러 내려왔다가 천마에서 내리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 영원히 지상에 남게된 나무꾼 이야기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다양하게 변주되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는 변주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아무리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도 나무꾼과 선녀가 지상에서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은 없다. 행복한 결말을 유난히 좋아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한국인들은 왜 이들 부부가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이야기를 짜지 않았을까? 물론 하늘나라에서 선녀와 자식들을 만나 거기서 잘 사는 나무꾼 이야기도 있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지상에는 노모가 남아 있지 않은가.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숨기고 있는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한국인은 몇이나 될까?
 
수수께끼 풀이의 첫번째 단서는 ‘금지의 위반’이다. 나무꾼은 노루가 절대로 내줘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 선녀의 날개옷을 꺼내준다. 독자들이 혹은 청중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쯧쯧 어리석은 나무꾼 같으니라구. 나무꾼이 노루의 말을 따르지 못한 것은 금지에는 늘 위반이 뒤따르는 민담의 이야기 문법을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 위반에는 또다른 비밀이 숨어 있다. 나무꾼이 금지를 위반할 수밖에 없는 비밀. 



이승에서 행복한 결말 없는
민담 ‘나무꾼과 선녀’는
몽골 백조처녀 신화의 변주
생성을 잉태한 ‘금지의 위반’
그 속에 여성을 붙잡아 두고 싶은
남성들의 욕망 숨어있어



비밀의 문을 여는 주문은 신화 속에 있다. 비밀은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본래는 신화였으며 우리가 아는 상당수의 전설이나 민담은 신화의 변형이라는 사실에 있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부근에 사는 몽골 브리야트족은 백조를 신성하게 여기는 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옛날 어떤 사냥꾼이 새를 잡으러 갔다가 호수에서 깃옷을 벗고 여자가 되어 헤엄을 치고 있는 백조 세 마리를 본다. 사냥꾼은 한 마리의 깃을 감춘다. 날아가지 못하고 남은 여자를 붙들어 살았는데 여섯 아이가 태어난다. 어느 날 아내가 소주를 빚어 남편을 취하게 한 후 깃을 달라고 한다. 감추었던 깃을 내주자 순식간에 백조로 변한 아내는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갔다는 것인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백조는 바로 천신 에세게 마란의 딸이고 이 백조로부터 바이칼 지역 브리야트인들의 족보가 시작되었으며 이들이 백조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고 신화는 설명해준다.
 
이런 유형의 백조처녀 이야기는 유럽에서 몽골, 시베리아, 중국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이 기원신화에서 우리의 눈길을 잡는 부분은 백조 역시 깃을 찾아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사냥꾼과 나무꾼, 백조와 선녀, 너무도 닮은 모습이다. 그러나 지상의 두 남자, 하늘의 두 여자 사이에는 전혀 닮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나무꾼에게는 있는 금지가 사냥꾼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노루와 같은 동물이 등장해 천기를 누설하는 일과 같은 흥미로운 행위가 신화에는 없다.
 
신화에서 사냥꾼이 술에 취해 깃을 내준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실수가 사냥꾼을 이별의 고통에 빠뜨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신화에서 사냥꾼의 실수는 브리야트족이라는 새로운 민족을 생성시키는 계기가 된다. 드러난 금지는 없지만 금지가 있더라도 금지가 위반돼야 새로운 생성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화가 깃옷처럼 감추고 있는 은밀한 이야기다. 이것은 에벤키족의 웅녀가 새끼를 찢어 사냥꾼과 절반씩 나누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죽어야 새로운 민족이 생성될 수 있듯이 천신의 딸과 지상의 사냥꾼이 헤어져야 브리야트족이 지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입과 귀를 드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결말이 없는 것은 이 이야기의 원천이 신화였기 때문이다. 마치 유전자와 같은 신화에 대한 기억이 행복한 결말을 원하는 한국인의 심성을 방해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화가 아닌 전설이나 민담은 선녀와의 이별을 나무꾼의 통곡으로 처리하거나 하늘나라의 재회로 마무리했던 것이다.



△ 몽골 부랴트족 사냥꾼의 모습. 몽골의 샤냥꾼과 백조는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로 변주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첫번째 수수께끼가 풀리려는 이 대목에서 의문이 머리를 든다. 우리나라에는 백조처녀가 어떤 집단의 시조가 되었다는 신화가 없는가? 없다면 몽골에는 있는 것이, 일본에도 있는 것이 왜 우리에게는 없는가? 이런 의문이다. 정답은 천신 에세게 마란만이 알고 있겠지만 두 가지 추정은 가능하다. 하나는 백조처녀 신화를 지닌 집단이 한반도로 들어왔을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이야기 자체가 중개과정을 거쳐 들어왔을 가능성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들어온 민족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집단의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에 시조신화 역시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하고 전설이나 민담으로 변형되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처음부터 전설이나 민담으로 수용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4세기 중국 동진(東晋) 사람 간보(干寶)가 기록한 <수신기(搜神記)>에도 이미 ‘모의녀(毛衣女)’라는 백조처녀 전설이 실려 있으니까.
 
변형의 내력이야 어쨌거나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변하는 부분도 있는 법. 신화가 전설이나 민담으로 변형되면서 사냥꾼은 나무꾼으로, 백조는 선녀로, 백조의 깃은 선녀의 날개옷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변화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 그것은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인가라는 물음과 관련있다. 두 번째 수수께끼다.
 
브리야트 기원신화에서 주인공은 사냥꾼이 아니다. 사냥꾼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깃을 숨겨 천신의 딸을 차지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백조의 처지에서 보면 깃은 지상의 사냥꾼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일 수도 있다. 백조는 사냥꾼을 끌어들여 여섯 자식을 낳고 결국에는 지상에 딸 하나를 남겨두고 승천하기 때문이다. 이 딸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브리야트족이고 그래서 백조는 이들의 신성한 어머니가 된다. 신화는 이 신성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의 주인공은 선녀가 아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마음씨 착한 노총각 나무꾼이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이다. 신화의 사냥꾼은 드러난 이유 없이 백조를 발견하지만 전설의 나무꾼은 노루의 목숨을 구해준 선행 덕분에 선녀를 붙잡을 수 있었다. 착한 남자는 마땅히 아름다운 선녀를 만날 자격이 있다! 물론 이 착한 노총각의 이야기는 금기를 어겨 선녀를 놓치는 결말로 풀리기도 하고, 두레박을 타고 하늘나라에 올라가 가족이 재회하는 결말로 매듭지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결말이든 거기 숨어 있는 것은 남성들의 욕망이다. 나뭇꾼과 선녀 이야기는 선녀를 가정 안에 붙잡아 두고 싶어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다.
 

지리산 발치에 박두규라는 시인이 있다. 그는 술이 깊어지면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데 <금강산녀>라는 노래도 레파토리 중 하나다. “내 옷은 어디로 갔나. 그 누가 가져 갔나. 오늘 꼭 올라가야 내일부터 베를 짜는데”로 이어지는 노래. 장기수들이 부르던 북한 노래라고 한다. 이 노래 속의 금강산녀가 바로 나무꾼에게 날개옷을 빼앗긴 <금강산 선녀>의 선녀다. 장기수들은 자신들의 신세를 옷을 잃은 선녀에 비유했겠지만, 이 애절한 노래는 지금 우리에게는 남성적 이야기의 감옥에 갇힌 여성들의 절규로 들리기도 한다. 

조현설 기자는 중국 베이징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를 했고, 돌아와서 티베트·몽골·만주·한국 신화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고려대·동국대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아시아 신화학의 구축을 공부의 한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우리 신화를 동아시아 신화의 시각에서 읽는 공부의 여적(餘滴)이다. 그 동안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 『문신의 역사』, 『고전문학과 여성주의적 시각』(공저), 『한국 서사문학과 불교적 시각』(공저),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역서) 등을 펴냈다.
 

기사입력: 2008/12/19 [14:21]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