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그저 하나의 선일 뿐
<몽골 여행기1>바람결 따라 달린 초원길 2,000km
 
최성수

 
▲ 비행기 안에서 본 몽골 고원의 풍경. 구름 그림자 아래 마른 평원이 누워 있다.     © 최성수

   구름의 땅, 풀의 나라
 
울란바타르 시내를 벗어나자 길은 곧게 초원을 향해 사라진다. 눈이 시리게 푸른 초원에 그저 한 줄 금 그어놓듯 길이 뻗어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금도 지평선 저편에서 하나의 점으로 사라진다. 길이 사라진 끝은 하늘이다. 쪽빛 하늘과 싱그러운 초원이 맞닿아 있는 저 길을 따라 가면 아득하게 넓은 호수 흡스골이 있을 것이다. 나는 좁은 차창에 기대어 창밖으로 흩어지는 초원을 바라보며 문득 어제 한낮의 풍경을 떠올린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몽골항공(미아트)기는 약 세 시간을 날아 몽골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몽골 하늘로 들어서자, 지상의 모습이 달라진다. 두 번째 몽골 방문이다. 몇 해 전 처음 몽골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그래서 어떤 풍경도 비행기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울란바타르와 가까워지자 아롱대는 불빛들로 거기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음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 차가 달리면 길이 된다. 길은 강물처럼 흐르다 사라지기도 한다     © 최성수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한낮의 몽골 풍경은, ‘아, 정말 초원의 나라에 왔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우러날 만 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평원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데, 군데군데 구름이 떠 있다. 구름은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에 정물처럼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 구름의 아래에는 황량한 땅이 눈부시다. 구름이 가리지 않는 땅에는 햇살이 말갛게 부서진다. 구름의 아래에는 구름 그림자로 거뭇거뭇하다. 구름 그림자는 아득한 평원에 소똥처럼, 말똥처럼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시간이 거기서 멈춰버린 것 같다.
 
물이 지나던 길에는 파랗게 풀이 돋아나 또 다른 길을 만들고 있다. 자동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금방이라도 뽀얗게 먼지가 일 것 같은 길이 생긴다. 정말 저 길로 물이 지나갔을까? 자동차가, 사람이 자나갔을까? 흔적처럼 남아있는 그 길을 보며, 나는 문득 그 길 위로 지나간 것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오랜 세월을 흐르고 흘러 마침내 저런 흔적 하나 남겨놓았을 초원의 자연이 새삼 아득해 진다. 그런 나의 상념을 아는지 모르는 지, 그 흔적 위로 구름 그림자가 놓여있다.
 
   초원을 향해 떠나다
 
미명의 몽골 하늘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제비들이 방 창 밖에서 낮게 날아오른다. 새벽 여섯 시, 벌써 공사장에서는 분주한 아침 노동이 시작되고 있다. 울란바타르는 어디를 보아도 공사 중이다. 새로운 건물을 짓고, 도로를 만들고 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포장을 한 길에서도 먼지가 이는 것은, 황량한 사막 속에 세운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비 사막의 어느 귀퉁이에서 일어난 먼지들이 숱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도시에 내려앉은 것이리라.
 
 
▲ 얼핏 보면 메마른 평원이지만, 그 안에는 작은 풀들이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최성수
                               
구름과 벌판의 땅, 몽골 고원.
 
내가 탄 차도 먼지를 일으키며 울란바타르 시내를 벗어난다. 길은 푸릇푸릇한 초원 너머로 제 꼬리를 감추고 있다. 드문드문 차들이 스쳐 지나기는 하지만, 그 길은 얼핏 보면 인간의 이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또 다른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 같을 뿐이다. 
내가 탄 차는 일제 델리카다. 애초에는 러시아제 푸르공을 빌릴 생각이었지만, 델리카가 승차감이 훨씬 좋다는 권유로 바꾸었다. 우리나라 봉고차 같은 모양이지만, 짚차처럼 비포장길을 달리기 좋게 차체가 높은 편이다. 
 
우리 차를 모는 기사인 아무르는 40대에 보기만 해도 숨이 찰 정도로 배가 불룩 나온 친구다. 그러나 그는 시종 싱글거리며 노래를 부르고, 신이 나서 차를 몬다. 
 
울란바타르 시내를 벗어나 조금 더 차를 몰던 아무르가 갑자기 끼고 있던 선그라스를 벗으며, 옆 자리에 앉은 가이드 현욱씨의 모자를 휙 벗긴다. 
 
“장례식 차다. 예의를 표시해야 한다.”


  
▲ 길은 초원으로 이어져 있다. 초원의 주인은 말과 하늘과 바람!     © 최성수
 
그가 앞서 가는 차를 보며 말한다. 우리 차 앞에 검은 승용차와 장례 버스가 늘어서 있다.
 
“여행자가 장례식 차를 보면 행운이 찾아온다. 죽은 이가 여행의 위험을 다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결혼식 차를 보면 여행자는 불행해 진다. 신랑 신부가 여행자의 행복을 뺏어가기 때문이다.”
 
아무르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는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장례식 차량을 보았으므로 이 여행길이 내내 행복할 것이다.
 
초원 아득히 느릿느릿 트럭 한 대가 다가온다. 우리 차가 빨리 달리기 때문에 그 트럭은 마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 스쳐 지나가는 트럭에는 가득 양 가죽이 실려 있다. 너무 많이 실은 탓인지 바퀴가 찌그러진 것 같고, 차는 기우뚱해 보인다. 문득 양가죽들 사이에서 초원의 햇살과 바람 내음이 나는 것 같다. 어쩌면 몽골의 양들은 풀이 아니라 바람과 햇살로 자라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처음 몽골에 왔을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안내원인 현욱씨는 지금 몽골 국립대학 학생이다. 선한 얼굴에 배시시 웃는 모습이 아직도 앳돼 보이지만, 뛰어난 몽골어 실력으로 여행 내내 아무 불편 없이 통역을 맡아 주었다.
 
“테를지에 갔을 때인데요, 갑자기 눈이 무지무지 아픈 거예요.”
 
몽골 초원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고 있는 내게, 그는 초원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며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아버지가 혀로 내 눈을 핥아주어 나았지요. 파리가 눈에 알을 낳아서 아팠던 거였대요.”
 
어떤 사람은 초원의 겔에서 자다가 딱정벌레가 귓속에 들어가 고생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는 싱긋 웃는다. 그의 웃음이 초원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싱그럽다.
 
 
▲ 양떼들이 길의 주인이다. 우리는 그들의 길을 빌려 잠시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 최성수




최성수 기자는 강원도 안흥에서 태어나, 국민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한문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었고, 우리나라 한문 고전 중에서 전형적인 글들을 뽑아 『함께 읽는 우리 한문』을 그 모임의 선생님들과 같이 엮어 냈습니다. 1987년 『민중시』 3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과 소설 『비에 젖은 종이비행기』, 『꽃비』 등을 냈으며,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가지 많은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등의 책을 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시 100』,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교실에서 세상 읽기』 등의 책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경동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09/01/01 [20:56]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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