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빚은 토림의 흙기둥들
첫 여행자를 위한 윈난 여행 길잡이 ①
 
이시백

▲ 토림     ©이시백

윈난(雲南)을 다녀왔다.
1월 8일부터 19일까지 12일간에 걸쳐 윈난의 이른바 국민코스라는 기본 여행과정을 처음 찾은 여행객으로서, 뒤따르는 윈난 첫 여행자를 위해 몇 글자 기록을 남긴다.  

주로 시인과 교사들 열 명으로 구성된 이번 여행단에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마음에 두고 있던 차마고도에 대한 경로와는 다소 벗어난 여정인 점과, 무엇보다 다락같이 오른 환율이 부담스러워 주저했다. 그러나 ‘구름의 성, 운남’이라는 여행기의 저자인 최성수 시인과 함께 하는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차마고도의 길은 라싸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그러나 며칠 도보여행 끝에 폐렴을 얻어 병원 신세를 진 몸으로 고도 5000미터의 가파른 마방 길을 더듬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선 사전답사차 차마고도의 마방들이 차로 가득 찬 짐을 싣고 떠나던 윈난 일대를 돌아보는 여행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태국을 거쳐, 베트남, 캄보디아를 지나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윈난으로 향하는 국내 단체관광객들의 행보를 따르는 일에 솔직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우르르 몰려가 공식처럼 정해진 관광지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가게로 달려가 쇼핑하기 바쁜 그런 여행에 한 몫 끼어드는 일은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 쿤밍의 야채장수     ©이시백

윈난의 매력은 다양한 소수 민족의 풍습과 문화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푸얼차로 알려진 보이차의 집산지로, 예전 티벳이나 서역을 오가는 마방들이 모이는 지점이며, 이들이 걸었던 마방 길과, 그 가장이에서 이들을 바라보며 살았던 험산협로의 마을들이 남아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윈난은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성으로, 북서쪽이 시짱 자치구(西藏自治區:티베트)에 접하고, 북쪽은 쓰촨 성(四川省), 동쪽은 광시좡족 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및 구이저우 성(貴州省)과 맞닿아 있다고 한다. 서쪽으로는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남쪽과 남동쪽으로 라오스와 베트남과 인접해 있다. 이렇게 주변국가와 접경을 이룬 윈난성은 규모가 큰 민족이 21개, 소수민족이 60여 개에 달하는 다채로운 민족의 풍습을 지니고 있는 지역이라 한다.  

1월 8일, 쿤밍으로 날아가다

1월 8일. 저녁 10시경,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동방항공 mu 2004기는 예정 시간을 45분 가량 넘긴 4시간 45분 만에 쿤밍(昆明)에 도착했다. 이 정도면 중국 비행기로는 양호한 일정이라고 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연착이 다반사이고, 그에 대해 양해를 구하거나 따지는 일도 없다고 한다.

현지시각으로 밤 1시 45분에 도착한 쿤밍의 느낌은 생각보다 번화하고 규모가 컸다. 해발 1900미터에 위치한 쿤밍은 윈난성의 성도(省都)로 총 면적이 390,000㎢에 달하며, 인구는 35,00만에 달하는 거대한 도시이다.  

공항에는 이번 여행을 도와줄 윤병규 씨가 중빠라 불리는 19인승 중형 버스를 대동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윤병규 씨는 윈난에 정착한 초기 한국인 중의 한 사람으로, 중국인 아내와 결혼하여 현지 사정과 중국어에 능통하여 이번 여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한때는 여행사를 하다가 지금은 무역업을 하고 있는데, 바쁜 가운데서도 이번 여행을 도와주기 위해 시간을 내어 주었다. 

버스에는 盧씨 성을 가진 중국인 쓰푸(운전사)가 몰았는데 경력 20년의 베테랑 운전사라고 했다. 퉁퉁하니 살집이 있는 쓰푸는 ‘날아라 슈퍼 보드’에 나오는 인물을 닮아 귀염성이 있었다. 버스는 첫 번째 숙소인 ‘투투’라는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하였다. 고층 아파트 14층의 80평 복층 공간을 이용하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투투’는 주인장인 배경모님과 강성구님이 운영하고 있었다. 늦은 시각임에도 여행단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손님과 함께 사용하는 이층 침대에서 여행 첫 날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배경모 님은 윈난 일대의 관광객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와 여행 기획을 돕는데, 최근 한국 여행객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차마고도 여행 프로그램도 돕고 있다고 했다. 

숙소에 묵는 여행객을 위한 한국 서적들이 상당량 비치되어 있고 집안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다만 난방이 되어 있지 않아 밤이면 쌀쌀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가 시책으로 양쯔강 이남은 모든 건물에 난방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푹신한 침구가 따뜻하여 으스스한 날씨를 이겨낼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투투’의 침구는 고급 호텔급에나 쓰는 고급 오리털 이불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낯선 여행객들과 한방을 써야 한다는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 분위기가 낯설어 쉽게 잠들지 못했다. 선물용으로 샀다는 일행의 독한 술을 홀려내게 한 뒤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1월 9일, 토림으로 향하다

1월 9일.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붓고 신발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발이 부었다. 간밤에 마신 술 탓이라 여겼더니 배영모 님 말로는 고산증의 가벼운 증세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머리도 약간 어지럽고 무거웠다.

욕실로 들어서니, 욕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는 변기가 박혀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용변을 보면 되지만, 몸을 씻는 욕실에 뚜껑도 없이 노출된 변기의 느낌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중국인들은 여러 사람이 살이 닿는 좌변기를 꺼려 그리 쭈그리고 앉는 변기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듣고 보니, 오히려 위생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아침 9시에 일어나 숙소 밖으로 나가니, 마침 아파트 마당에선 주민들이 모여 태극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의 분위기나 주민들의 표정으로 보아 상당히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 쌀국수     ©이시백

번화한 거리로 이동해, 첫 번째 아침을 먹었다. 쌀국수로 알려진 ‘미시엔(米線)’이었다. 베트남에서 그 안에 섞인 향채 맛에 혼이 난 경험이 있던 터라, 미리 알고 갔던 ‘쁘야오 시향차이(향채 넣지 마세요)’라는 말부터 건넸다. 윤병규님의 말로는, 윈난에선 향채를 그리 많이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일설에 의하면 쌀국수의 효시가 윈난 일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막상 먹어 보니 얼큰하고 매큼한 것이 입맛에 맞았다. 밀로 만든 면과 달리 쌀로 만든 미시엔은 면발이 가늘고 부드러웠다. 윈난 일대에서도 지역에 따라 면발의 굵기나 맛이 조금 달랐다. 나중에 비교해 보면, 리지앙의 작은 가게와 이곳에서 먹은 미시엔이 가장 맛있었다.

거리에는 이런 작은 간이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섰는데, 정식 식당은 아닌 듯하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분식집 정도라고나 하겠다. 옌차이로 불리는 소금에 절인 야채와 간장에 섞은 고춧가루가 나오는데, 돼지 뼈나 닭고기를 우려낸 육수에 닭고기 고명을 얹어 먹었다. 처음도 그러했지만, 여행 기간 중에 먹어본 중국 음식 중에 가장 저렴하고 입맛에 맞는 것이 미시엔이었다. 입맛에 맞지 않다고 고춧가루를 두 숟가락이나 넣은 이는 나중에 배가 아파 고생을 했다. 

▲ 부겐베리아     © 이시백
 식사를 마치고, 10시 15분쯤 첫 번째 여행지인 토림을 향해 길을 떠났다. 윈난에는 석림(石林), 토림(土林), 사림(沙林)의 3림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석림 대신 토림을 선택했다. 날씨는 이른 겨울처럼 흐리고 우중충하였다. 사전에 꼭 가져오라던 자외선 차단제를 언제 쓰느냐는 항의성 물음이 많았다. 길가에는 붉고 노란 꽃들이 피어 있지만 쌀쌀한 날씨에 생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꽃은 피는데, 날은 흐리고 쓸쓸했다. 

12시 30분쯤 우딩(武定)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원래는 쿤밍에서 따리까지 가는 고속도로가 있지만 토림을 가기 위해 좁고 굴곡이 많은 지방도를 타고 움직였다. 이번 여정 중에 가장 불편하고 험한 길이었다. 윈난 일대의 도로들은 생각보다 양호했다. 어느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규모가 크고 꽤 비싼 식당이라고 했다.

중국의 식당들은 대개 요리 재료들을 문 앞에 늘어놓고 손님들이 선택하게 했다. 돼지 갈비와 감자전, 배추 비슷한 야채 절임 등이 빙글빙글 도는 원탁 위에 차려지는데, 별미로 민물참게요리를 시켰다. 차는 어느 곳이나 무료로 제공되었으나 마실 물은 따로 주지 않았다. 꼭 물을 마시고 싶다면 별도의 정수된 생수를 사 먹어야 한다. 

▲ 이족 마을     ©이시백
 
오후 3시경에 웬모(元謨)에 도착하여 ‘원모원인 박물관’이라는 곳을 구경했다. 일인당 오 위안(1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지만, 조악한 상상도와 몇 가지 화석들과 암석들이 어두침침한 2층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다. 북경원인보다 앞선 최고(最古)의 인류로 알려진 워모원인은 170만 년 정도로 추정되며, 발굴시 마제석기와 볍씨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새로 박물관을 지어 자리를 옮길 예정이라 한다. 오후 4시를 넘겨서야 드디어 토림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여기저기 붉은 흙으로 벗겨진 산들이 보였고, 우기의 빗물에 깎인 산과 협곡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로 이족(彝族)이 기거하는 이 지역은 주변에서 많이 나오는 황토흙으로 만든 벽돌로 지은 집들이 많았다. 지붕은 기와를 얹어 우리의 옛날 토담집들과 닮아 친근감을 주었다. 


▲ 토림     ©이시백
 
토림은 1인당 80위안을 입장료로 내게 되어 있었다. 중국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음식비나 숙박비에 비해, 관광지의 입장료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우기의 비에 깎여나간 토질이 볕에 말라가며 단단히 굳어져 그대로 직립하여 기기묘묘한 흙기둥과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이루고 서 있는 토림은 한번 돌아보는 데 서너 시간이 걸릴 만큼 규모가 크고, 이리저리 미로처럼 길이 이루어져 있었다. 아직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토림이 서너 개나 더 있다고 하는데, 공개된 토림도 외부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한산하기만 했다. 토림의 관람로는 정갈하게 시멘트로 발라져 있으나, 깎아지른 흙기둥 사이로 오르는 절벽의 협로는 매우 미끄럽고,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어 자칫 추락 사고의 위험이 없지 않았다. 가능한 노약자를 대동한 관람은 시멘트로 발라진 관람로로만 이동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토림을 돌아본 후, 이튿날 일출의 풍경을 보기 위해 가까운 곳의 숙소에 머물렀다. 거대한 흙기둥으로 장식된 입구를 지나, 숙소에 들었다. 관광지임에도 지나칠 만큼 한산하고 고즈넉했다. 이따금 중국인 관광객 몇이 보일 뿐, 한국 관광객들은 볼 수 없었다. 숙소 프론트에는 숙박비와 함께 ‘야징’이라는 일종의 보증금을 지불해야 한다. 중국 여행에서는 이 ‘야징’이라는 것이 관례인데, 숙소안의 기물을 망가뜨리거나, 음료수 등을 음용하였을 경우 이를 맡겨둔 ‘야징’에서 제하고 돌려 받게 된다. 
 

▲ 이족의 동상     ©이시백
 
저녁을 숙소 인근 식당에서 하게 되었는데, 커다란 공장 구내식당 같은 내부는 손님이 없어 한산하기만 했다. 청주라는 술을 곁들였는데, 향이 심하고 들척지근하여 마시기 어려웠다. 중국내에서는 꽤 유명한 술이라는데, 도우미 윤병규님이 마개를 열어 보더니 냄새가 다르다며 주인에게 항의하여 다른 술로 바꿔 오게 했다. 중국에서는 심심찮게 가짜로 만든 밀주를 만나게 되는데, 심한 경우 공업용 알콜을 써서 실명을 하는 사고도 있다 한다.

숙소로 돌아와 욕실에 들어가니, 고수로 알려진 향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목욕 수건이며, 비누에도 그 냄새가 배어 있는 듯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쁘야오 시향차이’. 혼자서 중얼거려 보면서, 외국인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마늘 냄새를 견디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겸손히 견뎌 보기로 했다. 여행을 나선 이가 여전히 남겨 두고 온 습(習)의 짐을 벗어내지 못했나 보다. 

 

운남성 일대의 여행 자료나 안내가 필요한 분은 쿤밍의 ‘투투하우스’ 지리산님이 운영하는 카페(http://cafe.naver.com/chinahappy)에서 도움을 얻으실 수 있다고 합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09/01/21 [19:16]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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