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하이호에서 남조국을 꿈꾸다
첫 여행자를 위한 윈난 여행 길잡이 ④
 
이시백


▲ 남조풍정도 일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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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족의 샤핑 시장 구경하기

'넘버3' 게스트하우스에서 단체로 콩나물 해장국을 아침으로 먹었다. 숙주나물처럼 짤막한 콩나물만 빼고는 거의 한국에서 먹는 콩나물 해장국과 비슷했다.


▲ 샤핑시장 향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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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대로 하지 못한 시장 구경을 마음 놓고 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가자니, 이따금 길가의 밭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나 군인들이 나와 수로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아마 무슨 환경정화 봉사활동 비슷한 날인 듯했다.

10시 40분쯤, 샤핑 시장에 도착했다. 월요일에만 열린다는 바이족(백족)들의 샤핑(沙平) 시장은 얼핏 보기에 모란시장의 풍경과 비슷했다. 남염(藍染)천이 내걸린 골목을 지나자, 우선 향긋한 냄새가 발길을 당긴다. 각종 향료와 차들을 큰 부대에 담아 팔고 있다.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색색의 향료들에서 풍기는 냄새는 고혹적이었다.



▲ 샤핑시장 이동 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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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퉁이에 색안경을 쓴 채 점잖게 앉아 있는 노상이 눈을 끈다. 펼쳐 놓은 손바닥만한 좌판에는 펜치와 이빨들이 즐비하다. 말로만 듣던 이동 치과이다. 충치를 뽑고, 대신 끼워 주는 인조 치아란다. 40여 년 동안 치과 의사 노릇을 해 왔다는 그이는 얼굴의 사마귀나 점도 뺀다고 했다. 눈 밑에 매달린 점을 가리키자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이 없어 즉석에서 점을 빼는 의술을 체험해 보지 못한 것이 그이도 아쉽고, 나도 아쉬웠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골동품이나 장신구들을 파는 좌판들이 꽤 많았는데, 안내자의 말에 의하자면 대부분 가짜 골동품이란다. 아버지가 묻어 놓은 걸 아들이 캐어내어 파는 실정이란다. 색색의 자수를 놓은 백족 고유의 허리띠도 많이 나와 있다. 값을 물으니 한 개에 이십 위안이란다. 그냥 돌아서니 계산기를 꺼내들고 와 10 위안으로 재빨리 값을 내린다.  

푸릇한 풀을 자전거에서 한 짐 내려놓는 이가 있어 돌아보니, 익모초였다. 부인병이나 더위에 약으로 먹는 우리네 풍습에 비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했다. 야채들을 늘어 놓은 좌판 앞에는 눈에 익은 마늘이나 파, 배추나 무도 눈에 띄었다.



▲ 샤핑시장 남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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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늘어놓은 남염천에 흥정이 벌어졌다. 침대나 식탁에 덮을만한 크기의 남염천의 값을 물으니 100위안을 부른다. 안내하던 윤병규씨가 사정없이 60위안으로 깎았다. 지나치게 깎는 게 아닌가 안쓰러워하니, 실제로 그들이 들여오는 값은 턱도 없이 헐하다며 너무 할 정도로 깎으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남염천은 내일 들를 조우청(周城)의 남염 공장에 가서 사면 좀 더 싸고 다양한 것을 고를 수 있다고 했다.

12시 40분쯤 고성으로 돌아와, 점심으로 얼쓰라는 걸로 해결했다. 모양은 국수인데, 맛은 진득거리는 떡 같았다. 일종의 떡국수라고나 할까. 미시엔과 값이 비슷한 5원인데 맛이 좋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미시엔이 더 좋았다. 다른 식당과 다름없이 요리 재료들이 앞에 즐비하니 놓여 있는데, 그 가운데는 살아 있는 두꺼비도 있었다. 요리법을 물으니 볶아서 먹는다고 했다.


남조풍정도의 하룻밤 주인이 되다

  
  
▲ 남조풍정도 가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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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남조 풍정도로 가기로 했다. 남조풍정도 투어는 따리에서 '넘버3'가 주관하기 때문에 함께 가는 다른 팀을 기다리느라 오후 4시까지 여유가 있었다. 카페 이층에서, 필시 자신보다 늦게 돌아올 엽서를 쓰거나, 기타에 맞추어 함께 노래를 부르자니, 무엇보다 일정에 여유가 있는 이번 여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300킬로미터씩 정신없이 초원을 달리던 몽골 고비의 여행에 비하면 무엇보다 여유로워 좋았다.

오후 4시 15분쯤, 제임스씨의 안내로 남조풍정도로 향했다. 얼하이 호를 따라 덜컹거리는 길을 먼지를 뒤쓰며 한 시간 가량 달렸다. 문자 그대로 하자면, 남조의 풍정을 느끼게 하는 섬이라는 의미를 지닌 섬이 멀리 뵈기 시작했다. 책의 소개로 남조풍정도의 아름다운 정취를 먼저 읽은 이들은 잔잔히 발자락에 흔들리며 잠을 재우던 얼하이 호수의 물결쯤에 이끌렸을 것이다.

수다한 여행객들이 그런 문자들에 이끌려 낯선 곳을 더듬어 찾기도 하고, 또 때로는 지나친 꿈의 신기루 앞에 거품처럼 무너지기도 한다. 한동안 모 씨의 책이 수많은 여행객들을 인도로 향하게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인도를 여행하기 전에 절대 그의 책을 읽지 말라는 친절한 금기사항을 일러 주는 이들이 늘고 있단다.

낯선 곳을 향하는 여행자의 마음이 어찌 한 가지일까. 내게는 낯설고 경이로운 것이 남에게는 익숙한 다반사일 수도 있고, 내게는 끝없이 눈물이 흐르는 감동이 남에게는 하품이 나는 일상의 풍경일 수도 있다. 적어도 제 살던 곳을 벗어나 낯선 곳의 일탈을 꿈꾸며 떠나는 이에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섬에서 나만의 하룻밤을 맞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얼마나 그윽한 유혹이랴.



▲ 남조풍정도 일몰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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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에 덮인 유채꽃들이 드문드문 심겨진 밭을 지나, 흔들리던 차가 물가에 멈춘다. 기관 소리를 퉁퉁거리며 배 한 척이 재빠르게 다가온다. 배의 고물 너머로 섬 하나가 보인다. 과장되이 말하자면 조금 멀리서 달려와 다리를 넓게 벌리고 뛰면 닿을 만한 거리에 섬이 떠 있다. 얼핏 보자면 육지에서 비져 나온 한줌 흙덩이라고 할까.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을 더듬어보자니, 가평의 남이섬을 닮았다. 배에 올라 뭍을 떠난다. 가깝던 풍경들이 뒤로 물러서며 제법 쓸쓸해진다. 이제 막 기울기 시작한 저녁 해는 얼하이호에 누워 고기처럼 비늘을 반짝인다. 3000여 종의 물고기가 서식하는 얼하이 호에선 낚시가 금지란다. 보호어종이 서식하여 일부 허가 받은 현지 어부들에게만 새우잡이에 한하여 어로 행위가 허용될 뿐이란다. 넓은 땅과 물을 자랑하는 중국이 생태환경에 대해 기울이는 노력과 정성은 예상을 넘어설 정도이다. 이 거대한 담수호의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한 군데뿐인데 그 쪽 마을의 농사를 거두어들이는 3월까지 기다리느라 수위가 평소보다 높다고 했다.

도선장 부근에 자리 잡은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띤다. 양리핑(楊麗萍)이라는 중국의 무용가가 어머니를 위해 건축비 3520만 위안을 들여 3년 여에 걸쳐 지은 별장이라고 한다. 따리의 바이족 출신인 양리핑은 타이족(傣族) 고유의 새춤을 토대로 공작춤이라는 안무로 바꾸어 세계적인 명망을 얻었다는데, 그 별장 안에는 인근 바이족을 위해 지은 절도 있어 많은 칭송을 얻고 있다 한다.



▲ 사일모 상 남조풍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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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풍정도의 선착장 앞에 내려서자, 바이족의 여 시조인 사일모(沙壹母) 상이 우뚝 서서 맞이한다. 그가 낳은 여덟의 자손들 상도 거느리고 있는데, 그 여덟의 자손이 각기 부족의 대표가 된다고 한다.  

바이족 고유의 전통 양식에 따라 지어진 집에 여장을 풀고 제임스씨의 안내로 남조풍정도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섬 안에는 오성급의 호텔이 있는데 그 광장 앞에는 대리국을 세운 단종의 상을 중심으로 거대한 동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단종은 실질적으로 대리국을 세운 단사평의 조부가 되는 사람이라 한다. 주변에 서 있는 동상 가운데는 대리국을 정벌한 쿠빌라이칸의 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바이족들에게 힘의 상징으로 섬겨지고 있다고 한다.

공들여 지은 호텔은 1박에 3888위안이나 하는 특실까지 갖춰져 있지만, 오후 6시가 되면 문을 닫고 경비요원만 남기고 문을 닫는다고 한다. 남조풍정도의 입장료만으로도 운영에 훙분한 수익이 되기에 호텔 손님 유치에는 별로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호텔 앞에는 대리석 242개를 붙여서 만들었다는 거대한 관음불상이 서 있었고, 달을 보기에 좋다는 관월정도 호수 가까이 놓여져 있었다.

남조풍정도는 원래 남조국의 왕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섬으로, 이후 왕족들의 휴양지가 된 남조풍정도는 바이족의 공동묘지격으로 무덤이 많이 있었는데, 1997년 4월경에 정부가 무덤을 이장시키고 1억 위안을 들여 지금과 같은 관광지로 단장을 하여 새로 문을 열었다 한다.


  
▲ 세수간 남조풍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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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3' 게스트 하우스의 주방장까지 대동하여 차린 남조풍정도의 저녁 식사는 한국식 그대로였다. 숯불에 굽는 돼지갈비와 삼겹살에는 상추와 고추, 마늘이 곁들여졌다. 갖가지 음식에 이어 마지막으로 제공되는 구수한 누룽지 숭늉에 이르기까지 음식은 완벽하여 오히려 불만일 지경이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간간이 들려오는 물결소리를 들으며 맥주와 백주인 하칭따마지우(鶴慶大麥酒)로 이어진 남조풍정도의 정취는 밤이 깊을수록 더해갔다.

섬의 위락시설 디자인을 담당한 중국인 화가가 약간의 공포적인 분위기를 주조로 하였다는데, 이곳의 화장실은 바닥이 핏빛 같은 붉은 칠을 하였다. 널찍한 화장실 앞에는 물통이 놓여 있어 용변을 보러 갈 때마다 그 앞의 물을 한 통씩 채워 들고 들어가야 한다. 그 때문에 굳이 노크를 할 필요가 없이 앞에 놓인 물통만 살피면 되었다.

중국 여행에서 이따금 맞는 측소(변소)는 첫 여행자로서는 난감할 만하다. 앞이 열린 채 칸만 나뉜 채 쭈그리고 앉아야하는 변소는 일렬로 이어진 하수구를 따라 옆에서 일을 본 이의 용변이 물에 둥둥 떠내려오는 장면을 다리 밑으로 관람하여야 하는 고충을 겪어야 한다. 그에 비하면 남조풍정도의 측소는 가히 칭송 받을 만은 하다. 나중에 설산을 마주 본 채 앞이 탁 트여 있는 호도협의 티나 게스트하우스에서 본, '천하제일측소'에 비하면 조금은 감동이 덜할 만도 하지만.


  
▲ 별채의 침실 남조풍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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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일, 이층의 구조로 되어 있는 백조 전통의 가옥과 별도로 상당한 높이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게 되는 별채의 숙소가 있다. 이곳은 따로 화장실이 없어 밤중에 층계를 따라 내려가야 하기에 자칫 술 취한 여행자들에게 각별한 조심을 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사방이 물로 잇닿아 있는 섬에서 술에 취한 이들이 물 위에 뜬 달에 홀려 밤길을 혼자 나다니지 않기를 권한다. 자칫 발을 헛디뎌 어두운 물에 빠진다면 위험에 빠질 염려가 많다. 그만큼 납조풍정도의 밤은 집 떠난 여행자를 매혹시킬만한 정취를 지닌 곳이라 하겠다.

  

▲ 물새 남조풍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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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찾으려면 '넘버3' 게스트하우스에 튜어 신청을 하여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숙식과 운임 일체를 포함하여 일인당 250위안이 들었다. 적어도 저녁 여섯 시부터 아침 열한 시까지는 일체의 다른 방문객은 받지 않는다고 하니, 어디선가 날아온 물새와 더불어 모처럼 작은 섬의 하룻밤 주인이 되어 보는 체험도 자주 있지는 않을 법하다.

바이족의 가옥에 누워, 밤새 찰랑이는 물결 속에서 이따금 지나가는 바람소리처럼 들려오는 한 부족의 명멸을 더듬어보는 것도 남조풍정도에서 느낄 수 있는 여행자의 색다른 경험이라 하겠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09/02/02 [12:5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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