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의 맑은 물이 창밑에 흐르는 리지앙
첫 여행자를 위한 윈난 여행 길잡이 ⑥
 
이시백




▲ 수로 리지앙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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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리(大里)를 떠나는 날이다. 아침에 제대로 된 콩나물 해장국이 나왔다. 불과 며칠 묵었건만 떠나는 것은 여전히 뒤를 돌아보게 한다. 여행자들이 구름처럼 오고 가는 게스트하우스이건만, 낯선 곳을 향해 떠나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며칠 동안 애써 준 게스트하우스의 종업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넘버 3’ 계단 앞에서 주인인 제임스 씨와 단체사진을 찍고 모두들 바이족 소녀들과도 석별의 아쉬움을 나누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늘 헤어지는 일에 익숙해야 하는 직업도 간단치 않다.


손을 흔들며 따리를 떠난다

  

▲ 숭성사 삼탑 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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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라 뵈는 창산을 배경으로 삼탑사(崇聖寺三塔)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좀 더 경관이 좋겠지만, 입장료가 비싸서 밖에서 사진만 찍기로 했다. 당나라 초기 남조의 소성왕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알려지는 숭성사는 남조국과 대리국의 왕가 사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큰 규모로도 유명하지만, 창산을 배경으로 얼하이호를 내려다보는 따리 삼탑으로도 유명하다.

숭성사 삼탑이라고도 불리는 이 탑은 중국의 4대 석탑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수려하고 웅장한 탑이다. 69.13m의 사각 13층탑을 중심으로 세우고, 42m의 팔각 10층탑을 두 개 더 세웠다. 이 탑의 아름다움은 1km 가량 떨어진 삼탑도영공원(三塔倒影公園)에서 보인다고 한다. 이 공원의 연못에 비친 거꾸로 선 탑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별 세 개가 그려진 자칭 '삼성급 측소' 앞에서 차를 멈춘다. 입구에 앉아 있는 여인이 일인 이각의 사용료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빛내고 일어선다. 조금 청소가 되어 있을 뿐, 특별히 잘 갖춰진 시설의 화장실도 아니었다. 멋모르고 입장료를 안 내고 들어갔던 사람을 용케 알고 집어낸다. 가히 삼성급 관리인답다.

차에 가수를 하는 동안, 주차장 옆에 오밀조밀 과일을 늘어놓은 장사꾼 앞에 놓인 콩을 집어 먹는다. 일단 먹으면 사야 한다는 말에 누군가 대표로 한 봉지를 샀다. 서리태를 닮은 볶은 콩은 우리 콩 맛과 다를 바 없었다. 열 개에 15위안 정도하는 곶감은 큼지막하고 맛도 좋았다. 흡사 대추를 닮은 푸르스름한 과일을 먹어보니, 대추 맛 비슷하면서도 약간 달짝지근하고 시큼했다.

오후 1시경, 나시족 마을을 지난다. 기와를 얹은 집들은 지붕 중간에 고양이 모양의 조각물이 얹혀 있었다. 정확한 의도는 모르지만, 일종의 부정함을 쫓아내는 벽사의식(辟邪儀式)이리라는 의견들이다.


골목길마다 따라다니는 리지앙의 수로

  

▲ 나시족 리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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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반 경, 드디어 목적지인 리지앙(麗江)에 도착한다. 누군가 소리치는 바람에 창밖을 내다보니 멀리 흰눈에 덮인 웨이룽설산(玉龍雪山)이 보인다. 깎아지른 듯한 웅장한 설산의 장엄함에 압도되어 모두 입에서 탄성을 질렀다.  

얼하이 호수를 끼고 조성된 따리가 단씨들의 주거지라면, 진사지앙(金沙江)을 끼고 자리잡은 리지앙에는 목씨(木氏)가 많다고 한다. 역시 고성 지역과 신 시가지로 나뉘어 있는데, 따리에 비해 훨씬 번화하고 활기찼다. 리지앙(麗江)의 고성에 성곽이 없는 이유는 木(리지앙의 주성씨인 木氏)에 담장을 두르면 곤란할 '困'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농담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 리지앙 만고루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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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앙(麗江)은 1995년에 대지진이 나서 고성이 모두 무너졌으며, 이후 복원을 하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한다. 리지앙(麗江)은 원래 나시족의 거주지역이라고 하는데, 본래 모쑤족에 비해 세력이 약했던 나시족이 더 강성해지게 된 원인은 나시족에게는 고유한 문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시족의 고유한 문자가 바로 동파문자이다. 고대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는 원래 나시족 샤먼에게만 전수되던 문자이며, 일반인들은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한다.

고성 지역 안으로는 차량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짐을 들고 이동했다. 미로 같은 골목 길을 십여 개의 큼지막한 트렁크를 끌며 입성하자니, 참으로 그 소리가 요란했다. 고성의 길들에는 빈틈없이 다듬어진 돌들이 깔려 있었는데, 그 위를 구르는 트렁크 바퀴 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민망했다.

대체로 운남 여행은 배낭이 편리하다고 한다. 여행에 앞서 날씨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한 지역에 사계가 있다는 말에 사시사철 옷을 모두 준비하다 보니 배낭 하나만으로는 모자라 모두 트렁크를 준비한 듯했다. 배낭을 두 개 짊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대체로 1월의 운남 날씨는 기복이 심하긴 해도, 한국의 겨울 옷차림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더우면 벗으면 되지만, 추우면 없는 옷을 사 입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입던 두툼한 방한용 파커를 그대로 걸치고 갔는데, 아주 더운 날에 차안에 벗어 두고 다녔지만 대체로 늘 입고 다닐 만했다.

특히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는 날에 운남의 기온은 쌀쌀한 편이었다. 늦가을에서 겨울 차림의 겉옷 두어 벌에 갈아입을 속옷 여분 정도를 가능한 짊어지는 배낭 하나에 보조로 작은 가방 정도가 있으면 무난할 듯하다. 특별히 쇼핑을 많이 할 분이라면 물론 별도의 가방이 필요하겠지만, 가방도 야크 등의 가죽으로 만든 피혁제품이 유명한 리지앙에서 구입하면 되니 한국부터 그 무거운 가방이나 트렁크를 끌고 오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를.



▲ 금붕어 리지앙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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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리지앙(麗江) 고성의 첫 인상은 좁은 골목에도 어김없이 따라다니는 수로였다. 설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고성 안의 모든 길을 흘러내린다. 고풍스러운 집들과 가게들도 그러한 맑은 수로가 있기에 더욱 멋스럽다. 수로에는 금붕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꽃을 담아 놓은 찻집의 창문에서 손을 내려뜨리면 바로 수로에 손이 닿을 정도로 리지앙은 물의 고도이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자면, 이전에는 더욱 수로의 물이 맑았는데 구경거리 삼아 금붕어를 마구 집어 넣는 바람에 수질이 혼탁해졌다고 한다. 집집마다 에도는 수로에서 사람들은 빨래도 하고, 어떤 이는 양치질도 했다. 엄청난 전기를 돌려가며 물을 끌어올려 되흘려 보내는 우리나라의 청계천에 비하자면 훨씬 경제적이고, 미학적이며, 지속가능한 물길이었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꺾고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고샅을 지나 드디어 번화한 거리에 이른다. 가방을 쥔 손이 뻐근해질 거리에 우리가 묵을 숙소가 있었다. 나시족의 전통가옥을 호텔로 바꾼 목왕부(木王府) 호텔이다. 예전의 관아에 해당하는 목부의 바로 곁에 있는 호텔인데 고풍스러운 가옥의 정취를 느끼게 하며, 실내는 또한 잘 정리되고 꾸며져 있다. 2인 1실 기준 150 위안의 숙박료를 깎아 120위안으로 했다. 안내자인 윤병규씨가 호텔 주인과 친구 사이라 특별 서비스를 받은 것이다.  

무엇보다 낯선 여행객들과 한 방을 써야 하는 불편함이 없어 좋았다. 화장실도 양변기가 있고, 샤워 시설도 깨끗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와 고성의 옛 관아인 목부(木府)를 돌아 보았다. 고성 지역의 관람에는 국립공원 관람비에 해당하는 고성 보호비를 지불해야 한다. 일주일 동안 사용 가능한 이 고성보호비를 내면 목부를 비롯하여 고성 내의 주요 관광지 입장을 무료로 하게 된다고 한다.



▲ 목부 리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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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부에 들어서니 예전의 관아답게 규모가 큰 건물들이 줄을 지어 이어진다. 우리네 궁궐 양식과 다른 점은 대개가 2층 이상의 다층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저기 볕 바른 곳에 자리 잡은 매화 화분마다 희고, 붉은 매화들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 피는 운남'이라는 말을 실감시켰다. 의례적인 건물을 지나니 세조가 하사한 만권루(萬卷樓)라는 사액 현판을 걸고 있는 건물이 나타난다. 예전에 도서관 역할을 함직한 건물 안에는 물소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벼루가 있었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느라 일행과 떨어지게 되었다. 뒤늦게 따라 올라가니 탑 모양의 건물 안을 통하여 기다란 회랑으로 이어지는 후원으로 나가게 된다. 그곳에서도 일행이 뵈지 않아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 산꼭대기로 오른다. 고도가 높은 탓인지 조금 빠르게 계단을 오르자니 숨이 턱에 찬다.

가쁜 숨을 헐떡이고 오르자니, 여자 둘이 앉아 있는 입구에 다다랐다. 들어가려니 표를 들어 보인다. 손에 쥔 목부 입장권을 내보였지만 고개를 흔든다. 무어라 이야기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여기서부터는 별도의 입장표를 끊어야 한다는 뜻 같다. 얼마냐고 영어로 묻자, 15위안인데 입장 시간이 오후 4시까지라 늦어서 갈 수가 없다는 듯하다.

일행을 따라가지 못하면 낭패를 볼 것 같아 고민에 빠져 있다가 숨을 돌리고 다시 사정을 했다. 여자들은 답답한지 종이와 펜을 가져다 내민다. 필담이라는 것이다. 무어라 써야 할까. '我願登上'이라고 적었다. 그걸 보더니 여자 둘이 허리를 꺾고 웃는다. 웃음은 만국의 언어라고 했던가. 한결 부드러워진 여자들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한다. 이게 웬 떡인가. '쎄쎄'를 연발하며 들어가려니 다시 표를 내민다. 그래도 표는 끊고 들어가라는 말이다.

15위안을 지불하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만고루라는 현판을 매단 건물이 나타난다. 안으로 들어가려니 이번엔 중년의 남자가 웃음을 띠고 무어라 이야기를 건넨다. 또 돈을 내란 말인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싶어, 못 들은 척하고 위로 올라간다. 이건 건물이 아니라 탑에 가까웠다. 한 층을 오르면 또 다른 계단이 나오고, 아마 여섯 층쯤 올라갔을까.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곳에 이른다.

이곳에도 일행들은 보이지 않는다. 올라온 김에 전망이나 내려다보려는데, 먼지가 뿌옇게 묻은 유리창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겨우 한군데 누군가 깨뜨렸는지, 열어 놓았는지 유리창이 없는 곳으로 고성을 내려다본다. 무수한 기와지붕들로 덮인 고성의 풍경이 한눈에 온다. 막상 보고 싶었던 옥룡설산의 풍경은 나무들에 가려 시원스레 뵈지가 않는다.

터덜거리며 만고루를 내려오려니 입구에 서 있던 중년남자가 무어라 손짓을 한다. 향을 피우고 시주를 하라는 소리였다. 지갑을 뒤져보니 잔돈이 없어 그냥 내려왔다. 신바람이 나서 향에 불을 붙이려던 남자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헛걸음을 하고 내려오자니 그때서야 올라오는 일행과 마주쳤다. 뒤처진 게 아니고, 너무 앞서 간 것이었다. 입장료를 낸다는 말에 모두 고개를 흔들며 내려간다. 결국 나 혼자만 대표로 만고루에 오른 셈이었다.


술집 앞에 선 한복 차림의 나시족 소녀


    
▲ 샤먼 나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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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앙(麗江)의 꿔청(고성)은 화려하게 꾸며진 가게들로 채워져 있다. 운남의 전통적인 시가 구조에 따라 부채꼴로 펼쳐진 골목길들이 중심 광장인 사방가(四方街)로 모인다. 꽃을 심은 창 밑으로 조잘거리는 수로가 흐른다.  

사방가에서 위쪽으로 이동하는 주 도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한다. 우체국도 있고, 전통적인 나시족 차림을 한 마부들과 샤먼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복술과 제사로 부족의 섬김을 받았을 샤먼은 관광객들과 기념촬영을 해 주고 푼돈을 받았다. 나시족의 부족장들마저 가게에 앉아 부적을 써 주고 돈을 버는 일에 동원되었다 하니 말을 더해 무엇하랴. 동파문자는 각종 티셔츠나 가방, 장신구, 그리고 인장에도 새겨져 이곳의 주력 상품이 되어 있었다.


  
▲ 한복 차림의 나시족 리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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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뒤편에는 이중, 삼중의 골목길이 이어져 있는데 대체로 주도로의 가게보다는 물건값이 헐했다. 사방가 가까운 뒤편 골목에는 수로를 따라 무수한 주점들이 붉은 등과 나시족 소녀들을 앞세워 호객을 하고 있었다. 아직 어둡기 전인데, 주점마다 경쟁이라도 하듯, 요란한 음악을 켜놓고, 어두운 실내에서는 연주를 하거나,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두침침하고 원목 탁자들의 분위기가 흡사 예전의 무교동 낙지 골목 풍경을 닮았다.

이 그윽한 고성이 이렇게 시장판이 된 것도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주점 탓이라고 한다. 한때 이곳을 줄지어 찾았던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이런 류의 주점으로 큰 돈을 벌게 되자, 다른 가게들도 이에 뒤질세라 따르게 되었다 한다. 예의 가게 앞에서는 한복을 입은 나시족 소녀들이 호객을 하고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으로 뵈는 남자가 잘못 맨 한복 옷고름을 고쳐 매어 주었다.



▲ 동파지방 리지앙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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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워진 사방가에선 소원을 비는 색색의 연등이 물에 띄워졌다.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한 연등의 불빛이 설산에서 흐르는 물길을 따라 꽃잎처럼 하염없이 흘러내려갔다. 저녁 식사는 ‘훠궈’라고 하는 중국식 샤브샤브를 맛보았다. 신선로 모양의 그릇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우려내는데, 국물이 시원하고 먹을 만했다.


  
▲ 연등 리지앙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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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일, 이번 여정의 주 목적지인 호도협으로 떠나게 된다. 안내자가 가장 낙오가 우려되는 사람을 지목하였는데, 나도 두 번째로 꼽혔다. 얼마 전, 폐렴을 앓은 병력과 석종사 다녀오는 계단을 오를 때의 내 모습이 심히 불안했나 보다. 다행히 상당한 시간을 두고 여유있게 움직이는 일정으로 고도에 대한 적응은 비교적 잘 되는 편이었다. 내일 있을 트레킹 이야기로 그만 자정을 넘기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눈앞에는 벌써 호도협의 아득한 마방길이 어른거렸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09/02/18 [11:06]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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