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에서 드러난 태양신의 비밀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8)
 
조현설
 
새해를 맞았다. 올해도 여전히 첫 일출을 맞으려고 동해안은 사람의 바다를 이루었다. 어제 해와 오늘 해가 별다를 리 없겠지만 사람들은 기어코 첫 일출에 큰 뜻을 담으려고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징인’(homo symbolicus)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 현대 상징인의 ‘비념’ 속에 빛나고 있는 것은 신성에 대한 동경이라는 생각도 든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굿을 하던 원시적 심성이 여전히 거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 해를 맞으면서 우리 태양신의 이름을 불러 본 이들은 몇이나 될까? 종교를 가진 이들은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을 불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태양신의 이름이라니? 서양신화에 친숙한 이들은 그리스의 아폴론이나 이집트의 라와 같은 이름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겠다. 중국이나 일본 신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희화(羲和)나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태양신은?  
 
평안도 ‘일월놀이푸념’ 에서
명민한 명월각시는
내기에 진 궁산을 위해
구슬옷 지어 잃어버린 힘 회복
 
 
궁산이는 명월각시한테 반해 첫 해에 말 붙이고, 둘째 해에 편지 받고, 삼 년만에 장가를 간다. 각시를 너무 예뻐한 궁산이는 한시도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굶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궁산이가 일하러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명월각시는 자신의 화상을 그려 주며 나무를 해오라고 한다. 일이 되느라고 그런지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각시의 초상이 바람에 날려 아랫마을 배 선비네 집에 떨어진다. 초상에 반한 배 선비는 금을 한 배 싣고 궁산이와 내기 장기를 두러 온다. 먹거리도 없는 집에 내기에 걸 것이 있을 리 없다. 배 선비의 계략에 말려든 궁산이는 마누라를 걸고 내기를 한다. 마누라 걸고 도박하는 노름꾼의 원형이 여기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기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궁산이가 진다. 소식을 들은 명월각시는 탄식 중에도 꾀를 낸다. ‘종년을 나처럼 꾸미고 나는 종년 차림에 다리까지 절면 종년을 데려 가겠지.’ 이 대목에서 잠시 ‘종년’의 인권이 걱정스럽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배 선비가 데려가는 것은 명월각시니까. “남의 마누라를 데려가면 평생 원한을 쌓을 테니 마당에 물긷는 종년을 나를 주소.” 제 꾀에 발목이 잡힌 꼴이다. 명월각시는 어쩔 수 없이 배 선비를 따라가면서도 말미를 얻어 궁산이의 옷을 지어주고 먹을 것을 마련해 준다.
 
그럼 혼자 남은 궁산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먹을 것이 떨어지자 이름처럼 궁해져 거지 신세가 되어 떠돈다. 배 선비를 따라 아랫마을로 간 명월각시는 웃음을 거두고 입을 다문다. 답답해 가슴을 치는 배 선비에게 소원을 들어주면 말을 하겠다고 한다. 언제 궁산이 소문을 들었는지 사흘 짜리 거지잔치를 여는 것이 소원이란다. <심청전>의 거지잔치가 겹쳐지는 장면이다. 궁산이는 첫날은 맨 아래쪽에, 둘째 날은 맨 위쪽에 앉았다가 못 얻어먹는다. 마지막 날 겨우 얻어먹고 나가는데 명월각시가 ‘구슬옷’을 던지면서 누구든 이 옷을 들어 입을 수 있으면 내 남편이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거지들이 서로 달려들어 옷을 입으려고 해도 입을 수가 없다. 그런데 궁산이가 옷깃을 가볍게 들어 걸치자 하늘로 붕 솟아올랐다가 내려온다. 보고 있던 배 선비가 가만있을 리 없다. 배 선비도 옷을 입자 하늘로 떠오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입긴 입었는데 벗는 재주가 없는 배 선비는 다시는 내려오지 못하고 죽어 솔개가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게 무슨 태양신화인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명월각시와 궁산이가 다시 만나 살다 죽어 일월신이 되는 데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 일월신의 내력을 풀이한 신화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일월신을 즐겁게 하는 기도라는 뜻을 지닌 <일월놀이푸념>(1933년 평안북도 강계의 무당 전명수 구송)이라는 제목까지 붙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큰굿의 뒤풀이에서 음식과 춤으로 신을 위로할 때 불리는 노래라는 사실도 뒷받침이 된다. 하지만 이 신화는, 태양마차를 모는 아폴론이나 10개의 태양을 여섯 용이 끄는 수레에 차례로 싣고 달리는 희화와 같은 태양신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무슨 태양신화가 이래? 


△ 중국 지린성 집안에 있는 고구려 오회 4호분 천장 받침돌에 그려진 해의 신과 달의 신의 모습. 남성 모습의 해의 신(사진 오른쪽)이 들고 있는 해 속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세발 달린 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여성 모습의 달의 신(사진 왼쪽)이 들고 있는 달 속에는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가 들어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태양신이 된 거지 궁산이’ 이야기 안에는 신화의 논리가 숨어 있다. 그 비밀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풀어야할 수수께끼는 둘이다. 첫번째 수수께끼가 명월각시가 거지들에게 던진 구슬옷이라면 두번째 수수께끼는 명민한 명월각시와 어리석은 궁산이라는 신화 특유의 남녀관계다. 먼저 구슬옷을 풀어보자. 대체 무슨 옷이길래 보통 사람은 들지도 못하는데 임자는 입으면 하늘로 올라가고 벗으면 내려오는가? 선녀의 날개옷 혹은 성룡의 영화 <턱시도>를 연상시키는 이 옷의 비밀을 풀려면 살짝 우회로가 필요하다. 우회로란 흔히 우리 일월신화의 자취를 간직한 이야기로 알려진 <연오랑 세오녀>를 경유하는 길이다. <연오랑 세오녀>를 보면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차례로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들이 각각 일월의 정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부부를 모셔오려고 찾아간 사신에게 이미 일본의 왕과 왕비가 되어 있는 두 사람이 준 것이 ‘세오녀가 짠 옷감’이라는 사실. 이 비단을 제물 삼아 제사를 지내자 신라의 일월은 빛을 되찾는다. 여기서 우리는 ‘세오녀-옷감-빛’ 사이에 뭔가 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세오녀·선문대할망의 길쌈은
달의 여신 ‘창조의 재생’ 능력
제옷이 아니라 남편옷 지은건
남성중심 위계질서의 투영
 
 
세오녀는 탁월한 길쌈 능력을 지닌 여자였다. 동시에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달의 정령, 달의 여신이었다. 직조공이란 직업을 발명한 이집트의 여신 네이트나 직조 기술로 유명한 그리스 여신 아테나를 생각해 보면 달의 여신 세오녀의 길쌈 능력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간과 운명을 관장하는 달의 성스러운 이미지가 베짜기라는 여성 특유의 노동과 결합하면서 탄생한 것이 달 여신의 옷감짜기 능력이다. 동시에 달은 풍요와 재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달 여신이 짠 비단이 신라의 사라진 빛을 재생시킬 수 있었던 이유가 짐작이 간다.  명월각시가 던진 구슬옷의 비밀이 여기서 풀린다. 명월각시는 이름이 말하듯 달의 여신이다. 재생의 신 명월각시가 짠 구슬옷은, 세오녀가 짠 비단이 일월의 빛을 되찾아왔듯이, 죽음에 사로잡힌 존재를 재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 무능력하게만 보이던 궁산이가 구슬옷을 입자 잃어버리고 있었던 태양신의 능력을 회복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궁산이는 이름처럼 무궁해진 것이다.
 
그런데 궁산이의 잃어버린(혹은 잠재된) 능력을 되살려내는 명월각시의 이미지에는 재생의 신 이상의 뜻도 숨어 있다. 그녀는 자신이 아니라 남편을 위해 구슬옷을 짰기 때문이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의 등경돌이 선문대할망이 길쌈할 때 켰던 등잔이라는 전설이 있듯이, 길쌈은 창조여신의 문화 창조 과정의 일부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승되는 구전신화에서 창조여신의 제 옷 만들기는 대개 실패로 돌아간다. 선문대할망의 속옷 만들기(6회 참조)나 충청도 해안 지역에서 전승되는 갱구할머니의 옷 만들기가 그렇다. 오히려 여신들이 옷 만들기에 성공하는 것은 남편의 옷을 만드는 경우다. 붉은 빛 조복(朝服)을 만들어 남편에게 주었다는 선도성모나 <일월놀이푸념>의 명월각시가 그런 경우다. 왜 그럴까?
 
여신의 주변화가 답일 것이다. 청동기 혹은 고대국가 이후 여신은 남신의 배필이나 딸로 위계가 조정된다. 남성중심적 현실의 신화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창조여신의 옷 만들기가 실패하고, 남신의 배필이 된 선도성모나 명월각시의 옷 만들기가 성공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월놀이푸념>의 명월각시가 어리석은 남편의 내기 때문에 당한 고난 속에도 현실의 남녀관계가 깊이 스며 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칠 수 없는 진실이 하나 있다. 역사 속에서 소외되었지만 여전히 풍요와 재생의 힘을 자궁 안에 간직하고 있는 달의 여신 명월각시의 지혜와 길쌈이 어리석은 거렁뱅이 궁산이를 태양신으로 만들었다는 신화적 진실. “궁산이” 하고, 새로 솟아오른 우리 태양신의 이름을 부를 때 마음속으로는 명월각시도 되새겨볼 일이다.


조현설 기자는 중국 베이징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를 했고, 돌아와서 티베트·몽골·만주·한국 신화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고려대·동국대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아시아 신화학의 구축을 공부의 한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우리 신화를 동아시아 신화의 시각에서 읽는 공부의 여적(餘滴)이다. 그 동안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 『문신의 역사』, 『고전문학과 여성주의적 시각』(공저), 『한국 서사문학과 불교적 시각』(공저),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역서) 등을 펴냈다.
 

기사입력: 2009/06/29 [10:48]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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