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낙엽송과 호수가 어울려 이뤄내는 한 세상
<몽골 여행기 6> 바람결 따라 달린 초원길 2,000Km
 
최성수
   
 

▲ 산 허리에 구름이 띠를 두른 흡스굴의 아침 풍경    © 최성수

                             
 
  소망하드에는 파 꽃이 피고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다. 온 몸이 상쾌한 이 느낌은 적당한 바람과 습도, 눈이 시린 풍경 때문이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배를 탄다. 물이 더할 나위 없이 맑다. 물 속 깊은 곳까지 다 들여다보일 정도다. 물빛은 푸르다 못해 초록에 가깝다.
아버지와 아들이 번갈아 운전하는 작은 배에는 우리 일행뿐이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이물에 서서 바람을 쐬다가 심심하면 고물까지 천천히 옮겨 다니며 호수와 주변의 산과 시베리아 낙엽송들을 바라본다. 호수 주변 산허리로 안개가 띠처럼 드리워져 있다. 가슴 속이 다 트이는 듯, 시원하다. 바라보기만 해도 넉넉하고 싱그럽다. 물살도 잔잔하다. 호수 주변으로 드문드문 겔이 자리 잡고 있고, 더러는 목조 주택도 보인다. 평화로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데,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배가 천천히 호수 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땅으로 다가간다. 배를 대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인데, 긴 나무다리를 내리더니 먼저 뛰어 내려간 선장의 아들이 줄을 당겨 바위에 매단다. 
 
소망하드다. 호수 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땅이 제법 가파른 벼랑으로 이어지다가 툭 끊어진 곳이다. 제대로 된 길조차 없는 곳이지만, 풍광 하나는 일품이다. 호수에 닿아있는 벼랑 끝까지 가자, 어워가 하나 놓여있다. 몽골은 곳곳이 어워 천지다. 그만큼 빌어야 할 소망이 많다는 뜻일까? 어머니의 호수 가까이까지 다가와 빌어야 어떤 간절한 소망이 이렇게 어워를 만들게 한 것일까? 이루지 못한 소망의 흔적처럼 어워의 깃대는 쓰러져 있다. 
 
바위 벼랑을 내려다보니, 십 여 길 될 정도로 높다. 그런데 바위 벼랑 틈마다 야생화들이 피어 곱다. 호수의 파란 물을 배경으로 색색의 자태를 자랑하는 꽃들은 흡스굴이기 때문에 더 고운 것이리라. ‘어머니의 바다’에서 태어난 꽃이니 자식쯤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꽃이 더 소중해 보인다. 
 

▲시베리아 낙엽송과 호수가 어울려 이뤄내는 한 세상   © 최성수

                             

▲   소망하드, 거기 소망 하나쯤 빌고 올 땅이 있다  © 최성수

                         
좁고 아슬아슬한 벼랑 위를 걸어 돌아오는데, 가파른 벼랑 사이 눈에 익은 흰 꽃이 피어있다. 파꽃이다. 사방을 둘러보니, 군데군데 파꽃 천지다. 일부러 심어 기르는 파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야생의 파꽃은 작물이 아니라 정말 야생화의 하나다. 인간의 손으로 때를 타고 자란 것들보다 저렇게 저절로 나서 저 혼자 꽃피운 것들이 더 곱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곳이 흡스굴이기 때문이다.
 
소망하드의 육지 쪽은 바닷가처럼 평평하다. 천천히 호숫가로 내려가는데, 그곳도 야생화 천지다. 호수가로 굵은 나무들이 죽어 마른 채로 쓰러져 있거나 서있다. 죽은 나무의 맨질맨질한 살결에 호수의 세월이 되비치는 것 같다. 부드럽게 밀려오는 물살조차 둥글둥글하다. 호수의 이름이 ‘어머니의 호수’여서일까? 자식들의 온갖 뒤치다꺼리에 닳고 닳아 세월의 무게를 안고 둥글게 마모된 어머니의 마음처럼, 호수가의 조약돌이 윤나게 둥글고 부드럽다. 나는 조그맣고 둥근 조약도 하나를 주워 손 안에 넣고 만지작거리다 주머니에 넣는다. 그러자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 진다. 어머니의 마음을 간직한 탓일까?
 

▲ 소망하드에는 온갖 꽃이 피어 곱다. 파꽃도 한 몫 한다.    © 최성수

                                    
매화마름 떠있는 차탕족 마을
 
다시 배가 호수를 미끄러진다. 멀어지는 소망하드의 풍경이 고즈넉하고 순결하다. 여행은 마음 한 자락을 가는 곳에다 떨어뜨리고 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또 하나의 마음을 흡스굴 소망하드에 남겨두고 떠난다. 
 
한참 더 떠가던 배가 산기슭 아래 습지 가까이에서 멈춘다. 호수 앞쪽으로 초록색 습지가 넓게 펼쳐져 있고, 습지 끝에 시베리아 낙엽송 숲이 우거져 있다. 
 
호수 가까이 조그만 웅덩이가 하나 있고, 그 곁에 나무 한 그루기 기우뚱하게 서 있다. 웅덩이에 나무 그림자가 비쳐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연출해 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웅덩이에 하얀 매화 꽃잎이 점점이 떠 있다. 
 
“아, 매화마름이다!”
 

▲ 차탕족 마을 앞 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하나는 초원에, 하나는 물에.    © 최성수

                             
일행 하나가 감동에 어린 말을 내뱉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몇 해 전 강화도에서 군락지가 발견된 적이 있는 물풀이다. 강화도 매화마름 군락지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기도 할 만큼 귀한 식물인데, 이곳에는 이렇게 작은 웅덩이에 흔하게 피어 있다니! 몽골이야말로 자연의 생명체에게는 안식의 땅인 것 같다.
 
습지에는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 있다. 노랗고 파랗게 붉은 꽃들은 저마다 자신의 색으로 피어 세상을 밝힌다. 그리고 그 꽃 곁에서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꽃구경에, 풍경 구경에 스적스적 숲 가까이로 가니, 인디언 천막 같은 겔이 몇 채 서 있다. 차탕족 마을이다.
 
차탕족은 이제 약 200여명 밖에 남지 않은 몽골의 소수민족이다. 차탕은 ‘순록을 쫓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순록을 기르며, 순록의 먹이를 따라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다. 순록의 젖을 먹고, 순록 가죽으로 겔을 지어 살며, 여름이면 중앙 시베리아까지 이동하던 이 민족은 이제 극소수만 남아 전통의 생활을 영위할 뿐이다. 
 

▲ 차탕족의 겔인 오르츠. 인디언 집과 흡사하다    © 최성수

                             
 

▲  차탕족 일가. 이동을 포기한 그들의 마음에 얼굴에 드러나는 것 같다.   © 최성수

                            
차탕족의 겔을 ‘오르츠’라고 하는데, 긴 나무를 삼각형으로 받쳐 천을 두른 것이, 전형적인 몽골의 겔과 많이 다르다. 몽골의 전통 겔도 설치와 이동이 간단하지만, 차탕족의 오르츠는 더 단순해 보인다. 안에 들어가 보니, 살림살이라고 할 것도 없다. 가운데 난로를 하나 두고 벽 쪽으로 침대 몇 개가 놓인 것이 전부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자세가 집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다른 대부분의 차탕족은 순록을 따라 이동했지만, 지금 호숫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동을 포기하고 관광객의 호기심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삶의 곤고함이 남아있는 차탕족의 얼굴에 드러나는 것 같다. 
 
숲 속에는 순록을 매어두고, 관광객에게 사진 찍는 비용을 받는다. 관광객의 등쌀에 지쳤는지, 순록은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좀체 움직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세히 보니 발을 끈으로 묶어놓았다. 이제 순록은 풀을 뜯으러 자리를 옮길 줄 모르고, 차탕족은 순록을 타지 않고 관광객들에게 손을 내민다. 오랜 세월 살아온 한 소수민족의 삶의 뿌리가 거기서 그렇게 마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몽골리안 루트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바이칼의 알흔 섬에서 퍼져 나온 몽골리안 중 일부인 코리브리야트 족은 순록을 따라 시베리아 타이가 숲 지대를 거쳐 남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차탕족 역시 순록을 쫓아 남으로 내려온 몽골리안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 장구한 세월의 무게도 자본은 한 순간에 스러지게 하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으로 바라본 차탕족의 얼굴에는, 내 마음 때문인지, 쓸쓸함이 가득 배어 있는 것 같다.
 

▲이동하지 않는 순록은 슬프다!     © 최성수

                             
차탕족의 천막집 곁에는 4-5미터 정도 되게 노점이 늘어서 있다. 양털이나 낙타털, 혹은 나무로 만든 조각품이나 모자, 기념품 따위를 파는 사람들이다. 머리를 길게 땋은 사내는 물건 팔 생각조차 없는 듯, 의연한 자세로 앉아 호수만 바라보고 있다. 밤새도록 낙타털이나 양털로 한 땀 한 땀 모자를 뜨고, 나무를 깎아 기념품을 만들고, 이렇게 햇살 맑은 날 초원에 나와 관광객들의 푼돈을 바라며 앉아있는 저 사람들은 어쩌면 물건을 파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들은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저렇게 햇볕에 말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물건들을 흘낏흘낏 보는데, 중간쯤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말을 건넨다.
“하나 사세요.”
또랑또랑한 우리말이다. 아니, 한국 사람이 물건을 파나? 생긴 것이 워낙 우리와 똑같은데, 우리말을 하니 그런 의심이 든다. 
아가씨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볼 살이 도톰하고 긴 생머리에 앳된 얼굴이 순박하다. 
 
“한국 말 잘 하네요. 어디서 배웠어요?”
내가 다가서자 아가씨의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스쳐 지난다.
“그냥 혼자 공부했어요. 한국이 너무 좋아서요.”
혼자 배운 말 치고는 제법이다. 곁에 같이 앉아 있던 소년이 아가씨를 보며 자랑스런 표정을 짓는다. 나는 한동안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름이 뭐냐?”
“버더러다.”
“버더러? 무슨 뜻이냐?”
내 물음에 아가씨는 배시시 웃는다.
“크리스탈.”
“아, 수정.”
 

▲ 한국말을 곧잘 하던 버더러와 그의 동생 잉크버을트    © 최성수

                              
내 말에 아가씨가 아주 좋아한다. 크리스탈이 한국말로 무엇인지 몰랐는데, 알게 돼서 좋다는 거다. 대학에서 아트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며, 방학이라 고향에 돌아와 만든 물건을 팔러 나왔다고 설명한다. 옆에 있는 아이는 자기 동생이라며 이름을 알려준다. 잉크버을트란다. 강철조각이라는 뜻이고, 자기 동생은 영어를 좋아한단다. 동생에게 영어로 말을 시켜보니, 그저 초보적인 단어만 몇 개 알 뿐이다. 그래도 누나의 얼굴에는 동생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득하다. 
 
우리네 누나들도 그랬다. 자신을 희생해 동생들을 돌보면서, 동생의 작은 장점 하나로 자랑을 삼던 우리네 지난 시절의 누님의 모습이 거기 흡스굴의 버더러에게 남아 있었다. 머리를 길게 땋고 의연하게 앉아있는 청년은 자기 오빠인 에른버을트란다. 무슨 뜻이냐니까 옆의 동생이 ‘holy piece'라고 말한다. ’신성한 조각‘이란 뜻이란다. 이름의 뜻을 듣고 보니, 긴 머리에 햇살이 엉기는 그 청년의 모습이 정말 신성해 보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습지를 지나 배에 오른다. 습지에는 곳곳에 말똥이 제 몸을 썩히고 있고, 말똥 옆에는 노랑치마일 듯싶은 꽃이 곱게 피어 있다. 작은 습지에 나무 그림자가 흔들리고, 매화마름 곱게 피어 물 위에 떠 있는 곳,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한국의 디자인을 배워보고 싶다는 꿈을 지닌 순수한 소녀 버더러를 만난 흡스굴의 여름 어느 하루 풍경을 나는 늘 잊지 못할 것 같다. 
 
 햇살보다 느리게, 바람보다 천천히
 
배는 눈부시게 푸른 흡스굴 물살을 헤치며 돌아간다. 머리 위로 손에 닿을 듯 하늘이 펼쳐져 있고, 구름이 낮게 흐른다. 이런 풍경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평화다! 평화란 어울려 이루는 세상이고, 그 조화는 자연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인간 존재 속에서 평화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은 자연을 꿈꾸고 그리워하는 것이리라. 
 
겔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니, 양을 잡는다. 눈매가 날카로운 청년이 시베리아 낙엽송 아래서 양을 눕혀놓고, 가슴에 칼집을 내더니, 손을 넣어 숨통을 끊는다. 짧은 순간 버둥대던 양이 숨을 멈추자, 청년은 털을 벗겨내고,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낸다. 순식간이다. 그리고 얼마 후, 캠프 주인이 양 내장으로 만든 순대를 내온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양고기는 저녁에나 먹을 수 있단다. 
 
산책삼아 천천히 겔을 벗어나 호숫가를 거닌다.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흡스굴에서는 새삼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아득하게 펼쳐진 평원이기에, 호숫가에서 호수까지 손에 잡힐 듯해도 걸어가면 제법 먼 거리다. 초원은 온통 말똥과 소똥으로 덮여있다. 바람꽃, 솜다리 지천으로 꽃 세상을 이루는 호숫가 초원으로는 바람조차 상쾌하다. 군데군데 땅 속으로 굴이 있다. 타르박이나 조름 굴이리라.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초원 끝에 배가 매달려 있다.(두 사람은 누구게?)     © 최성수

                           
나는 느릿느릿 호숫가를 거닌다. 솜다리꽃 주변에 제 몸을 다 사그라뜨려 뼈만 남은 말 머리가 누부시게 놓여 있다. 숲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 서 있는 시베리아 낙엽송 아래서는 초원의 바람 소리가 더 싱그럽다. 이곳에서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버리고, 비로소 세상의 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라보니 초원 저쪽에 재두루미가 나처럼 천천히 초원을 걷고 있다. 말똥 위에 팽이처럼 솟아난 버섯마저도 느긋한 초원을 나는 햇살보다 느리게, 바람보다 천천히 걷는다. 마음속이 무엇인가로 가득 차오르는 것 같다. 그것은 행복? 혹은 기쁨? 아니다. 모든 것이 비워지고 채울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넉넉함이리라. 흡스굴은 비워서 가득 채워지는 곳, 그래서 ‘어머니의 바다’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   흡스굴의 물빛이 하도 고와서...  © 최성수

                             
별이 성글게 돋는 밤, 겔 옆 숲가에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양고기를 구워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러시아에서 혼자 여행 왔다는 여자 의사와 우리들의 기사들도 함께 한 자리에서, 서로 자기 나라 노래를 부른다. 노랫말은 서로 다르지만, 느낌은 모두 같다.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노래에 취하고, 흡스굴의 물살과 어두운 밤하늘과, 그 사이 몰래 뜬 별에 취한다. 이백의 말대로 ‘술잔이 날아다니고, 달에 취한다(飛羽觴而醉月).’
 
기사 아무라와 헛스그가 일어나 같이 노래를 부른다. 구슬프면서도 힘 있는 노래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그리움을 한껏 담아 대답한다.
 

▲  심장을 눌러 양을 잡는 모습. 양은 순하게 죽어갔다   © 최성수

                              
 
“<어머니의 차가 더 맛있어요>다.” 고향을 떠난 사람이 어머니가 계신 고향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란다. 어머니의 바다인 흡스굴에서 초원을 떠도는 사람의 어머니에 대한 노래를 듣는다. 
 
그 노래는 겔로 돌아와 잠든 내 귓가에 밤새도록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깊고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은데도, 어느 순간은 몇 번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꿈속에 어머니가 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런데 그 소리는 몰래 들어와 장작을 넣어 준 소년의 기척이었다. 배를 운전했던 선장의 아들인 소년, 그는 마치 우렁각시처럼 잠도 자지 않고 몇 번이나 우리 겔에 들어와 난로가 꺼질세라 장작을 넣어주었단다. 흡스굴에서는 보이는 모든 것이 어머니 같다. 호수도 산도, 구름도, 시베리아 낙엽송도, 그리고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까지도!  
 

▲하늘과 물이 한 빛인 흡스굴     © 최성수

                                
 

▲ 재두루미 두 마리가 초원을 걷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 최성수

                              
 

▲매화마름 피어 곱던 차탕족 마을의 꽃들     © 최성수

                                        

최성수 기자는 강원도 안흥에서 태어나, 국민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한문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었고, 우리나라 한문 고전 중에서 전형적인 글들을 뽑아 『함께 읽는 우리 한문』을 그 모임의 선생님들과 같이 엮어 냈습니다. 1987년 『민중시』 3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과 소설 『비에 젖은 종이비행기』, 『꽃비』 등을 냈으며,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가지 많은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등의 책을 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시 100』,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문학 이야기』, 『교실에서 세상 읽기』 등의 책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경동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09/11/11 [09:01]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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