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싸게 가 보자
좌충우돌 15일의 몽골 북중부 표류기 ①
 
이시백

▲ 끝 없는 길     © 이시백

누가 부르는 이도 없는데 다시 몽골을 찾았다. 네 번째의 몽골행이다. 7월 23일부터 8월 6일까지 15일간의 여행을 꾸리는 중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고비에 가 있었다. 갈망해 오던 남고비 1000킬로미터 도보 종주의 꿈은 대책 없이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고비의 여름은 짧고 더 짧은 인생은 칠덩굴 같은 일에 얽혀 세월만 흘려보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밀린 숙제 같던 훕스굴 길에 나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숙제가 그러하듯, 썩 내키지는 않는 여행이었다. 훕스굴이 어때서? 이런 반문에 대답은 여전히 궁하다. 우선 훕스굴이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점이라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세상의 아름다움에는 꽃이건 사람이건 떼 지어 모이게 마련이고, 떼를 짓는 일에는 일단 문제가 있지 않은가. 세상에는 언제나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해질 때, 자본이 끼어드는 법. 라다크가 그러하고, 차마고도며 가까이는 청학동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지폐로 환산되는 경관과 유목의 오두막들이 번질거리는 자본의 손때들로 번질거리는 장면을 목도하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몽골 사람들에게 '바다'로 불리는 광활한 호수,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며 아흔아홉의 강이 모인다는 훕스굴은 그야말로 몽골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모천을 찾아 회귀하는 연어의 디엔에이라도 지녔는지 '훕스굴'이라는 말만 나오면 눈빛이 몽롱해지는 숭배자들 틈에서 언제까지 '가 보지도 않은 주제'에 '가고 싶지 않다'는 불평을 늘어놓는 것도 싱거운 일이라 한번은 내 눈으로 그 '참상'을 들여다보고자 길을 나선 셈이었다. 그런 중에도 일정을 늘여 슬그머니 훕스굴 여정에 알타이 언저리를 끼어 넣었다.

▲ 훕스굴     © 이시백
 
일단 싸게 가 보자

모두 아홉으로 짜여진 여행단은 지난번 고비를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두어 명은 처음 몽골에 나서는 분들이었다. 여자가 여섯에 남자가 셋이라 조금 버거운 감도 있었지만 대부분 차로 이동하는 여정이니만큼 굳이 남녀를 따질 이유는 없다. 한 차에 2명의 여성에 차가빠졌을 때 뒤에서 밀 남자 1명(?)을 편성하여 3배수로 여행단을 꾸려 보았다. '죽을 틈도 없이 바쁘거나, '눈 뜨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이 나라에서 15일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말미를 얻어 훌훌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보나마나 한둘은 막판에 못 간다는 소리가 튀어나오겠지만, 일단 대책 없이 손을 든 여남은 명의 여행단이 꾸려졌다.

이번 여행은 일단 '싸게' 가보기로 했다. 그동안 여행을 주선해 준 선을 벗어나, 별개의 경로를 알아보기로 했다. 안면이 있는 현지 가이드와 몽골 현지 게스트하우스를 대상으로 세 군데의 견적을 받아 비교해 무조건 저렴한 쪽을 선택했다. 경기도 어려운 시기에는 무조건 한푼이라도 저렴한 것이 애국하는 셈이 아닌가. 말하자면 이번 여행은 '싸게 몽골가기'의 버전1.0 판이라고나 할까. 이 말은 앞으로도 끝없이 '싼값'을 추구하며 내려갈 데까지 내려가 보겠다는 말이다. 대체로 몽골 여행이란 것이 배낭여행이든, 패키지여행이든 차를 타고 일정 거리를 움직여 겔에 묵는 방식이기 때문에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여행 비용의 차이는 현격했다. 일인당 100~150만원의 차이가 났다. 일단 구미가 당기는 액수가 아닌가.

비지떡이 아니려면 그 안에 든 고물도 까 봐야 한다. 이번 몽골 여행의 경로는 일단 훕스굴을 거쳐 알타이를 찍고, 하라호른으로 돌아오는, 북부에서 중부로 돌아오는 야무진 여정이다. 웬만한 여행자들이 두 번으로 나누어 올 일정을 한번에 돌아보는 것이다.

전체 일정은 15일이지만 출발일과 돌아오는 날을 제외하면 13일이었다. 다행히도 여행사에서 짜놓은 13일짜리 여행 프로그램이 내가 생각하던 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전부터 마음속에 벼르고 있던 알타이 산맥을 여행사에서는 일정이 빠듯하여 어렵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알타이를 거치려면 적어도 2-3일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아쉽지만 멀리서 알타이 산맥을 바라보는 것으로 절충을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여행할 사람들이 확정되지 않아 비행기표를 미리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언제든 훌쩍 떠나면 되는 전업여행가, 일명 백수가 흔한 것은 아니다. 한 달을 앞두고 몽골항공권을 취급한다는 곳마다 선을 대어 알아보았지만 일단 '기다려 보라'는 말뿐이다. 직접 몽골항공사에 명단을 디밀어도 보았지만 여전히 예비 대기자였다. 결국 일정을 바꾸어 조국의 날개 '대한항공'을 알아보았다. 가격도 비싸지만 출발 시간이 새벽 6시라 지방에서 올라오는 여행자들이 애를 먹을 판이었다. 그런 와중에 지난 해 몽골 비행기표를 구해준 v 여행사의 지인께서 용케도 몽골항공권을 구해 주었다. 성수기에 유류할증료와 세금을 포함하여 717,000원. 십 여 만원 가까운 원가 절약이다. 몽골항공 왕복 티켓을 열 장을 가까스로 구했다. 비행기 표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반은 몽골에 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여행을 앞두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막판 뒤집기'를 어느 정도 방비하게 된다는 것도 의미한다. 인원이 확정되면 본격적인 준비와 여행 비용 산출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복병은 또 있었다. 집안 어르신의 병환은 쉽지 않은 인재지변(?)이다. 해외여행만 가려면 모친께서 입원하시는 터라 그 어려움을 익히 겪어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한 사람이 연로하신 어르신의 병환으로 안타깝게도 도중하차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갑작스러운 병고도 어쩔 수 없는 걸림돌이다. 의료시설이나 인가가 멀리 떨어진 곳을 여행하는 몽골 여행 에서는 돌발 사고나 응급환자에 대비해 구급 헬기를 부를 돈을 200만원씩 예비비로 챙겨 가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몸이 아픈 것은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었다. 꼭 가고 싶고, 나도 함께 가고 싶은 분이 몸이 불편하여 막판에 포기를 하게 되었다.

열한 명에서 결국 아홉이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몽골이라는 곳이 떠나기로 마음먹기도 힘들지만, 또 마음처럼 평탄히 떠나게 되는 곳도 아니었다. 매번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분이 나타나는 걸 보면, 몽골로 가는 길에는 그 나름대로 연이 닿아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쉽기는 했지만 몸이 좋지 않은 분이 막판에 여행을 포기한 것은 참으로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이번 여행은 그만큼 힘들고, 험한 여정이었다.

인천공항보다 더 가까운 몽골


▲ 울란바타르 시내     ©이시백
7월 23일, 소나기 내리고 경기 동북부에 폭우가 내리는 아침에 길을 나섰다. 아홉 명의 여행객이 탄 몽골항공(miat) 비행기는 예정시간을 40분쯤 넘긴 12:45분경에서 인천공항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그리고 3시간 반. 집에서 인천 공항까지 오는 시간보다도 짧은 시간에 몽골에 와 닿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칭기스칸 국제공항을 빠져나오자 순도 높은 몽골의 햇빛이 눈을 부시게 맞이한다. 읍내의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공항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 가운데 내 이름을 적은 푯말이 보인다. 능숙한 한국어를 쓰는 여자 안내원이 반겨준다. 일 년 만에 찾는 몽골이지만 감개무량하다. 남모르게 공항 앞의 아스팔트에 엎드려 두 손을 대어본다. 몽골에 돌아온 것이다.

매연 냄새가 지독한 낡은 승합차에 실려 울란바타르(u.b)로 들어간다. 톨 강에서는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강이지만 몽골 사람들에게는 우리네의 한강 격인 강이다. 그 맞은편에는 우리네의 남산 격인 보그드 산이 자리 잡고 있다.  

▲ 게스트하우스 앞     ©이시백
거리는 한낮인데도 차들로 붐비고, 마구 울려대는 경적들 틈을 비집고 이리저리 돌아들어간 차가 어느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게스트하우스 앞에 내려놓는다. 마침 주변에서는 땅을 파는 공사가 벌어져 어수선한데다가 허름한 여관급도 되지 않는 게스트하우스의 모습에 한숨이 먼저 나온다. 로비랍시고 메뚜기 이마만하게 만들어 놓은 입구에는 서양 여행자가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되살리며 우선 배정된 방에 짐을 푼다. 미리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다른 여행자와 함께 방을 쓰게 되어 있었다. 도미토리인 셈이었다. 16달라를 얹어 주고 지하의 방 하나를 따로 얻었다. 가파른 층계를 타고 내려가는 지하 방은 음습하고 통풍이 되지 않아 카타콤을 연상시켰다. 계단 하나로 드나드는 지하실은 불이라도 난다면 고스란히 횡액을 당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구조였다. 골방 끝에는 그나마 샤워실과 화장실, 세탁실이 붙어 있었다.

짐을 풀고 나서 여행사 사장과 여행 일정과 비용을 상담했다. 열 명이 오기로 했는데 아홉 명이 오게 되어 여행 경비가 일인당 하루에 5달라씩 인상되었다. 대체로 훕스굴 여행의 경우, 러시아제 승합차 프루공을 이용하여 한 차에 다섯 명까지 낯선 이들과 뒤섞여 여행을 다닐 각오를 한다면 비용은 뚝 떨어진다. 한 차에 세 명씩, 모두 세 대의 차를 독점하고 다른 여행자들을 섞지 않는 조건에 차마다 한국어가 가능한 안내인을 한 명씩 배치하다 보니 여행비용이 곱으로 튀어 올라간 것이다. 여행과 인생의 공통점은? 누구도 말리거나, 도와주지 않는 선택의 자유 아니겠는가? 생판 모르는 이들과 섞여 간 보며 이 맞추며 가던가, 아니면 속까지 훤히 아는 이들끼리 등 기대고 가다가 "니가 이럴 줄 몰랐어"라며 전혀 낯선 이가 되어 돌아오던가.

일단 아는 이들끼리 노리끼리한 겔의 전등 아래 모여 단란하게 보드카를 비우는 재미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시로 머리가 차 천정에 부딪치며, 김치 국물에 계란말이 도시락 섞듯 마구 흔들어대는 프루공 대신에 얌전한 델리카 두 대에, 물에 빠진 차 건져내는 구난용으로다가 힘 좋지만 그만큼 기름 많이 먹는 사륜구동 일제 지프형 차 한 대를 끼어 넣으니, 비용이 올라가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래도 전에 비하자면 저렴한 편이다.

▲ 프루공     © 이시백
몽골 여행의 총아로 각광을 받는 프루공은 러시아인의 기질을 닮아 지극히 단순하여 고장이 나도 고치기 쉽다고 한다. 물이든 산이든 가리지 않고 잘 달리는 프루공이야 말로 몽골 오지 여행에 적격이라지만, 결정적으로 승차감이 좋지 않은 데다가 역방향의 좌석 배치가 문제였다. 차 안에서 구경하는 게 절반인 몽골 여행에 거꾸로 앉아 여행자의 먼지 덮인 얼굴만 들여다보자면 멀미가 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차에 대해서 잔소리 같은 주문을 덧댄다. 지난 해, 얌전한 고비 길에도 자그마치 다섯 번이나 펑크가 나고, 달리던 차의 앞바퀴가 빠져 달아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몽골 여행에서 가벼운 자동차 고장은 '즐거운 비명'이다. 모처럼 호젓이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되다 보니, 나중에는 자동차가 고장 나기를 기다리게 되고, 너무 이르게 바퀴를 갈아 끼운 자동차를 피해 앞서 달아나지 않았던가.

낡지 않은 새 차를 요구하는 내게 게스트 하우스 사장은 "새 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 많은 운전사"라는 점을 설득했다. 항가이 산맥을 넘는 길은 매우 험하며, 무엇보다 그 쪽 길을 잘 아는 운전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경험 많은 운전사에 낡지 않은 새 차'를 요구할 만큼 나는 뻔뻔스럽지 못했다.

처음에 열 명으로 예상하고 받았던 여행 견적이 아홉으로 줄면서 다시 책정하게 되었다. 계산기를 이리저리 두들기던 사장이 제시한 금액은 내가 우려했던 것만큼은 높지 않았다. 비용을 깎는 대신에 슬며시 알타이를 경유하는 여정을 요구했다. 사장은 알타이 산맥을 넘지는 못하지만 알타이 솜까지 경유하는 여정에 동의했다. 그것은 실로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비록 넘지는 못하더라도 그 가까이에서 그 웅장한 산맥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여행이겠는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세 명의 안내인이 소개되었는데, 그 중 '수정'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버기라는 여대생은 여행사를 대표해서 칩 가이드로 참여하게 된다. 연세대에서 한국어도 배웠다는데, 한국어보다는 영어에 능숙하였다. 남자 가이드 '타이왕'은 '평화'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는데, 이번 9월에 대학 입학을 앞둔 스물 두 살의 열혈 청년이었다. 매사에 씩씩하고 서글서글한 그는 한국에 이모가 살아 자주 오간다고 했다.

감자 자루를 싣는 캐러번

여행 중의 식사는 안내인들이 끼니마다 즉석요리를 해서 제공해 준다고 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사장은 안내인들이 그런 일에 능숙하다고 했다. 밤늦도록 내일 출발할 여행단에 필요한 음식 재료와 식기류, 비품들을 챙기느라 부산했다. 이런 형태의 여행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타클라마칸을 종단했던 스벤 헤딘(sven hedin)이나 브루노 바우만(bruno baumann) 같은 사람들이 캐러번을 짜서 여행한 방식을 연상시켜 흥미로웠다. 여행 짐 속에는 몇 자루의 감자부터 생수, 과일과 빵까지 골고루 준비되어 있었다. 숙박은 겔에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겔이 없는 지역에서는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밖에 없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겔이 없는 지역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한두 번 별빛 아래 천막을 치고 잠을 자는 것도 흥미로워 쉽게 승낙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후덥지근한 울란바타르의 날씨만 믿고 고도 높은 북부 지역의 추위 맛을 보기 전의 일이다.

게스트하우스 부근의 한국음식점을 찾아가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등으로 식사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허름한 슈퍼마켓에 들러 간식거리와 술을 샀다. 칭기스 보드카를 프리미엄급으로 12병, 오리지날급으로 5병. 도합 17병을 가지고 출발한다. 중간에 살 곳도 만만치 않은 데다 이따금 술을 팔지 않는 날이 있고, 가격도 비싸서 미리 챙기기로 한 것이다. 술 안 마시는 분들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하겠다. 이번 기회에 술을 배우게 하든지, 아니면 술 대신 안주를 많이 먹게 하든지...


저녁 늦게 안내원이 바뀐다는 통지를 받았다. '하히라'라는 귀에 익은 이름을 지닌 여자 안내인이 갑작스러운 모친의 병으로 못 오고 '보드르마'라고 하는 삼십 대 여자 안내인이 인사를 했다. 간호사 과정을 이수하고 한국에 체류하며 일을 한 적도 있다는 보드르마는 자신의 어려운 이름보다 한국 친구들이 지어 주었다는 '민주'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밝고 붙임성이 있으며 한국어도 현지 안내인들의 수준에 비하자면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그녀는 두툼한 한몽 사전을 가지고 다녔는데, 사전은 손때가 묻어 나달나달 해질 정도로 그동안 기울인 공역의 흔적을 내보이고 있었다. 오히려 안내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했던 종래의 여행에 비한다면 이번 안내인들의 한국어 수준은 양호한 편이었다.

남자 숙소인 지하실에 모여 보드카 한 병으로 몽골의 첫 밤을 음미하며, 초면의 사람들끼리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지하실의 남자 숙소는 음습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서늘해서 좋았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자면, 일층의 여자 방은 더워서 밤새 잠을 설쳤다고 했다. 후덥지근한 울란바타르를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고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 이 기사는 15편까지 이어집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0/08/19 [19:27]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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