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속에 파묻혀 잠들다
좌충우돌 15일 몽골 북중부 표류기 ③
 
이시백
▲ 우란 토구의 들꽃들     © 이시백

제습제 탓인지, 모처럼 불어온 바람 탓인지 어젯밤에는 늦도록 통음을 했다. 잠결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이 떴다. 부엌에서 잠든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게 느껴질 정도로 조심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내실을 비워 주고 가게 곁방에서 잠을 잔 주인할머니가 아침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게 문을 닫으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만 믿고 느긋이 누워 있었는데 미안스러워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밤에는 비가 온 듯한데, 마당에 나가 보니 가이드와 운전사들이 침낭을 접고 있었다. 차에서 자고, 일부는 마당에서 침낭을 펴고 잔 듯했다. 고비에서는 운전사며 가이드들도 캠프장에 묵으며 더운 물로 샤워도 하고, 그 비용도 여행자들이 지불하는데 비하면 이들은 참 고생이 심한 셈이다. 여행비용이 어떻게 그리 차이가 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그럴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볼강의 풀들이 기른 아이락

아침 식사는 샌드위치로 했다.
에어컨이 없는 델리카에는 짐만 싣고 사람들은 스타렉스로 몰아 탔다. 간간이 비가 오면서 날씨는 확연히 서늘해졌다. 에어컨 틀어달라는 원성은 사막에 내린 빗방울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북쪽의 아마르바야스갈란트 사원을 떠나, 바롱부렝(baruunburen)솜을 되짚어 차는 자르갈란트(jargalant)를 거쳐 12시 30분경에 몽골 제3의 도시인 에르데넷(erdenet)에 도착했다. 구리 광산으로 유명한 에르데넷은 7만 8천명의 주민이 사는 볼강 아이막의 중심도시라는 명성만큼 번화했다. 노천광으로 유명한 이곳은 세계 10대 구리광산으로 규모가 크다. 한때는 러시아 주민들이 많이 살았다는 이곳은 유비 못지 않게 번화한 반면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훨씬 적어 한산하고 깨끗하게 잘 정돈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가이드들은 이곳을 '이르뗀넷'이라고 하는데 자료글에는 '에르데넷'이리고 표기가 되어 이상하게 여겼더니, 한국말을 잘 하는 가이드 민주의 말에 따르자면, 몽골어로 정확한 발음은 "이와 에'의 중간음이라고 했다. 그저 '이에'를 얼버무리며 급히 붙여 시늉을 해 볼 뿐이다.

▲ 에르데넷시의 시장     © 이시백
모기의 델리카가 에어컨을 고치러 간 중에 시장 구경을 했다. 옛날 시외버스 차부처럼 생긴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입구에 유제품을 파는 장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에르흐라는 몽골 전통술을 내미는 대로 한 사발 받아 마셨다. 1잔에 1000뚜그릭이라는 에르흐는 도수는 약하지만, 깐슈 선생의 말에 따르자면 아랍에서 전해진 소주의 산물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한잔 마셔 보았다. 중간에 마유주를 맛보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더니 버기가 그곳에서 몇 통의 마유주를 샀다. 볼강의 아이락은 몽골에서도 유명하다고 했다. 말이 먹는 풀에 따라 그 맛도 달라진다는 아이락이 초지가 풍성한 볼강의 것이 맛있는 모양이었다. 살짝 맛을 본 여행자들은 신맛에 얼굴을 찡그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유제품은 아롤부터 어름, 아이락에 이르기까지 그 농도와 가공 방법에 따라 무척이나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건물 안에는 고기들을 파는 푸줏간을 비롯해 과일들을 파는 가게도 많았다. 생각보다 과일은 그리 비싸지 않았는데 수박은 1킬로그램에 1000뚜그릭으로 우리와 비슷한 시세였다. 흑자두와 8킬로그램짜리 수박을 한 덩이 샀다. 그리고 점심으로 먹을 라면들을 샀는데, 러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는 도시락라면이 900뚜그릭, 컵라면으로 된 신라면이 1200뚜그릭이었다.

시장 앞의 식당에 들어가 라면을 끓여 먹었다. 물만 끓여달라기가 미안해 몽골식 튀김만두인 호쇼르(1개에 450뚜그릭)를 시켜 기사들과 나눠 먹었다. 양고기를 다져 넣은 만두를 기름에 튀긴 호쇼르는 우리 입맛에도 맞는데, 몽골 사람들은 간식이나 간편한 식사 대용으로 몇 개씩 먹었다.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아 마트에 들러 술과 식품들을 더 샀다. 규모가 상당히 큰 마트에서는 놀랍게도 보드카가 유비보다 훨씬 저렴했다. 프리미엄급 750밀리그램 칭기스 보드카 ㅂ병이 4병 이상을 살 경우, 9750뚜그릭이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몽골 공항 면세점에서 11달라나 했다. 몽골은 이상하게 면세점이 더 비쌌다.
몽골 돈을 환전하기 위해 은행에 들렀다. 깨끗하고 조용한 은행에서는 미화 1$를 1300뚜그릭에 환전해 주었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 우란 토구 가는 길의 개울     © 이시백

에어컨을 고쳐 온 모기의 차를 타고 우란 토구 울(uran, togoo uul)로 이동했다. 100킬로미터의 도로는 공사중으로 간간히 차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흙을 쌓아 막아 두었다. 가는 중에 노란 들꽃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개울이 보여 잠시 차를 멈추게 했다. 이사를 가던 중이던 몽골 사람들이 반색을 하며 달려와 사진을 함께 찍었다. 사람 좋게 뵈는 가장은 이불 같은 겉옷을 걸치고 싫다는 부인까지 끌어내어 사진기 앞에 섰다. 꽃들 사이로 구부러져 흐르는 맑은 개울은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흐르는지 가늠되지 않는 잔잔하고 맑은 실개천이었다. 드디어 훕스굴 가는 길에 지천으로 깔렸다는 들꽃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줄친 고비에 이르러서야 산자락에 드문드문 만났던 들꽃에 비하자면 이것은 '신물나게 핀 들꽃'들의 서곡인 셈이었다. 비록 샤워도 못하고, 에어컨도 없이 땀에 절었던 어제의 고역도 까맣게 잊게 하는 풍경 앞에 마냥 눌러 앉고 싶었다.
 

▲ 개울가에 깔린 들꽃들     © 이시백
 
볼간 아이막의 쿠탁 온도르(khutag ondor)솜에 위치한 아름다운 우란 토구 산에는 사화산의 분화구가 있다. 인적 드문 초지에는 희고 붉고 보랏빛의 들꽃들이 깔려 있어 차마 차가 밟고 지나가기 안스러울 정도였다. 초지를 가로질러 야트막한 산등성이로 올라섰다. 색색의 꽃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는 산등성이에 차를 멈추고 짐을 내렸다.

▲ 우란 토구     ©  이시백

오늘 밤은 이곳에서 야영을 한다고 했다. 예정했던 겔을 앞서 달려간 여행자들이 차지했다는 것이었다. 사원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한국인 부부가 속한 여행팀이 에르데넷에서 차를 정비하는 동안 앞질러 간 모양이었다. 아무리 몽골이라 해도 잠잘 곳을 선착순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난감했다. 인근에는 캠프장도 민박할 겔도 없다고 했다. 날도 흐릿하니 서늘하여 야영하려면 추울 듯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분화구를 보러 산으로 올랐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오르는 동안 도처에 핀 꽃들은 거의 환상적이었다. 지금 생각하자면 오히려 겔에서 자지 않고 꽃들에 둘러싸여 잠을 잔 그 밤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 우란 토구 울의 분화구 © 이시백
분화구는 거의 웅덩이 수준이었다. 용암이 분출하며 사발 엎어 놓은 것처럼 둥글게 솟아오른 봉우리 중심에는 '어린왕자'의 별에나 있음직한 분화구가 물을 담은 채 고요히 웅크리고 있었다.

산정을 한바퀴 돌며 바라보는 주변의 무변광대한 초원에는 겔 한 채, 양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 지나며 남긴 듯한 한 줄기 길이 희미하니 남아 있을 뿐. 막막한 그 벌판을 오롯이 걸을 날을 기대해 본다. 서쪽 먼 하늘에는 햇빛이 밝은데, 이곳은 흐리고 바람이 서늘하다. 오늘 밤도 별 보기는 힘들 모양이다. 나비 한 마리가 바람에 떨고 있다. 이 꼭대기까지 오른 것은 나비뿐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인적 드문 이 산정에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소똥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하늘 소?

 
▲ 우란 토구울에서 내려다 본 초원     © 이시백

여행자 한분이 그곳에 남아 용변을 본 소감을 나중에 전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이라고 한다. 호도협 설산을 마주보던 게스트하우스에 적혀 있던 '천하제일측간' 같은 문구는 없지만, 우란 토구 산정에서 광야를 보며 초원방분하는 그 경지야말로 천상제일측간의 경지가 아니었을까 부럽기만 하다.


이렇게 좋은 날에

▲ 우란 토구에서의 야영     © 이시백

산에서 내려오니 야영할 천막이 다 처져 있었다. 추울까 봐 모닥불을 피우려고 고사목을 모으는데 나이 지긋한 바토르라는 운전기사가 주의를 준다. 불을 피우면 그 밑의 꽃들이 죽으니 불 피우던 자리를 찾아 보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몽골인들이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는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땅을 어머니로 여기며 파거나 깎지 않으려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들은 들에 핀 꽃이며 돌멩이 하나 허투루 보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금기도 사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는 유목민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습속임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 모닥불     © 이시백
겔을 못구했다고 원망하는 우리에게 '자연'이라는 말을 되뇌던 민주의 마음이 여행이 끝난 지금 비로소 가슴에 와 닿는다. 자연, 그 좋은 걸 왜 투정만 했을까.

모닥불가에 모여 스태프들이 돌아가며 부르는 한몽 노래 경연도 좋았다. 어디서 배웠는지 버기가 부르는 '곰 세 마리'도 좋았고, 민주가 부르는 구슬픈 가락의 '사흥 에이치(아름다운 어머니)'의 구슬픈 가락도 마음으로 스며드는 밤이었다. 여행은 지나고난 뒤에 하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가 보다. 춥고, 불편한 것만 투정하던 그 들꽃 깔린 우란 토구 산에서의 야영을 이번 세상에 또 어디서 맞이할 것이런가.

 
               [ http://cafe.daum.net/gomongo 에 가면 몽골에 관한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0/08/25 [16:06]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반갑습니다 민통장 10/08/27 [08:41]
이시백 선생님의 근황이 궁금하던 차에 기사를 보고 반가움에 글 전합니다.
청소년 두드림을 지원해주시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후학을 기르던 열정을 이제 글에 담아 만인에게 뜻을 펼치길 빕니다.
건강하십시오.
ymca이사장 민경조 수정 삭제
고맙습니다 이시백 10/09/11 [19:56]
격려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글로나마 안부를 전합니다. 수정 삭제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