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란 문명시대 야만어
[글모심 생각나눔] 이주현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남양주뉴스
정부의 소위 4대강 살리기 사업 일환으로 건설 중인 여주 이포보(사실 규모로 보면 보가 아닌 댐 수준) 교각 위에서 농성 중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두어 번 방문을 한 적이 있다. 현장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수백m 떨어진 강변에서 바라만보다 왔으니, 교각 위에 올라간 사람들보다 밑에 있는 자신이 불편해서 갔다는 표현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동원된 듯한 주민들의 소란행위는 현장 접근은 물론 기자회견도 못하게 방해했고, 평화롭게 진행하는 촛불문화제 역시 막무가내로 방해했다. 길 건너편에 천막을 치고 고성능 앰프를 동원해 녹음된 4대강 살리기 홍보 연설을 반복해서 틀어줬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촛불문화제 참여자들에게 노골적인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듣다 못한 일부 어른들은 함께 온 어린 자녀들의 귀를 손으로 막은 채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놀라운 소리를 들었다.

“이 빨갱이 xx들”

이포보 교각에서 농성 중인 활동가들을 능멸하고 부근에서 평화롭게 진행되는 집회를 방해하던 여주 주민들이 원망스럽긴 하지만,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고 싶진 않다. 그들 또한 억지로 만들어진 환상을 통해 왜곡된 가치를 심어준 mb정부의 피해자들이란 생각 때문이다. 확신에 찬 주장과 분노에 찬 욕설을 들으며 무지와 억지, 거짓으로 점철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부당성과 오류를 충분히 주장할 수 있지만,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타들어 가는 촛불에 마음을 싣는 것뿐이었다.

그 곳에서 들었던 “빨갱이”라는 말, 무지와 억지, 대화가 단절된 곳에 이처럼 조화를 이루는 단어가 있을까 싶다. ‘다름’을 ‘틀림’으로 대치해 버리는 미숙한 가치 판단, 그것을 조절하고 각성할 수 없는 경직된 분위기, 이게 g20정상회의를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이런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누가 살고 싶을까? 지난 8월 20일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에서 발표한 잠재순이민지수(pnmi)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상황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 발표에서 우리나라는 테러와 홍수로 고통 받고 있는 파키스탄과 동률, 조사대상 148개 국가 중 50위로 나타났다. 중간은 넘었으니 만족해야 할 일인가?

그런 기만과 야만의 현장은 4대강 뿐만 아니었다. 지난 8월 18일 도라산 역에 걸려있던 작가 이반 씨의 벽화작품이 작가의 동의도 없이 무단 철거당했다. 어둡고 난해하고 민중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표현만 안했지 ‘빨갱이’ 작품이라는 거 아닌가? 이에 대해 문화계 인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지만, 통일부에서는 그 자리에 흔해빠진 백두산 천지 사진을 걸어놓고 ‘소유권’ 타령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동안 통일을 방해하는 일만 골라서 하던 통일부의 행태라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가관이라는 생각에 할 말이 없어진다. 통일에 대한 의지를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명사상에 접목, 2년 동안 길이 97m의 대작을 만든 작가의 혼이 담겨있고 합법적인 정부의 의뢰를 거쳐 설치된 작품인데 140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로 불법광고지 찢어내듯 없애는 무지와 천박함이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은 성자 취급을 받지만 왜 가난한 지 질문하는 사람은 “빨갱이” 취급을 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대 “빨갱이”들이 많아지는 게 어쩌면 역사의 발전을 이루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강을 자기네 것이라 우기며 강변 모래 위에 아스팔트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달라는 게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통일 의지를 담아낸 한 작가의 작품을 불법광고물 철거하듯 뜯어내는 대한민국 야만의 현장이다. 그래서인가, 무지와 억지, 천박함으로 역사와 의식의 퇴행이 일어나는 현실에서 “빨갱이”소리를 듣는다는 것, 비록 야만적 언어이긴 하지만 그렇게 싫진 않다.

기사입력: 2010/08/27 [17:06]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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