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 가는 길
좌충우돌 15일 몽골 북중부 표류기 ④
 
이시백

▲ 우란 토구를 떠나며     © 이시백

날은 흐리고 이따금 빗방울이 떨어졌다. 간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추운 데다가 천막을 친 곳이 비스듬히 경사가 진 땅이라 자다가 자꾸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 잠에서 깨어야 했다. 여자 여행자 한분의 뺨에 난데없는 칼자국이 생겼다. 베개 대신 무언가를 베고 자느라 얼굴에 눌린 자국이었다. 물이 없어 생수 한잔으로 양치질을 하고 그 물로 칫솔을 헹궜다. 손바닥에 받은 한 줌의 물로 세수를 하는 모습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고, 손톱 밑에 때가 끼기 시작했다.

어제 함께 잠이 들었던 들꽃들을 두고 막상 떠나려니 아쉽기만 하다. 차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먼저 길을 나서 걸어 보았다. 점이 되어 멀어져 가는 일행들의 뒷모습이 외롭지만 허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견고한 고독'이라고나 할까.

믿을 건 자신의 다리밖에 없다

▲ 막막한 길     © 이시백

막막하게 펼쳐진 몽골의 초원에서는 홀로 걷는 여행자의 뒷모습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초원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고, 군데군데 타루박이 파놓은 구멍들이 눈에 띤다. 어느 구멍 앞에는 핏자국이 낭자하니 깔려 있다. 굴을 나오다가 천적에게 잡혀 먹은 것일까. 아니면 요즘도 있다는 출혈성 병에 걸린 타루박의 구멍은 아닐까.

몽골에 오면 반드시 해 보아야 한다는 '공중부양' 사진을 찍어 보았다.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망망한 초원 위로 뛰어 올라 보았지만 영양 부족인지 제대로 날아오르지를 못한다. 몇 차례 해 보다가 숨이 차서 제 풀에 주저앉는다.

어디선가 홀연히 양떼가 나타났다. 어제 산정에서 살펴보아도 무인지경인데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멀리서 희고, 검은 구름처럼 뭉글거리며 움직이는 양떼가 눈앞을 지나친다. 뒤편에서 검은 개가 부지런히 양떼를 몰아가고 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말을 탄 사람이 나타난다.

조금 걸으려는데, 차가 따라온다. 이럴 때는 좀 늦어도 좋으련만. 조금이라도 더 걸으려는 여행자들이 차라리 차를 보고 달아나는 모습이다. 몽골 여행의 정수는 저렇게 자신의 다리로 걷는 도보여행이 제격이다. 그러기에 몽골은 너무 넓고 마을이 멀다. 자전거는 어떨까. 자전거로 몽골을 여행한 사람의 책을 읽자니, 타이어 펑크만 수십 번에, 타이어 교환도 수시로 한다. 바퀴가 펑크 난 자전거는 짐이다. 오토바이는 어떨까. 고장 나면 버리고 갈 수도 없는 애물단지가 된다. 말을 한 마리 사서 갈기를 날리며 달리는 여행은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그러나 칭기스칸도 말에서 떨어진 것이 화근이 되어 죽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세키노 요시하루의 몽골 다큐영화 '푸지에(puujee)'의 엄마도 말에서 떨어져 죽지 않던가. 이렇게 저렇게 따지다 보면, 믿을 건 자신의 다리밖에 없다. 사람의 다리만큼 안전하고, 저렴하며, 자유자재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 체력과 시간만 있다면, 일 년쯤 시간을 내어 터덜터덜 걷다가 밤이면 초원에 천막을 치고 별을 덮고 자고 싶다.

어느 새 뒤에 와 멎는 차에 몸을 싣는다. 무릉 행이다. 늦게 도착하여 또 숙소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책임 가이드와 모기의 차를 앞서 보내기로 했다.
두 대의 차에 분승하여 얼마쯤 가니 귀틀집을 닮은 나무집이 나타난다. 어제 우리가 빼앗긴 겔이 있는 집이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오히려 꽃들 속에서 잔 것이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빼앗겼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분해했던가.

▲ 통나무집     © 이시백


러시아풍이라는 나무집 문 앞에는 남자 아이 둘이 고양이 한 마리와 무료히 앉아 있었다. 몽골 사람들은 승려가 죽어서 환생했다고 생각하는 고양이를 잘 기르지 않는다고 했다. 잘하면 본전이고, 자칫 잘못하면 반드시 보복을 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몽골의 개     © 이시백
그에 비해 개는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다. '동굴에서 나온 누렁이(the cave of the yellow dog)'라는 영화를 보면 유목민과 개 사이의 깊은 교감이 잘 나타난다. 가축을 지키고, 몰고, 때로는 늑대와 싸워야 하는 몽골개들은 사납다. 남의 집에 가면 인사보다 먼저 '개 잡으라'는 당부부터 한다지 않는가. 그런데 관광객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그런지 개들이 사람을 봐도 지붕의 닭 보듯 한다. 다행이면서도 좀 서운하다. 

무릉(moron)으로 가는 도중에 여행자 한분이 멀미를 했다. 고비처럼 평탄한 길이 아니고 이리저리 구부러진 데다가 경사가 있는 길을 오르내리니 멀미가 난 것이다. 강이 보이는 풀밭에 차를 세우고 내친 김에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멀미하는 분을 뉘어 놓고 둘러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샐러드와 비스켓과 함께 먹는 샌드위치는 일인당 두 개씩이다. 맛이 좋아서 순식간에 수북하던 샌드위치가 사라졌다. 멀미 하는 분 몫으로 남은 두 개 중의 하나가 사라졌다.
 '지금은 안 먹는 게 좋아."
아파서 누워 있는 동료를 바라보며 우리는 까마귀처럼 중얼거렸다.  

▲ 양과 염소 떼     © 이시백
산에서 양과 염소들이 내려온다. 마치 집으로 점심이라도 먹으러 가는 것처럼. 그런데 마구 뒤섞인 듯한 그들 사이에도 질서가 있다. 흰 것은 흰 것끼리, 검은 것은 검은 것들끼리 입은 옷의 색깔대로 몰려 다녔다. 일부 '색깔론'을 뛰어넘는 것들도 있기는 했지만.

원래 몽골에서는 7:3 정도의 비율로 염소보다 양을 많이 기르는데, 요즘은 그 비율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케시미어(cashmeer)가 되는 염소털이 양털보다 몇 배나 비싸기 때문에 염소를 많이 기르는데, 풀만 뜯어먹는 양에 비해 염소는 뿌리까지 뽑아먹어 사막화에 한몫을 한다고 하니 그것도 참 걱정이다.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 자동차

열심히 달리다 보니, 저 앞에 눈에 익은 차가 서 있다. 숙소를 잡으라고 앞서 보냈던 모기의 델리카였다.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 것이다. 고장이 나서 부속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당했다. 무릉까지는 130㎞를 남겨 놓은 지점이었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먼저 가기로 하고, 나중에 고쳐서 무릉으로 오기로 했다. 델리카에 있던 짐 가운데 꼭 필요한 짐만을 옮겨 실었다.
 

▲ 무릉 가는 길의 개울     © 이시백

무릉이 가까워지는 길가에는 색색의 들꽃들이 군락으로 피어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꽃무늬가 있는 초록빛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리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차가 야속하다. 저 무수한 꽃들을 무심히 지나쳐야 하는 이 여행은 어디로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제복을 입은 경관이 차를 세운다. 여권 조사라도 하려나 보다고 주머니를 뒤적거리자니 길가에 서 있던 사람들이 차안에 무엇을 내민다. 아롤이다. 나담축제가 벌어지는 무릉에 온 것을 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반갑고 고맙다. '놀이'라는 뜻의 '나담'은 건국 기념일인 7월 11일에서 7월 13일 경에 하는 게 원칙이지만, 지방에서는 그 나름대로 날을 잡아 따로 나담축제를 벌이는 것이었다. 놀이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몽골 사람들에게 '나담'축제는 성대한 잔치이겠지만 외국인의 눈으로 보자면 별반 볼만한 구경거리는 아니다. 운동장 하나 가득 모여서 벌이는 몽골 전통씨름 '바흐'와 활쏘기 등이 있고, 그 가운데서는 말의 연령에 따라 나눠 벌이는 말 경주가 볼만하다.

쫄쫄거리는 샤워를 하다
 
▲ 무릉 거리     © 이시백
무릉에 도착한 것은 오후 7시가 되어서였다. 마차와 자동차가 뒤섞인 무릉 시내에 차를 멈추고, 쇠고기를 사러 갔다. 지저분하고 복잡한 시장 주변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노인들이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자들에게 주먹질을 하며 무어라 소리를 지른다. 아무에게나 사진기를 들이대는 여행자도 문제이지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의 인심도 곱지는 않아 보인다.

시장을 본 뒤 판자로 된 담장을 잇대고 있는 골목 사이의 게스트 하우스 앞에 차를 세운다. 오늘 묵어갈 곳이다. 'bata' 게스트 하우스에는 좁은 마당에 겔도 두어 채가 들어앉아 있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내실 방은 남자가 쓰기로 하고, 마당의 겔을 여자들이 쓰기로 했다. 벽에는 인터넷 사용 1시간 800뚜그릭, 세탁 6000뚜그릭, 샤워 1500뚜그릭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샤워가 있다니.... 여자들이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니 더운 물이 나오지를 앉는다. 그나마 찬물도 졸졸거린다. 샤워를 할 때마다 주인이 옥상에 있는 물탱크에다 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

쫄쫄거리는 물이라도 모처럼 몸을 씻은 행복감에 여행자들이 겔에 모여 한잔을 기울인다. 여행 중의 시상을 얻은 시인들이 시를 낭송한다. 고달픈 여행이지만 내일이면 훕스굴로 들어간다는 기대감에 모두 들뜬 기분이었다. 저녁이면 올 줄 알았던 모기의 차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0/09/01 [19:57]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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