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굴, 어머니의 바다여
좌충우돌 15일 몽골 북중부 표류기 ⑤
 
이시백
▲ 홉스굴     © 이시백

무릉의 아침이 밝았다. 날은 몽골답지 않게 흐릿하다.
어젯밤에 오기로 한 운전사 모기는 끝내 오지 못하고, 새 차가 왔다. 재미있게도 그 차의 운전사 이름도 모기라고 한다. 이름을 줄여서 '-기'를 붙이는 애칭이다 보니 비슷한 이름이 많았다. 정확히 들으면 '이'와 '에'의 중간음이라 얼핏 들으면 '모게'라고 하는 듯도 하다. 동명이인의 운전사를 '구 모기' '신 모기'라고 불러 구분하는 수밖에 없었다. 불쌍한 '구 모기'는 고장난 자동차의 부품을 구하러 에르데넷까지 헤매었지만 끝내 구하지 못하여 u.b까지 갔다고 한다. 일단 새로 등장한 차는 겉보기에 멀쩡하고 튼튼해 보이는 파제로 지프형 차였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전 8시 30분에 무릉을 떠났다. 거리에는 자전거나 마차, 소달구지에 물통을 실은 이들이 오가고 있었다. 아침에 마실 우유를 짜러 가는 것일까. 운전사가 이리저리 길을 묻더니 어디엔가 차를 세운다. 공중수도이다. 아까 보았던 물통을 든 사람들은 말 그대로 물을 길러 온 사람들이었다. 판자벽에 빠끔히 뚫린 구멍으로 돈을 주고받는다. 그 앞에는 '08:00-20:00' 라는 시간표가 적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공중수도

▲ 무릉의 공중수도     © 이시백
오랜만에 만나는 풍경이다. 서울 근교의 산동네에 살 때, 붕어나 가재가 기어 다니던 우물에 물이 마를 즈음에 문안 사람들만 마신다는 '수도'라는 것이 들어왔다. 그 물로 세수를 하면 얼굴이 하얘진다는 공중수도 앞에 바로 저렇게 물통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 새치기를 한다고 물통을 걷어차며 어른들이 싸우는 걸 누룽지를 먹으며 구경하던 기억도 난다. 성미 급한 어른의 발에 걷어차인 물통은 데구루루 소리를 내며 산 아랫동네로 굴러 내려갔다. 우두커니 서 있는 상대의 물통을 마저 걷어차고는 어른들은 사이좋게 해발 낮은 아랫동네로 내려갔다. 굴러간 물통을 주워 오자면 아침밥을 다 먹을 무렵이 될 것이었다. 앞에 있던 물통 두 짝이 비워진 자리에 제 물통을 다가놓으며 아이들은 흐뭇해했다. 어른들이 아이들 같고, 아이들이 어른 같던 시절이었다.

잘해 봐야 고등학생 정도로 뵈는 아이 하나가 담배를 꼬나물고 제가 데려온 인상 사나운 개보다 더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물통을 들이민다. 여기서는 물통을 걷어차는 어른도 없고, 차 봐야 굴러 내려갈 비탈도 없다. 그래서 안 차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인상이 조금 덜 사나운 개가 나타났다가 인상 나쁜 개를 보고는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이곳은 어른 대신에 개가 아이들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무릉을 뒤에 두고 다시 초원을 달린다. 들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이제는 탄성도 드물다. 홉스굴로 향하는 초원 길 옆으로 손톱자국처럼 길게 패인 땅들이 이어진다. 공사 중인 도로들이란다. 막막하기만 하던 초원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전주와 전선들이 시야를 가로막고, 홉스굴을 가리키는 이정표도 보인다. 저 도로가 완성되면 홉스굴은 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빌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는 말하고 싶지 않다. 발전이니 개발이니 하는 말들은 이곳에서도 비켜가지 못한다. 여기도 삽질의 대가들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 홉스굴로 가는 강     ©이시백


세 시간쯤 달렸을까. 산등성이를 돌아서니 푸른 풀밭에 엎드린 거대한 뱀 같기도 하고, 엎질러진 물 자국 같은 강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홉스굴로 흘러드는 99개의 줄기 가운데 하나인 강 곁에서는 검은 샤르락(야크)들이 기름진 진록의 풀들을 뜯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와 국립공원 표지판을 내건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홉스굴로 달려간다. 먼지 날리는 초원길을 한참 내달렸는데도 도무지 바다 같다는 호수가 나타날 것 같지가 않다. 사태로 무더기진 돌들이 쌓인 마른 개울을 지나자니, 기골이 장대한 침엽수들이 임립한 산길로 들어선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구부러진 산길을 오르내리자니 홀연히 낙엽송 사이로 희끗하기도 하고, 푸르스름하기도 한 호수의 한 자락이 내보인다.

어머니의 바다는 고요했다

▲ 홉스굴     © 이시백


'어머니의 바다'라는 홉스굴이다. 무릉에서 100㎞ 북쪽에 자리잡은 홉스굴은 길이 136㎞, 폭 36.5 ㎞ 넓이 2760㎢의 거대한 호수이건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야의 한폭일 뿐이다. 사이안(sayan nuruu) 산맥의 해발 1,645m의 높이에 고여 있으면서도 아시아에서 가장 깊다는 수심 262.4m를 지닌 호수이며, 몽골에서는 웁스 노르(uvs nuur)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호수로 그 크기는 제주도의 1.5배 면적이라 한다.

 
▲ 홉스굴     © 이시백


4대강에 보를 막으려는 자들이 꿈도 못 꾸던 아주오랜 옛날 옛적에 100개의 강이 흘러들던 홉스굴이 바다가 되려고 강의 신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아흔아홉의 신들이 모였으나 한 신이 오지 않아 끝내 바다가 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때 오지 않았던 한 신의 강이 에끄인 골(egiin gol)로 현재도 홉스굴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유일한 강으로 남아 있다. 이흔아홉의 강이 모여 하나의 강으로 빠져나가 어디로 가는가. 이곳에서 400㎞ 떨어진 바이칼로 간다고 한다. 바이칼은 바다인가. 아니다. 홉스굴의 맑은 물은 에끄인 골을 통해 무려 1,500㎞를 돌아 '풍요로운 호수' 바이칼로 흘러드는데,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호수 바이칼 역시 한 줄기의 강으로 물을 내어놓는다. 바이칼을 들르려면 러시아의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한다.

▲ 홉스굴     © 이시백

 
호수 주변에 그림처럼 자리잡은 겔들을 지날 때마다 여행자들은 탄식을 내었다. 오늘 밤을 저곳에서 머무르게 되기를 바라던 소망이 몇 차례 무너진 끝에 드디어 전망 좋은 물가의 겔 앞에 멈춘다. 시베리아 낙엽송이 여여하니 서 있는 숲 언저리에 한가로이 들어앉은 겔에서 내다보는 홉스굴의 첫인상은 '고요함'이었다. 이따금 풀을 뜯는 소들이 유유히 지나거나, 말을 타고 느리게 지나는 목부들이 지나거나, 그 속 깊은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고요할 뿐.


▲ 겔에서 본 홉스굴     © 이시백

그동안 말끝마다 홉스굴, 홉스굴 노래를 불러오던 여행자들도 막상 그 앞에 이르러서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었다. 그저 손수건만한 겔의 문을 열어 놓고 수시로 변한다는 거대한 호수의 물을 바라보며, 그 위에 얹히어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구름배와, 그것을 밀고 오가는 바람의 더듬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한심한 적막이었고, 맥 빠지는 시간이었지만, 허전하지는 않은 시간이었다. 홉스굴은 집에 돌아올 적마다 오래된 밥그릇처럼 말없이 그 자리에 있던 어머니를 닮은 호수이며, 무위가 주는 안온함의 다름 아니었다. 그를 어머니라 부르는 몽골인의 심경을 더듬어본다.

홉스굴 호수를 바라보며 스파게티를 점심으로 먹었다. 후식으로 이틀 전 사두었던 바람 든 수박도 먹었다. 서로에게 씨를 뱉으며 나른한 장난도 하며 고된 여정의 고삐를 느슨히 내려놓았다. 화장실을 묻자, 가이드가 '자연'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말이니 그보다 적확한 말이 따로 있을까.

점심을 먹고 나서 말을 타기로 했다. 말을 타고 차탕족 마을까지 가려고 했지만 너무 멀어서 힘들다는 말에 호수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말에 올라앉아 바라보는 호수는 맑다 못해 슬프리만치 푸르렀다. 풀밭을 지나 아직 꽃이 펼쳐지지 않은 가시연꽃이 촘촘히 들어앉은 물가를 지나, 걸을 때마다 잘그락거리는 자갈밭도 지났다. 말은 고요히 호수를 바라보다 못해 까무룩 졸 지경으로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행여 미친 듯이 달려 헬기 부를 비상금을 쓰게 할지도 모른다고 잔뜩 긴장했건만 이 말들은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 도무지 달릴 생각을 않는다. '츄, 츄' 에 이어, '이랴', 하다 못해 '야, 죽을래'까지 별의별 말을 다 해보아도 나른한 걸음으로 앞의 말 엉덩이만 따라갈 뿐이다. 보다 못한 가이드가 달려와 채찍으로 엉덩이를 때려보라고 한다. 아플까 봐 살살 때리니 세게 때리라고 한다. 차마 못하는 걸 보고 내 엉덩이가 뜨끔할 정도로 호되게 후려갈기건만 말은 세상만사의 경지를 벗어난 물외인처럼 꿈적도 않는다. 말고삐를 약간 당긴 뒤, 툭 풀어주며 '츄, 츄' 소리를 내면 말이 달리라는 신호로 안다는데, 목이 쉬도록 해 보아도 말은 달리지 않는다. 모든 말이 다 그러한 걸 보자니 아마 달리지 못하도록 특별정신교육을 시킨 모양이었다. 말처럼 생겼지만 절대 달리지 않는 이 짐승을 뭐라 불러야할지 궁리를 했다. 그날 저녁에 결국 나는 편도선이 부어서 고생을 하고 말았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갈기를 날리는 말에 얹혀 광활한 호수 주변을 달리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황홀한 일 아닌가.

 
▲ 홉스굴 부근     © 이시백


비록 시원스레 달리지는 않았지만 말들은 야생화들이 발 디딜 틈이 없이 깔린 숲으로 들어섰다. 용담을 닮은 보랏빛의 꽃이며, 솜다리, 물매화 비스름하니 키 낮은 꽃들이 잔잔히 깔린 숲에선 금세 요정들이 날아다니고, 난장이들이 저녁을 짓는 버섯 모양의 오두막이 나타날 것 같았다. 말이 놀란다고 사진을 못 찍게 해서 나중에 걸어와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꽃들을 바라보다가 그만 나뭇가지에 머리가 세게 부딪쳤다. 말이 천천히 걸었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달렸다면 목이 부러지거나 무협영화처럼 말에서 떨어졌을 게 틀림없었다. 얼얼한 목을 쓰다듬으며 나는 내 말이 채찍을 맞으면서도 달리지 않던 걸 속으로 감사했다.

잠깐 호수 주변을 둘러보려고 한 것이 물경 세 시간이 지났다. 산 위로 올라가 봐야 한다는 마부에게 사정하여 돌아왔다. 가만히 말위에 얹혀 있었건만 그 후유증도 다양하다. 엉덩이가 까졌다느니, 가랑이가 늘어났다느니, 가래톳이 섰다느니. 말을 타고 알타이를 넘겠다던 호기는 어디로 가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겔에 돌아왔다.

저녁 식사는 가이드가 만들어 주는 김밥이었다. 소금 넣은 밥을 오이로 속을 넣어 김에 만 것인데 멸치 같은 생선 통조림을 곁들여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몽골식이라기보다는 한국 여행자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음식 같았다.


▲ 호숫가에서의 당구     © 이시백

날이 저물면서 기온이 낮아졌다. 호수를 배경으로 외로이 놓여 있던 당구대에 두 사람이 엎드려 있다. 당구알 구르는 소리도 고요하다. 모든 게 정물화처럼 소리가 없다.
겔의 난로에 불을 피우고 나서 밖에 나와 앉으니 호수 위로 열린 반구의 밤하늘이 시원하다. 별은 성글지만 호수 위로 꿈꾸듯이 떠오르는 달이 장관이다. 달에 취한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늦도록 호수 주변을 서성였다. 술보다 호수에 잠기는 달빛에 취한 밤이었다. 시인들의 발을 침대에 묶어 놓으라는 당부를 하고 몸이 좋지 않아 먼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난로에 나무를 너무 많이 넣은 탓에 겔 안이 거의 찜질방 수준이었다. 누군가 낯선 사람이 '베리 핫(very hot!)'이라고 외치며 황급히 겔 밖으로 뛰쳐나간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밖에서 침낭을 펴고 잠자던 운전사와 가이드를 겔 안에서 자라고 불러들인 모양인데, 한국인들의 찜질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다 말고 탈출한 것이었다. 절절 끓는 방에서 온몸을 지져야 시원하다고 하는 한국인들을 그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밤새 아흔아홉의 강에서 흘러든 물들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칭얼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어머니의 바다. 거친 유목의 생활 속에서 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유목민들의 심경이 거기 깊이 고여 있는 듯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0/09/11 [16:2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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