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탕족, 발이 묶인 순록
좌충우돌 15일 몽골 북중부 표류기 ⑥
 
이시백

▲ 홉스굴     © 이시백
 
찜질을 잘못한 탓인지, 안 달리는 말에게 소리를 지르다 지쳤는지 편도선이 잔뜩 부어 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를 않는다. 여행 중에 몸이 아픈 것만큼 힘든 것이 없다. 남들에게 주의를 주었건만 막상 본인을 챙기지 못하였다.

연유를 닮은 '어름'을 바른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한 뒤, 어제 가지 못한 차탕(tsaatan)족 마을을 둘러보러 나섰다. 15㎞ 정도 떨어진 그곳을 말을 타고 가자는 말에 모두 머리를 흔든다. 어제 세 시간을 타느라 알이 박힌 다리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차를 타고 얼마쯤 달리며 이리저리 길을 묻는다. 얼마 전까지 차탕족이 머무르던 곳에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잠시 후, 숲 속에 늘어선 좌판이 보인다. 오르츠(urts)도 보이고, 풀을 뜯는 순록도 눈에 띄는 걸로 보아 차탕족 마을에 오긴 온 모양이었다. 다만 그것이 과연 하나의 부족, 하나의 마을이라 불릴만한 것인지는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이제 몇 백에 불과하다는 이 서글픈 운명의 부족들이 황학동 벼룩시장의 노점상들처럼 북적거리며 좌판을 깔고 앉아 유창한 영어로 '캐시미어 핍티 달라!'를 외치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보나마나 중국산일 조악한 기념품들이 즐비한 좌판 가운데는 'made in korea' 딱지를 붙인 캐시미어 스웨터도 버젓이 벌여져 있었다.

한쪽에 초라히 서 있는 오르츠로 향한다.  오르츠 앞에는 사춘기를 갓 넘은 듯한 소년이 서 있었다. 사진기 한 대당 5000 뚜그릭만 내면 사진을 얼마든지 찍을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 오히려 듣는 이의 마음을 애처롭게 했다. 순록을 따라 동진(東進)하며 알래스카를 넘었으리라 짐작되는 그 강인한 의지, 동토에 굴하지 않던 한 부족의 쇠잔한 운명이 이제 관광객들이 떨어뜨리는 몇 푼의 돈 앞에 추레한 손을 벌리고 있다.

순록을 쫓는 사람들 


▲ 홉스굴     © 이시백


순록과 삶을 함께 이어온 차탕족은 '순록을 쫓아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밤이면 풀어 놓았다가 아침이면 다리를 묶어 멀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한다지만, 이곳의 순록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한곳에 머무르며 밤낮없이 매어지낼 것이다. 여전히 장엄한 뿔을 지닌 채 발을 묶여 비스듬히 절룩거리며 걷는 순록을 보자니 그대로 수백에 불과한 차탕족의 현재를 보는 듯하여 안쓰럽기만 하다. 3500~4000여 년 전부터 차탕족이 키웠으리라 짐작되는 순록은 현재 몽골 전체에서 불과 630여 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니 순록과 함께 살아온 차탕족도 그와 함께 잔약한 운명을 함께 하고 있었다.

순록을 'tsaa buga'라고 하는 몽골어에서 '차탕'(tsaatan)'이라는 말도 순록(tsaa)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순록이라면 우리와도 그리 멀지 않은 메타포이다. 신라의 출자형(出字形) 금관은 순록의 뿔을 본떴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사실 순록 뿔을 형상화한 토템의 상징물들은 카자흐스탄부터 극동의 나나이족에 이르기까지 동북아시아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샤먼 가계의 세습 내력을 뜻하는 출자형 가족목(family tree)의 순록 뿔 이미지는 샤먼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는 홉스굴 부근 차탕족의 내력과도 잇닿아 있다.

양해를 구하여 '오르츠(urts)' 안으로 들어서 본다. 통나무를 얼기설기 기둥으로 둘러 세워 그 위에 천을 덮은 오르츠는 겔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일부 몽골사람들은 오르츠가 자신들의 겔을 흉내 내어 만든 것이라 하지만, 오히려 겔의 원형이라는 설이 더 유력해 보인다. 원래는 순록 가죽으로 덮었다는 오르츠는 타이거 지대에 흔한 나무를 수직으로 세워 짓고, 뜯는데 편리한 가옥의 구조이다. 순록을 따라 이동하는 차탕족에게는 한 계절을 한곳에서 나는 초원의 유목민들에 비해 더욱 기동성 있는 가옥이 필요했을 것이다. 
 

▲ 홉스굴     © 이시백

어째서 이 부족은 살기 힘든 혹한의 극지를 따라 이동했을까. 그것은 순록의 이동경로와 맞닿아 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코나 귀를 통해 체내로 유입되는 치명적인 모기와 파리를 피해 기온이 낮은 지역에 살던 순록이 차탕족을 긴 동토로 이끌었으리라.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순록을 따라 동진하여 그 일파가 알래스카마저 건너 아메리카 원주민의 원류가 되었으리라 짐작되는 이 강인한 부족이 이제 지구상에서 단 40여 가구, 200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비감함마저 느끼게 한다.

발이 묶여 몸을 한쪽으로 기울인 채 게처럼 옆걸음질 치는 순록을 지켜보자니, 그 머리에 얹힌 장대한 뿔의 위엄이 외려 안쓰러워 보여 서둘러 자리를 떴다. 여전히 사람들을 피해 순록과 함께 깊은 산중에 있다는 나머지 차탕족들이 부디 그들만의 세상에서 온전히 수천 년 이어온 그들의 삶을 이어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겔로 돌아와 어제 말 타고 지나쳤던 '산중의 꽃밭'을 찾아 나섰다. 낙엽송이 조밀히 들어찬 숲을 더듬어보았지만 지나친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무릉을 벗어나면 그곳은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피안의 세계로 멀어지는 것인가.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게 다시 만나지 못한 그 꽃들의 낙원이야 말로 오래도록 여행자의 가슴에 남을 것을 믿어마지 않는다. 여행이란 그렇게 지나고 나서 비로소 돌아보는 아련한 길 같은 것이 아닐까.

홉스굴을 떠나며
 

▲ 홉스굴     © 이시백

홉스굴을 떠나며 사람들은 자꾸 뒤를 돌아본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될까. 다시 찾아올 때 이곳은 이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이 여행자 아니던가. 차에 몸을 싣고 깊이 모자를 내리 눌러 쓴다. 홉스굴은 여전히 물소리 한번 내지 않으며 지나는 바람에도 물비늘 한번 반짝이지 않는다.  

▲ 홉스굴     © 이시백
되짚어 오는 길에 에르헬 노르(erhel nuur)에 들르기로 했다. 가이드의 말로는 위도와 경도가 교차하는 호수라는데 정확히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홉스굴의 명성에 가려져 여행자들이 별로 찾지 않는다는 호수라는 말에 더욱 가 보고 싶었다. 일정에 없던 길은 이내 멈춰 선다. 우기의 습지가 많아서 호수까지 가지 못하고 멀리서 신기루 같은 호수만 바라보아야 했다. 아쉽지만 별 수 없었다.

모처럼 화창한 하늘이 열렸다. 고비와는 달리 이리저리 오르내림이 빈번한 홉스굴 일대에선 만나기 드문 넓은 초원 위로 구름이 늘어뜨린 땅거미가 서늘하다. 일행의 차를 기다리며 맛보는 오랜만의 무료함이 즐거웠다. 할 일이 없는 사실이 주는 자유로움, 무언가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는 선뜻 발을 내딛기 어려운 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심심해 죽을 지경의 무료함이 주는 자유로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줌의 그늘도 없으며, 어디에 기댈 언덕도 없이 막막하니 열린 벌판에서 서로의 그림자에 기대어 손닿는 곳의 돌을 주워다 쌓는다. 왜 쌓는지 묻는다면, 그저 심심해서라고 밖에 답할 수 없다. 잠깐 사이에 작은 오워가 만들어진다. 아마 최초의 오워도 이렇게 '더럽게 할 일 없는' 무료함의 산물이기를 꿈꿔 본다. 그 무료함이야말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밤에도 잠을 자지 않는 지도자를 모신 어느 불행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나는 이 날의 무료함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나그네는 무릉에서 쉬지 않는다

▲ 홉스굴     © 이시백
먼지 덮인 무릉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른 길이 있었다면 돌아갔을 터인데, 되짚어 온 무릉에는 방이 없었다. 나담 축제 때문에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게스트하우스마다 꽉 찼다는 것이다. 잠시 비운 사이에 이럴 수가 있을까.

게스트 하우스 마당에 텐트를 친다는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여행자들이 버글거리며 오가는 손바닥 만한 마당 복판에 텐트를 치고 드러누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담 축제를 못 보는 한이 있더라도 무릉 외곽의 다른 숙소를 찾아보기로 하고 서둘러 무릉을 벗어났다.

편도선염이 심해서 무릉 시내의 약방을 찾았다. 가이드가 대강 증세를 말하자, 평상복을 입고 있던 약사가 수술복 같은 가운을 찾아 입고, 머리에 모자까지 쓴다. 그리고 입을 벌려 보라는 말에 나는 당연히 약사가 내 목구멍 안을 들여다 볼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목구멍은 가이드 민주가 들여다보고, 약사는 민주가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내어주는 항생제 한 판을 받아들고 나오며 나는 그 약사가 어째서 그 거창한 가운과 모자를 차려 입었는지 심히 궁금했다.

홉스골 아이막의 주도인 무릉(moron)은 '강(江)'이라는 뜻을 지닌 도시이다. 그 이름답게 무릉 주변에는 강이나 호수가 많다. 그 자신보다 더 큰 홉스굴 호수를 거느린 무릉은 그 길목에서 몰려오는 여행객들에게 손을 벌리고 선 도시인 셈이었다. 3만 5천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도시이지만 홉스굴 주변의 숲에서 나는 야생열매나 좌판에 내어 놓고, 우식인 우불의 사슴돌 유적지를 제외하고는 별달리 둘러볼 만한 것도 지니지 못했다. 시간이 바쁜 여행자들을 위해 울란바타르에서 670㎞ 떨어진 이 도시 간에는 주 1회 비행기가 오가고 있었다.

꽃핀 풀밭에서의 씨름

▲ 무릉     © 이시백
무릉을 벗어나 얼마쯤 가다 보니, 몽골에서는 보기 드문 물 흐르는 계곡이 나타난다. 알프스의 집처럼 산언덕에 얹힌 집들이 동화의 한폭 같다. 혹시 저곳에서 머무는 행운이 찾아올까.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자니 차가 동화책 속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멈추었다. 소녀 둘이 나와 무어라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눈다. 제발 방이 있기를.... 있단다. 일제히 환호를 지르며 뛰어내린다. 무릉의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할 상황에서 졸지에 동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새로 온 운전사 모기가 아는 사람이 있는 덕에 예정보다 더 좋은 곳에 머물게 되었다. 여자들은 개울가 겔에 묵고, 남자들은 산비탈에 있는 삼각형의 목조 방갈로로 짐을 옮겼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담 축제로 화제가 옮겨졌다. 부흐(bukh)라는 몽골식 씨름 이야기가 나오자, 운전사들이 즉석에서 씨름 경기를 보여 주었다. 가이드 타이왕과 바토르라는 운전사가 대결을 보였는데, 아버지뻘이 될 바토르가 한창 때의 타이왕을 이겼다. 힘보다 관록과 기술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경기였다. 이어서 젊은 운전사 톳싸가 바토르에게 도전하였는데, 용호상박의 경기를 벌였다. 두 사람이 벌이는 진지하고 치열한 씨름 장면을 보면서 강자만이 살아남는 몽골 유목생활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였다. 비록 무릉에서의 나담 축제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 작은 풀밭 위의 나담도 볼만했다.
 
몽골식 씨름인 부흐는 말 경주와 함께 나담의 꽃이라 할 만큼 인기 높은 경기인데, 울란바타르에서 큰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대규모의 부흐 경기를 본 적이 있었다. 속옷에 가까운 짧은 반바지와 한쪽 팔만 가리고 가슴을 드러낸 웃옷을 입은 씨름꾼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벌이는 경기 모습은 흡사 두 마리의 독수리 같았다. 그 묘한 웃옷에도 사연은 있다. 여성은 출전이 금지된 씨름대회에 어느 여자가 몰래 참가하여 우승을 하였단다. 그 이후로 가슴이 드러나는 옷을 입게 되었다고 한다. 승자는 두 팔을 벌려 독수리가 날개짓 하는 춤을 추고, 패자는 승자의 벌려진 팔 밑으로 고개를 숙였다. 무척 단조로워 보이는 경기인데도 무려 사흘씩이나 이어가며 몽골 전역에 중계될 만큼 인기가 높다고 했다.

편도선염이 심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노란 들꽃들이 군락을 지어 핀 언덕을 지나 방갈로에 누우니,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서늘하다. 여름은 저렇게 흘러가고 그 자리에 가을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0/10/10 [21:23]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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