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똥 한덩어리만 더 주세요."
좌충우돌 15일 몽골 북중부 표류기 ⑨ 텡게르산에서 받은 선물
 
이시백

▲ 텡게르산의 수호신     © 이시백

  난로의 아르갈이 다 탔는지 새벽의 겔은 추웠다. 추위에 새우잠을 자던 여행자들은 여기저기서 쿨룩거리며 부스럭거리다가 평소보다 이르게 일어났다. 서리가 하얗게 덮인 겔 밖으로 나가보니 놀랍게도 겔 문 앞에 내놓았던 대접의 물이 얼었다. 7월에 얼음이 어는 곳이다. 지난밤에 노숙을 하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얼어 죽지는 않더라도 아마 한숨도 잠을 자지는 못했을 것이다. 새삼 불쑥 들이닥친 여행자에게 겔을 내어준 주인이 고맙다.

▲ 항가이 고원의 아침     © 이시백

  해가 뜨면서 밖이 조금씩 따뜻해진다. 헐헉을 난로에 데우고, 누룽지를 끓여 대충 아침 식사를 때운다. 지난밤에 일찍 잠이 들었던 아이들이 낯선 여행자들 이야기를 듣고 겔로 놀러왔다. 사탕과 과자를 선물로 주니 동생으로 뵈는 남자 아이는 덥석 잘도 받는데, 누나로 뵈는 소녀는 공손히 하나만 집으며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과자를 더 권하자 또 집으려는 남동생의 손을 슬며시 말리는 소녀의 마음이 곱고 조신하기만 하다. 고원에서 들꽃과 양들만 보고 자랐겠지만 참 심성이 곱고 품위 같은 걸 지닌 소녀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의 이름을 물으니, '을찌마'라고 한다.

  초원의 꽃, 을찌마
 

▲ 늑대를 막는 허수아비     © 이시백

  겔 밖에서는 사납게 짖어대던 몽골 개들이 어슬렁거리는데, 신통하게도 손님인 것을 알았는지 어제와 너무 다르게 유순하다. 먹다 남은 헐헉을 주니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겔 부근에 옷을 걸친 나무 기둥이 눈에 띈다. 늑대들을 막으려고 사람 모양의 허수아비를 세운 것이라고 한다. 아, 항가이의 늑대... 전성태 소설집 '늑대'에 나오는 그 검은 항가이의 늑대가 생각난다.

▲ 겔의 주인장     © 이시백

  비록 하룻밤을 묵은 곳이지만 훌쩍 떠나기가 아쉬웠다. 함께 사진도 찍고 감사의 답례로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은데, 꼭 필요한 짐만 챙겨오다 보니 마땅한 것이 없었다. 나이가 든 주인 할아버지(실제 나이는 오십대 가량일 것이다)에게 케토톱을 드렸다. 혹시 넘어지거나 아프면 붙이라는 설명과 함께.

  얌전하고 예쁜 을찌마와 헤어지는 게 섭섭하여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지만, 과연 그것을 지킬 수 있을지, 다시 돌아오면 이곳에 을찌마를 만나게 될 수 있을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운한 마음에 지니고 있던 하닥을 을찌마에게 묶어 주었다.

  짐을 챙기고 떠나려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하닥을 목에 두르고 다가 온다. 손에는 수태차가 담긴 대접을 들고 있다. 길 떠나는 사람의 안녕을 비는 의미로 건네는 수태차가 유난히 따뜻하다. 사람을 만나기 힘든 유목민들이 손님을 얼마나 반기고 후대하는가를 절감하게 되었고,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에 스며든다. 수태차를 먹고 난 사기 대접을 기념으로 주어서 어제 밤에 먹다 남은 보드카일망정 답례로 양해를 구하여 건넸다.

▲ 고원의 소녀, 을찌마     © 이시백

  손을 흔들며 떠나는 길이 아쉽다. 어느 누구도 정확한 지명도 모르는 이 낯선 곳을 되짚어 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이번 생에서 바람처럼 만나고 스쳐 지나가는 길이니 더욱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드는 고원의 한 가족이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가슴에 잔영을 남긴다. 초원의 꽃 같은 을찌마를 생각하자니, 교육이 무엇인지, 사람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들게 한다. 워즈워드의 초원의 꽃이라는 영시의 한 구절이 문득 아련히 떠오른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찾을 길 없더라고 결코 서러워말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모든 것은 오래된 먹빛처럼 희미해질 것이나,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없지 않을 것이다.

  구루반블락의 사슴돌 앞에서

▲ 구루반블락의 사슴돌     © 이시백

  날이 늦어 예기치 못하고 머문 유숙이었지만, 그 때문에 유목민들과 좀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게 되어 좋았다. 여행은 이처럼 시간표를 벗어난 일탈에서 즐거움도 얻어지는 법이리라. 두어 시간을 달리도록 나무가 있는 산은 보이지 않는다. 험준한 바위들이 아르갈처럼 무더기진 길로 접어드는데, 바닥에도 여기저기 돌들이 솟아 있어 자칫 바퀴가 찢길까 조심스럽다.

  오전 10시 50분경, 멀리 구루반블락 솜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 우뚝 솟은 사슴돌이 먼저 여행자들을 맞는다. 자연석이나 다듬어진 석주 모양의 돌에 사슴 문양을 새겨 놓은 '사슴돌'은 알타이 산맥에서 많이 보이는 암각화의 형태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사슴 토템으로 변이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시기와 장소에 따라 몇 가지 양식의 차이가 보인다. 초기에는 주로 사슴의 전신을 양면에 새겨 넣다가 후기로 가면서 석주 형태로 다듬어진 돌의 사방면에 사슴의 문양을 돌아가며 새겨 넣으며 특히 남쪽 방향으로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겨 넣는 것이 특징이다.

  사슴들은 무릉 부근에 가장 많이 남아 있는데, 14개의 사슴돌이 있는 우식인 우불(uushgin uvur)를 비롯하여 에르헬 노르(erhel nuur), 울란톨고이(ulaan tolgoi),햐다끄인 암(khyadagiin am) 등 홉스굴 부근에 주로 많이 산재되어 있다.

  구루반블록 솜의 동구에서 만난 사슴돌은 석주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는 데다가 꼭대기에 사람의 얼굴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가장 후대의 것으로 보여진다. 후대의 사슴돌에는 하단에 화살이나 칼 같은 무기들이 새겨져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한다.

  그 사슴돌이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워와 함께 동구를 지키는 경계석이거나, 사슴돌 부근에 적석무덤이 함께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분의 석물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될 뿐이다.

  춥고 황량했던 항가이를 넘어와 사람이 사는 마을을 만나니 반가웠다. 구르반블락 솜에서 보드카 두 병을 샀다. 짐을 두고 와 먹다 남은 보드카를 선물한 것이 다시 아쉬었다. 
  마을을 벗어나니 돌로 지은 꽤 큰 규모의 집 가까이 흐르는 개울가에서 차를 세우고 점심을 준비한다. 아껴 두었던 얼큰한 짬뽕 우동을 끟여 먹기로 했다. 누룽지와 헐헉에 질린 입에 얼큰한 국물이 들어가니 정신이 번쩍 든다. 가이드들도 매운 짬뽕우동을 잘 먹는다. 대개 한국에서 일 년 가량 지냈던 터라 매운 맛에 익숙한 듯했다. 식사 후에는 생수에 비티만 씨 분말을 타서 마셨다. 과일이나 야채가 부족한 몽골이라 모자란 비타민 씨를 보충하는 방편이다.
  이따금 비석처럼 선 돌무더기가 눈에 띄었다. 돌을 원형으로 박고 네 방향으로 큰 돌을 세운 형태인데, 흉노족의 무덤으로 여겨졌다.

  만년설에 덮인 텡게르 산

  한참을 더 달려간 뒤에야 멀리 설산이 보인다. 멀리에 하얗게 눈을 얹고 있는 반구형의 산이 텡게르 산이라는 말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아직 그곳까지 가려면 멀기는 해도 일단 눈에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가 되었다. 길을 아는 사람도 없이, 길에 버려진 채 지도를 더듬어 온 것만으로도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차강노르를 떠나 항가이를 넘어 하루만에 이곳에 오려 했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 오트공 강을 건너는 차     © 이시백

  오후 3시 30분경, 자브한(zavkhan) 아이막의 오트공(otgon) 솜에 들어선다. 제법 깊어 뵈는 강으로 둘러싸인 오트공 솜으로 들어가려면 강을 건너야 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얕은 여울목을 찾던 운전사들이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들에게 길을 물었다. 손가락으로 일러주는 대로 가 보았지만 여전히 물살이 빠르고 깊어 보였다. 이번에도 타이왕이 나섰다. 물에 들어가 깊이를 더듬어 본 뒤, 차들이 건넜다. 깊은 곳은 타이왕의 허벅지를 훌쩍 넘었다. 먼저 파제로 지프가 먼저 건너고, 그 뒤를 스타렉스가 용감하게 따라 건넜다. 물살을 가르며 건너는 차들은 바퀴가 완전히 물에 잠긴 상태였지만 무사히 여러 갈래로 나뉜 물줄기를 서너 차례 건넜다.

  오트공 솜에서 기름을 넣는 동안 가이드 민주가 쌀을 한 봉지 샀다.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버기가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나 올 것 같다는 것이다. 밤새워 달려오겠다고 했지만 별로 믿어지지 않던 일이었다. 당장 먹을거리와 경비, 여행 짐들을 지닌 버기의 차가 오지 않으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기는 해도 텡게르(tenger) 산은 멀었다. 당장 다다를 것 같던 설산은 구비를 하나 돌아가면 또 저만큼 물러나 있었다. 한참을 더 돌고, 달린 끝에 드디어 오트공 텡게르(otgontenger) 산 입구에 도착했다. 191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텡게르 산 일대에서는 야영과 사냥이 금지된다는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경고판에는 땅을 파는 삽도 금지된 그림이 끼어 있었는데 함부로 땅을 파헤치지 못한다는 경고에 땅이 아니라 산을 통째로 깎아뭉개고, 그도 모자라 강마저 파헤치는, 국격 높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심상히 보이지가 않았다.

▲ 텡그리산의 여행자 캠프     © 이시백

  입구에는 여행자 캠프촌의 겔들이 몇 채 서 있는데, 거기서 소녀 둘이 달려나온다. 자연보호구역 입장료를 내라는데 외국인 1인당 3,000뚜그릭, 몽골인은 300뚜그릭이라고 한다. 그곳을 지나 텡게르 산쪽으로 가니 요란한 텡게르산 수호신의 모형이 무서운 얼굴로 서 있다. 몽골인들이 섬기는 하늘님 격인 텡그리가 머문다는 텡게르 산은 많은 금기로 성역화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여자들의 접근을 금기시 여기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 부근에 야영을 하겠다는 말에 야단이 났다. 돈과 짐을 가진 버기가 아직 오지 않은 터이니 별다른 수가 없겠지만, 어젯밤에 항가이 산정에서 얼음 어는 밤을 보냈던 여행자들은 무엇보다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가 필요했다. 우리가 돈을 추가로 지불해서라도 여행자 캠프에서 자겠다고 했다.

  캠프장에 가서 겔을 알아보기로 했다. 다행이 두 채가 있었다. 비용은 원래 외국인은 1인당 10,000뚜그릭인데 얼핏 몽골인처럼 보여서 1인당 5,000 뚜그릭으로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난로가 없다는 것이다. 해발이 3,000m 가량 되는 데다가 날이 흐려 바람이 불고 추웠다. 얼마 전에 비가 와서 아르갈이 모두 젖어 난로에 불을 피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통사정을 했더니 주인집에 조리용으로 남겨 놓은 아르갈을 좀 나눠 주겠다고 했다. 

  똥이 이렇게 귀할 줄이야

▲ 만년설에 덮인 텡게르산     © 이시백

  겔을 두 채 얻어 놓고 텡게르 산으로 향했다. 원래는 어제 도착하여 오늘 아침 일찍이 올라가야 정상에 오를 텐데, 많이 늦어서 호수가 있다는 부분까지만 오르기로 했다. 막상 올라가니 둠벙이라 할만큼 작은 웅덩이가 괴어 있을 뿐이다. 제대로 찾지 못한 듯한데 텡게르 산에는 바다르혼다가를 비롯하여 모두 8 개의 호수가 있다 한다. 오르는 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았지만 해발이 높은 탓인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희귀한 꽃들이 함초로이 피어있는데, 텡게르 산에는 완샘부르, 알랑 혼다가, 혼치르 등의 희귀한 약초들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향나무가 유명하다. 향나무에 손을 대기 전에 손뼉을 치고, 무릎을 꿇고 하늘에 절을 하는 의식부터 올려야 한다. '하늘 꽃'이라 불리는 완샘부르는 눈과 얼음 덮인 바위 위에 자라는데, 제사를 지내는 날이면 천막으로 덮어 하늘에 보이지 않게 한 뒤 산신에게 제를 올린 뒤 개가 입으로 물어오게 하는 이상한 관례가 있다 한다.

▲ 텡게르산의 야생화     © 이시백

  해발이 4,021m인 텡게르 산은 항가이 산맥의 서측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매년 산의 정상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4년마다 대통령이 참석하여 산신제를 지낸다는 텡게르 산은 몽골인에게는 하늘과 통하는 신성한 영산으로 여겨지는 듯했다.

  여성이 산에 오르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며 가이드 민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의를 준다. 텡게르 산의 금기를 깨려는 듯 여성 여행자들이 맹렬히 산행에 앞선다. 길에 버려지고, 추운 고원에서 잘 곳을 찾아 헤매고, 이제 돈과 양식마저 떨어진 터에 더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러나 금기는 날이 지켜 주었다. 바로 눈앞에 만년설이 손에 잡힐 듯한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만년설이 덮인 지점이 3,752m 높이부터라니, 그날 오른 곳의 해발은 대략 3,500m쯤 되어 보였다. 날이 빗방울이 떨어질 듯 흐린데다가 너무 늦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눈에 덮인 설산 부분부터는 경사가 가팔라서 장비가 없이는 걸어서 오르기가 어려워 보였다.

  산에서 내려오니 날이 저물어 서둘러 난로에 불을 피웠다. 한 부대에 담긴 아르갈(마른 소똥)을 둘로 나누니 얼마 되지 않았다. 겔마다 아르갈을 한 덩어리라도 더 받으려고 통사정을 한다.

  "똥 한덩이만 더 주세요."

  참 별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자연보호구역답게 캠프장 근처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널판이 성글게 깔린 화장실에는 좌변기가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었다. 밑이 뻥 뚫린 좌변기 밑에는 인분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하룻밤의 추위도 덥힐 수 없는 사람의 똥이었다. 오죽 추웠으면 좌변기 아래 수북히 쌓인 인분을 난로에 집어넣을 궁리마저 했을까.

  고맙고 따뜻한 선물

  겨우 잠잘 곳을 구하고 나니, 이제 먹을 것이 걱정이었다. 먹을거리며 짐과 여행 경비를 가진 버기가 오지 않으니 당장 내일 먹을 쌀조차 없었다. 오늘 아침에 이곳에 와 있으리라던 버기는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운전사들이 차를 몰고 손전화가 되는 곳까지 나가 보았지만 버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을까. 만약 버기가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곳에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식사며 숙박은 어떻게 하나. 이런저런 궁리로 걱정을 하는데 가이드 민주가 밝은 얼굴로 멋진 선물을 주겠다고 한다. 오늘이 몽골 풍습으로 '선물의 날'이라고 한다. 무엇인가 기대를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서니 회전식탁에 반짝거리는 자기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과 가지런히 놓인 수저와 자기 그릇들이 그것을 차린 사람들의 마음과 정성을 따스하게 전해 주었다. 캠프장 주인 식당을 빌려 모처럼 '인간다운 만찬'을 선물한 가이드들의 정성이 가슴에 뭉클하게 전해왔다. 춥고 힘든 여정에 지치고, 돌발적인 사고로 앞을 걱정하느라 침울해진 여행자들에게 그들이 준비한 '선물'은 참으로 고맙고 따뜻하기만 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깥에서 노숙해야 하는 여자 가이드 민주가 겔에서 함께 잘 수 있도록 한 사람의 겔 비용을 더 지불해 주는 것뿐이었다. 가이드 민주는 그것을 오래도록 고마워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0/11/10 [11:14]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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