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늑대 우는 산길을 혼자 걸어온 여자
좌충우돌 15일 몽골 북중부 표류기 ⑩ 감동의 가이드 버기
 
이시백
▲ 수렁에 빠진 차 건지기     © 이시백

  한 줌 되는 아르갈(말린 소똥)이 일찌감치 꺼져 버린 겔(몽골 전통 주택)은 춥기만 했다. 새벽에 들러 불을 지펴 준다더니 감감무소식이었나 보다. 편도선염은 조금 가라앉은 듯한데 기침이 멎지를 않는다.

  행여 밤중에 왔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가이드 버기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운전사 바토로가 여행사에 전화를 했더니 차를 보냈으니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당장 아침에 밥을 지을 쌀이 없어 가이드 민주가 캠프 식당에서 얻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여정을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기를 더 기다릴 수가 없어 우선 여행자들이 지닌 돈으로 차에 기름도 넣고 식품도 사서 여행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멀어져간 알타이의 꿈

▲ 텡그리 캠프장의 샤워실     © 이시백


  문제는 일정이 늦어지면서 예정되었던 알타이(altai)를 들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알타이까지는 텡게르(tenger)산에서도 사흘 정도가 걸린다고 엄살을 부리는 운전사들을 독려해 보지만 추위와 고된 여정에 지친 여행자들도 내켜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꿈에 그리던 알타이를 가까이 두고 돌아간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사실 알타이는 몽골의 서북 끝단에 위치하여 독수리 사냥으로 유명한 올기(olgiy)의 카자크 마을을 들러보는 게 아니라면 그곳만을 들르기 어려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몽골 전통음악인 허미((khuumi)의 본산이며 금(金)을 찾던 흉노족이 넘던 알타이 산맥을 넘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이번에도 무산되는 심정은 아쉬움이 컸다. 험준한 알타이의 준령들을 넘지는 못하더라도 알타이 솜에 들러 먼발치로나마 바라보고라도 싶었다. 뜻하지 않은 자동차의 고장, 그리고 길을 안내할 운전사가 도중에 돌아가서 일정이 틀어진 것이 원망스러웠다. 사실 프루공(러시아제 승합차) 두 대면 넉넉할 여행을 비용을 더 들여가며 세 대씩이나 운행한 것은 여성 여행자들이 많고 길이 험하여 좀 더 편한 여행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툭하면 고장 나는 차 때문에 여행은 두 대에 끼어 타고 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차량 한 대의 비용은 돌려받을 문제였다. 게다가 길가에 여행자를 버려두고 달아난 운전사의 행위는 전적으로 여행사가 책임져야 할 문제였다. 울란바타르에 돌아가면 이런 문제들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남은 잔금에서 야무지게 깎을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밤새 걸어온 버기

▲ 버기가 밤새 걸어온 길     © 이시백


  더 기다릴 수가 없어 봄브고르(bombogor) 솜으로 이동하려고 차에 짐을 싣는데, 놀랍게도 가이드 버기가 나타났다. 오전 10시 30분경,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온 버기를 보는 순간, 모두가 환호하며 반가워했다. 여행자와 여행사의 중간에서 발만 구르며 걱정하던 가이드 민주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버기는 울란바타르(몽골의 수도)에서 새로 보낸 스타렉스를 타고 지름길로 오던 중, 어제 오전에 텡그리에서 50㎞ 가량 떨어진 습지에 차가 빠져버렸던 것이다. 수렁에 빠진 차를 꺼내 보려고 애쓰다가 인근 겔에 운전사는 남고, 자신을 눈 빠지게 기다릴 여행자들을 향해 밤새 걸어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이 어린 여대생 버기가 혼자서 늑대 우는 밤길을 걸었다는 말을 듣자니 코끝이 찡해졌다. 무섭지 않았느냐는 말에 '늑대가 나타나면 어쩌나' 걱정했다는 이 당찬 여대생은 꼬박 밤을 새워 걷다가 말과 오토바이를 얻어타고 지금에서야 텡게르에 도착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식이 없는 그녀를 원망했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침울했던 여행단은 환호와 감동의 재회를 나누며 생기를 되찾았다. 비록 나흘째 신은 양말을 꿰찬 노숙인 행색이지만 용기백배하여 수렁에 건진 버기의 차를 건지러 길을 나섰다. 
   '우리가 간다!'
  보무도 당당하게 구난의 길에 나선 차는 얼마지 않아 무릎밖에 오지 않는 개울에 빠져 버렸다. 물은 그리 깊지 않았지만 개울 바닥에 깔린 미끄러운 자갈들이 문제였다. 결국 개울을 건너지 못하는 스타렉스에 모두 끼어 타고, 나와 타이왕이 버기를 데리고 파제로 지프로 수렁에 빠진 스타렉스를 건지러 가기로 했다.

  마침 운전사가 머문다는 겔의 가족들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시종 물줄기를 끌고 가는 길은 차 한 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험한 바위산을 지났다. 당장 짐승이 튀어나올 듯 험준한 바위산을 지나며, 이 길을 여자 혼자서 밤새 걸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왔다. 한참을 달린 끝에야 겔 두 채가 보였다. 키가 작고 나이가 조금 든 몽골 운전사 미가가 삽을 챙겨 들고 나왔다. 버기는 겔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겔의 젊은 주인이 따라나섰다. 그야말로 이리저리 둘러봐도 몽골 사람들뿐이었다. 뜻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모처럼 제대로 된 몽골 여행의 기회를 갖게 된 듯하여 마음이 오히려 느긋해졌다.


   수렁에서 건진 스타렉스

▲ 구난작업     © 이시백


  차가 빠진 곳은 겔에서도 꽤 먼 거리였다. 스타렉스가 물이 질컥거리는 습지에 네 바퀴를 반쯤 빠뜨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날은 흐릿하고 간간히 빗방울을 떨어뜨렸다. 방한복을 입었어도 한기가 들었다. 스타렉스에 실려 있던 엄청난 양의 여행 짐들을 죄다 끌어낸 뒤 모두 차 밑에 엎드려 땅을 파고, 돌을 받치느라 이내 온몸이 후줄근히 젖었다. 부들이며 떼로 덮인 땅은 스펀지처럼 푹신거릴 뿐 삽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렁에 엎드려 온몸이 물에 젖은 운전사 미가는 필사적으로 삽으로 파내고 그 밑에 돌을 깐 뒤, 거기에다가 유압 인장기를 세웠다. 미끄러운 자갈돌에 세운 인장기는 자꾸 미끄러져 몇 번이고 허탕을 쳤지만 전혀 굴하지 않았다. 곁에서 지켜보는 내가 오히려 지칠 정도였다. 가이드 타이왕과 운전사 톳싸가 어디론가 한참을 가서 뒤진 끝에 큼지막한 통나무들을 가져왔다. 그걸 차축에 걸어 지레 삼아 들어올리자 차가 수렁에서 조금 떠올랐다. 그 사이에 바닥에 돌을 받치고 다시 인장기로 들어올리기... 다시 통나무로 들어올리고, 돌을 받치고, 인장기.... 이렇게 네 바퀴를 돌아가며 수렁 위로 끌어내자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비바람에 몸을 적신 채, 내가 건네주는 과자 몇 개를 우물거리는 걸로 점심을 대신하는 몽골 사람들을 보자니 그들이 어떻게 이 춥고 험한 초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 비로소 눈으로 확인하는 심정이었다. 지나가던 차들은 예외없이 멈추어 걱정을 해 주었다. 어느 젊은 남자는 구두를 수렁에 빠뜨려가며 달려들어 거들기도 했다. 얼마나 열심히 돕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아빠를 아이가 부르고, 아내가 경적을 울려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곤경에 빠진 이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유목민들의 습속이 온몸을 흠뻑 적시고도 먼저 떠나는 걸 미안스러워하던 그 젊은 몽골 가장의 모습에서 실감하게 되었다. 한밤중에 들이닥친 낯선 사람들을 재워 주고 그것도 모자라 삽을 들고 따라와 온종일 수렁에 빠져 찬물을 뒤집어 쓰는 겔 주인도 그에 못지 않았다.

  이런 이들의 도움으로 수렁에 빠졌던 스타렉스의 바퀴가 드디어 수렁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파제로 지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끌어냈을 때는 거진반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였다. 오전 11시에 차를 건지러 출발했으니 무려 6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점심도 거른 채 비바람에 젖자니 한기가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온몸을 적신 사람들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손이 시린 개울물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젊은 타이왕은 머리까지 감았다. 한 마디로 질려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타르박 사냥

▲ 타르박 사냥     ©이시백


  차를 건져 돌아오는 길은 한결 가벼웠다. 다만 날이 너무 늦어서 앞서 떠난 일행들과 합류할 생각이 걱정되었다. 가이드 타이왕에게 서둘러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괜찮아요."라며 웃는다. 어떤 일이든 그는 웃으며 한국말로 '괜찮다'는 말을 애용했다. 나도 몽골말로 '쥬게르, 쥬게르(괜찮다)'를 되뇔 수밖에.

  겔로 돌아가는 길에 바위산에서 타르박 사냥꾼들을 만났다. 땅바닥에 엎드려 어딘가를 향하여 총을 겨누고 있었다. 구멍에서 나오는 타르박을 노리는 모양인데 허탕을 치고 일어섰다. 얼마쯤 가자니, 운전사 톳싸가 갑자기 차를 세운다. 겔의 젊은 주인이 쏜살같이 내려 바위틈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 타르박이 숨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삽을 꺼내들고 땅을 파기 시작한다. 바위에 걸려 땅이 제대로 파지지 않자 구멍 속으로 대뜸 손을 넣어 휘젓는다. 안에다 대고 사진을 찍어보았더니 바위틈에 웅크린 타르박이 보였다.

▲ 바위 틈에 숨은 타르박     © 이시백

  사람이 드문 곳이라 타르박이 많은 모양이었다. 토끼만한 몽골의 대형 설치류인 타르박은 한때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흑사병의 주범으로 야생들쥐와 함께 지목된 바 있다. 고기가 부드럽고 맛이 좋아서 몽골 사람들도 잔치나 명절 때나 쓸 정도로 귀히 여긴다고 한다. 요즘 들어 남획되는 바람에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쳉겔(tsengel)에 머물렀던 루이사 워프가 쓴 책에 따르자면, 페스트가 퍼진 마을을 고립시킨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보아 아직도 몽골에선 페스트가 발생하는 듯하다. 지난해 함께 여행했던 몽골 가이드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태연히 하는 말이, "병이 걸린 타르박은 행동이 느려서 알 수 있다. 쌩쌩하고 날렵한 타르박을 잡아먹으면 된다"고 했다.

  타르박은 슬픈 설화를 지니고 있다.
  하늘에 태양이 일곱 개나 되어 고통스러울 때, 명궁이었던 에르히 메르겡이라는 궁수가 화살로 그것을 떨어뜨리겠다고 나섰다. 만약 못 한다면 평생 땅속에 들어가 물도 마시지 않고 살겠다고 장담했다. 안타깝게도 이 궁수는 마지막 남은 해 하나를 떨어뜨리지 못하였다. 장담한 대로 그는 땅속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는데, 그가 바로 타르박이라 한다. 그래서 타르박은 홧김에 자른 짧은 앞다리와 엄지손가락을 한 채, 지금도 구멍에서 나와 해를 원망의 눈으로 노려본단다.

  타르박은 호기심이 많다고 한다. 이 점을 이용해, 눈에 잘 띄는 흰 색의 옷을 입고, 머리에 이상한 모자를 쓰고 꼬리까지 매달아 이리저리 흔들며 다가가면 타르박이 넋을 놓고 바라보는 틈에 화살로 쏘아 잡는 것이 몽골 전통의 타르박 사냥법이라고 한다.

▲ 고마운 오트공의 겔     © 이시백

  겔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여섯 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온종일 굶었던 터라 겔의 안주인이 주는 아롤(유제품)이며 버르측(밀가루빵) 같은 것을 사양않고 받아 입에 넣었다. 무엇보다 따뜻한 수태차이(우유에 녹차와 소금을 넣어 끓인 차)를 두 잔 마시고나니 몸도 풀리고 비었던 속도 든든해졌다. 요기를 한 후 길을 나섰다. 곤경에 빠진 이웃들을 가족처럼 돌보아준 사람들이 모두 나와 배웅을 해 주는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죽고 싶어?"


  조금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렁에 빠진 차를 건져내어 돌아가는 길은 흐뭇하기만 했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여행자들의 짐을 전리품처럼 가지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날은 벌써 어두워져 마음이 조급했지만 가이드 타이왕은 여유만만하다. 밤이 늦더라도 반드시 일행들과 만나야 한다는 내 다짐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장담한다. 행선지는 바이양홍고르(bayanhogor) 아이막의 봄보고르(bombogor)이지만 거리상으로 오늘 들어가기는 힘들고, 앞선 차도 거기까지는 못 갈 것이라고 했다. 바이양블락(bayanbulag) 솜이라는 곳에서 기다릴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방향도 모른 채 불빛 하나 없는 먹물 같은 길을 달린다. 얼마쯤 달렸을까. 멀리 까물거리는 불빛이 나타나고, 정적에 잠긴 마을이 나타난다. 바이양블락(bayanbulag) 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가까워졌다. 이쯤에 있으리라던 일행들은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해 보니, 예상을 뒤엎고 그들은 벌써 봄보고르에 가 있었다. 기가 막힌 것은 호텔에 묵고 있다는 것이었다. 호텔? 이런 황당할 수가.

  마을은 일찌감치 잠이 든 듯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길을 물으려고 해도 사람이 없으니 난감하기만 하다. 겔의 문을 두드려도 한밤중의 낯선 사람들이 두려웠는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그때, 오토바이 한 대가 불을 켜고 요란한 소리로 달려온다. 운전사 톳싸가 급히 차를 몰아 우선 오토바이 앞을 가로막아 세운다. 맹렬한 속도로 달리던 오토바이는 차에 부딪치기 일보 직전에 간신히 멈춘다. 오토바이에 탔던 세 사람의 사내가 우르르 뛰어내리며 고함을 지르며 달려온다. 차창으로 목을 내밀고 길을 물으려던 톳싸가 재빨리 차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한다. 멀찌감치 달아난 뒤에 무어라 그러느냐고 타이왕에게 물으니, "죽고 싶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화가 나 달려드니 서둘러 피한 것이다.

  바이양홍고르(bayanhogor)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 차는 이리저리 마을 외곽만 방개처럼 맴돌았다. 오로지 전조등에 비친 바퀴 자국을 더듬으며 가자면, 그것은 이내 수많은 갈래로 나뉘었다. 이리저리 헤매던 차가 어느 겔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때, 홀연히 수많은 붉은 점들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붉은 손전등을 든 한 떼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줄 알았다. 붉은 점들은 물결처럼 이리저리 몰려 다녔다. 전조등을 그쪽으로 비추고서야 그것이 한 무리의 양떼이며, 붉은 점들은 불빛에 반사된 양들의 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의 불빛에 놀란 양들이 이리저리 뛰자 안에서 사람이 소리를 치며 달려나왔다. 또 "죽고 싶냐?"고 달려들까 봐 겁이 났지만 다행히 겔 주인사내는 사정을 듣고는 좋은 목소리로 길을 알려 주었다.


   차에서 맞는 아침

▲ 왼편이 밤새 걸어온 가이드 버기, 그리고 무박2일의 몽골 스테프들     © 이시백


  양 주인이 일러준 대로 간신히 마을을 벗어나 봄보고르로 달렸지만, 이것이 맞는 길이라는 믿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런 표식도, 방향을 가늠할 지형지물이나 한 올의 불빛도 없는 초원의 밤길을 달리는 것은 밤바다를 표류하는 배와 같다. 맹렬한 속도로 달리기는 해도, 어디로 달리는지 가늠하기 어렵고, 심지어 달리고 있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먹물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한 막막함.

   이따금 까물거리는 겔의 등불이 반갑게 나타났지만, 아직도 호텔이 있다는 봄보고르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길을 찾느라 이리저리 울퉁불퉁한 돌길을 넘던 파제로 지프의 바퀴가 찢어졌다. 바퀴를 갈아끼우는 동안에도 그만 여기서 자고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밤을 새워서라도 일행을 따라잡아야 내일 일정을 맞춰나갈 수가 있었다. 나흘 동안이나 양말을 갈아 신지 못한 채 목이 빠지게 여행 짐을 기다리는 일행들에게 달려간다는 생각뿐이었다.

  얼마를 더 달리던 차가 문득 멈춘다. 가이드 타이왕이 조심스럽게 운전사가 너무 피곤해 잠깐 눈을 붙이고 가야겠다고 내 눈치를 살핀다. 아무래도 이 밤길을 더 달리는 것은 무리다 싶어 그러자고 했다. 차의 의자를 뒤로 눕히고 침낭 속에 번데기처럼 몸을 밀어넣은 뒤 까물거리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차안의 시계는 새벽 4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생수로 간단히 입안을 행구고 여전히 컴컴한 초원을 내달렸다. 참 길고도 고된 무박2일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몽골사람들 속에 끼어 그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가장 몽골다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밤을 새워 산길을 걸어온 버기와 온몸이 젖어 차를 건져낸 미가와 타이왕, 그리고 밤새워 차를 달린 톳싸가 준 감동이 그 안에 온전히 배어 있는 시간들이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0/11/15 [09:00]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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