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천국은 멀었나 벼”
좌충우돌 몽골 북중부 표류기 ⑫ 제사 지내는 항가이 산을 넘어
 
이시백
▲ 아롤 만드는 사람들     © 이시백
 
 8월 3일의 아침이 밝았다. 밤에 자다가 자꾸 미끄러져서 고생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침대 밑받침이 부러져서 침대가 기울어져 있었다. 아침은 고요했고 맑았다. 이제 길고 길었던 고생은 끝나고 편안한 여정의 마무리가 남아 있을 뿐이다. 모처럼 느긋한 기분으로 일어나 본관 건물 식당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우아하게 먹으러 갔다. 멋진 그림까지 걸려 있는 식당에 앉아 오랜만에 '인간적인' 아침식사를 해 보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잠시 후에 쌀뜨물 같은 죽 한 그릇이 나온다. 식사 전에 먹는 스프 격인가 보다고 흐뭇한 마음으로 몇 숟갈 떠먹었다. 밥을 으깨어 끓인 죽에 설탕과 우유를 섞은 '타락'죽은 들척지근하여 많이 먹기가 어려웠다. 수저를 내려놓고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자니 감감무소식이다. 그것이 아침 식사였다. 몸에 좋은 건강음식이라는 가이드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요양하러 오는 곳이니 식사도 그런 영양식으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대체로 몽골 사람들의 아침 식사는 가볍기는 했다.

   천국을 향하여  

▲ 말과 아이들     © 이시백
 
 짐을 꾸리고 느긋하니 10시쯤 길을 나섰다. 이제 힘든 여정은 끝나고, 하르허린(harhorin)이라는 유적지로 가는 일정만이 남았다. 그곳부터 귀환지인 울란바타르(ulaanbaatar)까지는 포장도로가 깔려 있으니 다 온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막바지로 들어선 여행에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이 앞섰다. 아직도 목감기는 여전하여 기침으로 괴롭지만 어느 여행 때보다 기억에 남는 여정들이었다. 
 
▲ 아롤     © 이시백

 샤르갈주우트(shargaljuut)를 떠나기 아쉬운 듯, 일행은 길가의 약수터에 들러 몸에 좋다는 약수를 물통마다 담는다. 아침 해가 이슬을 말리며 초원을 잔잔히 감싼다. 손을 흔들듯 창밖으로 지나가는 초원의 아침 풍경이 감미로워 절로 콧노래가 나올 지경이다. 운전사들도 여유로운 듯 평소와 달리 길을 서두르지 않았다.

▲ 초원의 아침     © 이시백
어느 겔 앞에 차를 세우고, 운전사 미가가 집에 가져갈 아롤(몽골 유제품)을 샀다. 겔 곁에서는 아침 햇살 아래서 모녀로 뵈는 몽골 여자들이 아롤을 만들고 있었다. 걸쭉하니 걸러낸 우유가루들을 떡살 같은 틀에 넣어 찍어낸 것이 아롤이다. 그것을 겔 지붕에 얹어 말리는데, 맛은 시큼하지만 약간 들척지근하고 고소한 맛도 들어 있다.

겔을 떠나 산길로 들어선다. 듬성듬성 돌이 박힌 산길에는 도처에 들꽃들이 피어 있었다. 수선화를 닮은 노란 꽃들이 자욱하니 깔린 개울가에선 말들이 한가로이 투레질을 하며 풀을 뜯고 있었다. 그동안 모든 시련은 끝나고 이제 산만 넘으면 평탄한 포장도로가 깔린 하르호린이라는 말에 아쉬움마저 들었다. 돌아보면 배고프고, 춥고, 고단한 날들이었지만 그것이 끝나갈 무렵에는 어느 덧 감미로운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산으로 오르기 전에 겔이 한 채 나타났다. 사람보다 개가 먼저 알고 맹렬히 짖으며 달려 나왔다. 유난히 사나운 검은 개는 달리는 차를 깨물기라도 할 듯 한참을 짖어대며 쫓아왔다.

 산을 타고 오르던 차가 멈추었다. 돌들이 많아 도저히 오를 수가 없다고 했다. 차바퀴 자국이 남아 있지만 운전사들은 울룩불룩 솟구친 바위들을 걱정하여 길을 돌렸다. 개가 짖던 겔로 돌아와 다른 길을 물으니 그 옆의 산길을 일러 주었다. '제사 지내는 산'이니 조심해서 넘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발목을 잠글 정도의 개울이 가로막는데, 바타르의 스타렉스가 미끄러졌다. 파제로 지프가 와이어를 걸어 끌어낼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모두들 차에서 내려 보랏빛 방울 같은 꽃들이 핀 개울가를 거닐며 앞서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멀리서 보기에는 완만한 산에는 도처에 바위들이 깔려 있고, 그 바위가 있는 곳마다 어디선가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항가이산의 들꽃     © 이시백

 차들은 몇 걸음을 가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두어 차례 번갈아가며 미끄러지는 스타렉스들을 건지느라 그때마다 삼십 분의 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천국으로 가는 길목의 심심찮은 해프닝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앞서 가며 길을 열던 파제로 지프마저 미끈거리는 진흙 수렁에 빠지고 마니 긴장이 되었다. 차들은 벌써 중턱에 들어선 데다가 미끄러운 길을 되돌아 내려가기도 어려웠다. 파제로 지프를 건져내려 돌들을 주어다가 바퀴 밑에 깔아 보았지만 늪처럼 빠져 들어가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뒤에 있던 미가의 스타렉스가 아랫길을 건너기로 했다. 굉음을 울리며 개울을 건너던 스타렉스도 얼마지 않아 수렁 깊이 빠지고 말았다. 이어서 마지막 남은 바타르의 스타렉스에 희망을 걸었지만 그도 빠지고 말았다. 세 대의 차 모두가 수렁에 빠진 것이다. 아침까지만 해도 감미롭던 바람이 산에 오르면서 옷 속으로 파고들어 한기에 떨게 했다. 그런 중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발을 빠뜨린 채 차를 건지려 애쓰는 운전사들을 보자니 춥다는 말도 꺼내기 어려웠다. "아직 천국은 멀었나 벼." 누군가 중얼거렸다. 

   제사 지내는 산을 넘다 

▲ 수렁에 빠진 차들     © 이시백

 앞서 걸어간 일행들은 벌써 산을 넘은 듯 모습도 뵈지가 않았다. 바람은 점점 차가워지고, 햇볕마저 이따금 구들장만한 구름에 가려 한낮에도 몸이 덜덜 떨릴 만큼 추웠다. 어찌나 바람이 차가운지 평평한 바위에 누워 바람을 피할 정도였다. 최악의 경우, 이곳에서 야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한 대라도 건져낸다면 그 차에 끼어 타고 산을 넘어 어느 숙소라도 얻어들 수가 있겠지만, 차들이 모두 빠진 상황에서 무엇에 기댈까.

 그제, 수렁에 들어가 찬물에 젖었던 운전사 미가는 여전히 물속에 들어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벌써 점심 식사 때를 훨씬 넘겼다. 차 안에 있던 과자 부스러기들을 가져다 요기를 하면서 수렁에 돌을 깔아 길을 냈다. 주변에 널린 돌들을 다 쓰자, 별 수 없이 흙에 묻힌 돌들을 캐내야 했다. 그때, 가이드 민주가 말렸다. 산에 있는 돌을 건드리면 산신이 노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이 얼마나 진지한지 무어라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산에 있는 돌멩이 하나라도 건드려서는 안 되며, 땅도 함부로 파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다. 차가 빠져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문에, 만약에 산신이 노하면 그보다 더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제사 지내는 산이니 조심하라'던 겔 주인의 말이 생각났다. 제사를 지낸다는 산이란 바로 신이 머무는 산이라는 뜻이요, 그 신이 노하면 큰 재앙을 입게 된다는 뜻이리라. 몽골 사람들이 큰 산 곁에서는 그 산의 이름마저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까닭을 조금은 이해할 듯했다. 그만큼 날은 춥고 길은 험하고 앞은 막막했다.

 그런 중에 용케도 미가의 스타렉스가 먼저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스타렉스에 와이어를 걸어 톳싸의 지프를 건져냈다. 수렁에서 헛바퀴를 돌리는 지프에 가지고 있던 하닥(khadag)을 묶어 주었다. 그 덕인지 수렁 깊이 빠졌던 파제로 지프가 빠져나왔다. 앞서 산을 걸어 넘었던 일행들도 걱정이 되어 되돌아왔다.

 수렁은 산 중턱을 올라설 때까지 도처에 널려 있었다. 높은 곳에 물이 나는 산이 신기하기만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여기저기 돌무더기들이 많이 널려 있는데, 그 돌들이 있는 부근에서 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앞서 지나간 차바퀴 자국이 있는 걸로 보아 차들이 넘어다니는 길로 뵈지만, 이후라도 이 부근을 지날 여행자라면 결코 이 '제사 지내는 산'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바이양홍고르 쪽으로 되돌아나가던지,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수렁에 빠진 끝에 산중턱을 넘어섰다. 중턱을 지나면서 마른 땅들이 나타나 정상까지는 어렵지 않게 올라갔다. 놀랍게도 12시경에 산에 오르기 시작한 차들이 산마루에 올라선 것이 오후 5시 20분이었다. 지도를 더듬어 보았지만 이름마저 기재되지 않은 이 산은 항가이 산맥((hangay nuruu)의 한 줄기로 짐작되었다. 지도에 나타난 주변 산들의 높이를 가늠하여 볼 때, 이 산도 3,000m급은 족히 넘어 보였다. 항가이를 넘는다는 것은 올 때나 갈 때나 추위에 떨게 되어 있는 듯했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그곳에서 늑대를 보았다고 했다. 과연 항가이는 항가이였다.

 정상 부근에는 여기저기 주황색 페인트를 칠한 듯한 돌들이 널려 있었다. 바이양홍고르(bayankhongor)의 붉은 돌들이었다. 기다란 풀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정상을 넘자니 그간의 고생을 위로하듯 장엄한 능선들이 내려다보이고, 그 사이를 비집고 차들은 뒤처진 길을 달려 내려갔다. 오를 때는 물이 솟아 수렁을 만들던 산의 뒤편은 먼지를 날리며 물줄기 한 올 찾아보기 힘들었다. 산 그림자에 덮여 서늘해진 산은 신비롭기만 했다. 한나절이 걸려 오른 산을 순식간에 달려 내려오니 아쉬울 지경이었다. 
 
▲ 항가이 산을 넘어가는 길     © 이시백

 산을 내려오니 푸른 칠을 한 목교가 놓여 있었다. 오래 되어 낡고 허름한 목교를 건너기 전에 운전사들이 내려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 대씩 삐거덕거리는 나무다리를 건넜다. 몽골의 다리들은 대체로 목교들인데, 하닥처럼 푸른 칠을 하여 주변 경관과 잘 어울렸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철제의 우중충한 회색빛 다리들보다 훨씬 정감이 가고 아름다웠다. 주황빛 돌무더기 틈에서 샤르락(야크)들이 어슬렁거리고, 혹한에 얼고 녹기를 거듭하느라 부스럼처럼 울룩불룩 솟구친 땅들을 지나 차는 어느 결에 항가이를 멀찌감치 뒤로 남겨 둔 채 앞만 보고 달려갔다.  

▲ 붉은 돌들과 샤르락     © 이시백
 
 점심도 거른 채 저녁을 맞아 어디선가 요기를 하고 가려 했지만, 뒤에 오던 차가 미처 서라는 신호를 보지 못한 채 앞서 내달렸다. 모래밭에서 음식을 차려 보려고 했지만 모래 바람이 세서 포기하고 말았다.

 가이드의 말로는 목적지인 하르허린까지 세 시간 남짓 걸린다고 하였다.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이왕 참은 김에 그곳에 가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세 시간 반이면 도착한다는 하르허린은 가도, 가도 나타나지가 않았다.

   어두운 광산마을에서의 저녁 식사

 항가이를 넘은 차는 해가 저무는 대평원을 뒤도 안돌아보고 내달렸다. 구름 사이로 스민 노을에 물든 구릉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따금 가축들과 겔들이 보였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우양가(uyanga) 솜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 15분경이었다. 제법 번화하고 규모가 큰 마을인데 가이드들은 식당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식당들이 저녁 식사 때가 지나 모두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큰 마을에 나그네들이 요기를 할 식당이 한 곳도 없다는 말에 황당했다. 몽골에서 가장 솜씨 좋은 겔을 만들기로 유명한 우양가 솜은 그렇게 문을 걸어 잠근 채 냉담했다. 행인들과 꽤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눈 끝에 운전사들은 우양가 솜을 지나 어디론가 한참을 더 달려갔다.

 여기인가 싶으면 차는 더 달리고, 물을 건너고, 구릉을 건너 사방이 어두워질 무렵에야 사대강 공사 현장처럼 마구 땅을 파헤친 곳에 도달했다. 금을 캐는 광산지역이라는데, 가이드 버기는 일행들에게 차에서 절대 내리지 말라고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다. 광산 지역에는 도둑이나 강도가 많아 위험하다고 했다. 돌 하나 건드리는 것도 싫어하는 가이드 민주는 마구 파헤쳐진 광산 지역을 노려보며, "총만 있다면 저 사람들을 쏴 버리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몽골에는 최근 들어 금이나 석탄을 캐내는 광산들이 늘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금을 캐어 제련하는 데에 사용되는 수은에 중독된 광부들이 심신이 온전하지 못한 폐인이 되어 알콜 중독자가 느는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특히 허가 없이 불법으로 금을 캐는 광부들은 일명 '몽골 닌자'로 불릴 정도로 거칠고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고 한다. 불법으로 채취된 금은 주로 중국으로 밀수출되는데, 그 양과 소득이 막대하여 정부가 알면서도 강력히 근절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어두운 광산 마을에는 전조등을 켜고 지나가는 차 앞에 불쑥 끼어들어 전혀 비키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술병을 든 채 비틀거리는 그를 바라보며, 금과 바뀌는 자본의 암울한 그림자를 보는 듯했다. 


▲ 광산마을의 가게     © 이시백

 광산 마을에서도 식당을 찾지 못해 가이드들이 이리저리 부산히 뛰어다닌 끝에 어느 간판이 걸린 겔로 들어가게 되었다. 겔 안에는 라면이며 과자, 야채와 과일까지 널려 있어 예전의 우리네 구멍가게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허기와 추위에 떨던 여행자들은 몽골식 칼국수인 '코릴타슐'을 주문했다. 밀가루 반죽을 칼로 썰어 양고기로 낸 육수에 삶는 코릴타슐은 우리의 사골 칼국수와 거의 비슷했다. 그 안에 양의 살코기가 푸짐하니 들어갔다는 점이 달랐지만, 우려했던 양의 누린내도 별로 나지 않았다. 허기 때문일까. 내가 먹어본 몽골 음식 중에서는 '호쇼르(몽골식 고기만두)'와 함께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양 갈비구이 같은 요리는 빼놓고. 물론 그 와중에도 양고기를 싫어하여 컵라면을 고수한 분들도 있기는 했다.

 배를 든든히 채운 뒤, 밤길을 나섰다. 시간은 벌써 밤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밤에 뵈는 광산 마을은 더욱 황량해 보였다. 그러나 배가 부르니 순식간에 낙천적으로 변했다. 항가이도 넘었는데 무슨 고생을 더 하랴. 고생 끝, 행복 시작의 길만이 남았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자만의 착각이었다. 난데없이 비까지 내리는 밤길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다. 여기가 거기 같고, 저기가 어디인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또다시 차가 빠지고, 길을 잘못 들어 돌아 나온 끝에 세 시간이면 간다던 하르허린은 자정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하르허린까지는 아직도 70㎞가 남아 있었다.

   한밤중에 불시착 

▲ 바트올지의 새벽 풍경     © 이시백

 밤을 새워서라도 목적지인 하르허린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내리는 비로 개울이 불어 더 이상 갈 수가 없어 차는 물가를 이리저리 맴돌았다. 수렁에 빠진 항가이에서도 콧노래를 부르던 운전사 톳싸의 얼굴에도 불안한 기색이 역역했다. 이리저리 길을 찾아 헤매던 차가 바트울지(bat olziy)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 30분경이었다. 계속 가려는 차를 세우고 가이드 버기에게 숙소를 찾아보게 했다. 밤이 깊어 고요한 마을 골목에 불을 켠 프루공이 보였다. 차 안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에게 숙소를 물으니, 친절히 숙소까지 데려다 준다.

 2층 돌집으로 지은 모텔은 난방이 안 되기는 했지만 제법 깨끗했다. 방에 짐을 풀고 침대에 몸을 뉘니 길고 힘들고 추웠던 하루가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끝인가 하면 다시 시작되는 고된 여정 속에서, 몽골에서는 모든 게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끝이며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인 잠속으로 빠져들며, 시나브로 익숙해진 몽골말 한 도막을 중얼거려 본다.

 "쥬게르, 쥬게르(괜찮아, 괜찮아)."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0/12/10 [19:5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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