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우면 보드카를 마셔라”
좌충우돌 몽골 표류기 ⑬ 잃어버린 제국의 고도 하르허린
 
이시백

▲ 에르덴조 사원     © 이시백

  어찌하였든 밤은 지나고, 열세 번째의 새벽을 맞이하였다. 8월 4일,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5시 30분. 두어 시간 눈을 붙였던 일행들은 용케도 일어나 떠날 채비를 갖추느라 부산하다. 누룽지를 끓여 설렁설렁 아침 식사를 때우고 미명의 길을 나선다. 초원을 달리던 제국의 기마병들보다 더 빠른 것이 한국의 여행단이라는 말이 생각나 풀썩 웃음을 짓는다. 
  아침이 밝아오면서 다행히 비는 개었다. 멀리 뵈는 산마루에는 허옇게 눈이 덮여 있었다. 8월에 내리는 눈에 덮이는 저 산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누군가 그렇게 높고 춥고 쓸쓸한 곳에도 온기를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자 얼마지 않은 곳에 개울이 나타났다. 지난밤에 넘으려다 되돌아선 개울인데 물도 깊고 흙탕물로 흐려서 건너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리저리 구부러지며 사행하던 개울이 모여 제법 큰 물줄기를 이루더니 깊은 협곡을 패고 흘러간다. 고사목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협곡 가장이에 차를 멈춘다. 가이드 버기의 말로는 스탈린 시절에 탄압받던 승려들이 이곳에서 거센 물에 이생의 삶을 내던졌다고 한다. 지금은 볼만한 경승으로 잠시 관광객의 발을 붙들지만, 역사는 그렇게 무고한 죽음들을 흐린 물에 잠근 채 여일무시(如一無始)로 흐르고 있었다.

비에 젖는 하르허린의 독수리 

▲ 비에 젖는 독수리들     © 이시백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니, 드디어 아스팔트 포도가 나타났다. 구름 위에 얹힌 듯 갑작스런 호강에 몸이 먼저 솜사탕 녹듯 스르르 긴장을 푼다. 보름 가까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맛에 너도나도 개발에 목을 매고, 개발을 하려니 자본이 필요하고, 자본은 원숭이 꽃신처럼 감미로우나 끝없는 욕망의 손을 내밀 것이다.

  하르허린(harhorin)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못 되어서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컸던 제국의 수도라기에는 지나치게 작고 초라해 보였다. 동서의 모든 길들이 향하던 실크로드의 종착지이며, 한때는 세계의 중심으로 행세하던 옛 왕궁 터에 지어진 '에르덴 조' 사원의 문 앞에는 알타이의 독수리 두 마리가 다리를 묶인 채 비에 젖고 있었다. 주인은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고 독수리만이 흠뻑 비에 젖은 채 호객행위를 하는 셈이었다.

  오르혼 강 상류에 자리잡은 하르허린(harhorin)은 그 역사의 질곡만큼이나 많은 이름을 지녔다. 8세기경에는 타이갈 시위에(taigal shiwee)라 불렸고, '검은 담'이라는 뜻의 '카라코룸(karakorum)으로 불리다가 '하르허롬'을 거쳐 '하르허린'으로 불리고 있다.

  모든 종교에 대해 관대하던 왕의 전통에 따라 불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성전들이 함께 있었다는 하르허린에는 중국인, 러시아인을 비롯하여 영국인과 프랑스인, 심지어 지금의 헝가리인에 해당하는 마자르인(magayars)까지 모여 살았다니 그야말로 국제적인 도시로 번창했을 것이다. 성을 짓고 한곳에 머무르지 말라던 칭기스칸의 유지에 따라 매년 450㎞ 정도를 옮겨 다니던 당시의 왕들은 이곳에 초봄과 초가을에 잠깐 머물렀다고 한다. 

 
▲ 하르허린 솜의 전경     © 이시백

  칭기스칸 사후 내분에 빠졌던 몽골제국이 4대 칸이면서 원나라를 개국한 호빌라이 칸(쿠빌라이)이 1266년에 수도를 '칸발릭'(지금의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하르허린의 영화도 끝이 나게 되었다. 동생 아릭 부케와의 권력투쟁에서 이긴 쿠빌라이는 수도를 자신의 근거지인 중국 땅으로 옮겼지만, 민심은 아릭 부케의 근거지였던 하르허린을 쉽게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쿠빌라이가 한때 제국의 영화를 누리며 세계의 중심 노릇을 하던 하르허린을 무참히 약탈하고 초토화시킨다. 그 뒤로 풀에 덮여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제국의 수도 하르허린은 1889년 러시아 학자 야드린체브에 의해 발굴이 될 때까지 그렇게 바람과 모래에 덮여 잊혀졌었다. 그러나 지금도 유목민 몽골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르호린이 제국의 수도로 남아 있기 때문에 몽골 정부는 2050년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다.

몽골 최초의 라마불교 사원, 에르덴조 히드 

▲ 에르덴조 사원     © 이시백

  칭기스칸의 21번째 후손인 아쁘타이 사잉 칸(awtai sain khaan)이 옛 몽골 제국의 왕궁 터에 왕궁을 헐어낸 부재로 지은 최초의 라마불교 사원이 에르덴조 히드(erdene zuu hiid)이다. 티베트를 통해 전해진 라마불교는 몽골의 무속신앙에 밀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는데, 티벳에서 청해온 파스파 승려가 머물며 본격적으로 포교를 하도록 지은 사원이라고 한다. 에르덴 조의 사원은 불교의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불탑으로 둘러싸인 외벽에 네 개의 문을 만들고 내부에는 60여 개의 전각을 만들어 한때 천여 명의 승려가 머무를 만큼 거대한 사원이었다. 청나라의 침략과 스탈린 시절의 종교 탄압으로 18개의 전각만 남게 된 이 사원은 한때 박물관으로 쓰이다가 1990년 초에 민주화 바람이 불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다시 사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다.

  파란 많은 옛 사원은 비에 젖어 비감함마저 느끼게 했다. 궂은 날씨 탓에 인적도 드문 사원에는 풀에 덮인 향로 언저리에 참새 한 마리가 비에 젖고 있었다.
  사원 안에는 문화해설가가 따로 있어 친절히 안내하며 자상히 설명을 해 주었지만, 가이드 민주의 한국어 실력이 전문적인 불교 용어를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다. 책을 뒤져 이리저리 얼개를 맞추어 보았다. 남문으로 들어서서 왼편으로 꺾이는 곳에 3개의 전각이 서 있다. 가운데 있는 것이 아쁘타이 사잉 칸의 아들 알탄이 티벳의 5대 달라이라마가 된 기념으로 세운 전각이다. 이곳에는 처녀의 정강이뼈로 만든 피리를 비롯하여 사람의 두개골을 잘라 은으로 장식한 불교 용구들이 있다. 섬뜩한 탕카와 함께 티벳 뵌교의 영향이 만들어낸 것들이 아닐까 얕은 지식으로 짐작해 볼 뿐이다. 

 
▲ 은나무     © 이시백

  날이 흐리고 바람이 차가워 숙소로 이동했다. 우연히 차가 지나는 도로변에 은빛으로 빛나는 나무 장식이 보였다. 그러지 않아도 혹시 흔적이라도 남지 않았을까 궁금해 하던 은나무(silver tree)였다. 유럽 원정 때 포로로 잡은 세공가 '빌게림 데 부셔'가 뭉케 칸의 명령을 받아 만들었다는 은나무는 네 마리의 용이 감아 오르는 나무 꼭대기에 천사가 나팔을 부는 형상이다. 명절이면 네 마리 용의 입으로 포도주와 아이락, 곡주와 꿀술을 쏟아내는데, 누구나 그것을 받아 마실 수 있었다 한다. 화려했던 하르허린의 영화를 보여주는 상징물인데, 안타깝게도 쿠빌라이가 하르허린을 약탈할 때 사라졌다고 한다. 비록 철판에 은색을 입힌 '짝퉁 은나무'일망정 지난 시절을 돌이켜 생각하자니 심상히 보이지가 않았다.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가이드 버기가 <써프라이즈!>를 외치며 돌발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다. 잠시 후, 나이가 지긋한 허미(khuumi) 가수가 전통복장을 차려 입고 겔로 찾아왔다. 바로 눈앞에서 듣는 마두금과 허미의 음악 소리는 정말 <써프라이즈>했다. 혼자서 독학으로 허미와 연주를 익혀 훈장까지 받았다는 노가수는 특별히 가이드 버기가 청하여 왔다며 능숙한 영어로 노래를 설명해 주었다. 

 
▲ 허미 가수     © 이시백

  즉석 공연이 끝난 뒤에도 식사가 준비되지 않자, 여성 여행자 몇 분이 부엌으로 달려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 덕에 맛있는 호쇼르와 코리타슐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 하르허린 근처의 유적지를 돌아보러 나갔다. 처음 들른 곳은 남녀근석지였다.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조각된 돌의 모양에 민망하였지만, 이곳이 음기가 강하여 사원의 젊은 승려들이 마을 처녀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수행에 어려움을 겪자 이 돌을 새겨놓게 되었다 한다. 그 뒤로 효험을 보았다는데, 지금은 아이를 못 낳는 사람들이 그 돌에 앉아 기도를 드리면 자식을 얻는다 하여 많이 찾는다 한다. 

 
▲ 남녀근석     © 이시백

  이어서 찾아간 거북바위는 우구데 칸이 태평치국을 기원하여 세웠다 한다. 높은 언덕에 위치하여 올라가 보니 하르허린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거북바위에는 현재의 몽골 기에 등장하는 별과 해와 달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말의 머리뼈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달리기를 잘하는 말들의 머리뼈라고 한다. 죽어서도 힘차게 달리던 초원을 내려다보라는 뜻일까. 하르허린을 떠나 이제 오늘 묵을 곳으로 차를 달린다. 포장도로로 몸은 편안했지만 그만큼 여행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앞섰다.

엘슨타사르하이의 오아시스

 
▲ 엘슨타사르하이의 낙타     © 이시백

  멀리 야트막한 모래언덕이 뵈는 곳으로 차가 접어들었다. 여기저기 산뜻한 겔들이 늘어선 캠프촌이 나타나고, 낙타를 탄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여태껏 우리가 묵었던 겔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관광지이다. 모래는 곱지 않았지만 듬성듬성 나무들이 서 있고, 호수까지 있어 그야말로 오아시스 같은 느낌을 준다. 발음도 아리송한 '엘슨타사르하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모래와 평원과 산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한다.

  멋진 겔들을 모두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단출한 겔 너덧 채가 외따로 모여 있는 곳에 머문다. 한적하니 마음에 든다. 바위산도 가깝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낼 만큼 호젓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차에서 내린 일행들은 주변 풍경에 환호성을 지른다. 실제로는 해가 있을 때에 일찌감치 숙소를 잡았다는 점을 기뻐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곳이라고 나그네를 고이 재울 리가 있을까. 난로가 없다는 것이다. 겔 안은 비가 온 끝이라 시서늘하기만 했다. 사정을 해 보았지만 주인 할아버지는 눈을 부라리며, "추우면 보드카를 마시라"는 말만 했다. 간신히 사정을 하여 여자들 겔에만 난로를 가져다주기로 했다. 일흔은 족히 넘어 뵈는 주인 할아버지는 내게 난로를 들라고 했다.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가이드가 말리는 바람에 내려놓자, 할아버지는 실실 웃으며 난로를 번쩍 드는 게 아닌가. 농담도 즐기고, 유목민의 기개가 물씬 풍기는 할아버지였다.

  여자들이 낙타를 타러 가는 동안 마당에서 배구를 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하는 배구도 재미있었다. 저녁으로 양 고기를 데워 먹기로 했다. 내일이면 울란바타르에서의 시내 관광이 하루 남기는 했지만, 초원에서 머무는 것으로는 마지막 밤인지라 그동안 애쓴 스텝들과 한자리에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힘든 만큼 정도 깊이 들어 돌아가며 부르는 노래도 아쉬움이 흠씬 묻어났다. 노랫소리를 듣고 찾아온 주인 할아버지가 구수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알타이의 노래가 흥을 돋웠다. 78세라는 주인 할아버지는 우락부락한 인상과는 달리 정도 많고 흥도 많은 분이었다. 칼을 들고 양고기를 연필 깎듯 깎아서 돌아가며 나눠 주었다.

  밤은 깊어가고, 하늘은 모처럼 총총한 별들을 보여 주었다. 근 보름 가까이 몽골의 북중부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느라 몸은 곤하였지만 그만큼 사연도 많고, 추억도 깊이 남는 여행이었다. 길에다 내려놓고 가버린 운전사와 차의 문제는 덮어 두기로 했다. 당연히 여행사 측에 배상을 청구해야 할 일이지만, 그동안 애쓴 스텝들의 노고와 밤새워 산길을 달려온 가이드 버기의 정성은 그를 갚고도 남을 감동이었다. 알타이 산맥을 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술을 마시며 이런 아쉬움을 전했더니 미가와 톳사가 꼭 다시 오라고 했다. 미가의 고향이 알타이 쪽이라고 했다.

마지막 밤의 '게르 한 채'
 

▲ 게르 한 채     © 이시백

  밤은 깊어가고 은하수는 도도히 흐르는데, 겔에 둘러앉아 이번 여행의 소감을 나누었다. 함께 여행을 하고, 같은 길을 걸었어도 느낌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슬며시 마당의 풀들이 흔들리기만 해도 항가이 산자락에서 흔들리던 가냘픈 들꽃들을 떠올리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꿈결 같은 황홀한 별들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바람도... 그러나 몽골은 그 모든 것을 떠난 뒤에 더욱 깊이 가슴에 새겨 놓는가 보다. 그날, 겔에 둘러앉아 박일환 시인이 읊던 ' 게르 한 채' 라는 시처럼.


    몽골에서 무엇을 보고 왔느냐 물으면 
     누구는 초원을 가리키고 
     누구는 바람을 불러오고 
     누구는 밤하늘의 별을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게르 한 채 보고 왔다고 대답하리 

     멀리서 바라보면 
     몽골 하늘의 희디흰 구름 빛깔을 닮은 
     게르 한 채 
     외로워서 빛나는 그 쓸쓸함을 노래하리 
     초원도 바람도 별도 
     가축마저 얼려 죽인다는 한겨울의 추위도 
     게르 한 채에 모두 담겨 있으니 
     그 안에서 밥을 해먹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누천년을 이어 살아오는 동안 
     지배하지 않되 지배당하지도 않은 
     게르 한 채의 역사를 
     내 안에 온전히 받아 모시는 일이  
     내 삶의 과업이 되어야 하리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1/01/04 [12:42]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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