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순 - “태몽 타면 우주여행할 수 있어요”
[화안인터뷰-화가 김인순] 뿌리의 정체성과 태몽의 우주성
 
박화안
▲김인순
“선생님, 저예요. 오랜만에 전화 드려요” “ 어~ 어~ 어쩐 일이야. 오랜만이야 ” “잘 지내셨어요? 궁금해서요. 저기, 으, 음... 선생님 그림을 제가 인터넷신문에 실었으면 해서요” 맘이 급해 본론을 불쑥 디밀었다.
 
“ 아~ 그렇구나. 근데, 내가 지금 잘 지내진 못하는 것 같아. 우리 큰 딸이 ~~” 김인순 님의 큰 딸은 잘 아는 문화운동 후배다. 그 옛날 노동자문화예술운동 한답시고 한동안 머리 맞대고 거리시위, 파업시위 현장에 참여하면서 거리에선 독하디 독한 최루탄 가스 나눠 마시고 공장에선 노동가요 목청껏 부르며 노래자랑 질로 젊음을 같이 빛냈었는데...
 
“걔가 아파 쓰러져서 병원 신세 지고 이제 회복 중에 있어” 순간 적절한 위로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놀라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당신도 건강 조심해. 한순간 이더라구, 참... 위급한 시기는 다 지났지만 그래도 내가 경황이 없어서, 당연히 당신 부탁을 도와야 하는데... ” 거절하시는 말씀을 그냥 붙들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주고받았다. 김인순 님의 그림도 필요하고 그림 인생도 들어야 하는데. “그럼 선생님 요즈음 그림 그리는 것은 못하시겠네요?” “아니 이젠 꼭 그렇진 않구, 내가 요즈음 태몽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아 그래요. 선생님, 저기 그거~ 그, 그림 좀 보여 주세요” 나는 물색없이 반가운 표현을 하고 말았다.

나는 꿈이 많다. 그것도 길몽이라고 하기에는 다각도의 해석이 필요한 꿈을 매일 꾸는 나로서는 해몽이고 뭐고 필요 없이 그냥 단번에 길몽이 되는 태몽이라는 말에 쫑끗 귀가 열렸다. “그거 여성사 전시관에서 전시도 했지~. ‘워킹맘마미아’ 전시~~” “아, 선생님 알아요. 근데 제가 가서 보진 못했어요” “으응 알지? 당신도~~.” “네 그럼요. 저기요~ 선생님, 저~ 댁으로 찾아뵐께요” 그냥 밀어붙이기로 하고 만남 약속을 잡았다. 올 1월 말경의 전화통화다.

“화가 집에 왔으니 그림을 봐야지” 

“이리 와 봐요. 그림 보여 줄테니까” 쭐래 쭐래 일어나 부르는 쪽으로 간다. 벽 쪽에 세워져 있던 커다란 그림 몇 점이 여기 저기 세워진다. “현재 작업을 하고 있는 건데 작업의 진도가 빨리 빨리 잘 안 나가.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아직까지 잘 안 풀려... 음 이거 봐 봐” 진도가 잘 안 나간다고 하시는데 그림이 꽤 된다. 밝고 환하고 행복한 원색들이, 검정을 제외한 오방색들이 꽃 평야처럼 펼쳐진다. 호강을 하게 된 내 눈은 커지고 얼굴에 있는 온갖 모공도 덩달아 활짝 열린다. “이 그림은~ 태몽 그림 아니죠?” 분명 태몽 그림 보여준다고 하셨는데 어리바리 정신 줄 놓고 질문한다. “응? 왜 아냐~ 다 태몽이지 태몽이예요. 그럼, 그럼요. 하하하” 그냥 꽃 그림만 있는 것도 있다. 목단, 백합, 철쭉. 그 화려한 색과 향기에 취한 듯 몽롱해진다. 무언가 알 수 없지만 실제 하는 기운이 드리워진다. 작업실 가득히.

‘태몽’은 기쁨이자 환희다!

“태몽에 비극이 없는 이유는 뭔가를 생산하기 때문이예요” “예 맞아요. 그렇죠. 태몽 꾸고 기분 나빴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요, 선생님” 대꾸 하면서도 꿈인지 생시인지 그 화려한 그림에 그냥 붙들려 있다. 김인순 님의 이야기는 더 크고 넓은  태몽의 세계로 간다.
 
“태몽은 여성들의 꿈이예요. 여성들의 생산에 대한 꿈이죠” 삼신 할매나 마고 할매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여성들은 과거와 미래를 다 생산하는 모체로 태어난 거야 하하. 그래서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예술테마라서~ 이건 남성들이 하기가 좀...” “근데 남자들도 태몽을 꾸잖아요, 선생님” 질문이 삼천포로 가는 것 같다. “그렇지요, 남자들도 꾸죠. 할아버지도 꾸고 다 꾸지요 꾸긴... 하하” 이것이 태몽의 일차원성이라면... “그런데 여성은 우주와의 결합이 진짜 자기 몸 안에서 이뤄지는 거잖아요? 일종의 계시처럼” 차원을 달리하는 태몽이다. “아, 네~~~” 우주라는 단어가 크게 들린다. 그런데 웬지 신비하기보다는 현실적이다.

“인류 최초로 만들어진 설화와 통하는 게 태몽이고, 미래로 통해 있어요” 태몽 이야기는 풍부한 상상력과 동시에 여성의 역사와 모든 생산의 역사를 상징한다. “미래는 미지의 세계잖아요. 근데 미지의 세계가 우리에게 희망을 줘요” 나는 ‘미지의 세계는 두렵다’라고 관용구처럼 익혀왔다. “태몽을 통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풍부한 상상력을 다 표현할 수 있겠더라구요” 상상을 표현하고 실현하는 한계나 경계가 없는 태몽의 세계다. “그러면 선생님, 태몽 그림으로 우주를 여행하시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그렇죠. 광활한 우주를 생각할 때에는 자유롭고 기쁘고 헤엄쳐 가야할 희망을 느끼죠. 그러니까 삶이라는 게 다 그런 건데...” 태몽세계를 싸맨 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죽음을 임박한 사람들이나 태어나는 사람들 모두가 미지의 세계를 헤엄치는 기쁨을 갖고 태어나는데 본인이 모를 뿐이죠”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그러니까 느끼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 실제 하는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삶도 환희이고 죽음도 기쁨이예요” 다시 태몽 그림을 바라본다. 뭔가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 근데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기량, 경험, 뭐 이런 것들 때문에 태몽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게 고민이고 숙제예요” 그렇게 김인순 님은 감각을 열고 정신세계를 열어 태몽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화가의 열망을 현실로 드러내다!

생활미술과를 졸업한 예비 미술가는 그 당시 고호와 고갱의 마력에 푹 빠져 있었다. 막연하게 화가를 꿈꿨던 한 여성의 운명은 전혀 다른 각도로 돌아선다. “어쩌다가 비주류 운동권에서 미술을 시작하셨나요?” “그러게 말야 고호와 고갱이 눈에 아른 거렸어요. 가정도 파괴하고 무인도도 가고 제 귀도 잘라내면서 말야~~~ 낭만이라고 생각했지. 우아하게. 아이구 참” “그렇게 낭만성으로 그림을 그렸어도 좋았을 텐데요, 선생님” “ 아이~ 무슨, 아니지...” 김인순 님이 그림 감상자로만 살았던 70년대 초는 감당해야 할 상황들이 엄혹했던 군사정권시대였다. 혹독한 탄압 속에서 시대를 정의하는 움직임들은 들불의 씨앗처럼 번져 갔지만 암울했다. 그리고 80년대를 맞는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민족적 관점에서 쓰인 책들을 보면서 강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 당시 창작과 비평을 비롯해서 문학계에서는 펜 끝으로 진실을 말하며 시대에 저항했다. 그러나 이런 시대상황에 미술의 참여는 없었다. “일제시대와 6.25전쟁의 아픔, 지금의 현실이 문학으로는 기록되고 있는데 왜 미술 쪽에서는 없을까? 처절한 슬픔과 분노가 길게 흐르는 우리 역사. 그러면서 여성의 현실 또한... 게다가 거친 장벽의 가부장사회. 그 여성의 현실을 그림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자각하며 시대의 특수성과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때는 80년대 중반으로 김인순 님의 나이 마흔 줄을 넘어섰다. “먼저 나의 일상사, 가족사로 시작했어요. 전업주부의 답답함, 전쟁으로 먼저 간 고등학생 오빠의 이야기를 그렸지요” 거칠지만 절절한 자신의 이야기 라는 평가를 받으며 첫 개인전을 마무리했다. 개인전 이후 자연스럽게 ‘시월모임’이 만들어진다. 김진숙, 윤석남 님과 함께.
 
“여성해방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면서 만든 모임은 아니예요” 화가의 열망으로 시작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여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전시하게 되더라구. 자연스럽게” 그 당시의 평가는 ‘의식의 과잉’, ‘이런 그림이 어떻게 여성현실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냉정한 비판이 귀를 아리게 했지만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고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적 책무감으로.

▲걸게그림
노동미술과 현장미술

80년대 후반. 시대는 격랑이 일었고 김인순 님은 그림을 무기로 격랑의 한 복판으로 저벅 저벅 걸어 들어갔다. 여성운동, 미술운동, 노동운동, 문화운동의 판으로.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셨나요?” “일단 여성들만이 아닌 남성들과 연합해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민족미술협의회의 활동을 말함이다. “그리고 현장에 직접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지요” 노동현장, 파업현장, 여성운동현장이다. “그리고 거리로 나갔지요” 한곳에 머물러 보여주는 그림이 아닌 이동하며 소통하는 그림이었다.
 
“노미위 사무실엘 가면 늘 커다란 걸게그림이 바닥에 깔려 있었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 “그랬죠.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할 걸게그림의 밑작업을 해놓은 거였죠” 노미위는 노동미술위원회로 노동현장, 여성운동현장, 대학으로 찾아가는 미술활동을 했다. “걸게그림을 참 많이 그리셨죠, 선생님?” “그럼요. 그때 걸게그림 그리면서 굉장히 자랑스러웠어요” 왜 안 그러했겠는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세월은 이십년을 훌쩍 넘겼고 그 그림은 창고에 깊이 들어가 있다. “여러 사람들이 정말 울고 웃으며 그렸잖아요” 시대의 수런수런한 이야기와 웅장한 함성이 들리는 걸게그림. “그런데 아직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잖아요”

맞다. 민중미술에 대한 평가는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걸게그림이 그런 평가에 결박당해 있다.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눈을 즐겁게 하는 것만이 최대의 역할인줄 알고 있어요. 그건 고정된 관념이예요”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림은 목적에 따라 요구가 다를 수가 있는 건데...” 예술의 특수성이다. 특수성, 그 지점에서 김인순 님이 한마디 툭 뱉는다. “근데 다 버려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어디 둘 데도 없고...” “예? 예? 아구구~~~ 선생님 안돼요~ 안돼요~~~버리시다니요” 우리는 세월을 거슬러 갔다가 현재로 돌아오며 한참을 웃었다. 이렇게 노동미술은 현장 속에서 자라고 영글면서 90년대 노동의 가치와 사회변혁을 위한 커다란 힘이 됐다. 버리려고 해도 버려지지 않는. 그 힘은 김인순 님이 요동치는 시대의 중심으로 버텨 줬기 때문이다. 

뿌리와 정체성

“뿌리를 통해서 여성의 역사, 여성의 삶을 상징적으로 이야기 한 거예요” 뿌리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산책을 하다 보니까 산을 개발하려고 나무를 뽑아서 모아 놨더라구요” 그림을 가리키면서 “이것 봐요. 뿌리가 하늘로 뻗치고 그러잖아요” 97년 김인순 님이 양평으로 이주해 그리기 시작한 것은 나무이고 풀이고 낙엽이고 뿌리였다. 그 중에서도 ‘뿌리’. “그러니까 평소에 뿌리는 안보여 지잖아요. 그런데 보일 때가 있거든요” 순간 확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온다.
 
“뿌리가 상처를 입었을 때만 보여지는 거야... 썩어서 죽었다던지, 아니면 폭풍을 만났다던지, 이랬을 때만 보이는 거야” 그러고 보니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뿌리’의 황토 빛은 습기와 핏빛을 품고 있다. 잔인한 파헤쳐짐으로 상기한 듯, 분노한 듯. “사람들이 아~ 뿌리 좋다 하지 않고, 아~ 나무 좋다고 하잖아요” 뿌리에게 감탄하는 습관은 우리에게 없다. “이게 여성의 현실이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동안 여성의 삶이 다 그랬다는 거지...” 뿌리는 '그러려니' 한다. '묵묵하게 든든하게'라는 수식어만 달아준다.

“뿌리는 생명의 길이예요. 그리고 이 작은 실뿌리들이 생명의 원천이예요. 얽히고 끊기고 잘리고 뜯기고... 에휴~~” 자연의 섭리를 꿰뚫는 한숨은 이내 허공으로 어우러져 생명을 살리는 기운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생명에 필요한 양분을 흡수해서 저 위의 이파리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자잘한 뿌리는 흙을 얽어매듯 묻혀 있다. 그러고 보니 뿌리의 모태는 흙이다.  김인순 님은 그걸 포착했다. 여성성의 여성성, 또 여성성을. 이 무한한 순환과 공생을 말이다.
 
“그런데 이 잔 뿌리는 자꾸 잔 뿌리를 만들어요” 생명의 생산. “그러면서 나무로 영양을 보내 잘 생긴 나무를 만들잖아요” 나눔, 돌봄, 베품의 결과다. 당연히 여성의 삶과 겹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2005년 ‘느린 걸음’으로 전시에서 모습을 드러낸 ‘뿌리’가 다시 기억났다. “야~ 야~ 어쩜~~ 정말 좋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벌이진 입에서 탄성만 교환했었다. 전시장 공간을 압도했던 뿌리는 신성한 종교 같았다. 인터뷰 사이 갑자기 2009년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가 생각났다. ‘에이와' 나무. 판도라행성 나비족의 생명의 여신으로 영혼의 쉼터다. 그 나무에서도 '뿌리'가 매우 강조됐다. 형광 빛으로.
 
“뿌리는 내가 봐도 잘 그린 것 같아요. 허허허” 커피 한 모금을 길게 마시고 있는 사이다. “네, 네~ 그래요, 선생님.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뿌리처럼 가리워지다가 고통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여성의 삶을 부활시킨 게 태몽이라고 보면 돼요” 그렇다. 김인순 님의 뿌리는 징글징글하게 헌신만 하지 않았다.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태몽을 타고 우주로 간다.

▲뿌리

표현의 미학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의 정체성을  발견함과 더불어 김인순 님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수 천년 동안 나를 만들기 위해 내려오던 기운은 무엇인가를 생각했어요” 나를 규정해주는 ‘나’라는 뿌리에 대한 궁금증. “몸 속에 쭉 내려오던 혈통과 정신과 기쁨과 슬픔들이 나에게 있잖아요” 순간 나를 이루는 뿌리는 뭘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지금 세계가 급격하게 하나로 가는데...” 세계는 경계를 허물고 인터넷 세상은 천리를 코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렇지만 예술이 어느 날 갑자기 통합되는 것도 아니고...내가 살면서 축적한 특수성이 있는 건데...” 개인의 정체성이 아니라, 집단과 공동체 안에서 축적되어온 정체성. “과연 뭘까? 과연 어떤 걸까? 나에게 숙제로 다가 오더라구요” 질문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마르께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으면서 남미 문학으로서 소설의 전통을 이어가는 그 정체성에 감동을 받았어요. 서양이나 유럽소설에 휘둘리지 않고” 김인순 님은 문학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시킨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향유했던 미적 감각을 생각했어요” 한국적인 것에서 찾기로 한 것이다. “나의 미적 감각을 들추어 보니까 우리 민화에 가 있었어요. 리듬, 움직임, 색깔, 사고방식들이...” 기쁨과 환희가 김인순 님의 얼굴로 번졌다. “너무 뿌듯했어요. 그래서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막 쏟아냈어요”
 
아! 민화에서 왔구나, 그렇구나. “저기요, 참 쉬워요. 선생님의 태몽 그림이요” “그래요, 맞아요. 앞으로 더 쉽게 그릴 거예요” “색깔은 정말 휘향찬란해서 우울함은 얼씬거리지도 못할 것 같고요, 선생님” 치유의 기운도 함께 있다. “태몽으로 기쁨을 생산하는 꽃들을 그리는데 꽃도 웃고 나도 웃고 그러더라구. 하하하 나 참” 가장 순수한 감성이 된다. 김인순 님의 얼굴에서 나이가 사라진다. 초월적인 세계를 현실로 당겨왔다. 가볍다. 가볍다. 훨~ 훨~ 날아오른다.

나이가 드는 것은 미래의 문을 여는 것

“요즈음 하루를 어떻게 보내세요? 텃밭도 가꾸세요?” “아이, 텃밭은 무슨 ~~~. 낮 시간에 산책 좀 하구,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속도가 안나. 속도가 붙어야지 리듬이 생기는데. 그러면 기쁨이 와서 저절로 그려지게 되는 지점이 오거든”
 
“선생님, 칠십이 다 되셨네요?” 불쑥 질문했다. “어떤 느낌이세요, 선생님?” 언제가 내가 당도해야 하는 시간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는 내가 젊은 사람들하고 같이 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쓸쓸하지만 편안한 어감이다. “그러니까 세살과 열세 살은 엄청난 차이지만, 서른 살과 마흔다섯 살은 사실 별 차이가 없잖아요?” 나이 차이에 대한 가늠이 확실해진다. “그런데 지금 나는 세살과 열세 살 차이를 느껴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조금 의아스러워진다. “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선생님?” “뭐냐면 이제 돌아갈 곳으로 문을 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거지요. 그걸 두려워한다는 것이 아니라~~” 괜한 질문을 드렸나 싶다. “돌아갈 곳에 대한 문을 열지 않은 젊은 사람들하고는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질적으로 느껴져요” 돌아갈 곳에 대한 관심이 아직 없다. 젊음은. 그러니 서먹하며 분리감을 느끼실 거다.

“다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나요?” 내 질문은 담담하다. “도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다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무슨 말씀을 하려는 걸까? “이제 도전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져요. 왜 그때는 도전이라는 의미를 자랑스러워하고...” 생각해보면 우리보다 김인순 님이 더 열정적이었다. “활동하면서 내가 스무 살이 더 많았지만 항상 희망이 있었고... 또 꿋꿋함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어요. 하하하” 그 때 우리는 그 모습을 부러워했고 그 든든함에 얼마나 힘이 났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그렇게 단단한 고삐에서 나를 풀어놓는다고 할까요” 이제 후배들이 해야 한다. 김인순 님을 본보기로.
 
“뭐냐면, 도전이라는 출발 자체가, 잣대가 기쁨에서 왔으면 좋겠어요. 즐기면서, 응~ 하하하하” 역시 삶은 기쁨이어야 한다고 일러주신다. “나이 칠십에 갖는 편안함은 오십과 육십에서 느끼는 거하고 많이 달라요. 굉장히 우주적이라고 할까... 아~” 그렇다. 우주성이다. 얽매이지 않는. “내가 우리 딸의 심한 아픔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결국 산다는 것은 매 순간, 매 시기마다 최선의 기쁨을 느껴야 한다는 거죠” 김인순 님의 눈빛에서 기쁨의 본질을 발견한다. “지금 나는 시간에 있어서 초월적인 생각을 갖는다고 할까요?” 절제됐지만 탯줄을 타고 도는 생태적 모성과 사려 깊고 섬세한 여성성이 김인순 님을 감싸 안는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참 근사한 일이다.

앞으로의 작품은

“태몽 작품은 이렇게 일단락이 되는 건가요, 선생님?” “아녜요. 앞으로 쭈욱 그리게 되는 거죠. 이걸로 끝나겠죠” “태몽이라는 화두로요?” “태몽이라는 화두, 태몽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려고 해요. 뿌리를 그릴 때부터 쭈욱 생각해 왔던 여성의 꿈과 생산에 대해서 그리는 거예요” 그렇다. 여성을 통하면 모든 것이 다 태몽이 되는 것이다.
 
“태몽 전시는 언제쯤 하세요?” 나의 질문은 계속 규정하고 틀에 박힌다. “다 그리고 나서 전시를 하게 되면 하고, 못하면 말고... 전시 자체에 매달려서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그냥 그림을 그리는 거죠” 계획을 위해 계획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물은 흐르게 마련이니까. 화가를 열망하던 사십대부터 여성들의 왜곡되고 뒤집혀진 정체성을 바로잡으려고 그림을 그렸다. 도전하면서. 그리고 앞으로도 여성들이 지니는 여성성의 시원을 따라가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도전이 아니라 기쁨과 환희를 더욱 확장해 붓을 잡아 돌리겠다는 것이다. 김인순 님이 화가로서 살아가는 이유다.
 
“배 고프죠? 밥 먹으러 갑시다” 인터뷰는 다 끝났다. 그렇지만 태몽은 계속된다. “네. 선생님, 맛있는 거 사 주세요” “그래요. 오늘 내가 쏠께요. 내가 근사한데 봐 두었어요” 근사한 곳이란 말에 더욱 식탐이 생긴다. “네 선생님~~ 하하하 호호호” 웃으며 작업실에 걸린 태몽 그림을 다시 찬찬히 드려다 보았다. 그리고 김인순 님의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태몽을 꾸듯. 영원히 변하지 않을 우주의 섭리다.

‘뿌리와 줄기와 잎, 꽃과 씨앗의 어머니인 흙, 땅, 자연. 땅은 살아있는 자연의 숨 쉬는 유기체이다. 여자가 아기를 임신했을 때 여자의 몸은 자연의 리듬과 생명의 질서에 따라 별과 행성과 달빛까지 포함하여 우주 에너지를 몸에 담아 아기를 기르고 출산한다.’

서울 출생 / 이화여대 미술대학 졸업 / 여성미술연구회 회장 / 노동미술위원회 위원장 /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 /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 / 한국노동자협회 이사 / 여성문화예술 기획이사 / 민족미술인협회 회장 등 역임

개인전 - 김인순 전 / 여성, 인간, 예술정신 전 / 느린걸음으로 전
단체전 - 시월모임 전 / 반에서 하나로 전 / 여성과 현실 전 / 한국미술 그 변속의 양상 전 / 
조국의 산하 전 / 우리들의 만남 전 / 인간과 자연 / 코리아 통일미술 전 / 민중미술 15년 전
걸게그림 - 평등을 향하여 / 여성노동자 만세 / 여성농민 걸개
해외전 - 로즈리 대학초청 전(미국 시카고) / jaala 전(일본 동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t500.arko.or.kr/kiminsun/


기사입력: 2011/03/08 [14:47]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