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파도타기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박화안
▲장차현실
남양주 금곡동에서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니 양평까지 40분이라고 알려준다. 2008년 두물머리 세계야외공연축제 이후 오랜만에 양평을 향해 간다. 3년이 훌쩍 지나갔다. 한참을 달려가니 목적지의 기점인 전철역에 도착했다. 은색 빛으로 갈무리하고 있지만 자연과 어울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건축물이 눈에 번쩍 띈다. 전화를 걸었다. ‘여기 전철역인데요, 현수막이 보여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아 그러세요. 네~ 현수막 왼쪽으로 쭈욱 들어오시면 또 똑같은 현수막이 보여요.’ 식당을 홍보하는 현수막은 이정표이자 길 안내판이었다. ‘바로 그 옆 이예요.’ ‘네 알겠어요.

장차현실과 서동일의 집

천천히 차를 몰아 마을로 들어가는데 시골마을의 낭만과 평온함이 느껴졌다. 괜스레 폼을 잡으며 고상을 떨고 싶어졌다. ‘아~ 오늘 또 한 화가의 인생을 마주해야 하는 이 인연의 고리는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짚어보는데 갑자기 퇴비의 내음이 코끝으로 몰렸다. 훅~~. 향기롭다고 표현하기 어렵다. 미간을 씰룩이며 후다닥 현실로 돌아온다. 화학물질의 독성이 섞이지 않은 생명체들의 배설물은 땅속에서 썩어가며 생명을 키우는 6월, 하지의 절기다.

빨간색 나무 우체통이 보였다. “장차현실과 서동일의 집” 무릎정도에서 키를 멈춘 울타리 옆에 세워진 우체통은 문패를 겸하고 있다. 짙푸르게 우거져 무거운 고개를 땅으로 향한 나무숲은 이름 모를 어느 산의 끝자락인 듯 했다.  팔자 좋은 개 한 마리 심하게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꼬꼬 울어대는 닭은 할 일 없이 마당의 잔디를 쪼고 있었다. 장차현실이 문을 열어 나를 맞는다. 활짝 웃으면서. ‘어서 오세요.’

연애 대장 은혜와 질투 대장 은백이

‘은혜가 요즈음 연애에 빠져 있어요.’ ‘두 달 사이에 남자 친구가 3명이나 바뀌었어요. 하하하’ ‘왜 그렇게 남자친구를 바꾼데요?’ ‘은혜가 좋아하면 남자친구가 싫어하고 남자친구가 좋아하면 은혜가 싫고...’ ‘아하 안타깝네~~연애 대장이네 하하하’ ‘그렇다니까요. 하하하 ’ ‘근데 은혜는 어디 갔어요?’ ‘대학교 기숙사에서 지내요.’ ‘예? 대학이라니요?’ ‘아~ 장애아들이 다니는 학교예요.’ ‘이제 엄마 없이 혼자서도 생활 잘 하나 봐요?’ ‘네 주말에는 집에 오구요. 주중에는 연애하면서 호호호’ 다운증후군인 은혜는 사람을 좋아하고 파티를 즐기는 장차현실과 서동일의 큰 딸이다.

‘은백아 우리 나가서 저녁 먹자~~~’ 이층을 향해 소리를 올리며 계단을 오른다. ‘은백이, 안녕’ ‘우 쒸~ 맨 날 나가서 먹어? 좀 집에서 먹자~~’ 남편이 마누라에게 하는 말투 같아  웃음이 터졌다. ‘내가 언제 맨 날 그랬어. 오늘 손님이 오셔서 그렇지’ ‘미안해 아줌마 때문에, 니가 이해해라.’ 이렇게 환심을 사려는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식사를 하며 이어지는 우리의 대화에 은백이는 자신의 존재를 집요하게 알렸다. ‘엄마~ 엄마~ 엄마~ 이거, ~ 우 쒸 뭐야~, 집에 가자~.’ 이후 인터뷰 중간 중간, 맛을 내는 양념처럼 간간히 우리의 대화에 파고 들어온 은백이는 만화영화와 공룡그림을 좋아하는 서동일과 장차현실의 둘째 아들이다.

복닥거리는 현실과 거리두기

‘청년기에 여러 가지로 힘들었어요.’ 아버지의 부재, 경제적 어려움, 가족 간의 갈등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냥 무엇인가에 위로 받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어차피 젊음은 힘든 것인데 라고 생각하는 사이 ‘명상을 했어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네? 명상이요?’ 욕망과 현실에서의 갈등이 더듬어졌다. ‘라즈니쉬나 크리슈나무르티를 읽었죠.’ 세상의 격렬함은 명상 속으로 잦아들고. ‘명상을 하면서 내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희망을 움켜쥐려고 분노하는 자신 다스렸다. ‘내가 갖고 있는 갑갑한 생각들이 확 깨져버리는 경험을 했어요.’ 짓누르던 현실의 무게는 다행히 털려나갔다. ‘복닥거리는 것들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심취해 있었어요.’ 이렇게 장차현실은 명상을 통해 갑갑한 현실을 넘었고 또 다른 세계를 만났다 . 대학 일이 학년 때의 경험이다.

명동성당청년활동위원회 
 
▲대학시절

‘선배들 하고 명상을 하다가 외부 써클 활동을 했어요?’ ‘그게 어딘데요?’ ‘명청, 명동성당청년활동위원회요.’ 기억을 더듬었다. 명동의 어질어질한 화려함은 명동성당 앞에 이르러 차분해졌고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하고 분노한 사람들은 그곳을 터전 삼았으니 8~90년대의 명동성당은 피안이자 현실이었다. 행동하는 성령聖靈과 함께. 장차현실은 그곳에서 세상을 깨우치고 익혔다. 

‘명청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사회과학 공부를 하면서 민중미술과 대중미술론에 대해서 토론을 했어요.’ 민중미술은 직접적인 구호성으로 사회의 문제를 폭로했고, 대중미술은 대중과 가까워지는 매체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그 시기에 등장한 만화. ‘사람들에게 만화로 우리의 생각을 알렸어요.’ 즐거운 회상이 묻어나오고. ‘만화가 대중들과 만나는 아주 탁월한 매체더라구요.’ 만화와 판화가 활발하던 시절. ‘여기 저기 대학에서 만화 써클들이 만들어졌어요.’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명제는 만화에서 그 답을 발견했다.  만화운동은 이후 많은 시사만화‧ 만평가를 탄생시켰고 동시에 생활만화가 장차현실을 예고하면서 대중미술운동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나를 위한 사회문화운동

88년 5월. 명동성당은 통일의 필연성과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유산으로 남기고 떠난 젊은 청년의 죽음으로 망연자실, 숨을 멈추고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운동과 저항, 분노와 적개심, 현실과 이상의 생각들이 뒤엉키기 시작했고 운동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시작됐다.

나는 운동을 이 사회를 변혁시키거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하지 않았어요.’ ‘그럼 왜 하셨나요?’ 슬쩍 꼬아 질문을 던졌다. ‘나를 위해서 했어요. 나의 정체성을 찾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죠.’ 장차현실은 ‘나我’ 라는 주체에 반복적으로 방점을 찍었다.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무섭고, 두렵고, 공포였고, 도망가고 싶었고... 뭐 그런 거였죠.’ 그렇게 친구의 죽음을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깊은 고민의 시간을 맞는다. 

‘내 운동의 진정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운동으로 내가 도달해야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현실과 운동의 간극을 보며 새로운 선택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장차현실은 그곳을 떠났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사회가 공정한가? 그리고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의 현실에서 다시 출발하자.’ 미숙했지만 용감한 장차현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로 들어가 묻히는 듯 했다. 강산도 변해버린다는 10년 가까이.

고약한 현실 단련기

‘그 사이 어떻게 지내셨어요?’ ‘취직해서 바로 결혼을 했어요.’ ‘잘 적응이 되던가요?’ ‘네~ 거기서 일러스트도 하고 인쇄 편집도 배우면서 일을 했어요.’ 안정적이고 평온하게 들렸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결혼을 했어요.’ 성급한 선택이다. ‘그리고 은혜를 낳았죠.’ 다운증후군 아이를 품에 안은 초보 엄마의 절망이 스쳤다. ‘그러면서 푹 주저앉은 거예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거야~~’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눈앞에 닥쳤다. 그러나, 그것은 알토란처럼 탱글탱글 영그는 희망을 준비하는 것이었지만 고약한 현실은 서럽고 서러워 불행이라고 느꼈다. 20대 중반의 장차현실은 이렇게 현실 단련기를 시작한다.

‘그림을 그렸어요.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어디에다 그렸나요?’ ‘ 신문사나 잡지에~ 삽화나 일러스트요.’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럼 ~남편은~~~’ 짐작되는 바가 불안해서 질문의 끝을 흐렸다. ‘하하하 ~~제가 벌어야 했어요.’ 장차현실의 현실 단련기는 계속 진행형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누구나 공감하는 만화, 가식이나 군더더기 없는 만화, 솔직하면서 돌파력을 보여주는 만화,  유머와 재치가 번뜩이는 힘의 원천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줄이야. 갑자기 TV스페셜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떤 가수의 말이 생각이 났다. “모든 나쁜 것은 다 좋은 것이다.” 그렇다. 고통의 다리 너머에 있는 현실의 판타지를 확신할 때, 우리는 이를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 하지 않던가. 
 
이프if와 색녀열전索女列傳

색녀열전索女列傳. ‘그냥 들으면 제목이 선정적(?)이예요. 호호호’ ‘그렇죠. 맞아요. 그런데 정욕의 색色이 아니라 찾을 색索을 쓰고 있어요.’ ‘아 네 그래서 색色쓰는 여자들이 많아 찾아지던가요? 히히히.’ ‘네 기센여자, 팔자 센 여자들의 활약상이 많더라구요. 하하하’ 남근성을 전복하는 여성들의 성적 취향들은 농담처럼 유쾌하고 통쾌했다.

‘연재를 한 곳은요?’ ‘이프라는 페미니스트 잡지요.’ 97년, ‘웃자, 놀자, 뒤집자’라는 표어로 등장한 본격적인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if. ‘제가 이프를 만난 것은 내가 놀 물을 만난 거였어요.’ 맞다. 기센(?)여자들과 만나 기운을 얻었고, 깔깔 수다로 고단한 일상을 소통하여 위로 받으니 현실의 무게는 나누어 가벼워졌다. 마침내 장차현실은 자신의 생활을 세상과 나누고 시지프스의 돌덩이 같은 인생들과 더불어 해방되자고 마음먹으며 30대 후반을 넘어갔다.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2000년, 한 인터넷 일간지에 연재된 만화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뒤집으며 독자들의 바쁜 시간을 붙잡아 매었다. ‘ㅋㅋㅋ,ㅎㅎㅎ,ㅉㅉㅉ.’ 그러다가 들리는 우하하하, 깔깔깔의 웃음들.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라고 엄마를 조르는 다운증후군 은혜는 깜찍했으며, 생활에 지치다가도 훌훌 털어 당당해지는 독신 모 장차현실은 발칙(?)했다.

▲엄마 외로운거 그만하고 밥 먹자 - 장차현실

‘97년 이혼하고 난 뒤, 은혜와 살면서 그냥 저의 삶의 이야기를, 나의 생각과 일상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풀어낸 만화예요. 처음의 제목은 “장차현실의 현실을 봐”였어요. 보통 장애아를 두고 혼자 사는 여자라고 하면 뭔가 자기 노출을 꺼리고, 장애를 가진 아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헌신적인 엄마이고... 그렇게들 생각하시는데 그런 게 아니었어요.’

장차현실은 장애아와 독신모의 삶을 가십으로 엿보려는 사람들의 굴절된 시선과 정면으로 눈 맞추기를 했고 고정관념을 대수롭지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파괴하며 소통하고 교감을 펼쳤다. 예상을 뛰어넘어 사람들은 울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공감했다.

‘독신의 엄마도 욕구가 있고, 남자를 만나고 싶고, 외로움에 찌들어 있고, 그리고 장애인이지만 너무 소중한 내 아이, 아이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니까 우리를 그렇게 불쌍하게 보지 않아도 되요 라고...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삶을, 교훈이나 감동을 주려고 한 것도 아니고  현실적인 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한 것뿐이었어요.’

고상을 떨지 않고 은혜의 장애를 더욱 까발리고, 하루하루의 일상은 늘 북새통이다. 좌충우돌하는 은혜는 엄마를 찜쪄(?)먹기도 하고 부글부글 속 앓이와  머리 속 어지러운 장차현실은 딸이 잠시 사라져 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성적욕망을 곳곳에 흘려 놓으며 궁시렁 궁시렁 술타령, 남자타령하다가 은혜에게 들키기도 한다. 이것이 아무도 못 말리는 은혜와 장차현실의 매력이다. 그것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져 있었다.

장차현실의 만화의 힘

‘만화가 그림하고 다른 차이는 뭔가요?’ 불쑥 질문을 던졌다. ‘만화는 사람들과의 직접적 소통이예요.’ ‘어떻게 소통을 하나요?’ ‘음... 제가 정리한 삶을 보여 주는 거죠.’ ‘무엇을 정리하는 건가요.’ ‘그러니까 과정 속에서 내 삶을 되돌아보는 거죠.’ 상상의 이야기가 아닌 삶의현실을 그린 만화. ‘그렇게 정리가 되지 않으면 그리질 못해요’ 일차적인 자기 검열을 거친다. 그래서 소통과 교감이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화만큼 대중과의 소통이 잘 되는 것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문화운동을 하던 대학 시절에 이미 경험한 바가 현재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일층에 있던 은백이가 이층으로 올라왔다.

‘사실 저도 만화를 저급함으로 돌렸던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동양화를 전공했다. 우아한(?)예술을 기웃거렸을 거다. ‘그런데 사실 예술적인 그림의 만화가 얼마나 많은데요.’ 몇 권의 만화책을 꺼내 보여준다. “톨스토이 원작의 이비쿠스” 프랑스의 라바테라는 작가의 만화와 “체게바라” 쿠바의 알베르토 브레시아의 만화는 역사와 그림의 만남, 인물과 그림의 만남으로 서사성과 서정성을 보여주며 문학의 향기와 그림의 미학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만화가 예술 인가요? 아닌가요?’ 질문을 던지려는데 은백이가 우리의 말을 가로 막고 등장했다. ‘엄마 공룡 그려줘~~’ 인터뷰 중단해야 했다.

‘생활만화로 오면 그 영역이 참 다양해요.’  강의를 듣는 학생처럼 눈을 맞추었다. ‘먼저 교육적 효과가 있고 게다가 카타르시스도 안겨주고. 하하하하’  공룡을 그리는 은백이를 살피며 듣는다. ‘여러 가지 생활정보, 요리정보, 성에 관한 정보도 주고...’ 듣는 나는 불안했지만 말을 이어가는 장차현실은 태연하다. 그러나 ‘엄마 공룡이 잘려서 나오잖아~~’ 볼멘소리 들리자 아무렇지 않게 은백이의 부르심을 받들어(?) 나를 소외(?)시켰다. 그래서 내가 우~ 쒸~ 해야 했다. 

이것이 장차현실의 생활이었다. 집중과 산만, 헝클어짐과 정돈을 반복하며 한 컷 한 컷 만화를 그리는 장차현실. 그녀의 만화가 소소한 일상이 포착되어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소통과 공감을 주는 힘은 바로 이것이었다. 만화가 예술이냐 아니냐의 질문을 막아준 은백이가 고마웠다.

만화의 구성과 기법  

▲만화스케치 - 장차현실

‘시시때때로 메모해요. 생각날 때 마다 한 줄로 길게 그냥 써 놓아요. 표어처럼.  스토리에 급급하니까요. 그런 다음에 그 이야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살을 붙여요.’
일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상이 훼손되지 않도록 수다처럼 편안하게 조각보를 깁듯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컷 분할을 해요 어떻게 할 것인지 의도에 따라 네 컷으로 할 거냐, 여덟 컷으로 할 거냐를 정리하죠. 그 다음에 그림을 그리게 되요. 연필로 그린 후에 색 작업을 하죠.’
축약과 생략, 뛰어넘기와 당겨오기를 적절히 사용하여 시간과 공간을 자리 잡게 한다. 컷과 컷이 사이가 이 역할을 하는데 역동성과 입체성을 확보한다. 그곳에 상상과 현실의 절묘한 만남이 있다. 그러면 독자들은 감정이입과 거리두기의 소격 효과를 통해 공감하고 자신을 반추하게 된다. 또 컷 밖으로 삐져나와 자신의 생각을 노출시키는 구성을 한다.

‘그런데 제가 그리는 작업은 연재되는 만화라서 마감이라는 시점이 있어요. 그 시간까지 끝내야 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공을 들이는데 한계가 있어요. 감각적으로 즉자적으로 그 내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정보와 그림의 표현을 맞추어야 하는 거죠.’
주어진 시간 안에 번뜩이는 생각을 잡아채서 컷에 밀어 넣어야 한다. 이것은 만화쟁이로서의 전문성이다. 장차현실은 절대 등장인물들을 이쁘게 그리지 않는다. 이쁨 뒤에 숨어있는 망가짐의 터치로 친근하거나 만만한 화풍에 생활언어를 얹는다. 이는 바로 만화적 완성도의 잣대가 되며 장차현실만의 독특한 기법이 되어버린다. 
 
▲포토작업 완성 - 장차현실

가족식

‘가족식을 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특별한 이유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동거 상태였어요.’ 호주제가 폐지되기 이전이라 은혜는 예전 아빠의 성을 따랐고, 남편과는 사실혼 관계였으며 은백이는 동거하는 남편의 성을 따랐을 것이고 자신은 부모의 성을 동시에 붙여 장차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차별적 가부장 질서의 낡은 관습에 문제제기를 해대고. 사실 참 묘한(?) 구성의 인연이다.

‘가족식을 할 당시 남편과는 몇 년 동안 사셨나요.’ ‘4년 정도 되었죠.’ 2004년, 영화 일을 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양쪽 가족들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가족이라는 것을 알려야 했어요.’ ‘굳이 가족식이라고 하신 이유는요?’ ‘결혼식이라고 하고 싶지 않았어요.’ 혈연중심의 가족만을 인정하는 결혼, 가부장의 가계만을 우선하는 결혼의 의미를 부정했다. ‘때 마침 남편이 프로포즈를 하데요, 맹숭맹숭하게 하하하.’

‘어디다 맡기지 않고 전부 우리 손으로 했어요. 드레스도 제가 만들었구요.’ 그림쟁이들은 못 하는 게 없는 모양이다. ‘지인들 300명 정도 모셔 놓고 치루었어요.’ 장차현실과 서동일과 은백이와 은혜로 구성된 울타리는 새로운 모습의 가족을 발견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2008년도 여름날, 축제의 흥겨움으로 춤추는 가족의 모습이 그려졌다.

‘가족의 이야기가 전부 공개되었는데 불편하지 않으세요?’ ‘조금 불편하긴 해요. 하하하’   은혜와 독신모의 이야기로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 가족은 이제 개방 가족이예요.’ 그리고 그 뒤로 이 가족들의 생활은 입소문을 타고 혹은 언론을 타고 혹은 만화를 타고 천리고 만리고 떠다닌다. ‘저는 이제 외부를 의식하지 않아요. 외부를 너무 의식하는 것은 삶의 중심을 자기한데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봐요.’ 무심하게 묵묵히 일상을 열어놓고 살아간다.

▲장차현실의 가족

‘여성과 장애’ 그리고 가족

‘생활만화가로 활동하신지는 얼마나 되나요?’ ‘한 15년 정도? 아~ 그렇게 되었네요.’ ‘여성과 장애, 그리고 가족만화를 그리고 있는데 특별히 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는 없으신가요? ‘아니요 없어요. 저는 환타스틱한 만화나 공상의 세계를 그리기 보다는 내 삶속에서 느껴졌던 것들을 그려요.’

여성과 장애, 가족의 생활과 삶을 그리는 충분한 이유들이 더 이어졌다. ‘내가 여자라는 것, 나의 아이가 장애아라는 것은 사회와 소통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이죠.’ 혼자 감당하면서 살아내야 하는 소외와 은둔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여 다양한 삶의 하나로 보편성을 가져야 하는 소수자들의 삶. ‘그런 소수자가 내 가족 안에 있어요. 그래서 가족을 이야기를 하는거죠.’ 젊은 시절, 장차현실은 이 사회가 공정한가를 물었고, 지금도 공정한가를 여전히 묻고 있다.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 했다. 젊어서 힘들었으나 매력적인 미대생의 시절을. ‘생각해보면 순수미술을 하면서 사는 것 외엔 생각해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러나 장차현실의 길은 그 길이 아니었다. ‘내가 만화가가 된 것은 나의 삶의 파도타기를 통해서였어요.’ 한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닥쳐오면 감당했다. 그래서 공중에 뜬 순수예술을 붙잡지 않고 현실의 만화와 밀착했다. 
 
‘내가 나의 삶을 이야기 하려면 내가 가장 평범한 위치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봐요.’ 장차현실의 현실론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결코 그녀는 평범하지 않다. ‘그러면 살림하는 것 좋아하세요.’ ‘네 너무 좋아해요. 된장 담그고, 고추장 담그고 반찬 만들고 그러다 보니 집 밖을 나가지 않아요.’ 자신을 가장 일상적인 존재로 두어 그 안에서 세상보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 만화가 장차현실은 일상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오로지 자기 들여다보기를 하고 있었다. 회광반조回光返照에 견주어 본다.

계속 이어지는 작업들

‘지금하고 있는 작업은요?’ ‘몇 개 되요.’ ‘많이 바쁘시겠네요.’ 하루하루 마감에 쫓기는 일간지 연재는 여전하고, 단체의 사보나 홍보물도 시간을 닦달(?)하기는 마찬가지. ‘어떤 내용들인가요? 가족이야기인가요?’ ‘아니요 여성과 장애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어요.’ 10대의 성, 성폭력, 임신출산, 과잉성행동장애, 가족이야기까지. 역시 소수자들의 다양한 삶을 드러내는 만화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9월, 11월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만화가 있어서 여유가 좀 없어요.’

‘특별히 집중을 해야 하는  작업이 있나요?’ ‘ 아, 네~ 개똥이네 놀이터라구요.’ ‘왜요? 무슨 이유로?’ ‘그건 우리 가족의 삶의 이야기거든요.’ 은혜와 장차현실에서 은백이와 서동일로 가족이 늘어난 그들의 삶은 또 얼마나 못 말리는 탈 관습, 탈 관념적일까? 아무튼 우리의 낡은 이데올로기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려 줄 만화일거라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자동차 소리들렸다.
 
남편이 돌아왔다. 시간은 밤 10시다. 너무 늦었다. 장차현실의 남편 서동일과 스치듯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차를 몰았다. 자동차의 불빛이 시골길을 비추며 내 갈 길을 열어준다. 밤하늘의 달도 별도 내 갈 길을 함께 열어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말하는 것 같았다. '현실을 긍정하고 현실을 사랑하라고.' 이렇게 살아아가는 장차현실을 더도 덜도 아니게 표현하고 있는 '엄마 외로운거 그만하고 밥 먹자'의 추천사를 옮겨본다.
 
「숨기고 싶은 우리 속의 멍청함, 황당함, 초라함, 미숙함, 외로움, 슬픔을 숨김없이 만화로 다 그려내 버리는 그녀의 솔직함에,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또다시 일어서 살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닐까?」- 김미경 (전 스카이라이프 편집장)

펴낸 책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 
             <색녀열전>  <마님난봉가>
함께한 책 <사이시옷> <이어달리기>



기사입력: 2011/07/15 [20:44]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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