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나눔의 기쁨
[다락방기도] 데살로니가전서 5:16-24
 
김영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 '어거스터스'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부부가 있었는데요, 온갖 정성 끝에 낳게 된 아들의 이름이 바로 어거스터스입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어떤 노인이 밤중에 산모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아이를 낳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어거스터스의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아이는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소원대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선생님의 사랑도 받고, 친구의 사랑도 받고, 이웃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기만 하고 베풀지 못하여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교만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외롭고 우울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옛날의 그 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당신의 삶에 만족합니까?"하고 어거스터스에게 물었습니다. 어거스터스가 행복하지 않다고 고개를 가로 젓자, 그 노인은. "내가 당신에게도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겠는데, 소원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소원을 말했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사랑에 있고, 사랑의 본질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데 있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얘기입니다. 부부간에도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서로 불평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사랑은 받기보다 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에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이 있지요?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보다 베풀 때 더 기쁨을 느끼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내가 양보하며 나를 내려놓을 때, 나에게 더 큰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쁨의 삶을 가르쳐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기쁨의 촛불

대림절 셋째 주일인데요,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대림 첫째 주일은 소망의 촛불, 대림 둘째 주일은 평화의 촛불, 그리고 대림 셋째 주일에는 기쁨의 촛불을 밝힙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기쁨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성탄절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2천년전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셨던 예수님, 즉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으로 생각합니다만, 예수님은 과거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우리에게 오십니다. 과거에도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고 또 현재에도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또 미래에도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성탄절은 과거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던 예수님, 그리고 미래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기뻐할 뿐 아니라, 현재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을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천사가 목자들에게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고 예수님의 탄생이 기쁨의 소식임을 말씀했지요? 성탄절은 일년 중 가장 기쁜 계절이어서 어른들도 아이들도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왜 크리스마스가 기쁜지 그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불신자들도 덩달아 파티를 하며 선물을 나누며 즐기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의 깊이가 다릅니다. 예수님이 기쁨의 근원임을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마음 깊은 곳에는 진정한 기쁨이 가득합니다. 농부가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후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사고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계절에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말씀한 기쁨도 세상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 같은 삶의 환경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가 나를 구해 주셨다는 구원의 복음에 근거합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용서해주셔서 하나님과 화해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소유와 성취로 얻는 기쁨은 머지않아 허무와 슬픔으로 변하고, 육신적인 안락에서 얻는 기쁨도 곧 절망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입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은 기쁨은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영생의 기쁨은 온천하와도 비교할 수 없음을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맛보면서 현재를 기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우물가에 물 길러 나왔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는 얘기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로 헤매다 지친 여인을 예수님이 만나 주셨고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어 영원히 솟아나는 물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기쁨에 목이 말라 매일 물 길러 왔지만, 이제 예수님으로부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었습니다. 기쁨이 넘쳐 물동이를 던져버리고 기쁨을 주신 주님을 증거하려고 동네로 뛰어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받은 자의 참 기쁨입니다. 진실한 기쁨은 소유나 환경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힘으로 얻는 것도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따라 사랑의 삶을 살 때, 주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에 관계없이, 우리의 환경이 얼마나 좋으냐에 관계없이,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 때 예수님이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게 되고, 그 기쁨의 생수가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서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계절에 우리가 기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픔과 슬픔이 있는 이 세상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에 풍파가 없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풍파가 있어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금 당면한 슬픔 때문에 실망합니다만, 믿음의 사람은 그 슬픔 너머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기쁨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재수나 운을 믿지 않습니다. 인생에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다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모든 일을 선으로 인도하고 계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임을 알고 있다면, 마치 임신한 여인이 넉넉하게 그 고통을 견디듯이, 내가 당하는 현재의 시련과 역경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합동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진실로 믿는 자는 고난이 닥쳐와도 이겨내며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감옥에 갇혀서도, 육체에 병이 있어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마리아도 천사로부터 예수 탄생에 대한 예언을 듣고 처음에는 깜짝 놀라 무서워했지만, 곧 기쁜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이라고 하는 청년과 결혼을 약속하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마리아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마리아가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그 위대한 소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보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하게 되고, 인간의 눈에는 슬픔으로 보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본문 16절에서 사도바울이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했는데요,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성령 충만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기쁘게 살기를 원하여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겠다고 나름대로 기쁨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삶의 환경이 기쁨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질적인 성공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합니다만, 곧 실망하게 됩니다. 세상의 물은 계속 마셔도 곧 목이 마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삶의 기쁨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어느 새 지나가버리는 것입니다. 연애도 결혼도 하고, 자동차도 집도 사고, 여행도 골프도 즐기고, 음악에도 미술에도 심취해 봅니다만, 그 기쁨이 잠깐일 뿐입니다. 무미건조하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은데요, 인생에는 정말 신바람 나는 기쁨이 없이 그냥 밋밋하게 지내는 시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닥쳐오고 슬픈 일이 생길 때에는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이 오히려 부담으로 들릴 때도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옛날보다 더 부유해졌는데, 물질주의 때문에 마음은 더 여유도 없이 쫓기는 것 같고 불만과 염려가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마치 더 많은 물질을 얻어야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욕구를 절제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던 인간들에게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셨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세상의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소외된 자들 그리고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주시려고 역사 속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눈먼자가 볼 수 있게, 귀먼자가 들을 수 있게, 앉은뱅이가 걷게, 문둥병자가 깨끗하게, 죽은 자가 살게 하는 기쁜 소식을 주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한 평생 죄인들과 나누며 그들을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그의 목숨까지도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다고 말씀했지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는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종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기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섬기는 마음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에게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초대 교회는 섬김과 나눔을 실천했는데요, 우리도 섬김과 나눔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예수님이 사랑의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기쁨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둘을 연결하면 인간은 사랑할 때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사랑하며 살았던 것처럼 주님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섬김과 나눔

성탄의 계절은 섬김과 나눔을 통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절기입니다.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나 관심을 가지는 것도 섬김이요, 나눔입니다. 넉넉해서가 아니라 적은 것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성탄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섬김과 나눔이 있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는 기쁨이 퍼져나갈 것입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니까, 사랑을 베풀면 성령께서 기쁨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에서 첫번째가 사랑이고 두 번째가 기쁨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이고, 사랑하면 기쁨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베풀고 나누며 사는 사람은 기쁨을 누리지만, 나누지 못하고 움켜쥐고 인색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외롭고 우울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누지 못하는 것은 나눌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나눔의 기쁨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쁨은 많이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나누어 주는 데 있습니다. 물질적 소유의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존재의 성숙함에 있습니다. 나눔은 내 것을 주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그 결과로 성령께서 주시는 풍성한 열매를 받게 됩니다. 깊은 샘물을 퍼내면 퍼낼수록 맑은 물이 올라오듯이, 삶을 나누면 나눌수록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불우한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길 때 오히려 내가 기쁨으로 풍성해지는 역설적 진리를 경험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병든 이를 돌보는 것이 바로 내게 해준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강도 만난 자를 보살펴주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밥퍼 목사"로 별명이 붙은 다일공동체의 최일도 목사는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20여년전 청량리 굴다리 밑에서 홈리스와 굶주린 형제들에게 밥을 나누는 사역을 시작했다는데요, 지금은 그 사역을 확장하여 '다일 천사병원'과 '다일 영성수련원'도 시작했다고 합니다. 큰 교회를 세워 자기를 내세우겠다는 욕망을 버리고 평생 섬기는 사역을 하면서 육체의 양식 뿐 아니라 영적인 양식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힘이 있는 자기 군림하면서 남을 지배하려하고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의 적은 것조차 착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라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여 불의한 사회 질서를 바로 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교훈하셨지요? 재물을 가진 자는 재물로, 노동력을 가진 자는 노동으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자는 기술과 경험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면 주님이 풍성하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이 계절에 섬김과 나눔을 통하여 참 기쁨을 발견하고 그 기쁨을 찬양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이 계절에 기쁨을 주러 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축복하여 주셔서, 우리 모두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고,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기쁨을 누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세상에서 기쁨을 찾지 못해 슬퍼하고 실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려주시옵고, 전쟁과 기아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주님이 찾아오시옵소서. 오늘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성도들, 그리고 멀리 사시는 성도들에게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게 축복하시옵소서. 섬김과 나눔이 없이 욕망을 좇아 사는 자들에게도, 그리고 이 계절에 세계 곳곳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성탄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1/12/18 [22:13]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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