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행의 시작은 쿠데타였다
 
송영한
휴가철을 맞아 벼르던 책 한권을 읽었다.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다.
 
알다시피 우암 송시열은 노론의 거두로, 당쟁의 화신으로 효종 때부터 현종과 숙종 때까지 3대를 봉사하고, 장희빈이 낳은 왕자(경종)의 원자책봉을 반대하다가 숙종에 의해 83세에 사사(賜死)될 때까지 평생 녹봉을 받는 봉조하(奉朝賀)로 살았으며, 영조로부터 문묘에 배향됐다.

또 정조는 송시열의 문집을 모아 송자대전(宋子大全)을 편찬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공자, 맹자, 주자에서 보듯 유학자의 성 씨 뒤에 ‘子’자를 붙이고 공자의 사당인 문묘에 배향됐다는 사실은 거의 성현 반열의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그는 조선의 통치이념인 주자학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사실 그가 그토록 숭상하던 주자학은 주자가 살았던 중국에서도 이미 용도가 폐기됐던 학문으로 중국에서는 조선을 멸시하고 비아냥대는 소리로 “주자를 알려거든 조선으로 가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은 삼배구고두의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고 청을 섬기면서도 편법으로 망한 명나라의 연호를 썼다. 중국과 조선 외에는 모두 오랑캐라는 아전인수의 논리로 조선이 명을 대신한 ‘소중화’의 문명국이라는 몽상과 착각에 빠져있었다.
 
그런 숭명사대주의 사상이 자기 나라를 두고 남의 나라에서 전쟁을 벌이기 위해 명나라가 조일전쟁에 참전한 것을 ‘재조지은’으로 둔갑시켰으며, 한족(漢族)보다 핏줄이 가까운 만주족을 오랑캐로 대하다가 온 백성을 두 번의 참혹한 전쟁에 빠지게 했다. 송시열과 그들의 문하생들이 주축이 되어 무려 15년 동안 벌인 예송논쟁은 백성들의 삶의 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정권 획득을 위한 공론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한 그의 생의 이면에는 대동법을 반대한 것은 물론 자신을 등용한 효종의 종통마저 부인한 예송논쟁에서 보듯 국가의 이익보다는 당의 이익을, 백성의 이익보다는 지배계급인 사대부의 이익을 먼저 챙긴 어두운 그림자가 감춰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입으로는 인치(仁治)와 덕치(德치)를 주장하면서도 당적에게 끝까지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는 편협함으로 피바람을 일으켰으며 그 또한 부메랑에 맞아 불귀의 객이 됐다. 송시열은 숙종에 의해 사사됐지만 장희빈의 몰락 후 아이러니하게도 ‘개혁의 시대’라는 영조와 정조 때에 화려하게 부활해 그의 당파는 조선이 망할 때까지 지배권을 행사했다.
 
사실 송시열이 출사한 뒤로는 숙종과 영·정조를 제외하고는 모든 임금들이 그저 서인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으니 결국 따지고 보면 조선후기의 역사는 숙종 때 두 번에 걸쳐 잠시 남인에게 정권을 줬던 환국정국을 제외하고는 왕의 통치 시대가 아니라 거의 250여년 동안 서인들의 일당독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그들 지배층과 외척들의 가렴주구가 조선을 망하게 한 원인이 됐다.
 
원조 쿠데타인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차치하고라도 친조카를 죽이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사람들을 공신이란 이름으로 챙겨 지배층이 훈구파와 사림파로 나뉘고 이로 인해 연산군 통치에서 사화라는 이름으로 피비린내 나는 수차례의 참극이 일어났다. 또한 중종반정 이후에도 훈구대신들의 상식과 사회통념을 벗어난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군사정변의 백미는 서인들이 조선왕조에서 몇 안 되는 현군으로 평가되는 광해군을 쿠데타로 몰아내면서 일어났다. 인조반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이 쿠데타로 서인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권력을 독식했다. 능양군이 쿠데타로 광해군과 북인을 축출하면서 관제 야당 성격의 남인이 등장했지만 구색 맞추기 용이었을 뿐이고 이후 서인은 노론과 소론 벽파와 시파로 분열을 하면서 나라도 같이 분열시켰다.
 
이 망국의 비극은 비정상적인 정권의 찬탈에서 비롯된다. 정통성이 없는 자들이 권력을 차지하면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신들을 만들어 정권의 기반으로 삼았으며, 그 공신들이 배를 채우기 위한 가렴주구가 백성들의 피폐한 삶으로 이어지고, 국고는 비어도 공신들의 창고는 차고 넘치는 부정과 부패로 결국은 나라가 망하게 됐던 것이다.
 
요즘 쿠데타 주역이었던 아버지가 남의 재산을 강탈해 남긴 유산으로 살아온 유력 대권주자 한분이 5·16쿠데타를 “(나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강변해 화제다.
 
물론 쿠데타의 주역이 아버지니 심정적으로 아버지의 행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겠지만 한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대통령 후보로서는 온당치 않은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국체를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야기 하자면, 지금 이 나라의 암 덩어리인 양극화의 깊고 깊은 근원에는 친일매국세력을 청산치 못한 결과로 친일파 자손이 아직도 정치적 지배층으로 남아있고, 5·16과 12·12쿠데타에 기생한, 아니 어쩌면 쿠데타 세력이 그들의 정통성과 정권 유지를 위해 길러냈을 수도 있는 재벌들과 기득권층이 경제력을 움켜쥐고 있는데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5·16쿠데타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쿠데타가 최선이라고 말한 분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됐다고 가정하고 만약에 그의 정치적 약점을 문제 삼아 그의 재임 기간에 군부가 ‘최선의 선택’을 한다면 그분은 과연 그 ‘최선의 선택’을 용인할 것인가? 그렇기에 쿠데타에 대한 평가는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불행의 시작은 쿠데타다” 그것은 ‘그들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적이 아닌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게 총을 들이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구리넷 도여비의 사랑방>

기사입력: 2012/07/20 [16:1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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