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심비우스를 위한 변명
 
사회적기업 에코그린 김종필
여기 하나의 도그마가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대부분의 도그마가 그렇듯 이 ‘손’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200년을 훌쩍 넘겼지만 흔들리지 않는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성적 검증이 가능한 ‘진리’보다는 맹목적 믿음이 필요한 ‘신앙’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 아는 얘기지만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상반된 이해관계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경제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이다.

애덤 스미스 자신이야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던 간에,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이론과 산업혁명으로 급격히 팽창한 자본주의가 결합하면서 ‘이기심’과 ‘무한경쟁’은 사회를 움직이는 시대정신이자 절대선이 됐다. 과연 그럴까?

죄수의 딜레마 – 이기적 선택이 최선은 아니다

두 용의자에게 검사가 심문을 시작한다. 아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검사는 이들의 자백을 유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교묘한 제안을 던진다.

“두 사람 모두 자백을 하면 5년형을 구형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범행을 부인(용의자끼리 협조)하면 이미 확보한 사소한 범죄사실을 끄집어내 6개월형을 구형할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은 자백했는데 다른 사람이 부인(배신)한다면 자백한 사람은 최대한 배려해서 풀어주고 부인한 사람은 5년형에 위증 혐의를 더해 7년형을 구형할 것이다.”

그리고 둘을 격리한다. 자 게임은 시작됐다. 이 상황에서 나에게 유리한 선택은 무엇일까?

상대방이 자백을 하건 하지 않건 내게 유리한 선택은 자백이다. 상대방이 자백을 했는데 내가 자백을 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상황인 7년형이 구형되고, 나도 자백을 한다면 5년형이 구형된다. 당연히 자백을 하는 게 유리하다. 반대로 상대방은 자백을 하지 않았는데 나만 자백을 한다면 나는 풀려날 수 있고, 나도 자백을 하지 않는다면 6개월형을 구형 받는다. 역시 자백을 하는 게 유리하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두 사람 각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기 위해 자백을 하면 둘 다 자백을 하는 꼴이 돼 5년형을 구형 받는다. 둘이 서로를 믿고 협조(부인) 했다면 6개월형으로 끝났을 일을 각자가 이기적 선택(배신)을 함으로써 5년형을 구형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특수한 상황을 설정한 게임이론에 불과하지만 주류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개인의 이기적 선택이 사회적으로도 최선’이라는 명제가 언제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최후통첩 게임 – 이기적 합리성보다는 호혜적 공생관계

A, B, C 세 사람이 있다. A가 B에게 1만원을 주면서 C와 나눠 가지라는 제안을 한다. C에게 얼마를 주든 B의 마음이지만 B의 제안을 C가 받아들여야 B와 C는 돈을 나눠 가질 수 있다. 만약 C가 B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1만원은 다시 A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내가 B라면 C에게 얼마를 줄까? 또는 내가 C라면 얼마 정도라야 B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이기적 선택이 최선의 결과’라는 명제를 인정한다면 C는 B가 단돈 10원을 제안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게 이익이다. 이를 거부하면 돈은 다시 A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자신은 한 푼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10원>0원). 이 사실을 아는 B도 9천990원을 자기가 갖고 C에게는 10원만 주는 게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이는 최후통첩이라 불리는 게임이론으로 실제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독일 쾰른대학에서 학생 42명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B역할을 맡은 학생(제안자)은 평균적으로 3천700원을 C역할을 맡은 학생(응답자)에게 건네줬고, 21명의 제안자 중 7명이 무려 5천원을 건네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경제학 교과서를 벗어난 이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최후통첩 게임이 유행처럼 번졌지만 최초의 실험 결과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제안자는 평균적으로 4천~5천원을 응답자에게 건넸고, 제안된 금액이 2천원 미만일 때 응답자는 그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응답자가 거절할 경우 제안자 자신에게도 피해가 오기 때문에 응답자가 거절할 수 없도록 충분히 보상한 것을 두고 제안자의 이기적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제안된 금액이 2천원 미만일 경우 응답자가 거절을 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그 두 배가 넘는 4천~5천원을 건넨 것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 선택보다는 호혜성과 공생, 이타심 등에도 상당한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원숭이와 개도 싫어하는 불공정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원숭이에게도 공정함이라는 개념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차별적 보상에 관한 실험이 진행됐다. 원숭이 두 마리에게 토큰을 나눠주고 훈련을 시킨 뒤 토큰을 가져오면 똑같이 오이를 하나씩 주다가 한 마리에게만 더 맛있는 먹이를 줬다. 이를 본 다른 원숭이는 오이를 줘도 토큰 지불을 거부했다. 원숭이만이 아니다. 개도 마찬가지다.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소에서는 개에게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사람이 악수를 청하듯 개에게 손을 내밀고 개가 같이 손(발?)을 내밀면 먹이를 줬다. 이후 한 마리에게만 더 맛있는 먹이를 주고 나머지 개에게 손을 내밀자 악수(?)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다.

과학자들은 불공정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도 있으며, 이는 인류의 역사를 뛰어넘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공생과 공정은 진화의 법칙

지구상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은 동물은 곤충이고, 생물 중 가장 큰 중량을 차지하는 것은 식물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군인 이 둘은 경쟁이 아니라 공생을 통해 그 세를 확장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공생은 공정을 바탕으로 한다. 곤충은 식물에게, 식물은 곤충에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일방적으로 주거나 빼앗는 법이 없다. 이렇듯 공생과 공정은 생태계가 진화해온 중요한 원리 중 하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인간사회에서 공생과 공정이라는 말은 윤리책에나 나오는 ‘덜 떨어진’ 얘기가 돼버렸다. 그 결과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참담하다.

‘20:80’이라는 말이 나온 지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99’라는 말이 회자된다. 그러고 보면 생명의 역사 40억년 동안 ‘이기심’, ‘무한경쟁’ 등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은 기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0년을 넘지 않는다.

우리가 다시 호모 심비우스(공생하는 인간)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기사입력: 2012/11/24 [13:42]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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