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서 드러난 ‘쇼당패의 말로’
 
이시백
성완종 리스트로 나라 안이 뒤숭숭하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밝힌 ‘검은 돈’의 기착지가 대부분 여권 정치인들로 알려지며 집권 여당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었다. 문제는 죽은 성완종씨도 똑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점이다. 믿었던 도끼가 서로의 발등을 찍은 셈이다.

성완종 리스트가 주는 충격은 메가톤급이다. 그가 충청권의 기업인이면서 영향력 있는 단체의 주도자이고, 정치권과 폭넓은 교분을 쌓아 오던 인물이라는 점이 미칠 판세의 변화는 리스트에 오른 당사자의 거취 문제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총선이나 대선에도 미묘한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여당은 성완종의 사면 카드를 꺼내어 비난의 가늠자를 돌리려 애쓰고 있다. ‘차떼기의 추억’이 남아 있는 여당으로서는 성완종이 죽으며 밝힌 검은 돈의 리스트가 치명적이니 어떻게든 이 폭탄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4월 22일 취재진이 소환 대상자 등을 기다리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없어져야 할 망국병, 지역주의
충청권의 충격도 정치권에 못지않다. 성완종이 죽으며 가장 서운해하던 인물이 충청권의 기수로 추앙받던 이완구 총리라는 점에서 충청권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충청 총리 낙마되면 다음 총선 대선 두고 보자”며 간신히 띄워올린 이완구 총리의 애드벌룬이 남도 아닌 충청권의 인물에 의해 곤두박질치는 걸 보는 심경은 여간 복잡하고 허망한 게 아닐 것이다. 성완종이 호남이나 영남 출신이라면 어땠을까.

없어져야 할 망국병 가운데 지역감정이라는 게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여전히 실재하며,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도 여전히 그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기까지 한다. 굳어진 영호남의 정치공학적 구도에서 충청권의 선택은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하게 된다. JP 이래 충청권은 스스로 대권을 잡을 수는 없지만, 대권을 결정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이름하여 화투판의 ‘쇼당 패’를 쥔 셈이다. 그동안 충청은 비록 대권을 쥐지는 못했지만 이 패를 흔들며 실리는 챙겨왔다. 세종시를 두고 현란하게 흔든 쇼당 패의 위력은 가히 눈부실 지경이었다.

이제 충청은 시효가 다 된 JP 패를 거두고, 이완구와 반기문이라는 패를 손안에서 주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타짜 격인 성완종이 손안에 들고 있던 패를 난데없이 까 보이고 말았다. 이완구 총리의 추락은 둘째 치고, 비장의 반기문 패는 미처 꺼내놓기도 전에 흠집을 입고 만 셈이다.

지금이라도 거둬들이고 싶은 심경이 간절하겠지만, 화투판에는 낙장불입이라는 엄중한 원칙이 있지 않은가. 이미 바닥에 까진 쇼당 패를 어떻게 추슬러 나갈지 심히 궁금하고 우려스럽다.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충청의 향후 행보를 가늠하느라 정치권은 벌써부터 부산하다. 제 잇속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어제의 동지도 무참히 짓밟는 정치의 와중에서 어찌 쇼당 패를 흔드는 충청을 비난할 수 있으랴. 어찌 보면 그것은 영호남에 치여 뒷전으로 밀려난 변방의 소외감이 선택한 유일한 패이리라.

지역감정에 빌붙어 연명하는 정치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선거판의 지역구도는 타파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인들이 자신의 출신 지역에 선심 예산과 개발을 쏟아붓는 형태라면 충청권뿐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라도 선거판 몰아주기는 쉽게 해소될 수 없다. 우선 주민과 지역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도지사, 군수나 시장, 도의원, 시의원을 정당의 올무로부터 벗겨내야 한다. 이들이 특정 정당의 선거 운동원 노릇보다는 제 지역과 주민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일꾼이 되도록 정당공천을 없애는 등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의원도 지역구 관리보다는 국가 정책과 제도를 바로잡는 의정과 입법에 집중하도록 지자체장과 역할을 엄격히 구분해 놓아야 할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에서 드러난 검은 돈의 기착지와 더불어 지역감정에 빌붙어 연명하는 정치판의 문제도 심각히 고심해야 할 것이다. 말끝마다 지역감정 타파를 부르짖으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그를 부추기는 이들이 누구인지 정치인들은 자문해 보기를 바란다. 혹 도움이 될지 몰라 오래전에 쓴 졸작 <부조>라는 소설 중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이려서 충청도가 능청도 소릴 듣는 겨. 이거면 이거다, 저거면 저것이 옳다 시시비비를 분명히 혀야지. 술에 물 탄 듯, 중도 아니구 속한이두 아닌 모양으루다 팔짱만 끼구 구경허다 떨어지는 고물이나 주워 먹으려니 능청도 소릴 듣구두 남는 겨. 화투판서 아예 별호가 나지 않았나벼. 누가 광 팔믄 ‘고향이 충청도여’ 이러구, 쇼당이나 붙여두 ‘거그 충청도 종필씨 닮았네’ 그러구 말여.”

“워째 그 대목서 가만 있는 충청두가 나온댜? 듣다 보니 말이 좀 저기 허네 그려. 장구 아부지는 워디 평안두 사램이래두 되나벼? 다 같은 충청두끼리 생뚱맞게 능청도, 멍청도럴 찾는댜? 글구, 고시톱서 광 파는 게 워디가 워째서 그런댜? 누군 좋아서 광 팔구, 쇼당 붙인댜? 패만 좋아봐. 팔라구 사정을 혀두 안 팔구 말지. 다 살자구 허니께 광두 팔고, 쇼당두 붙이는 겨. 그러지 말어, 누군 멍청도, 능청도 허구 싶어 헌댜? 시시비비 대쪽 같은 일편단심두 좋지만 그러다 댕강 목 잘리구 사약 사발 받은 게 한두 으른여? 말이 좋아 청풍명월이지, 인물 났다 허믄 형장의 이슬루 하루아침에 멸문지화 줄초상이 나는 걸 보구두 일편단심 우국충절이 나오겄냔 말여. 조선 오백 년이구, 일제 삼십육 년이구 헐만큼 해봤어. 국으루 입 다물구 굿이나 보구 떡이나 읃어 먹으믄 되는 걸 거저 깨우친 게 아니란 말여.”

[ 이 기사는 주간경향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5/05/08 [20:19]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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